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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2018년 07월 18일 (수) 08:02:47 엄인영 목사 webmaster@cry.or.kr
(욘4:1-11)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요나입니다. 성경의 역사서에서 요나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하1425절의 기록이 유일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했습니다. 여기에서 요나의 고향이 가드헤벨이고, 아밋대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드헤벨은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또 여기의 여로보암은 예후 왕조의 4번째 왕인 여로보암2세를 말합니다.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2세 이렇게 대를 이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나가 여로보왕2세 때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활동했던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요나서1:1-2에서 하나님이 소명을 주셨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요나를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택한 백성들인 북이스라엘로 가라고 하시지 않고, 택하지도 않은 이방나라인 니느웨로 가라고 했습니다. 왭니까?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요나 선지자를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으로 가서 외치라고 해야지, 택하지도 않는 니느웨로 가서 전하라고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열왕기상하서 전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가 대를 이어서 타락하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셔서 예후를 통해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예후왕조를 세웠습니다. 오므리 왕조가 너무 악하니까 혹시나 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신 것입니다. 예후왕조는 처음에는 잘 했습니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 되더니 오므리 왕조처럼 변질되고 타락했습니다.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그리고 여로보암2세 이렇게 예후왕조가 4대를 이어갔습니다만,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타락해서, 여로보암2세 시대에는 오므리 왕조보다 더욱 타락했습니다. 사람만 바뀌었지 하는 짓은 똑같다 못해 더 악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와중에서 북이스라엘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엘리사마저 수한이 다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왕하13). 그러니 북이스라엘은 급속하게 변질되고 타락해 갔던 것입니다. 여로보암2세 때가 북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아무리 외치고 외쳐도 북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실망한 나머지, 되지도 않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제쳐놓고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아픈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니느웨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하던 앗수르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자신의 군사력을 믿고 이웃 나라들을 괴롭히던 자들이 니느웨 백성들이었습니다. 얼마나 악했는지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까지 상달되었다는 것입니다. 나훔서31절 이하를 보면 나훔이 니느웨 백성들의 악독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하는 병거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같은 창, 죽임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했습니다. 니느웨성을 피의 성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니느웨는 그야말로 악의 축, 악의 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군대의 힘을 믿고 함부로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서 약탈하고 강탈하고 겁탈하고 수탈했습니다. 살인과 음행과 술수가 가득 찬 사회였습니다.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파리 목숨보다 못했습니다. 이런 나라를 하나님이 그냥 두실 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군대의 힘을 믿고 함부로 이웃 나라를 괴롭히는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인류 역사상 군대의 힘을 믿고 까불대던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앗수르제국이 그러했고, 바벨론제국이 그러했고, 페르시아제국이 그러했고, 헬라제국, 로마제국, 오스만투르크 제국, 프랑스의 나폴레옹 제국, 대영제국, 나치제국, 일본제국 등 다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군대의 힘을 믿고 함부로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서 강탈하고 약탈하는 나라는 참으로 어리석은 나라입니다.
 
과거의 일본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일제의 악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제의 악독은 니느웨 백성들의 악독보다 더했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을 거쳐 필리핀이나 인도차이나에서 저지를 죄악은 니느웨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 상달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누이들을 정신대로 끌고 다녔습니다. 또 사람을 잡아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사람을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쏘아서 몇 사람까지 관통하는가?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패스트 균을 배양해서 사람 몸에 주입하고는 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또 임산부의 배를 갈랐습니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잊을지 몰라도 절대 하나님은 잊지 않습니다. 반드시 뿌린 대로 악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일본이 빨리 이것을 회개해야 하는데, 저들은 지금까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4년 전에, 일본의 아베 정부가 소위 집단적 자위권용인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일본이 직접 공격당했을 때뿐만 아니라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가 공격을 당했을 때도 무력행사를 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을 변경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제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임을 대내외에 천명했습니다. 일본은 자위조치로서 무력행사할 수 있는 경우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일본이 공격당했을 뿐 아니라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가 공격당했을 때, 둘째, 국민의 생명·자유 및 행복추구의 권리가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 셋째, 일본의 존립을 유지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다른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 필요한 무력을 행사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전쟁하고 싶을 때 전쟁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본의 행동은 식민지배를 경험한 우리에게는 심각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일본의 조치가 미국의 방조와 묵인 또는 지지아래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 경영 전략과 일본 우익의 군국주의적 야욕이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는 정말 정신차리고, 치밀한 국가생존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초강대국들 사이에서 어떻게 국가의 생존시켜 나갈 것인가 깊이 고민할 때입니다. 그 완벽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온 나라 국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따르는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어쨋든 하나님이 악한 니느웨에 요나를 보내 회개를 외치도록 했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다시스는 스페인 서남부의 지브랄타 해안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그에 비해, 니느웨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니느웨는 동쪽에 있었고, 다시스는 서쪽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동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요나는 서쪽으로 갔던 것입니다. 요나가 왜 이렇게 행동했습니까?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저렇게 나쁜 놈들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안되지. 저 놈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자비하신 하나님이 용서하실텐데. 그러면 안되지. 저렇게 살다가 죽게 내버려둬야돼!” 요나가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아주 악한 사람을 보면 저런 놈들은 절대 예수님 믿으면 안된다. 죄 가운데 먹고 마시다가 죄 가운데 죽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전두환이 회개하고 예수 믿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절대로 전두환은 예수 믿으면 안됩니다. 저 놈은 죄 가운데서 먹고 마시다가 죽어야 한다.” 목사인 저도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로운신지,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요나가 이런 하나님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가 있는 동쪽으로 가지 않고 다시스가 있는 서쪽으로 갔습니다. 이런 요나를 하나님이 그냥 두실 리 없습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 안에서 잠을 자다가 큰 폭풍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 배안에 탄 사람들이 이 폭풍이 누구 때문인지 알고자해서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히고 말았습니다. ‘~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요나는 폭풍 속에서 지중해의 깊은 바다에 던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5절입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했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요나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정말 처절하게 회개했습니다. 24절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다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데,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런 말입니다. 그 물고기 뱃속에서 철저하게 회개했던 것입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하나님께서 요나의 회개기도를 들으시고, 요나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느냐 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시시한 신이 아닙니다. 이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자를 살려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을진대, 우리는 하나님이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살려내신 것을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하나님이 요나에게 첫번째와 똑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집요하신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십니다. 하신 말씀은 반드시 현실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요나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오늘 말씀 3절을 보겠습니다.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했습니다. 니느웨가 사흘을 걸어야 할 만큼 큰 성읍인데, 요나는 거기서 딱 하루만 외쳤습니다. 4절 말씀에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했습니다. 사흘 동안 외쳐야 하는데 요나는 딱 하루 동안만 외쳤습니다. 그것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 아니라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질 것이다.” 이렇게 비관적인 전망을 외쳤습니다. 다시 말해 요나가 하나님의 성화에 떠밀려 마지못해 니느웨로 가긴 갔습니다만, 대충 건성으로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나의 외침에 니느웨 사람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7절 이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했습니다. 왕을 비롯해서 모든 대소 신료들, 모든 니느웨성읍 사람들이 비단 옷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모든 악독을 버리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떡같이 전했는데, 니느웨 사람들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리 해도 안 돌아왔는데, 택하지 않는 니느웨 백성들은 하룻만에 돌아오니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셨겠습니까? “거봐 되잖아! 회개는 이렇게 하는 거야이렇게 기뻐하시면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작성하신 뜻을 돌이키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는 것이 쉽겠습니까?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공동체의 대표도 뜻을 돌이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광양시장도 이렇게 하겠습니다.’ 약속한 것을 돌이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도 뜻을 돌이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대통령들은 말을 신중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택한 이스라엘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선지자들을 보내고 보내서 아무리 외치고 외쳐도 회개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악독한 니느웨 사람들은 단 하루만 하나님께 돌아오니까 하나님이 뛸듯이 기뻐하시면서 뜻을 돌이키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넓고,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지 모릅니다. 누구라도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하십니다.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지 못하는 죄는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면 뛸 듯이 기뻐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깊은바다에 빠뜨리시고 기억도 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2:14)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거친 광야에서 먹을 것도 떨어지고 마실 물도 없으니까 에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하니까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저것들 싹 쓸어버리시고 다시 시작하시려고 했습니다. 그 때 모세가 넙죽 엎드려서 하나님 제발 고정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싹 쓸어버리시면 하나님 마음은 시원하시겠지만, 지금 열방들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여호와가 제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 광야에서 다 죽게 했다이렇게 떠벌릴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제발 고정하시고 용서해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생각해 보니까 일리가 있거든요. 그래서 뜻을 돌이키셨습니다(14). 또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니까 뜻을 돌이키셔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삼상7). 또 아모스가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보시고 분노하시면서 기근의 재앙, 큰 불의 재앙을 보내시려고 했을 때도 아모스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 그러면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찌 서겠습니까? 용서하여 주옵소서이렇게 눈물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뜻을 두 번씩이나 돌이키셨습니다(7). 또 오늘 니느웨 백성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돌아갈 때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우리가 죄지은 이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그리고 본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요나는 이런 하나님의 처사에 화를 내면서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요나서41절을 보겠습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했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제가 이럴 줄 알고 다시스로 간 것 아닙니까? 저런 악한 놈들을 용서하시다니. 저런 것들은 죄값을 받아야 하는데...하나님! 저 더 이상 살기 싫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나는 어서 속히 니느웨 성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면서 집에도 못가고 현장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 니느웨 지방은 낮에 태양이 내리쪼일 때는 살인적인 더위가 내립니다. 5분만 햇빛에 노출되어도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습니다. 요나가 그런 살인적인 햇빛을 받아가면서도 기어코 니느웨 성이 무너지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요나를 위해 박넝쿨을 보내서 하룻밤 사이에 돋아나서 하셨습니다. 아침이 되니까 박넝쿨이 요나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 니느웨 지방은 습도가 낮기 때문에 햇빛에 노출되면 화상을 입을 정도인데,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요나가 아침에 일어나서 박넝쿨이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막아 주자 , 시원하다. 좋다.” 했는데 하나님이 그날 밤에 벌레를 보내셔서 박넝쿨을 사각사각 다 갉아먹게 했습니다. 요나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박넝쿨이 시들어져 있었습니다. 또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대머리는 반짝 하니까 요나가 입이 이만큼 나왔습니다. 48절에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저 죽고 싶습니다. 죽여주십시오!” 하나님이 요나에게 요나야 너 왜 이렇게 화를 내니” “아니 제가 지금 화내지 않게 생겼습니까? 제가 화 내고 죽어도 시원찮을 판입니다.” 요나는 걸핏하면 죽겠다고 합니다.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4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했습니다. “너는 네가 키우지도 않은 박넝쿨이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화를 는데, 이 니느웨에는 장정들만 십이만 명이나 되고 또 많은 가축들도 있는데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하지 아니하냐!” 요나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어야지요. 유구무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후왕조의 변질과 타락을 보시고 실망하셔서 선지자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사랑을 쏟아부어도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버려두고 이방에게도 요나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가 아무런 정성도 없이 개떡같이 전했는데, 찰떡 같이 알아듣고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면서 그들을 용서해주시고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들은 헤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유대인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사랑하십니다. 또 잘나고 똑똑하고 돈많고 높은 권좌에 앉아 세상을 떵떵 거리는 사람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못나고 부족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사랑하십니다.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택하지 않는 이방사람들이나, 누구라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뜻을 돌이켜서 용서하시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면 안됩니다. 요나서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모습은 전체 하나님의 모습에 절반 밖에 안됩니다. 그러다가도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배반하면 하나님이 다시 뜻을 돌이켜 지난 번에 참았던 재앙까지 곱빼기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거나,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않고 다시 타락하면 뜻을 돌이켜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151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했습니다. 6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모세가 나와 내 앞에 엎드려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사무엘이 나와 기도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엎드리고 사무엘이 엎드려서 용서해줘도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으니까 이제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아모스78절에서도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네가 아무리 기도해도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모스가 하나님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겠습니까? 제발 용서해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하니까 두 번씩이나 뜻을 돌이키셨잖아요. 그래도 이스라엘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니까 이제 더 이상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모스가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니느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시고 번창케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 후에 그들이 교만해지고 또 다시 악을 행하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일으켜서 니느웨를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쓸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니느웨의 역사를 이렇게 전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시고,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지역, 어떤 계층, 어떤 민족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반쪽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용서해도 돌이키지 않을 때나, 회개했다가도 다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는 다시 뜻을 돌이켜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온전하신 모습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에서도 우리가 하는 일들을 통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너희가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지도록기도하라고 했습니다.(6:9-10)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6:33) 회개하고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갔다면 이제 일어나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었으면 하루빨리 이런 가치관 이런 인생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이런 차원에서 우리들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할 때, 제일 먼저 물어야 질문은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장할 때도 내 생각에는 이러니까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니까 이렇게 해야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그 뜻에 순종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예멘에서 온 난민을 받아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사회적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일각에서는 예멘 난민을 받아 주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들이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받아주면 이슬람을 퍼트릴 것이고, 그러다보면 이 나라가 이슬람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반대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기 전에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신명기16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16:11-12)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24:21-22) 이렇게 하나님은 구약성경에서 수도 없이 네 땅에 거하는 객과 나그네를 핍박하지 말고 함께 잘 지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너희들도 애굽에서 종되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기독교 일각에서 주장하는 예맨 난민을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이렇게 주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르고 성숙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 샤론교회가 그러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성도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모든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런 복을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양들꽃푸른샤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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