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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예후
2018년 07월 10일 (화) 11:12:35 엄인영 목사 webmaster@cry.or.kr
(왕하 9:1-13)
지난 주에 하나님이 엘리야를 급하게 하늘로 불러올리시고, 대신 엘리사에게 갑절의 능력을 주셔서 10가지 이적을 보여 주시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보내셔서 이렇게 굉장한 이적을 행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소견에 옳은 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법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롭고 국력을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복을 누리게 하려고, 하나님이 엘리사를 보내 돌아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팽개치고 우상섬기는 일에 정신없었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으로 이어지는 오므리왕조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불행으로 가득했습니다. 왕도 타락하고, 거기에 빌붙어 있던 권력자들, 제사장들, 재판장들이 다 타락했습니다. 그들이 그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허구헌날 무엇을 했겠습니까? 권력자들은 권력을 남용해서 제 뱃속 챙기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재판장들은 뇌물을 받아먹고 재판을 굽게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뜻은 알바 없고, 권력자의 눈치나 보고 그들의 주구 노릇을 하면서 아첨을 일삼았습니다.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하나님 대신 권력자를 두려워하면서 권력자에게 잘 보여서 세상부귀영화를 누리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백성들은 이런 지도층들을 부러워했습니다. 한마디로 나라가 썩을 대로 썩은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나라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저 모양이니 하나님의 심정이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슬퍼하시다가 예후라는 사람을 일으켜서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예후왕조라는 새로운 왕조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이 오늘 말씀 왕하9장 이하의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 9장1절을 보겠습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어느날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자네 말이야 지금 길르앗 라못으로 가봐! 거기 가면 장군들이 바둑을 두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을 테니까 대뜸 ‘장군이요 드릴 말씀이 있어 왔나이다.’ 이렇게 말해 봐. 그러면 그 중의 한 사람이 ‘야 이 놈아! 이 많은 장군 중에 누구에게 하는 말이야. 똑바로 말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러면 그 장군에게 ‘장군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고 하고, 그 장군을 은밀한 곳으로 모시고 가서 ‘하나님이 장군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하면서 머리에 기름을 붓고 냅다 도망쳐. 알았지 가봐”이렇게 해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선지자의 제자가 엘리사의 말대로 길르앗 라못으로 가보니까 정말 장군들이 망중한을 즐기면서 바둑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냅다 “장군이여 드릴 말씀이 있어 왔나이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예후라는 장군이 “야! 이놈아! 이 많은 장군들 중에 누구에게 하는 거야! 똑바로 얘기해” “예, 장군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후를 조용한 곳으로 모시고 가서 갑자기 품어 감추었던 기름을 머리에 붓고 ‘오늘날 하나님이 장군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나이다.’ 이렇게 외치고는 냅다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후가 얼떨결에 기름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장군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까 장군들이 “아까 당신을 찾아온 자가 무슨 일로 찾아왔답니까?” “아 글쎄, 그 놈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더니 기름을 부으면서 ‘하나님이 뭐? 나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다’고 하고 가버리네” 이러니까 갑자기 장군들이 정색을 하더니 무릎을 꿇고 “예후 왕 만세!”를 외쳤습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만큼 여호람이 다스리던 북이스라엘이 썩을 때로 썩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고, 바알 우상에 빠지니까 자연히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땅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지도층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부패하고,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우상숭배하면서 도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결국 국력이 약화되어서 걸핏하면 이방군대가 쳐들어오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들 마음 속으로 ‘누가 나서서 이 몹쓸 놈의 세상을 확 뒤집어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만연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후가 나서서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세우셨다”고 하니까, 모든 장군들이 예후를 왕으로 인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후가 그 시대를 개혁할 총대를 맨 것입니다.
 
그래서 예후가 내친 김에 그 길로 썩을 대로 썩은 오므리왕조를 무너뜨리려고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마침 당시 왕이었던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아람왕 하사엘과 전쟁하다 부상당해 거기에서 치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람이 자기 성루에서 보니까 예후가 마차를 미친 듯이 몰고 오거든요. 그러니까 여호람이 예후를 영접하도록 사신을 보냈습니다. 사신이 가서“예후여 평안하뇨”하니까 예후가 ‘평안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이 놈아 너는 내 뒤로 붙으라!’ 하니까 사신이 찍 소리도 못하고 예후 뒤에 붙어 버렸습니다. 보낸 사신이 안돌아오니까 여호람이 다른 사신을 보냈더니 마찬가지였습니다. 예후를 영접하러 보내기만 하면 사신들이 함흥차사였습니다. 그래서 여호람이 직접 예후를 영접하러 나섰습니다. 여호람이 예후를 보자마자 “예후여 평안하뇨!” 하니까 예후가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은데 어찌 평안이 있겠느냐?”하면서 활을 겨눠 핑 쐈습니다. 깜짝 놀란 여호람이 “반역이다 반역!”하면서 등을 돌려 도망치다가 예후가 쏜 화살에 정통으로 맞았는데, 얼마나 정통으로 맞았는지 화살이 염통을 꿰뚫고 나왔습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했습니다. 여호람이 예후의 화살을 정통으로 맞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예후가 가까이 다가가서 ‘워워’ 하고 마차를 세운 다음에 부하 병사들에게 여호람의 시체를 치우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 둘이 하나는 여호람의 머리를 잡고, 하나는 다리를 잡고 “자 던진다. 하나 둘 셋” 하고 던졌는데, 떨어진 곳이 놀랍게도 나봇의 포도밭이었습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했습니다. 여호람의 아버지 아합이 나봇을 피흘려 죽게 한 그 곳에서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피흘려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놀랍도록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뿌린 대로 거두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합의 집은 악을 뿌려 악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정확한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이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예후가 내친 김에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놀아나던 남유다왕 아하시야를 잡으러 갔습니다. 27을 보겠습니다.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했습니다. 당시 남유다 왕이었던 아하시야는 마침 여호람이 아람과의 싸움에서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 차 이스르엘 현장에 있었습니다. 아하시야가 현장에서 여호람이 예후에게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고, 깜짝 놀라 도망치다가 므깃도까지 도망가서 거기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후가 이스라엘 남북왕들을 하루 만에 처단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권력의 배후에서 온갖 음행과 술수로 이스라엘을 병들게 했던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후가 이세벨을 처단하러 이스르엘로 돌아왔습니다. 30절입니다.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이세벨이 그 와중에도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눈썹을 그리다가 예후를 보자마자“주인을 죽인 예후여 평안하뇨!”이렇게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물었습니다. 정말 이세벨은 독사같은 여자였습니다. 예후가 너무나 기가 막혀서 3층 누각을 향해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야?”버럭 소리를 지르니까 두어 내시가 눈치를 살피다가, 이제 게임은 끝났거든요. 예후는 뜨는 해였고, 이세벨은 지는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시들이 갑자기 이세벨에게 달려들어 창밖으로 그 육중한 몸을 던져버렸습니다. 이세벨이 3층에서 떨어졌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온 몸의 피가 튀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보고 예후가 마차로 이세벨을 갈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예후가 하루에 남북 왕들을 처단하고 이세벨까지 제거하다 보니까 갈증이 나서 주막에 들어가 목을 축인 다음에 ‘그래도 저것이 왕비였으니 장사라도 치러줘야지.’하고 나와 보니까 이세벨의 시신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34절을 보겠습니다.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했습니다. 예후가 목을 축이고 나와 보니까 그 사이에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다 뜯어 먹어서 해골만 남았던 것입니다. 전에 엘리야가 살아생전에 왕상21장23절에서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의 고기를 뜯어 먹을지라”는 예언이 그대로 현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샤론의 교우들은 진실로 무겁게 듣고,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는 모습을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가 진실로 지혜로운 자요, 복된 자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후가 하루 만에 여호람과 아하시야와 이세벨, 나라의 기반을 갉아먹던 쥐새끼 세 마리를 처단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가 무너지고 예후왕조가 새롭게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역사의 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예후왕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과거의 오므리 왕조와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잘못된 정치관행, 잘못된 신앙적인 전통과 관습들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하지 않겠습니까? 우상숭배하는 모습들을 쓸어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을 소위 나라를 어지럽혔던 적폐 세력들을 제거하는 일에 나서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대한민국도 작년에 문재인정부가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국정을 농단했던 적폐세력들을 제거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습니다. 소위 이런 적폐세력들을 일소해야 할 사명이 문재인 정부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정부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사명이고, 국민들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정말 잘해야 할 것입니다.
 
예후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예후에게 주어진 사명은 그동안 나라를 어지럽히고 하나님 심정을 아프게 했던 적폐세력들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예후가 처음에는 그것을 잘 했습니다. 10장1절을 보겠습니다.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서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예후가 사마리아 성에 있는 귀족들과 왕자들을 교육하는 장로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너희들이 나와 대적하려면, 아합의 아들들 중에서 능력있는 자를 뽑아서 왕으로 삼고 내게 덤벼라. 내가 대적해 주겠다” 이렇게 나가니까 사마리아성의 귀족들과 장로들이 무서워하면서 벌벌 떨었습니다.
 
4절입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 왕이 그를 당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그 왕궁을 책임지는 자와 그 성읍을 책임지는 자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아이쿠! 우리가 어떻게 예후 장군님을 당하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무조건 항복입니다. 항복!”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6절에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 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명이 그 성읍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그래? 너희들이 진정 항복하려거든 아합의 아들들 70명의 목을 가지고 나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마리아 귀족들이 아합의 아들들 70명을 전부 죽여서 예후에게 그들의 목을 갖다 바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후가 강력하게 나라를 개혁하려 했던 것입니다.
 
예후의 개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예후가 전국에 방을 붙였습니다.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나 예후는 많이 섬길 것이다. 이제 내가 바알에게 큰 제사를 드리려고 하니까 전국에 있는 바알 선지자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사마리아에 있는 바알 신전으로 모이라. 만약에 빠지는 자가 있으면 살려두지 않겠다” 이렇게 방을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전국에 있는 바알 선지자들이 큰 기대를 가지고 사마리아의 바알 신전으로 모였습니다. 그러자 예후가 바알 신전에 들어가서 “여기는 거룩한 곳이므로,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들은 있으면 안된다.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들은 여기에서 빨리 나가라!” 이렇게 해서 바알 선지자들만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밖으로 나가 문을 걸어 잠근 다음에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바알 신전으로 들어가서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만약에 한 놈이라도 살아서 도망치면, 자기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줄 알아라” 이렇게 엄명을 내렸습니다.
 
25절입니다.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이렇게 예후가 바알 선지자들을 진멸하고, 바알 신상을 깨부수고 불질러서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 바알 신전을 헐어서 변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소위 말해서 적폐세력들을 청산하고 개혁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잘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28절입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예후가 왕이 된 다음에 서슬이 퍼렇게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만 중간에 개혁작업을 흐지부지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개혁을 하려면 철저히 충분히 완벽하게 해야 하는데, 하다가 중간에 흐지부지 되어 버렸습니다. 31절입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명령에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그렇게 지도를 했어야 했는데, 예후가 조금 하는 척 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를 없애려고 하니까 아깝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은 그냥 냅둬라!” 그러면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개혁을 철저하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고 했습니다. 집을 다 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쉽지, 조금씩 보수하면서 온전한 집을 세우는 것이 더 어려운 법입니다. 과거 우리나라도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일제에서 해방된 다음에 친일파들을 완전히 청산했어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이승만 정권이 그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해방이후에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 소위 “반민특위”를 조직해서 친일파들을 청산하는 작업을 하려 했습니다만, 이승만 정권이 사사건건 방해하다가, 결국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고 나중에는 폐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친일파들을 중용했습니다. 이것이 그동안 이 나라가 4.19혁명과 5,16 군사쿠테타와 유신독재를 거치면서 나라가 이토록 어지럽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적폐세력들을 청산해야 할 때 청산해야 합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 죄가 나라를 병들게 하기 때문에 반드시 청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족정기가 회복되고, 나라의 공의와 정의가 서는 법인데, 통탄스럽게도 과거에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막중한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철저하게 잘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예후도 처음에는 서슬이 퍼렇게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35절입니다. “예후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와하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스물여덟 해이더라”예후가 28년 동안 통치하다가 죽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호아하스는 어땠습니까? 11장 12장은 남유다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13장에서 여호아하스의 시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장1절을 보겠습니다.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 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17년 동안 통치했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습니다. 2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아하스도 자기 아버지처럼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켰습니다. 사람만 바뀌었지 하는 짓이 똑같았습니다. 9절입니다.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이렇게 여호아하스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망시키다가 죽고 그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되었는데, 그러면 요아스는 좀 나았을까요?
 
10절입니다. “유다의 왕 요아스의 제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육 년간 다스리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요아스가 왕이 되어 16년 동안이나 통치했는데, 하는 짓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습니다. 사람만 바뀌었지 하는 짓은 똑같았습니다. 아니 예후 왕조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타락하고 악한 짓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오므리 왕조의 타락을 보시고 예후를 보내셔서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예후왕조를 세워보았습니다. 예후왕조는 처음에는 기세 좋게 시작했지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이렇게 왕이 바뀌면서 세월이 흐르더니 흐지부지 되더니 나중에는 오므리 왕조보다 더 타락했던 것입니다. 사람만 바뀌었지 하는 짓은 더 악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이 억장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하면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릅니다. 그 옛날 나훔 선지자는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나훔서1장3절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시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나훔 선지자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성경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거나 복을 주는 기계나 로봇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근심하시고 탄식하시다가, 몇 번 돌이킬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주시다가, 그래도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그 때는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을 잘 모르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요, 무조건적 사랑이요, 엔드리스 러브다!’이러면서 자기가 멋대로 만들어낸 하나님을 섬깁니다. 허상입니다. 아닙니다. 성경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고, 엔드리스 러브고, 영원히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누구는 천국 보내고, 누구는 지옥 보냅니까? 천국과 지옥이 있으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분명히 예수님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원히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신데, 누구는 천국 보내고 누구는 지옥 보냅니까?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용서받은 사람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시고 요구하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누구든지 이렇게 외치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이제 그 사랑에 응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 따라 살기를 원하시고 요구하십니다. 이 기대와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실망하시다가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 때는 무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명령 따라 살기를 요구하시는 것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따라 살 때 우리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라 살아야 우리가 이 땅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쁨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이요, 이것이 참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의 히브리말이 ‘에무나’요, 헬라말로는 ‘피스티스’인데, 이 말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릿속으로 인정하는 정도, 인지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정도의 믿음은 귀신에게도 있습니다. 귀신도 예수님을 주로 믿고 떱니다.(약2:19)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귀신의 믿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명령에는 관심없었습니다.여전히 자기 생각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신의 믿음입니다.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랬잖아요. 그래서 귀신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그 정도 가지고는 천국갈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입니다.(약2:26) 귀신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가짜 믿음이요, 관념적인 믿음이요, 그 정도 가지고는 절대로 천국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실천적인 믿음이 진짜 믿음이요, 산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신앙이야말로 진짜 신앙입니다. 그러면 그 삶에 평안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자유가 넘치고, 그런 교우들이 모인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고, 그런 교회가 전국 방방곡곡에 들어서면 그 사회는 평화롭고, 그리고 국력이 부강해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움찔움찔 서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의 강단에서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예배 열심히 드리고 헌금 많이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열심히 예배드리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여전히 세상 욕심에 따라 삽니다. 6일 동안에는 성도들이 다 휴거해버립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어디선가 꾸역꾸역 물려듭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인 줄 착각합니다. 열심히 예배드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찬양하고 헌금 많이 바쳤으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보시고 기뻐하실 줄 압니다.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 그 사람은 존재 자체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하는 짓이 달라지기 전에 존재 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Doing보다 Being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세상 부귀영화를 좋아했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다음에는 그런 것들이 시들해 집니다.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사모하고, 하루를 살아도 의미있게 살려고 합니다. 의미를 추구하고 가치를 추구하면서 삽니다. 이렇게 존재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말이 달라지고 행동거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교의 시조인 존. 칼빈은 말하기를 “구원의 자리와 성화의 자리는 같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성화되지 않는다면, 구원받았다는 고백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화의 과정을 겪게되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과거의 삶을 답습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예수 믿은 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과거의 삶을 답습하고 있다면, 내가 과연 구원받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속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려면 제대로 정통으로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회개했으면 기쁨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세상과는 구별된 자로 사는데 혼신의 힘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런 자가 성령님이 임한 자입니다. 그러할 때, 개인은 하늘의 생명을 누리면서 행복하고, 그런 교인들이 모인 교회는 권위를 회복하고, 사회는 평화롭고, 나라는 부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는, 쭉정이들만 모여서 세상적인 욕심이 가득 찬 공동체가 되면, 엘리사 시대의 여호람과 이세벨처럼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하고, 예후와 여호아하스 요아스처럼 하나님을 실망케 하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자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우리 샤론의 교우들은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자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자들도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들로 하나님 앞에 굳게 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부족하게 미흡하게 대충하는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중에 아합과 여호람과 이세벨같이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후나 여호아하스나 요아스처럼 살아갈 위험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긴장을 풀면 안됩니다. 신앙생활을 예후처럼 대충하고 미흡하게 하면 안 됩니다. 하려면 철저하게,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후왕조처럼 중간에 변질되면 안됩니다. 초지일관으로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치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온전해야 하고, 그런 관계가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유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도 한 때 왕년에는 열심히 했어!” 이런 말은 하나님 앞에서는 안 통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에게는 “지금 여기에서의 모습이 어떠한가?” 이것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샤론의 교우들은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되, 그런 온전한 모습을 끝까지 유지할 뿐 아니라, 날이 갈수록 성숙해지고 성화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양들꽃푸른샤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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