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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여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2018년 09월 12일 (수) 09:25:35 엄인영 목사 webmaster@cry.or.kr
(사1:1-9)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삶에 유일한 기준과 권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그치는 곳에서 우리도 그쳐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신앙생활이 의미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제일 먼저 성경을 보는 안목을 갖추려고 애써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서 열심을 내는 사람처럼 위험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거짓 확신에 빠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500년 전에 교회의 타락상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이렇게 외친 마틴 루터의 깨달음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성경을 연대기 순으로 살펴오면서, 지난주에는 미가서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미가서 다음에 살펴 봐야할 성경은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미가 선지자와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이사야서를 통해 은혜와 진리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사야서는 1장부터 66장까지로 된 상당히 두꺼운 책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교우들이 이사야서를 잘 읽지 않으려고 하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대부분 이사야서의 요절이라고 하는 몇 구절 알고 있을 뿐이지, 이사야서가 기록될 때의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 이사야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갓난아기 같은 수준을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펴본, 아모스, 호세아, 미가 선지자들과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미가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고, 이사야는 남유다를 대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그 이사야가 부름받을 때의 역사적인 상황을 1장에서부터 5장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1장1절을 보겠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했습니다. 이사야는 남유다 왕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이런 왕들이 통치하던 시대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남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해 외쳤고, 그 외친 내용이 이사야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웃시야는 조금 통치하다가 문둥병에 걸려서 평생 별궁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신통치 않았고, 그 아들 아하스는 정신나간 짓만 하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국제 정세에 어두워서 앗수르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항복하고 조공을 너무 빨리 갖다 바치는 바람에 백성들이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꼭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국제정세를 오판하다가 삼전도 굴욕을 당한 인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 군대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성을 함락시킨 후에, 남쪽으로 내려와서 예루살렘을 제외한 남유다의 전국토를 짓밟으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유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거민들은 자신들이 거하는 예루살렘성 만큼은 절대 이방군대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거짓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이렇게 남북이 앗수르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던 상황에서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던 것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온 세상 사람들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현실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던 것입니다. 이런 이사야의 심정이 당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는 말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11월 20자 신문에 당시 황성신문의 주필이었던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을 연상케 합니다.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여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이렇게 시일야방성대곡에는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울부짖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가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 말에는 이런 비슷한 심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족이 외적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풍전등화가운데 있었던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사야를 불러 울부짖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었음에도 왜 그토록 망하게 되었습니까? 과연 그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2절 하반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지난 번에 호세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부관계로 묘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사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모와 자녀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극정성을 다해 양육했건만, 그들은 부모를 거역했습니다. 소나 나귀 같은 가축들도 사랑을 베풀면, 임자를 알고 주인을 알아보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짐승만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끝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신중하게 듣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하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들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바알 선지자들의 말에는 귀담아 듣고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출애굽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출애굽한 후로 600년 이상 사랑을 쏟아 부으셨건만, 이들은 전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패역한 자식같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보시고 가슴을 치며 슬퍼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로 부모님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잘되라고 회초리를 드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 매를 대셨습니다. 5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땅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참외밭의 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했습니다. 우리가 열왕기서와 미가서를 통해 살펴본 대로,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앗수르 군대의 침략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사마리아가 함락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는 돌아가지 않고 내친 김에 남하해서 남유다 전국을 군홧발로 짓밟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땅은 황폐했고, 성읍들은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마치 여름날 원두막처럼 예루살렘 성만 달랑 남고, 전국토가 외적의 손에 넘어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앗수르라는 회초리를 들어 때리셨는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 죄악을 돌이키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당시의 남유다의 모습이 어떠했길래 하나님이 이토록 분노하셨습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10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당시 예루살렘 관원들과 백성들이 타락의 대명사였던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제 멋대로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자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아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니고, 놀랍게도 하나님 앞에 열심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드리는 예배가 가증스럽다.”는 것입니다. 왭니까? 저들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는 열심히 드렸지만, 그리고 나서 삶의 현장에 가서는 열심히 악을 행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주일날 예배드리고 6일 동안 세상에 나가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보다 더 세속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자기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분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렇게 외치십니다. 15절입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했습니다. 이들의 손에는 피가 가득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는 권력을 남용해서 이웃을 해치고 속이고 부당한 재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배워서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과부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숨을 쉴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보시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는 아모스도, 호세아도, 미가도 외치지 않았습니까? 이사야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모스나 호세아나 미가가 전하는 메시지하고 어쩌면 그렇게 똑같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요구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남유다 사람들도 북이스라엘사람들처럼 똑같이 하나님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열심히 예배드리고 세상에 나가서는 세상 사람보다 더 탐욕스럽게 더 게걸스럽게 살았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분노하셨던 것입니다.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하나님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한 번 진솔하게 서로 토론해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래서 깨닫고 뉘우치고 돌아오면 아무리 큰 죄라도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거절하고 뉘우치지 않고 돌아오지 않으면 칼에 삼켜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단간에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엉거주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가서 복받을 것이냐, 여전히 자기 생각으로 고집부리다가 망할 것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21절 이하에서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뇌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했습니다.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그 당시 남유다 백성들의 삶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남유다가 창기처럼 보였습니다. 과거에는 정의가 충만했었고, 공의가 가득했었는데,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습니다. 고관들은 도둑과 짝하고 다 뇌물을 사랑하며 뇌물을 구하고 고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고, 과부들의 송사를 수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남유다도 북이스라엘처럼 지배계층들이 썩을 대로 썩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타락도 어느 정도야지 돌이킬 수 있는 것이지 임계점을 넘어서 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시대가 그러했습니다. 당시 남유다가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중병에 걸려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부름받을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회나 사회의 구성원은 남자와 여자로 이뤄집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비가 1:1로 거의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당시 남유다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했던 것입니다. 남자만 타락했다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또 여자만 타락했다면 그래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타락했습니다. 남자들이 짓는 죄는 무엇이었습니까? 2장5절을 보겠습니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면, 그 복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방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고 마필이 가득하면, 동시에 우상도 가득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나무나 돌을 가지고 조각한 우상들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천한 자도 절하고 귀한 자도 굴복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남자들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자기들이 잘나서 복을 누리는 줄 알고 교만해져서 우상을 섬기는 일에 바빴던 것입니다.
 
12절에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그런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남자들이 빠지기 쉬운 죄가 교만입니다. 특히 좀 세상에 업적을 남기는 남자들은 대개 교만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파멸이 순식간에 임하는 것입니다. 13절에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교만한 자들 위에 덮치게 될 것임을 외쳤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 밖에서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를 벗어나서 세상에서 떵떵 거리고 사는 자들은 셈할 가치가 없는 자들입니다. 결코 우리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장1절입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이 의지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여 버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진리를 버리고 무시하면서 세상 부귀영화를 쫓는 사람들에게는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8절에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 결국 그들이 스스로 재앙을 자취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13절에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이렇게 교만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권력을 남용해서 가난한 백성들을 짓밟고 얼굴에 맷돌질을 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당시의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어떠했겠습니까? 남자들이 타락했으면 여자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게 하시리라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이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 고리와 팔목 고리와 얼굴 가리개와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반지와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당시 예루살렘의 남자들은 교만했고, 여성들의 사치했습니다. 얼마나 사치한지 그들이 몸에 차는 패물들이 수십 종류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화려한 패물들을 훅 불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여기에서 노끈은 보통 노끈이 아니라 포승줄입니다. 전부 굴비 엮듯이 엮여서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하나님이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전부 베어서 대머리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 여기 ‘수치스러운 흔적’은 얼굴에 난 칼자국을 말합니다. 당시 노예들에게는 얼굴에 주홍글씨를 새겼습니다. “이 여자는 노예다”라는 표시를 그 고운 얼굴에 새기겠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장정은 칼에, 너희의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으리라” 이렇게 당시 예루살렘의 타락한 여성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자마저 타락하면 그 사회 그 나라는 끝장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겠습니까? 5장1절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이사야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계를 농부와 포도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포도원을 조성하는 목적은 포도열매를 따먹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땅을 파고 돌을 제거하고 정성을 다해서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포도열매 맺기를 바랬는데, 이게 뭡니까? 포도나무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들포도를 맺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농부가 화가 나서 울타리를 헐어버리고 포도나무를 찍어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이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부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정의의 열매는커녕 도리어 포학의 열매를 맺고 공의는커녕 도리어 부르짖음의 열매를 맺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심정이 지금 분노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 거민들은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전혀 관심없었습니다. 11절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이들은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면 그것이 진리였고, 그러므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독주를 마셔대고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했습니다. 허구헌날 부어라 마셔서 파티를 해 대고 흥청망청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신들을 보시면서 얼마나 분노하시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18절입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또 그가 기치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이 타락하고 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군대를 보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들메끈은 끊어지지 아니하며 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겨졌으며 그들의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 같을 것이며 그들의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들의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먹이를 움켜 가져가 버려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하나님이 남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보시고 그들을 무섭게 심판하실 것을 외쳤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사야서는 남왕국 유다가 얼마나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당시의 종교 정치 문화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족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정신차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정의를 행할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예배는 열심히 드렸습니다.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세상에 나아가서는 자기들의 뱃속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들을 보시면서 슬퍼하시고 분노하시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외쳤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남유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모습과 오늘날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샤론의 교우들은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당시의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종교적인 의식에 매몰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종교적인 행위와 삶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종교적인 의식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의 무게 중심은 삶의 현장에 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나라가 힘있게 세워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주인공들로 끝까지 승리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양들꽃푸른샤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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