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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 이야기
2018년 03월 22일 (목) 12:52:07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2007년 말에 은퇴하고 10여 년 지나는 동안 우리 부부가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큰 아들 용민 pd의 일이었다. 극동방송과 기독교TV에서 강제로 퇴직을 당한 후에 2008년 CBS 라디오에서 주말 프로 ‘시사자키’에서 앵커로서 자리 잡기 시작할 때는 앞길이 열리는가 싶었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급서(急逝)하는 사건이 벌어진 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함으로 그 자리를 물러나고 말았다.
 
그때부터 일정한 직장이 없이 ‘시사평론가’라는 직함으로 프리랜서로서 여러 방송국을 다니면서 ‘뉴스 팔이’로 전전할 때는 은근히 속이 상했었다. 그러다가 2011년 4월 28일 1회 방송을 한 ‘나꼼수’는 8월 22일에는 미국 팟캐스트 전체 에피소드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고 서울시장 선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정치적인 위세까지 갖출 정도가 되었다.
 
방송 회당 200만 다운로드 되고 실내 집회장소마다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고 야외집회 수가 여러 번 수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였을 때는 우리 부부는 ‘나꼼수’ 방송듣기, 때로 ‘나꼼수’ 집회를 찾아다니며 열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2011년 말 정봉주 전의원이 체포 수감됨으로 ‘나꼼수’가 위기를 만나기 시작했다. 더욱이나 ‘나꼼수’는 2012년 4월 총선에서 정봉주 전의원의 지역구에 김용민 pd를 출마케 하는 무리수를 감행했다.
 
그러나 낙선됨으로 아들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여당과 정보기관이 8년 전인 30세 나이에 성인방송에서 작가가 써준 대사대로 했던 막말을 찾아내어 집중적으로 폭로한 결과였다. 요즈음 밝혀진 사실은 당시 국정원이나 경찰, 심지어 군 정보기관까지 총동원되어 야당 후보들의 약점을 낱낱이 파헤치고 공격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나꼼수’에서 정봉주 전의원 대신 후보로 세운 아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파헤쳤겠는가?
 
아마 아들의 과거 행적을 이 잡듯이 들쳐 내고 심지어 아버지인 나의 목회시절이나 가정사에도 무슨 흠결(欠缺)이 없었는가를 다각도로 조사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6년이 지난 지금에도 소름이 돋게 한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단연코 앞서있던 아들이 막판에 낙선되고 심지어 야당의 실패도 막말 김용민 때문인 양 방송이나 신문들이 연일 보도했다. 한마디로 보수 측이나 진보 측으로부터도 동시에 매도당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아들이 너무나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러나 아들은 강했다.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신앙동지들을 규합하여 벙커원교회를 설립하고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012년 12월 대선을 계기로 재기하려고 총력을 기울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됨으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아들은 이번에는 대안방송으로 2013년 ‘국민TV’를 설립하는데 앞장을 섰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4년 후반부터 2015년까지 국민TV 내에서 지도부 세력 간에 주도권 싸움이 일기 시작함으로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아울러 벙커원교회 안에도 이상한 분파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이 또한 국정원의 농간이 국민TV나 벙커원교회까지 미쳤지 않았을까 의구심을 품어 보게 된다. 여하튼 그런 갈등 때문에 김용민 pd는 2015년 4월에 라디오국장으로 근무하던 방송국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때에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로처가 되던 교회마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때에 우리 부부가 벙커원교회에 출석함으로 나름대로 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매주 교회에서 만나 식사를 하면서 아들의 아픔을 나누기도 하고 믿음의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런 곤고한 때에 아들은 열심히 설교하면서 자기 자신부터 은혜를 받고는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부터 하나님이 아들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국민TV를 사임하면서부터 그동안 미루고 있었던 박사논문에 전념함으로 2015년 8월 19일에 국민대학교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6년 3월에는 한신대학교 신대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의 입장에서는 40세가 넘은 나이에 자원해서 신학교에 입학하니 흐뭇한 마음이었으나 한편으로 적지 않은 학비와 생활비가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새로 시작한 팟캐스트 ‘조간브리핑과 뉴스매거진’이 팟빵에서 매일 1-5위 정도의 상위권을 점유함으로 광고요청이 쇄도하여 학비와 생활비를 넉넉히 충당하게 되었고 시험의 기운이 있었던 벙커원교회도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 든든히 서 갈 뿐 아니라 매주 하는 설교가 팟캐스트를 통해서 5만 명 이상이 청취함으로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더욱이나 2016년 총선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되고 촛불집회가 강하게 일면서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다시 국민TV에서 ‘맘마이스’ ‘관훈나이트클럽’ 등의 프로를 진행함으로 그 광고비로 국민TV의 2억 4천의 부채를 청산할 수 있는 쾌거를 이룩함으로 2년 전에 국민TV에서 당했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더욱이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의해 방송 분야의 변방에 밀려있던 아들이 지상파 방송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즈음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아들이 앵커로 방송하는 SBS 라디오 ‘김용민의 정치쇼’를 시청하면서 과거 아들 때문에 받았던 상처들을 치유 받는 기분을 맛보고는 한다.
 
2012년 총선당시 터진 막말로 사방팔방에서 걸려오는 전화마다 비난일색이었다. ‘목회자가 어떻게 자녀를 키웠으면 그 모양인가? 엘리 제사장의 자녀 홉니와 비느하스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설교조의 비난들이었다. 결국 모든 전화 코드를 빼낸 채 보내야 했던 참담한 한 달이었다. 그리고 노회나 목회자 모임에 가면 은근히 거리를 두려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모임조차 참석을 꺼리게 되기도 했었다.
 
목회자로서 일생 존경을 받아왔다는 자부심마저 무너졌다는 아픔이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아들을 ‘천하잡놈’으로 만들었던 두 정권의 전임 대통령들이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포승줄에 묶이어 구치소에 수감되는 모습과 아울러 아들이 앵커 자리에 앉아 이름 있는 패널들과 함께 그런 뉴스를 다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면 속에 깊은 상처들이 하나둘씩 치유되고 있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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