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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2018년 01월 09일 (화) 14:22:06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요20:21)
 
    1.
    어느 목사님이 ‘기대감 ’이란 주제로 설교를 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가면 반드시 묻는 말이 있습니다 .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 그러면 그만큼만 넣어줍니다 . 오늘 하나님의 은혜 ,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맘대로 줄 수 있는 것 같이 말하는 것은 웃기지만 , 그래도 은혜를 사모하고 기대해야 한다는 재치 있는 말입니다 .
 
    2018 년 첫 주일 ,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오신 여러분 , 한 해를 달려가기 위해 필요한 게 많죠 ?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 좀 점잖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런 표현이 더 실감날 것 같습니다 . 얼마 넣어 달라고 ? 만땅 ! 오늘뿐만 아니라 늘 하나님의 성전 , 이 왕중교회에 나와 예배할 때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만땅으로 채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무리 잘 나가고 비싼 차일지라도 , 아무리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라도 반드시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주유소를 찾아가고 ,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 주일은 여러분의 삶의 에너지를 충만히 채우는 복된 날입니다 . 성수주일로 오늘도 은혜로 만땅 , 감동으로 만땅 , 축복으로 만땅 , 가득 차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
 
    2.
    오늘 본문 , 짧은 한 절입니다 . 이 장면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파송하십니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즉 우리는 모두 파송 받은 자들이다 . 왜 파송하셨을까요 ?
 
    예수님이 우리를 파송하시는 장면은 다른 복음서에도 있습니다 . 마태복음의 장면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마가복음의 장면 ,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도 누가의 증언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십니다 . 왜 ? 복음 전파였습니다 .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 그러기 위해 주님께서 끝날 까지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에서의 파송은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 가서 복음을 전파하란 말씀이 없습니다 . 땅 끝까지 선교하란 뉘앙스가 없습니다 . 다시 말해 노골적인 복음 전파 , 선교가 파송의 목적이 아닙니다 . 그러면 뭔가요 ?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요 ?
 
    마태복음 , 마가복음 , 누가복음 , 사도행전이 쓰일 때는 모두 전도와 선교 , 교회를 세우는 일이 다급하였습니다 .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여 주는 것이 더 급했습니다 . 그래서 제자들을 파송하는 목적이 전도였습니다 . 외형적인 선교였습니다 .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렇게 해서 이 땅에 이미 교회들이 많이 세워졌고 , 그 복음서들이 이미 주님의 말씀으로 온 교회에 퍼져있을 때였습니다 . 이미 교회가 있고 , 성도가 있던 때입니다 .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나중에 주후 95 년경에 쓰였습니다 . 그러니까 마태 , 마가 , 누가가 기록할 때와는 상황이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
 
    나름대로 세상에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 그런데 문제가 뭔가요 ? 성도들의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 성도들이 경쟁력이 없습니다 ! 교회에선 큰소리치는데 , 세상에선 이건 완전히 우물 안의 개구리입니다 . 교회 밖 , 세상으로 나가선 영 숙맥입니다 . 신앙생활의 최종 정점은 이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 평생토록 교회에서 , 수도원에서 , 기도원에서 수도사 생활 , 수도원적 생활을 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하셨지 , 교회 안에서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 세상의 빛이요 , 세상의 소금입니다 . 그러니까 정작 성도들은 은혜 받고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기에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파송하시는 것은 곧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 가서 그들과 더불어 살되 예수님의 삶을 이어가라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니 우리의 과제는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
 
    3.
    어떻게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요 ? 나는 적어도 우리의 삶 속에 세 가지 삶의 패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예수님처럼 생각하기 , 예수님처럼 판단하기 , 그리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기 !
 
    예수님처럼 생각합시다 ! 예수님은 늘 뭘 생각하셨을까요 ? 어느 날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 그 많은 율법 , 그 엄격한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 , 으뜸이 무엇입니까 ?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뭡니까 ?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29-31)
 
    예수님의 그 자유스러운 삶의 근간에는 바로 이것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 사랑 , 이웃사랑 !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 그러기에 그 밑에 종속되는 율법 조항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예수님은 무시하셨습니다 .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 아니라 아니라 하라 .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 5:37) 그럴 듯하게 , 장황하게 설명하고 이유 붙이려 말고 이게 정말 하나님 사랑에서 온 것이냐 , 이것이 과연 이웃 사랑이냐 단순하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
 
    그러기에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에 근거한 모든 것들이 다 용납되었습니다 . 예수님은 늘 이것을 생각하며 사셨습니다 . 유대교 전통주의자들이 볼 때 위험한 파괴자같이 보였지만 , 예수님에겐 이 사랑에서 넘어가거나 부족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
 
    그러기에 안식일엔 일하면 안 된다고 하며 마땅히 고쳐줄 수 있고 , 도와줄 수 있는 이들을 외면하는 종교인들을 책망하며 태연히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 심지어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까지 하셨습니다 .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향해 책망을 쏟아 부으며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에 충실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율법에 충실하고 , 전통에 충실하면 충실한 종교인은 될 것입니다 . 그러나 예수의 사람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 중심 , 예수님이 그토록 생각하고 사셨던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에 근거한 언행이 결여된 이는 참된 예수의 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
 
    자신이 하는 일에 혼란이 올 때 , 무엇보다 생각하십시오 .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 예수님처럼 그리 생각하십시오 .
 
    그리고 예수님처럼 판단합시다 . 예수님은 이 법이 , 이 행동이 과연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신 것인가 , 그 의도에 주목하시며 판단하셨습니다 .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인가 ? 그래서 많은 경우 ,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 19: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마 22:29)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3-44) 전통적이고 , 막무가내식 가르침을 따른 게 아닙니다 . 본래의 의도에 더 고민하셨습니다 . 그저 생각없이 행하는 것보다 ,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명하셨는지를 고민하며 행동을 판단하셨습니다 .
 
    그런데 이런 투로 말씀하실 때의 상황을 가만 살펴보면 거의 모두 ‘나는 나름대로 말씀을 잘 지키고 있다 ’고 안주하는 이들을 향해서 입니다 . 자기 같이만 살아보라고 여유를 부리는 이들을 향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더 이상 말씀에 주목하지 않고 , 더 이상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 만족에 빠져 사는 이들을 향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이게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가요 ? 고민하며 판단합시다 .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합니다 . 절차와 예법만 보고 판단합니다 . 옷차림을 보고 판단합니다 . 한번은 두로 지방을 다니시다가 이런 여인을 만났습니다 .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마 15:22-23)
 
    남루한 옷차림의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귀찮아했습니다 . 하찮게 보이고 , 이방인이고 , 딸은 귀신이 들렸고 , 귀찮은 이들 중에 진상입니다 . 그럼에도 예수님은 짐짓 모른 체하시더니 그녀를 향하여 마침내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8)
 
    그 어떠한 남루한 자라도 , 그 어떠한 초라한 행색이라도 우리 예수님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 그 진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 그뿐만이 아닙니다 . 예수님의 판단은 살리는 방향으로의 판단입니다 . 간음하다 현장에서 끌려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 당시 사회법에 의하면 죽어 마땅한 여인입니다 . 모두가 이 여인을 죽이겠다고 손에 돌을 들고 살벌하게 몰려왔습니다 . 여차하면 돌들이 무수히 날아와 돌무덤을 만들 기세입니다 .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 여인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그리곤 여인을 향하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 다시는 가서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며 건져주십니다 .
 
    예수님은 군중심리에 흥분하여 , 여론에 휘말려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 ‘죽여라 , 죽여라 !’ 하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용기 내어 판단하십니다 .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
 
    예수님의 판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는 판단입니다 . 예수님은 죽여라 하는 판단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 어떤 죄인이든 살 기회를 주시는 쪽으로 판단하십니다 . 어떻게 해서든지 이해해 주고 , 받아들여주고 , 세워주는 방향의 판단입니다 . 정죄하고 죽이는 데 열을 내지 말고 살리고 세워주는데 더욱 힘을 냅시다 . 예수님처럼 판단하며 삽시다 .
 
    그리곤 예수님처럼 행동합시다 . 예수님처럼 행동한다는 게 뭔가요 ? 용기입니다 ! 복음서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 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막 3:2-6)
 
    사람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 올무를 놓고 기다리고 있는 그 현장에도 , 그 싸늘한 현장에서도 고통당하는 이를 못 본체 하지 않으시고 , 태연히 그를 고쳐주십니다 . 그 결과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의합니다 .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요 11:7-8) 합니다 .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 왜 ?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기에 용기를 내어 그 살벌한 현장으로 태연히 걸어가십니다 . 모두가 쳐다보는데 , 함정이 깔려있는데 , 위험한 상황인데 그래도 이게 옳다 싶을 때 행하십니다 . 예수님의 행동은 용기 없이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은혜 많이 받으세요 . 그런데 은혜 아무리 많이 받아도 용기 없으면 그 은혜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 예수님처럼 용기를 내십시오 . 결단하고 주님을 따르고 , 말씀을 따라 살고 , 섬기고 순종하고 , 용서하고 베풂에 용기를 내십시오 .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
 
   4.
    우리는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 닮아갑니다 . 싫다 싫다 하면서도 가까이 있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 무서운 시어머니로부터 호되게 시집살이 당한 며느리 , 어느새 자기가 그 무서운 시어머니가 되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 하기사 요즘엔 시어머니가 기를 못 피기에 이런 말은 사라졌다고 하더라구요 .
 
    전임 전도사 시절 , 나는 참으로 무서운 목사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 유명한 부흥사이셨는데 , 호랑이였습니다 . 설교 잘 하시고 , 로맨틱하고 , 멋진 분이셨지만 성격이 불같은 무서운 목사님이셨습니다 . 나는 맘이 여려서 어디서나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합니다 . 그런데 그 어른은 툭하면 큰소리 , 몸도 크시고 목소리도 크셔서 무서웠습니다 .
 
    그래서 나는 그 어른 밑에서 목회를 배우면서 절대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에 다짐을 하며 전임 전도사 시절을 보냈습니다 . 세월이 흘러 내가 담임목사가 되어 교역자 회의를 합니다 . 내 딴에 순하고 양같은 목사로 회의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한 번은 뭔 일로 내가 부교역자님들을 야단 치고 있는데 그 모습 , 어디선가 많이 봤던 모습이었습니다 . 바로 그 어른의 야단치는 모습이었습니다 . 내가 이미 다 배웠습니다 . 그 못된 것을 내가 다 전수했습니다 .
 
    2018 년 , 여러분은 누군가를 닮을 것입니다 . 누군가에게서 삶을 배울 것입니다 .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 누굴까요 ? ‘나를 본받으라 !’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 나를 본받지 말고 예수님을 본받으십시오 !
 
    히브리서 11 장은 믿음의 위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엄청난 믿음의 사람들을 나열합니다 . 그러기에 12 장으로 들어가며 이러한 위대한 믿음의 위인들을 본받자 할 것 같은데 12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2a) 아무리 위대한 성인이라도 사람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
 
    올 해 ,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 예수님처럼 삽시다 . 내숭 떨지 말고 진솔하고 진실되게 예수님처럼 삽시다 . 100% 안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노력할 때 내가 이룰 수 있는 예수님의 모습 , 예수님의 심장 , 예수님의 언어 , 예수님의 감성 , 예수님의 행동이 내 삶 속에 이루어질 것이며 , 사람들은 나를 통해 예수를 알게 될 것입니다 .
 
    간디가 그랬답니다 . ‘예수는 좋은데 예수 믿는 이는 싫다 ’고 . 아 , 우리가 예수의 삶을 삽시다 .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을 대신하여 세상으로 파송합니다 . 이 세상 , 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예수가 활보하는 것을 보고 싶으신 겁니다 . 내가 예수의 아바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예수님의 사람인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 예수님처럼 , 예수님처럼 , 예수님처럼 삽시다 .
 
    3 번이나 예수님처럼 살자고 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생각하자는 것이고 , 예수님처럼 판단하자는 것이고 , 예수님처럼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 그러나 무엇보다 3 번이나 ‘예수님처럼 , 예수님처럼 , 예수님처럼 !’하는 것은 삼세번 , 입에서 머리에서 마음에서 다짐에 다짐을 하자는 것입니다 . 올 해는 예수님처럼 삽시다 !
 
    5.
    무명의 축구 선수가 경기 중 골대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는데 기억 상실증에 걸렸습니다 .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 고민하던 이 사람 ,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 “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이에 현명한 의사가 그의 귀에 대고 한 마디 해 주었고 , 그 다음 달부터 그는 아주 놀라운 선수로 변신하였답니다 . 사람들은 의사가 대체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줬기에 그렇게 됐는가 무척 궁금하였습니다 . 그래서 물었더니 그 의사가 이렇게 대답해 주었답니다 . “당신은 전에 축구 황제였소 .”
 
    우리는 누군가요 ?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삽시다 . 그러면 예수님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 .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심장으로 삽시다 . 그러면 예수님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때로는 용기 , 때로는 긍휼 , 때로는 능력 , 때로는 사랑 , 때로는 용서 , ...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산다면 마침내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
 
    무엇을 하든지 ,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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