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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도를 분향으로 받으소서
2018년 02월 07일 (수) 08:39:39 조무융 강도사 webmaster@cry.or.kr
(시141 : 1 ~10)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 원수들이 나를 잡으려고 쳐 놓은 덫에서 나를 지켜 주시고..
‭‭시편‬ ‭141: 4, 9‬ ‭RNKSV‬‬
 
1. 1 ~  6 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함
2. 7~ 10 박해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함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일까요?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했지요. 자기 논에 물대는 모습을 보는 것 그렇지요 논이 바짝 바짝 타는 모습을 보면 농부들 마음이 타는 것이지요.
  제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 보기 좋다고 하지요. 나는 여러가지 모습가운데 정성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가식이 아닐 때 참 아름다웁게 느껴집니다.
  요즈음은 그런 것 못 봤는데 옛날에는 버스 기사님들 앞에 기도하는 사무엘 이렇게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 많이 걸려 있었어요. 오늘도 무사히 그렇게 상황이 맞지는 않기는 하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아름답지요.
  기도의 자세도 다양하게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도하시지요.  저는 그렇게 이야기 해요. 식사 기도만 제대로 해도 영성이 깊어진다 어떤 분이 식사 기도하는 것 보면 형식적으로 하지요.
  목사가 앞에 있으니까 안 할 수가 없고 습관이 안 되었으니까 잠시 눈 감고 뜨면 되지 무엇이라고 기도해 열까지 세요 하나 둘 셋 제가 학교에 있을 때 내가 맡고 있던 동아리에 식사기도를 하는데 눈 감고 바로 떠요.
  무엇이라고 기도했어 이러면 갓 땡 멘 그랬데요 갓 땡큐 아멘 줄여서 그것도 어떤 아이는 하나님 3번이요. 아이들이니까 기도문 세 개 써 놓고  오늘은 3번이요.
 
  그런데 진실한 기도란 무엇일까? 살다 보면 내가 신자가 아니라 해도 기도하는 시간이 있지요. 하나님 고통에 처한 사람들 보면서 너무나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이게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인간이 무력감을 느낄 때마다 절대적 대상을 바라보도록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인간이 신에게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이 있지요. 살다 보면 나 스스로가 너무 무력하고 세상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다 느낄 때가 있지요.
  제일 큰 괴로움은 내가 무력할 때가 아니라 내 삶에 대한 그럴 때 있지요.  이것이 무엇이어요. 마음에는 원이로되 그런 것이지요. 그 때  자신의 그러한 모습이 부끄러워 질 때에는 기도하지요. 오늘 기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공부 했던 140편에 악인들의 현실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데
  141편은 악인들의 현실보다는 자기 자신 유혹에 직면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요.
  그런 질문을 했어요.  이 악인의 문제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항상 착한 사람되라고 하고 악한 사람은 다 용서하고 선하게 받아 드리고 맞습니까?  그렇게 물었어요. 이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봐야 합니다.  정교회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교회 비콘이라고 하는데 성화를 보면 성인들의 모습속에는 후광이 그려져 있지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에도 후광이 그려져 있고 예수님의 후광은 그 후광 속에 십자가가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나는 나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인데 성인들에게도 후광이 있고 성인들을 유혹하고 어떤 악마 같은 존재들이 있지 않아요. 서방 세계속에 악마들을 무섭게 그립니다. 그렇지요. 뿔이 달리고 무섭게 그립니다.
  그런데 동방 교회에서 그 상화속에서 악인들은 똑 같아요. 우리하고 똑 같아요. 여러분 어디인가 한번 가 보았더니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과정 과운데서 열 네 번 넘어지시고 그 과정을 형상화 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조형물로 그런데 그 조형물을 보고  속상했어요. 왜 속상했는가 하면 예수님 박해하는 무리들을 너무 무섭게 형상화해 놓은 것이어요. 왜냐 하면 내가 그들과 동류이기 때문에 무섭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악의 실체를 모르는 것 같아요.
  왜냐 하면 험상궂은 정말 악을 행한 사람들은 보면 이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악은 정말 평범한대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선과 악을 구도화 하기 위해서 악한 사람들을 이것은 악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못 생겼으니까 그렇지 않거든요.
  겉보기에는 우락부락한데 선한 사람도 있지 않아요 우리가 분별을 잘해야 하는 대요  동방 교회에서 사탄이나 이런 사람은 평범한 얼굴로 그려지요. 구별되는 것이 있어요. 약간 작게 그리고 약간 어둡게 그려집니다.
  악인의 존재 속에도 무엇이 남아 있다고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가능성이 있는 것이어요. 다만 하나님의 형상은 남아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닮지 못한 사람들 하나님의 이미지와 하나님을 닮은 것은 다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 우리가 선대해 이렇게 하면 그들은 악의 현실 속에 머물 수 밖에 없어요. 악한 자들은 여전히 악해 그러니까 그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현상을 인정할 때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못해요.
  그러나 그가 하고 있는 악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우리가 폭력적으로 그를 배제할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저항해 주어야 합니다. 저항해야 함 악의 먹이가 되기 쉬어요.
  이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용기여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항상 악은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데 지난주에도 공부했는데 악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싸워야 해요.
  내속에 있는 악과 그래서  141편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악의 경향성과 싸우는 이야기여요. 그런데 그 경향성과 싸우는 것은 내 이성적 능력과 감정이 동원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시인은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시인은 굉장히 의로운 처지 속에 있습니다. 늘 자기를 살펴 보니까 마음의 중심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무너진 상태 나 스스로를 고쳐 세워야 하는데 내적 힘이 내 속에 없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이런 단어를 씁니다. 마음속에 기둥하나 세우기 여러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속에 기둥 하나가 탁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면 든든해 져야 해요.  뭐 바람 불어도 잠시 흔들릴 수 있지만 다시 설 수 있습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터 이야기 했지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밑힘 저력이야 저력 내 속에 저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정말 내가 늘 흔들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가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런 상황 속에서 그의 눈이 누구를 향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어요. 그래서 내 마음속에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그가 선택한 기둥 하나님께 부르짖음입니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주님 앞에 드러냏고  여러분 제가 말했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젊잖게 아름다운 말로
  내 속에 누군가에 하나님 용서하라고 하지요. 마음속에 이를 갈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되지요. 정직하게 이야기 해야 돼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그 마음 속에 그 사람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공중 기도에서 그러면 안 돼 그것이 아니고 홀로 기도할 때 내 속에 있는 고통을 내어 놓아야 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 속에 내 마음을 언어로 발화 한다고 말하지요. 말하는 순간 언어화 되는 순간 내 감정을 내가 바라보게 됩니다.
  이게 중요한 것이어요. 내가 내 감정을 언어화해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감정이 나를 뒤 흔드는 힘이 약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이것이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상담자에게 찾아와서 이야기 합니다. 다 이야기 해요. 상담자는 경청을 해 줍니다. 아 그러셨어요. 공감해 주고 상담자가 해결 책을 안 주어요. 그런데도 상담 받고 나오는 사람이 이제 마음이 후련해 졌어요.
  이 속에 마치 여러분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가 발작 발작 한 것 처럼 폭발 직전이었는데 뚜껑을 열어 주니까 김이 다 나오고 나니까 폭발력이 사라져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그것이 우리를 변화 시켜요.
  어떤 분이 에스엔 에스(SNS)에서 재미나는 것을 쓰는 것을 보았어요 이렇게 썼습니다. 너 기도해서 무엇을 얻었어 돈 많아졌어 출세했어 기도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아 그런 이야기지요.
  그 분이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내 속에 있는 분노 내 속에 있던 절망감 내 속에 있던 누군가를 향한 미움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어 기도는 얻은 것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잃어 버림이어요. 이런 체험인대오
  11절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2절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 같이 되며 하고
  분향이 무엇이지요. 향을 살리는 것이지요.  분이라는 글자가 수풀림자 밑에 불 화자가 있지요. 숯불 밑에 태우는 것이어요. 향이라고 하는 것 향을 태우는 것이지요. 분향하는 것이지요.
  내 기도가 분향함 같이 되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어떤 뜻일까요.  분향은 제사장들이 향단위에 향을 피우는 행위를 일컷는 말이지요.
  분향한다는 것이 여러분 출애굽기는 제사장들이  출 30장 7절 등불에 불을 붙일 때 분향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첫째는 시간을 공간을 정화하는 의미여요. 향을 피우는 것이지요.
  개신교에서는 분향하는 전통이 없지요. 그런데 다른 종파들 가 보면 분향을 하거든요. 성직자들이 향을 피워요.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예배 공간을 정화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입니다. 향을 피움으로서  악하고 속된 것들을 몰아낸다 또 분향은 향불을 태우면 어디로 위로 올라가지요. 이게 위로 올라가요. 그래서 마치 하나님이 그 순간에 그것에 임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드는 것이지요.
  출애굽기에 공부하다 보면 분향에 쓰는 향불을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어요. 섞어야 되고 쑥 나와요. 만드는 방법이 어렵습니다. 순수한 향품을 순수한 유향과 제조범에 따라서 거기에 소금을 처셔 복잡합니다.
  그런데 더 재미나는 것이 가루향 제조법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출 30장 34절 35절 그런데 더 재미나는 것이 가루향 제조법이 37절 사사로이 만들면 안 되어요 오로지 예배에만 쓰는 것이어요.
  38절 거룩함을 거룩함으로 남겨 줄 줄 알아야 한다. 여러분  현대 세계에 특색 가운데 하나는 거룩한 것 조치 세속적으로 만들어 버린것이다고 볼 수 있어 거룩한 것을 거룩함으로 남겨줄 수 있을 때 삶의 여백들이 생겨나는데 사람들이 그런 경우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인데 사람들은 너무 세속화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향품을 제조법대로 만들어 사사로이 쓰면 안 된다 이 이야기 촌 스럽게 왜 그래 이럴 것이 아니고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기도가 하나님께 바치는 분향과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기도할 수 없는 것이어요. 분향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내가 함부로 할 수 있어요.  내 기도가 분향같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욕망을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1. 1~ 6 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함
  141: 2 나의 손 드리는 기도는 저녁 제물로 받아 주십시오.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손 들고 기도 우리 두 손들고 기도합시다 해서 시키지 않아도 하나님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지요.
  그러니까 이 시인은 그런 상황 속에 기도 드립니다. 여러분 어느 마인 배우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마인 배우들은 얼굴로는 표정을 속일 수가 있데요 반드시 몸이 말을 한데 자기 감정을 얼굴로 그런데  반드시 몸이 말을 한데 자기 감정을 드러내고 대게 손은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데요.
  여러분 우리가 초조하든지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고 그러면 다리를 달달 떠는 사람이 있고 나는 초조하지 않아 입술이 바짝 마르기도 하고 눈이 파르르 떨리고 그런 것이 있지요. 그런데 지금 내가 두손 들고 기도합니다.
  그만큼 절박함을 보여 줍니다. 몸으로 하는 기도이지요. 그러면 이 시인은 무엇을 청하고 있나요.
  3절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에 문을 지키소서.
  그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면 자신이 말의 실수가 많은 사람이구나
  내 말이 누군가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유대인들은 탈무드에서 말하기 전에 이게 꼭 필요한 말인가
  이것이 진실한 말인가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그 말이 친절한 말인가
  말하기전에  필요한 말인가 진실한 말인가 친절한 말인가 우리는 못 그러지 않아요. 내 감정에 복 바쳐 가지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지 않아요.
  말하면서도 그럴 때가 있지요. 감정 때문에 나온 말도 있지요. 그렇지요. 감정 때문에 이것 내가 과한데 그러면서 그 말을 할 때가 있지요. 이 시인은 그것을 알아요. 성급한 열정에 사로 잡히는 순간 말은 위선의 통제를 넘게 만듭니다.
  야고보서 3장 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이라도 굴레를 씌울 수 있느니라.
  말을 잘 통제할 수 있으면 말 잘하고 사는 것이 더 좋지요. 말하는 직업이라 쉽지 않아요. 그 말은 해야지 열심히 즐겁게 세 문을 지키면서 말을 해야 하는데 감정이 북박치면 세 문을 지나기 전에
  우리가 경청하는 능력이 너무 부족해요 맞아 얼마나 어려웠어요. 이러면 좋을 터인데 맞아 나는 말이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 항상 그렇게 대화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야기 하는 사람이 김 빠지지요 이게 토크쇼 하고 그러는 사람은 할 수 없어요. 직업이니까 여러분 여러분 조선 시대에 선비 가운데 백광훈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16세기분인데 가족들이 전부 해남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관료이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 살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자식들을 면대해 가지고  자식들을 백광훈에 편지 가운데 일부가 있습니다.
  듣자니 너희가 자못 남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있고 또 남의 허물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더라  사람이 배우는 것은 다만 이러한 병풍을 없에려 함이라 이제 너희가 만약 정말로 이와 같다면 비록 만권의 글을 배워 과거에 급제한다 해도 그 사람을 어디에다가 쓰겠느냐
  아버지가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배움의 목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 병품이 무엇이냐 하면  그 병품이라는 것은 남의 허물 이런 것을 없에게 위해서 배우는 것이어요.
  너희가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면 만권의 책을 읽고 과거에 급제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느냐 아버지고 놀라고 절통하여 죽고만 싶구나 여러분 요즈음 공부하고 옛날 공부하고 다른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후로도 너희들이 이 같은 버릇을 탁 끊지 못하고 무엇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맹세컨대 다시는 너희들을 보지 않겠다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교육이 거꾸로 가고 있지요. 남을 없이여기고 남을 허물하기 좋아해도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가고 좋은 대 취직하고 내 아들 짱 이렇게 되는 것 아닌가요.
  교육이 뒤집힌 것이지요.  참 사람되는 교육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 시인은 자기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허물을 보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청하고 있는 대요.
  4절부터 기도를 보면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4절 내 마음이 악한 일어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하지 않게 하소서.
  자 첫째는 내 마음에 악한 일에 기우러 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 말은 자기 마음이 언제라도 악에 끌릴 수 있어 인간의 마음 속에는 악에의 경향성이 있어요.  마치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악한 것이 주고 있는 매혹이 이 속에 있다니까요
  악이 매혹적이어요. 어린아이들이 욕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욕이 권력인줄 알아 내가 누군가에 욕을 했을 때 그가 흥분하는 것을 볼 수 있어 내 말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야 그러니까 매혹적이야
  아이들에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친구들끼리 그러는데 어떤 아이기 욕을 했는데 그게 심정을 건드린 것이지요. 아는 것이지요. 인간 속에는 악의 경향성이 있어요.
  매혹적이어요. 악이라는 것이  이 사람도 나는 저 사람이 나빠 이게 아니지요. 내 마음이  그러니까 내 마음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어울려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결국은 사람이 나빠지는 것은 악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과의 사귐속에서 악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이런 경우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한 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악인들을 없에려고 하는 것 보다는 선한일을 할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어요.
  일제시대에 성서 조선 김교신 선생님이 있습니다. 김교신 선생님의 글을 상처가 났어요. 아물지요. 딱지가 생기지요.  떨어질 때까지 놔 두면 좋은 데 무슨 버릇이 있어요. 거의 떨어진 것 같아서 딱찌를 떼어요. 피나요.
  여러분 딱지는 떼는 일 보다 무엇이 더 중요하느냐 하면 속에서 새 살이 차 오르는 일이 더 중요해요. 악을 없에는 일이 중요하지만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 그래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세상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원 공동체 넘어지려고 할 때 누군가가 나를 지탱해 주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촛불 집회 의식하지 않아요. 촛불을 들고 가다 보면 바람이 불면 꺼져요. 촛불 집회를 하는 사람이 이야기 합니다. 촛불이 꺼지더라도 당황하지 마라 불씨를 나눠 줄 친구가 있으니까 나누어 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해  선한일을
  4절에 말미에 나옵니다. 악인들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악인의 진수 성찬을 먹게 하지 말라고 여러분 미끼지요. 악인의 진수 성찬을 미끼이지요. 그것을 보는 순간 부자유해 지는 것이지요.
  뇌물 스켄들 많지요.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가 어려움을 겪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니오 라고 말 할 수 있어요.
  그리스 철학자 가운데 디오게네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스승으로 모시러 했습니다. 거절했지요. 유명한 사람이지요.  내 스승이 되어 주세요 부탁이 하나 있는데 햇빛을 가리니 좀 비켜 달라고 그것이 디오게네스지요.
  디오게네스입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의 친구가 그 때 디오게네스가 거친 콩밭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친구가 혀를 찼습니다. 조금만 머리를 굽히면 저런 것 안 먹고 살 수 있을터인데  디오네스가 얼굴도 안 쳐다 보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것을 먹고도 즐길 수 있으면 굽실 거리지 않고 살 수 있을 터인데 결국은  악인의 진수 성찬도 먹기 위해서 나를 배불리기 위해서 악한 자에 굴종하다 보니까 내 존재가 그래서 무엇이냐 하면 누군가가 화려한 것 가지고 유혹하거든 됐네 안 먹어도 되지 않아요.
  그것 그렇지요. 그 내적 힘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자기 문제를 잘 할 수 있어요 그들의 진수 성찬을 먹지 않을 수 있어요. 여러분 그럴 싸한 말로 그들의 말이 얼마나 그럴 듯한 지 모릅니다.
  여러분 기가 정말 많은대요 분명히 알아 둘 것은 그렇게 좋은 기회는 내게 까지 올 리가 없다 아니 그런 기회는 없는 것이야 그렇게 좋은 기회가 있으면 내게까지 사기 안 당해요.
  그 다음에 여러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5절에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말할 지라도 머리에 기름같이 여길지라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의로운 사람이 매로 나를 치고  나를 꾸짖게 해 달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하는 이야기가 세상에 제일 가련한 사람은 꾸짖어 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어요. 여러분 꾸짖는다고 하는 게  입구자가 있고 이렇게 해서 질정 꾸짖을 질자인데요.
  그러니까 책을 쓰고 내가 책의 서문에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독자 여러분들의 질정을 기다립니다. 꾸짖어 바로 잡아 달라 그 이야기이지요. 사실은  누군가가  너도 잘못했어 지적할 때 기분이 안 좋지요. 내가 알아도
  우리는 이 시인이 지금 이야기 했습니다.
  5절 의로운 사람이 내 머리에 기름처럼 받아 드리게 해 달라고
  6절과 7절 이야기를 보면 그들의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던져 졌도다.
  그들의 재판관 이 말은 악인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 졌더도 내 말이 달므로 우리가 들으리리다 악인들이 결국 망할 수 밖에 없지요. 사람들이 알아 듣게 될 것이다
 
2. 7~ 10 박해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함
  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음부 문에 흩어졌도다.
 
  선한 사람들은 항상 어려움을 겪어요. 마치 스올에 해골이 있기 때문에 선하기를 포기하고 악인의 유혹에 빠져 들기 쉽다 그런 현실을 이야기 하면 8절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마옵소서.
  재난중에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만 하면 안 됩니다. 기도는 빌기자 빌 도자 내가 기도한 내용을 내 삶으로 살아내기 시작합니다.
  꾀하다라고 하는 기자가 있고요 꾀하는 것이어요. 그리고 무엇한다 할 때 도자가 있는데  무언가 이렇게 기도하는 글자가 있는 내가 기도하는 바를 살아내기 시작한다 기도는 아룀이지만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이 기도이지요.
  그러나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어요. 내가 바라는 세상이 이런 세상입니다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그 기도가 살기기 시작할 때 진실한 기도가 된다 하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인들의 영향력에 내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도 해야 되지만 그러나 아까도 이야기 한 대로 이 시인의 아름다움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가 언제는 넘어질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될 때 넘어지고 비틀어 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이라고 하는 초월적인 존재에 자기의 마음을 접속하고 살게 되지요.
  기도는 접속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접속의 원리다 할 수 있지요.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다른 곳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 지게 된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140편과 마찬 가지로
  10절 악인들은 자기 그물에 걸린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전에 이야기 했던것 기억 나시는지 모르겠어요.  죄라고 하는 글자  아닐 비자이니까  비리 나쁜 것 이것은 넉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물이거든요. 그물입니다. 죄인을 그물속에 갇히는 것이어요.
  죄라고 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 저지른 것이 죄이기도 하지만 죄 짓는 사람을 그물에 씌이는  이것이 죄입니다.  죄를 저지르면 저지를 수록 부자유하게 되어요. 정말로 자유로와 지기 위해서는 죄로부터 우리들이 자유로와 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이제 이 시가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는 귀한 말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악의 가능성을 항상 타자에게 있고 나에게 넘긴 첫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유혹에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이지요.
  4절 내 마음에 악에 기우려 지지 않게 해 달라고 악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게 해 달라고
  5 의인이 나를 사랑의 매로 칠지라도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 드리게 해 달라고
  그럴 때 사람은 조금 좋은 사람으로 되어요.
  시편 141편의 기도가 우리의 일상적인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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