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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 사는 겁니다."
2018년 02월 20일 (화) 16:14:15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행1:15-26)
 
    1.
    한 때 한국 교회에 불어 닥친 열풍 중에 하나가 이른바 ‘제자 훈련’입니다. 체계적으로 성경을 가르쳐서 예수의 제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교회들마다 ‘제자 훈련, 제자 훈련’하며 이 제자 훈련을 통하여 많은 일군을 양성해 냈습니다.
 
    특별히 강남 지역에서 개척하는 교회들은 이 ‘제자 훈련’이란 프로그램을 자기들의 어떤 독특한 목회 양식, 일종의 엘리트 의식의 목회 프로그램으로 내세우며 교인들에게 차별화된 교인 의식을 심어주어 때마침 불기 시작한 강남 개발과 어울려 대형 교회를 이루어내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붐은 제자 훈련을 받은 교인과 받지 않은 교인간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갈등을 유발시켰고, 제자 훈련을 받으면 헌신과 섬김의 삶을 이루기보다 어떤 선별된 특별 계급의식으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제자 훈련이 뭔가요? 제자 훈련만 받으면 성도로써 다 된 것인가요? 어떤 성도는 ‘왜 우리 교회에는 제자 훈련이 없습니까?’ 하던데, 이 제자 훈련이 의미하는 것이 뭔가요? 성경에 나타난 제자 훈련은 어떤 모습인가요?
 
    2.
    오늘 본문은 가롯유다의 배신으로 결원이 된 12사도를 다시 채우는 내용입니다. 어떤 이를 사도로 세웠습니까? 교회의 존경과 인정을 받을 사도, 그 자격이 무엇인가요?
 
    21절,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사도의 자격은 요한의 세례부터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다닌 사람이요,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직후부터, 즉 공생애를 시작한 때부터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단 한 순간도 주님과 떨어짐 없이 승천하실 때까지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물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사건까지는 모두 도망갔었지만, 그 외에는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참 제자, 예수님의 진짜배기 사람들, 사도의 자격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할 사람은 이해가 되는데, 왜 구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내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이란 조건을 제시했을까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란 결정적인 고백이 나왔던 그 중요한 가이사랴 빌립보 수련회에 참석한 이후부터, 즉 예수님으로부터 제자 훈련을 별도로 받은 사람들이라면 모르겠는데 왜 그저 줄레줄레 따라다닌 사람들 중에 사도를 택했을까요?
 
    3.
    예로부터 훌륭한 스승에게서 뭔가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 스승에게로 갔고, 그 스승의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레슨 원(Lesson one!) 오늘은 제 1과 기도하는 법’, 이렇게 하며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야, 이건 중요한 거니 밑줄 쳐라”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스승은 기도했고, 제자들은 그 곁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스승이 성경을 읽으면 그것을 곁에서 따라 했습니다. 스승은 좋은 제자일수록 늘 자기 곁에 두고, 자기의 모든 삶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그들은 그 모습을 따라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어느 정도 컸다 싶은 때는 그 제자에게 지식이 꽉 찼다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삶, 자기의 삶을 그대로 이어줄, 자기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그 제자에게서 자기의 사상, 사랑, 정신, ... 그 모든 것을 대신 이어줄 만큼 됐을 때 스승은 ‘됐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참 제자는 언제나 스승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스승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스승과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거 왜 사람이 오랫동안 같이 살다 보면 닮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닮은 이들이 누구인가요? 부부입니다. 가끔 ‘남편 때문에 못 살겠어요’ ‘마누라 때문에 못 살겠어요’하는 이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그 둘은 똑같습니다. 다만 자기들만 못 느끼는 것입니다. 표정조차 닮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결혼하고 몇 년 안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신세계 백화점에서 크게 싸운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심각하고 다급한 문제이기에 시내 한복판 신세계 백화점에서 싸웠을까요?
 
    당시만 해도 시간이 나면 종종 둘이 다정하게 백화점에 가서 윈도우 쇼핑(window shopping), 즉 아이(eye) 쇼핑을 하곤 했습니다. ‘야 이거 당신에게 맞겠다, 아니 당신에게 어울리는데’ 그러다가 가격을 보고는 ‘되게 비싸네’하며 그냥 눈으로 즐거워하곤 했었습니다.
 
    그날도 신세계에 가서 이것저것을 보며 이거 당신에게 맞겠다, 어울린다 하며 즐거워하다가 백화점을 다 돌아보고, 맨 위층 식당에 가서 회덮밥을 시켜 먹는데, 이 ‘안씨’ 어른이 자꾸 내 밥에 고추장을 더 부어주려고 합니다. ‘난 매운 게 싫어’하며 안 부으려는데, 이 양반은 ‘아니야, 회덮밥엔 고추장을 더 넣어야 돼’하며 그 고추장을 들이붓습니다.
 
    그리곤 어떻게 되었을까요? 따로 따로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아니 고추장이 좋으면 자기나 좋았지 왜 싫다는 나에게 부어? 그러나 이 양반의 깊은 생각은 ‘고추장을 부으면 더 맛이 나는데, 왜 그 맛을 모르고 그래’ 하며 붓습니다. 이렇게 달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아서 하시옵소서! 문제는 너무 닮다보니 지나쳐서 이제는 옛날의 내 모습이 저 편에 가 있고, 옛날의 저 분 모습이 내 모습에 와있어 입장이 뒤집어 져 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삶을 같이 하는 이들은 닮는다! 제자 훈련? 좋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제자 훈련은 삶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도 그랬습니다. 철저하게 동거동락(同居同樂)의 방법이었습니다. 심지어 겟세마네의 그 고뇌 어린 모습, 하나님 아들로서 어울리지 않는 그 십자가에 대한 두려움, 슬픔, 걱정 어린 모습까지 주님은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교회의 전통적 제자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생활하며 믿음의 좋은 선배들에게서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님이 기도회에 나오시니까 초신자나 젊은이들은 ‘아, 기도회에는 다 나와야 하는 건가 보다’하며 기도를 배웠습니다. 장로님이 모든 공 예배, 수요예배, 오후 예배, 새벽 기도에 참석하니 ‘아, 신앙이 좋은 사람은 예배에 빠지면 안 되는구나’하며 배웠습니다. 십일조, 감사 예물, 봉사, 헌신, ... 모두 믿음의 어른들이 하는 것을 가까이 에서 보면서 그대로 따라한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장로님, 권사님이 있는 신앙 공동체는 건강하게 대(代)를 이으며 성장해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교회의 문제는 이런 존경할만한 믿음의 지도자, 가까이 에서 그 모습 그대로 흉내 내며 따를 지도자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보고 배울 지도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궁여지책으로 성경책만 외우고, 성경책을 프로그램화한 극히 피상적인 제자 훈련이 성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서적, 복음적 평신도 지도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교우들이 눈으로 그 삶과 헌신, 경건의 생활을 보고 따를 수 있는, 흉내 낼 수 있는 장로, 집사, 권사님들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 교육은 성경 구절 몇 개 왼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일주일에 1-2시간 성경 공부 했다고, 기도했다고 다 된 게 아닙니다. 평상시에 참된 성도의 삶을 눈으로 보고 그것을 흉내라도 내며 자연스레 나의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참 제자 훈련입니다.
 
    4.
    그러나 이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만 보고 의지하려다간 실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a)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예수를 보고 닮아야 합니다! 머릿속만 채우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모습만 경건하게 있는 것은 위선입니다.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삶 속에 예수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내 정신과 내 행동에 예수의 모습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그러기 위해서 우린 예수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경우, 모든 장소,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끝없이 되뇌며 주님께서 하셨을 것 같은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삶의 목표요 최종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승천하시며 이런 말씀, 약속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는데, 교회에서만, 성경 공부 시간에만, 기도 시간에만 예수님과 함께 하고, 세상으로 나갈 때에는 ‘주님은 여기 가만 계십시오, 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하는 식으로 해서는 곤란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성도다운 삶일까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저 예수님과 함께 사십시오. 그러면 그 예수님께서 성령의 감동 속에 나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과 내 삶 속에 선을 긋지 말고, 그저 주님과 함께 사십시오.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그게 진짜 성도의 삶입니다. 사순절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삶 구석구석에서 예수의 삶이 보여지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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