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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십니까?"
2018년 01월 31일 (수) 09:39:59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빌4:11-13)
 
    1.
    시 한 수를 읊어드리겠습니다 .
 
    “돌의 내부가 암흑이라고 믿는 사람은
     돌을 부딪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에 별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노래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은
     저물녘 강의 물살이 부르는 돌들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은
     돌에서 울음을 꺼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냉정이 한때 불이었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다
     돌이 무표정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안으로 소용돌이치는 파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무표정의 모순어법을 .”
 
    돌에서 어떻게 이런 감성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 돌은 돌이요 물은 물이요 하는 세상에서 말입니다 , 모두가 그냥 돌이라고 하는데 , 거기서 암흑과 절망만 보는데 , 도리어 거기서 별을 노래하고 , 노래를 부르고 , 울음을 듣고 , 흐르는 물을 감지하며 , 뜨거운 불을 보고 , 소용돌이치는 파문을 느끼는 사람 , 미친 사람인가요 ? 아닙니다 , 우리는 그런 사람을 시인이라 부릅니다 . 돌 하나를 보고도 남들이 이해 못하는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 , 시인입니다 . 사람들이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느낄 때 , 시인은 그 안에서 특별한 것들을 보고 느끼며 노래를 합니다 .
 
    2.
    그리스도인도 그렇지 않을까요 ?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뭔가 남다르게 보는 이가 아닐까요 ? 눈에 보이는 대로 , 내 오감이 느끼는 대로 보고 느끼는 이들이 아니라 거기에 뭔가 다른 , 그 무엇을 느끼고 보는 이가 그리스도인 아닐까요 ? 그래서 혼자 미소 지을 수 있고 , 혼자 감사할 수 있고 , 혼자 용기 낼 수 있는 이가 아닐까요 ?
 
    사람들이 볼 때에 하나도 기뻐하고 행복해 할 것이 없는 사람인데 , 뭔가 남다른 것을 보고 혼자만이 웃고 울고 눈물 흘리는 사람 ,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 아닐까요 ? 왕따를 두려워하는 세상이지만 , 혼자 하늘의 비밀을 깨닫고 감사하며 감격하는 이가 성도 아닐까요 ?
 
    시 121 편을 기억하십니까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할렐루야죠 ? 그런데 이 시인은 대체 뭘 보고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깨닫고 노래하는가요 ? 남들은 산을 보며 ‘산이구나 !’ 하는데 , 믿음의 사람은 웅장한 산을 보며 하나님을 느낍니다 .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을 봅다 . 그것도 시 121 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라고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 즉 시온산 꼭대기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
 
    예배하러 성전에 올라가려는 데 길이 아득합니다 . 산 위에 있는 성전에 기가 죽습니다 . 저길 언제가나 싶은데 이 믿음의 사람은 그 산의 웅장함에 기가 죽고 불평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웅장한 보호하심을 느낍니다 . 하나님께서 두 팔 벌려 안아주시는 그 넓은 품을 노래합니다 . 남들은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 죽겠다 어쩌고저쩌고 할 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느낍니다 .
 
    예배하러 갈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 야곱이 형을 만나러 갑니다 . 젊은 시절 , 형의 축복권을 가로채고 야반도주했습니다 . 그리곤 고생 고생 끝에 나름대로 성공하여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 그런데 아무래도 그 형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형이 자기를 만나러 오는데 장정들을 거느리고 온답니다 . 이는 필경 자기를 처단하려고 달려오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 야곱이 불안해 죽겠습니다 .
 
    그렇게 초조하고 불안할 때 야곱이 길을 가다가 사람들을 만납니다 . 누구를 ?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 지라 .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1-2)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낸 하나님의 군대라고 느낍니다 . 그 모양새도 마하나님 , 즉 야곱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군대가 행진하는 모양새입니다 . 든든한 보호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그 군대가 어떻게 했다는 기록이 후에 없습니다 . 이는 육신의 군대가 아닌 하늘의 군대란 뜻일 것입니다 . 그러기에 마침내 야곱은 이 하늘의 군대를 의식하며 그 두렵고 두려운 길을 계속 나아가고 , 마침내 형과 화해하는 복을 누립니다 .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
 
    야곱만 그런 게 아닙니다 . 여호수아 ,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 그리고 이들은 가나안 땅의 첫 성 , 아주 오래되고 , 견고한 여리고 성을 만났습니다 . 이 성을 공략해야 하는데 ,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 초조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 그의 눈이 열립니다 .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수 5:13-15)
 
    남들이 다 못 보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봅니다 .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 자기와 자기 민족을 돕기 위해 파송된 여호와의 군대와 그 군대 대장을 보게 됩니다 . 그리고선 순종하는 여호수아의 군대를 위해 그 유명한 여리고 함락작전이 시작됩니다 .
 
    견고한 성을 향해 불화살 하나 날리지 않았고 , 견고한 성벽 위로 군사 한 명 타고 넘어가지 않았고 , 대포 하나 쏘지 않았습니다 . 그저 7 일 동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침묵으로 돌다가 마지막 날에 일시에 함성을 지를 때 ,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
 
    사람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 알지도 못했습니다 .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 성을 돌 때 , 그들이 순종하여 함성을 지를 때 , 그들만 성을 돌고 , 그들만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가 함께 돌고 , 함께 소리를 지르며 공격하여 그토록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렸음을 사람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함께 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는 사람 , 여호수아는 압니다 . 그러기에 모두들 불안해 할 때 평안합니다 . 혹시나 할 때 확신을 가집니다 . 그에겐 불안이 없습니다 . 현실이 비록 흔들려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느끼고 , 보기에 불안하지 않습니다 .
 
    3.
    이러한 모습을 오늘 빌립보서에서도 봅니다 .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 빌립보 교회를 향한 자신의 삶의 고백입니다 .
 
    사도행전 15 장과 16 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 , 유럽으로 건너와서 빌립보로 전도하러 갔다가 심한 고난을 당합니다 . 억울하게 체포되어 거반 죽도록 매를 맞고 의식을 잃은 채 깊은 지하 감옥에 투옥되는 등 고난 속에 세워진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
 
    고생을 참으로 많이 하며 세운 교회라 그런지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빌립보를 떠난 후에도 바울과 깊은 신실한 교제를 하였습니다 . 아마도 유럽 복음의 첫 열매가 빌립보 교회였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
 
    그러는 중 ,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자 , 빌립보 교회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고생하던 바울을 추억하며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을 위로하기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바울을 돌보게까지 하였습니다 . 그러자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고마워서 쓴 서신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
 
    감옥에 갇힌 바울 ,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 왜 주님은 죄 없는 자신을 감옥에 갇히게 하여 자유롭게 다니며 전도할 수 없게 하시는가요 ? 왜 충실한 주의 종에게 이렇게 억울한 대우를 받게 하시는가요 ?
 
    화도 나고 신경질이 날 듯 했습니다 . 빌립보 교인들이 볼 때에 사도 바울은 크게 낙심할 것 같았습니다 . 그래서 염려하고 염려하여 빌립보 교회는 위로와 사랑을 보내었는데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1:18),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7), “이와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 2:18),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빌 2:28),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 3: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빌 4:10)
 
    빌립보서의 주제가 뭔지 아십니까 ? 어두움 , 억울함 , 분함 , 불공평 , 불의가 아닙니다 . 기쁨입니다 ! 사람들은 감옥에 억울하게 갇힌 바울을 생각하며 매우 힘들어할 것이라고 , 분해 할 것이라고 , 우울해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위로를 보냈는데 , 정작 바울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 비결이 뭘까요 ?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그가 배운 일체의 비결이 뭘까요 ?
 
    비천 , 배고픔 , 궁핍 , 그리 달가운 게 아닙니다 . 피하고픈 것들입니다 . 물론 풍부 , 배부름 , 반가운 것입니다 . 그러나 살다보면 그런 반가운 것들보다는 달갑지 않은 것들이 더 많습니다 . 그래서 사는 게 즐겁지 않습니다 . 생각해 보면 좋은 것들도 있지만 , 당장에 불편하고 억울하고 부족하고 분한 것들이 더 많아서 인생이 우울합니다 . 그럼에도 바울은 무너지지 않는답니다 . 비결이 뭘까요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무슨 뜻인가요 ? 긍정적 사고의 사람들이 하는 말 , 마치 외판원들이 회사를 나서면 ‘나는 할 수 있다 , 할 수 있다 , 할 수 있다 !’라고 자신감 회복을 위해 외치는 것인가요 ? 아니면 초능력자같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인가요 ? I can do everything!
 
    아닙니다 . 이 말씀은 자신의 삶의 그 다양함 , 그것도 억울하고 힘들고 배고프고 아프고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자신에게 힘주시는 이 안에서 다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정확히 표현하면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느니라 !’
 
    기뻐도 찬양 , 슬퍼도 찬양 ! 배불러도 감사 , 배곯아도 감사 ! 성공해도 할렐루야 , 실패해도 할렐루야 ! 이루어서도 노래 , 넘어져서도 노래 ! 힘주시는 이 안에서 다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어떻게 그럴 수가 ? 자신은 현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분에게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거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의 요동침에 마음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이게 비결입니다 !
 
    4.
    즉 , 이 고백의 의미는 바울은 자신의 삶의 현장 , 현실에서 보고 있는 게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 자신은 현실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지금 펼쳐지고 이루어지는 이것이 다가 아니란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 내가 지금 올라가고 내려가고 일어서고 무너지고 , 아프고 건강하고 , 부유하고 궁핍하고 , 인기 얻고 왕따 당하고 하는 그 모든 것에 누군가의 손길이 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
 
    빈궁할 때도 있었고 비천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그것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 믿음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 조건이나 환경이 신앙을 이끌어 나가는 경우들이 더 많습니다 . 그래서 환경과 조건이 좋으면 믿음 생활 잘하고 조건이나 환경이 나빠지면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습니다 . 신앙으로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환경과 조건이 신앙에 큰 영향을 줍니다 .
 
    그래서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믿음으로 이겨 나가야 하는데 이게 늘 반대로 됩니다 . 환경 따라 흔들리는 믿음생활이 됩니다 . 아닙니다 ! 그렇게 하면 평생 흔들리는 불안한 삶을 살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할렐루야 ! 그런데 그 능력 주시는 자가 누구인가요 ? 예수 그리스도 ! 이 예수님을 아십니까 ? 이 예수님을 느끼십니까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 15:4)
 
    “...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b)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내 안에 거하라 .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이 말씀 , 약속에 의하면 예수님은 지금 나와 함께 하십니다 . 내가 잘 나갈 때만 함께 하는 게 아닙니다 . 내가 성공할 때만 함께 하시는 게 아닙니다 . 내가 무너질 때도 , 내가 쓰러질 때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 그러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느끼십시오 .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 그 예수님을 느끼십시오 !
 
    자신이 주 안에 있을 때 노래가 나옵니다 . 어떠한 현실이 펼쳐지더라도 감사하며 노래가 나오며 ,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기대감이 커집니다 .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 지 ,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어떤 노래를 부르게 하실 지 기대가 커집니다 .
 
    5.
    비결 ? 그 다양하고 복잡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이 내게 있습니다 ! 그게 뭔가요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 !” 그러기에 나는 늘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 다양한 삶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는 예수님께 주목합니다 .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기도하면 그 손길이 , 예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나에게 예수님은 늘 힘을 더하여 주시고 , 현실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
 
    예수님을 느끼고 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 , 성도요 그리스도인입니다 . 하늘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하늘 백성으로 현실을 이기는 권세가 있기를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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