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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뗀 아이처럼
2017년 12월 19일 (화) 09:05:00 조무웅 강도사 hipc6012@daum.net

(시131편)

주님, 이제 내가..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시편‭131:1, 2‬RNKSV‬‬

1. 1 교만하지 아니함

2. 2~ 3 하나님으로 만족함

  여러분 살면서 참 포근하고 아름답다는 광경들이 있을 터인데 어떤 것들이 떠올라요 첫 번째로 저는 아이가 잠자는 모습 요람에서 잠자는 모습

  아주 오래전인데 어떤 슬픈 그림을 보았어요. 아마 부모가 없는 아이었던 것 같아요. 길바닥에서 아이가 이렇게 자고 있는데 엄마가 품어주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을 보았어요. 굉장히 마음이 찡한 그림이지요. 누군가가  자기를 안아 줄 수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 감동적이지요.

  얼마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림을 보았는데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소년이 있는데 그 소년이 앉아 가지고 백묵 같은 것으로 자기 다리를 그렸다 그런 그림을 보았어요 슬프고 아픈 현실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이제 마지막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비무장 지대에 지뢰들이 많이 매설되어 있고 지뢰 때문에 피해를 입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참 슬픈 일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가운데 하나가 품 그런 말이 아닐까 그렇지요. 품이라고 하는 것 그러니까 우리 시대는 품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도 맞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그러니까 학원으로 돌아다니고 또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냉장고에서 자기가 꺼내가지고 전자 렌지에 뎁혀서 먹고 이전에 어른들이 해주던 품으로서 구실들을 기계가 대행하고 있는 시대 이런 것들이 슬픈 시대가 아닌가 생각 해 봐요.

  성경을 읽으면서도 우리들이 품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데 특별히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품이라고 하는 말이없지만 품이 되어 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지요.

  그야말로 품을 보여 주고 있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으려고 하는 시인데요 시편 131편입니다.

  아주 짧아요. 유진 피터스 목사님이 번역한 메시지라고 하는 성경이 있는데  우리 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1~3절 하나님 나는 대장이 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으뜸이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남의일에 참견하지 않았고 거창하고 허황된 꿈을 꾸지도 않았습니다.

  같은 말씀인데 조금 뉘앙스가 다르지요.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시편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가운데 하나이거든요. 12번째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품이 되어 주신다는 내용이기에 주님의 확신이 이 시 가운데 담겨 있지요.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서 나는 평안해 이 단계를 보면 나는 늘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프레드린 리체라는 사람이 쓴 책 가운데  짜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리체가 그 책에서 말하거든요. 살아있는 정신은 세가지 단계를 걸쳐서 성장해 간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게 살아 있는 정신입니다.

  (1) 첫째로 그가 이야기 하는 것이  낙타의 정신입니다.

  낙타는 어떤 짐승이지요. 사막을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짐승이지요. 굉장히 큰 무게를 짓고 걸어갑니다. 척박한 땅을 걸어가지요.

  나무를 심으러 갔다가 몽골을 갔다가 낙타를 타 보았는대요 이 낙타는 척박한 곳을 가기에 최적화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데 발이 모래에 빠지지 않도록 착착 열리는 모습이 정말 예쁘고 사막화 지표 식물들이 있어요. 땅이 사막으로 자랄 때 자라는 식물들이 있는데 굉장히 거칠거든요

  낙타는 가 가지고 썩썩 베어 먹는 데 싹 베는 소리가 예리한 낫으로 싹 베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고 낙타의 정신인데 이 낙타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등에 가장 무거운 것이 얹혀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요. 이것이 살아있는 정신이어요.

  보통 사람들은 사실은 어떠고 싶습니까?  무거운 짐이 사라지기를 바라지요. 낙타의 정신은  가장 무거운 것이 내 등에 얹혀 지기를 소망한다. 내가 생각해 보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 무엇일까?

  가장 무거운 짐이 무엇일까요. 가족이 무거운 짐일 수 있지요. 가족만 아니면 집어치우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 보니까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짐은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나라는 사람이 어리석고 내가 얼마나 작은지 나의 작음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인생을 살다보면 그렇지요.

  그런데 살아 있는 정신은 무거운 짐을 자기 등에 짊어지는 것이어요. 그래서 나 자신을 낮추고 그렇게 되지요. 그래서 살아 있는 정신은 저 짐을 짊어지고 사막으로 간답니다. 사막에서는 여러분 아무것도 안 보인다 황량한 벌판만 보이지요.

  그곳에서 결국은 누구와 만납니까?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 이것이 낙타의 정신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생을 살면서 우리들이 가벼운 짐만 골라 짊어지려고 할 때 정신은 커질 수가  없거든요. 이것이 낙타의 정신이어요.

  (2) 2단계로 가게되면 사자의 정신입니다.

  강인함 남자의 강인함 남자만 강인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자라고 하는 게 여러분 옛 동양의 가르침 가운데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에게 돌맹이를 던지면 개는 돌을 따라간데요. 자기를 때린 돌을 따라간데요. 사자는 돌을 던진 그 대상으로 바로 공격을 한데요.

  지능이 뛰어나네요 그것은 알 수없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자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사자는 초원에서 누구의 눈치도 안 보지요 눕고 싶으면 눕고 놀고 싶으면 놀고 건기에는 물 웅덩이에 가서 물 마시고 싶으면 물 마시고 사자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살려고 하는 정신의 독립을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살려고 하는 정신의 독립 여러분  우리가 인생이 때때로 곤고하다고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에 항상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것 때문에 나 스스로를 제한하고 바꾸어 나가고 사람이 좋은 옷을 입고 싶은 까닭도 그 옷을 입어야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시선에서 비롯되거든요.

  좋은 옷 입고 아무도 나를 주목해 주지 않으면 속 상하지 않아요.  반지 좋은 것 끼었으면 누가 알아 봐 주었으면 안 알아줘 머리가 아프다고 지금 봐달라고 하지요.

  우리 선생님 한 분이 아내에게 좀 무심한 선생님이신데 어느 날 사모님이 정말로 반지를 하나 해 가지고 이렇게 알아 봐 주었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서 이렇게 했더니 당신 머리 아파 그래서 정말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고 그래요.

  그 다음에 정말 머리가 아파 가지고 머리 딛고 있었더니 당신 반지 또 샀어 그 선생님하고 사모님하고 이야기 들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웃었는데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내 삶을 규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신이어요.

  이것이 살아 있는 정신이지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너는 그렇게 사는 것 불행한 것이야 이야기 할 때 노 나는 이것 충분해 행복해 이것이 사자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남에게 규정되지 않는 것이지요.

  (3) 그런데 낙타의 정신과 사자의 정신을 거친 사람들  세 번째 어린이 정신입니다.

  어린이의 영혼의 순진함 같은 것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마는 어린이는 가장 아름다운 점은 세상에 대한 수용성이다.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니까 어린이는 부드럽기 때문에 순수하고 성실합니다. 이 궁극적 단계가 어린아이의 단계이다.  어린아이처럼 유치해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의 유연함을 가지고 저 단계에 가야 되는 데 낙타와 사자를 걸치지 않고 어린아이가 된 사람은 유치해요.

  사람들이  먹을 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어린 아이적인 것이지요 저 단계를 거친 어린아이의 단계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넉넉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 18: 3 누구든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없다. 말씀하셨는데 그런 뜻이라고 보여 집니다.

  누가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인가 하면 정말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이것을 머리로만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믿음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어린아이 같아집니다.

  그래서 어설프게 안 사람들은 율법적이고 딱딱하게 사람들을 대합니다. 그런데 영혼에 깊은 곳에 이른 사람들은 굉장히 유연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받아 드릴 수 잇는 여백이 있어요. 이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보여줘요.

  다소기 유영모 선생님이 계신데 일제시대 때 김교신 선생님이 만드신  성서 조선에 믿음에 들어가는 노래이는 노래를 실으셨어요 나는 시름 없구나 이제부터 시름없다 님이 나를 차지하사 나를 맞이셨네 님이 나를 가지셨네 몸도 낯도 다 버리네 내 거라고 다 버렸네 어엄 이렇니다.

  시름없어 나는 시름없어 왜냐하면 시름이 없음이 무엇 때문이냐 하면 세상사에 걱정 근심이 없고 세상은 어두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사에는 걱정 근심이 있고 고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이 나를 차지했기에 내가 걱정할 것이 없다 그 안에서 내가 쉬고 있다  진실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내려 놓고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서 그분이 기뻐하는 것을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어요. 그렇게 되면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없어진다.

1. 1 교만하지 아니함

  이 세계를 기가 막히게 보여 줍니다.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을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 눈이 오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교만한 것 같지 않습니까

  고전 11: 1 바울 사도가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내가 그리스도를 닮은 것 처럼 나를 닮으라” 이렇게 말하거든요.  철저한 자기 부정에 이른 사람이 아니고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요.

  이 시인도 지금 정말 자기라고 하는 그 무거운 짐 낙타처럼 자기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고투를 벌인 사람이기에 마침네 해방된 영혼이 될 것이어요.

  나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 눈이 오만하지 않습니다.  교만함 오만함 비슷한 이야기인데 사전을 찾아 봤거든요 둘이 어떻게 다른 것이야 교만함은 잘난체하여 뽐내고 버릇이 없음 교만은 잘난체 하는 마음이어요. 뽐내고 싶은 마음이어요.

  오만 젠체하면 남을 없이 여기는 태도가 있음 이것은 다른 타자와 관계속에서 누군가를 없이 여기는 마음이어요. 그 오만함이 눈으로 표현되는 가봐  1절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재미 있는 대목입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교만해 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자기를 크게 보이게 싶어서 그렇지요. 자기 확장의 욕망이라고 하는 대목이 그 대목인데 사람들은 자기를 확장해서 근사하게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누구에게나 있지요. 자기 포장하고 그러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그것이 우리로 사람 답게 살지 못하는 영혼의 질병이 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날 나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다 정말 무릎을 치는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30장 25절 “민의 날이 와서 그 날이 어떠 어떠한 날이 될 것을 이야기 하는데 “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 게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  망대가 무너졌어요.  말 그대로 망대이기도 하지만 바라보는 대이기는 하지만 망대는 높이 솟아 있지요. 고산과 준령도 높이 솟아 있지요. 자연물 인간이 만든 유형물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도 망대가 있거든 우리 마음 속에도 준령과 같은 것이 있거든요 내가 남들 보다 낫지 그게 무너지자 게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그렇게 말해요.

  여러분 종종 제 책에 서명을 해 달라고 하는 분들에게 참 고민이어요. 아무게 님 날자와 써주고 이름만 써 주기는 미안하고 또 연예인이 그런 것 처럼 행복하세요 하기도 미안하고 그리고 제 책에 서명해 달라는 분들이 무언가 의미 있는 구절을 써 달라고 고심을 하는데 때때로 이렇게 쓸 때도 있습니다.

  물은 흐르게 하고 꽃은 피어내게 하십시요  이렇게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수유 화개라는 말을 우리 말로 풀어 낸 것이어요 수유 물은 흐르고 꽃은 흐르고 이것을 사역 동사로 바꾸어서 막혀 있다고 한다면 물은 흘러가게 만들고 이렇게 살라고 하는 데

  그런데 우리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없는 환경에 있다면 온기를 불어 넣어서 이렇게 살라고 우리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난 것이 언제인가 보았더니 높아 진 것이 무너져야  그런 꽃이 피어나기 어렵고

  1절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 눈이 오만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교훈이 다 연결이 됩니다. 믿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서로 어떻게 지내라고 합니까?

  빌2: 3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서로 겸손함으로 남을 낫게 여기라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이 마음이면 좋겠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지고 다툼과 허영으로 하고 다툼은 경쟁심이어요. 내가 저 사람에게 이겨야지 그런 경쟁심 허영심 나를 돋보이게 만든 그런 허영심이 있지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라 그런데 이 낫게는 더 귀히 여기라는 이야기이지요.  여러분 발음이 똑 같은 게 문제여요 낫게 여기라와 낮게 여기라와 다른 이야기이지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는 말인데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지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 우리 마음이 자꾸만 말씀을 듣다 보면 내 마음속에 있는 교만함도 무너졌으면 좋겠고 내 눈빛도 오만함도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마음으로는 그런데 잘 안 돼

  우리의 힘과 결심 약하여 늘 넘어지기 쉬우니 찬송가에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아요. 내가 힘과 결심 약하여 늘 넘어지기 쉬어 그렇기에 나 스스로가 오만함에 치유자가 될 수가 없다 나 스스로가 교만함에 치유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찬송가에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하고 말하는 데 결국은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셔야만 오만함이 교만함이 무너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시인이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오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가면서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이야기 하지요

  1절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습니다 이야기 합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는 이야기는 큰 사람이 되어야 돼 큰물에 나가서 놀아라 집사님들 기도하는 이야기가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머리가 될지언증 꼬리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목사님들이 축복기도할 때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통령도 나오게 해 주시고 장관도 나오게 해 주시고 나는 그 기도 들으면서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직들이 많이 있지 않아요. 누가 하지 이게 얼마나 여러분 편견인지 모릅니다.

  은퇴한지 오래되신 목사님이 있습니다. 여자 목사님인데 자기 마을에 아이들이 지나가면 불러가지고 축복 기도를 해 주세요 하나님 아무게가 잘 커가지고 우리 마을에 이장이 되게 해 주세요 그러면 부모님들은 서운해요.

  우리 애를 겨우 이장 되라고 기도해 주시는가 좀 크게 되라고 기도해 주시지 그 목사님이 분명해요 마을이 변해야 세상이 변해 좋은 이장이 중요한데  큰 목사님들은 큰 기도를 하지요 정말 중요한 것들은 그런 것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1절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 합니다. 이게 중요한데 사람들이 자꾸 커지려는 이유는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지요. 그리고 자기를 돋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나는 큰 일 꿈 꾸지 않습니다. 놀라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느냐 하면 싸움에서 이긴 사람만이 할 수 있어요.

  춘추 전국시대 노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싸워 이긴 사람을 힘이 있다고 합니다. 승인자 유력 힘이 있다 자승 자강이라는 말이 나와요.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은 강하다.

  그렇지요. 자기와 싸워서 이긴 사람  그래서 여러분 어느 분은 스승이라고 하는 말을 스스로 승에다가 이길 승을 합해 가지고 스승은 누구이냐 스스로 이긴 분이다. 풀어서 설명하는 것도 보았어요.

  우리의 영혼을 밝혀줄 수 있는 스승들은 자기와 싸워서 이기지 않는 사람은 선생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스승은 될 수 없어 자기가 싸워서 이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와 싸워서 이긴 사람 내가 큰 일 감당하지 못할 큰 일 꿈 꾸지 않습니다. 큰 일 꿈을 꾸지 않으니까 그의 삶은 어떠할까요. 소박하다. 이런 사람들은 소박한 삶이어요. 결국  소박하다는 것은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자기 욕망을 향해서 아니다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사람 이 사람들이 소박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성공의 사다리 오르기에 정신없이 몰두하고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내면속에는 경쟁의식이 탁 들어있다 경쟁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웃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내 속에 미란씨와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사랑 할 수 없어요.  나는 경쟁의식이 전혀 없어 이런 것이어요.  사랑의 능력이 사라지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 앞서 가는 사람을 보면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바라보면 격멸의 시선으로 봐요

  성공의 사다리 이게 이제 불행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큰 일 감당하지 놀라운 일 바로 그것이 사람들을 이제 망가뜨린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2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기를 하였나니 젓 뗀 아이가 그 어머니 품에 있는 것 같사오니 내 영혼이 젓 뗀 아이와 같도다. 하고 말하는 데 여러분 젓 먹는 아이들 보신적 있지요. 젓 먹는 아이들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젓을 먹으면서 다른데 안 쳐다보지요 엄마 눈을 쳐다보지요. 참 신비해요 말할 수 없는 교감의 시간이지요.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여 그런데 이상한 엄마들은 애 젓 먹이면서 텔레비전 보고 이것 참 슬픈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언의 교감이 일어나요. 아이와 엄마 사이에 그러니까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엄마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신뢰를 표현하고 엄마는 아이 눈을 바라 보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요.

  바로 그 상황을 아이가 젓을 만족스럽게 먹었어 그 때 아이들이 어쩌지요. 입을 딱 떼고 환히 웃어 주지요. 내가 실감한다니까요. 내가 그러니까 아기가 만족스럽게 먹고 나면 환히 웃어줘요 이것이 기가 막힌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이야기 하고 있어요.

2. 2~ 3 하나님으로 만족함

  2절 내 영혼이 평온하기를 젓 뗀 아이가 내 영혼이 젓 뗀 아이와 같더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안에  살았더니 남들에게서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자  내 영혼이 평안하게 되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김지택 시인이라는 분이 있어요  그분이 나이가 40쯤 되어 결혼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늦게 애기가 태어나다 그러니까 아기 자는 모습을 보고나서 시를 썼어요.

  이런 구절입니다.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 부르럽고 기름진 잠을 한 순간도 흘리지 않는다 저처럼 깊이 빨아 드린다. 그런 다음에 애가 아침이 되어서 깨어나다 남김없이 잠을 비운 아기가 아침 햇빛을 받아 환하게 깨어난다 밤사이에 훌찍 자란 품잎같이 이불을 차고 일어난다 밤새도록 웃음 말고는 다 잊어버린 얼굴이 한들거린다.

  아이가 잠을 푹 자는 것이어요. 아기의 그 모습이 아기 생각만 하면 그냥 저절로 우리 마음이 환해지고 그렇게 되는데  그러니까 이게 아기의 이야기지만 그런 아기의 모습이 무엇과 같은가 하면 하나님 안에 안긴 사람들 하나님에게 자기의 삶을 위탁한 사람이 이런 평안함을 누리고 있다고 시131편에서 시인이 말해 주고 있지 않아요.

  여러분들도 그런 평안함을 누릴 때가 있었지요. 지금은 그러고 싶어요. 그래서 인디언 이야기가 있지 않아요. 인디언에 전해오는 이야기 인디언 부부집에 아기가 태어났어요. 그런데 5살 6살 된 아이가 엄마 아빠 아기하고 내가 잠간 동안만 혼자 같이 있는 시간을 좀 허락해 주세요.

  부모는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기가 질투심 때문에 해고지 할까봐 꼬집거나 울리거나 그럴까바 그래도 아이가 간절히 이야기 합니다. 엄마 정말 아기하고 잠간만 있게 해 주세요 그래서  허락을 하고 걱정이 되기 때문에 그 부모가 문을 약간 열어 놓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자기 동생 침대에 올라가서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지 않아요. 말해 주겠니 나는 너무 오래 살아서 하늘나라에 대해서 다 잊었거든 그렇게 그렇지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하늘의 소식을 가지고 오거든요  아이의 존재 그 자체가 지금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런 마음일 것이어요. 인디언 어린아이의 그런 마음 여러분 세상이 너무나 혼잡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고 평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두운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마음에 평강이 없어요. 정말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늘 이 세상 때문에 내 마음 상처 입었어 이러고 살면 불행하지요.

  그러한 어두운 세상을 모른척 하고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두운 세상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하는 데 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된가고 이야기 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품안에 안긴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전도서의 말씀에 보면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게 전 4: 8 내가 일할 수 있다는 것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다는 것 기쁘고 즐거울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전 4: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 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세상에 있는 일들 세상이 어찌 되었던 우리들이 평안을 세상에 어두움과 싸울 힘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나님 안에서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이 은총의 순간임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어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내려 주시는 은총을 우리들이 느낄 수 있을 때 그 때 우리들은 내면이 고갈되지 않은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시인이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마지막 절에 내 영혼이 젓 뗀 아이와 같도가 하고 있는 그가 이제는 자기의  공동체를 향해 이야기 합니다.

  3절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께서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지요. 그러니까 그분에게 맡기고 살아라.

  이것이 어디에 나온 이야기 입니까?

예수님이 산상 수훈 마 6: 31~32 오늘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그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야 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것 염려할 것 없어

  6: 26  저 하늘에 새를 보아라 주께서 먹이시지 않더냐.

  6:28 저 들에 백합화를 보아라  솔로몬이 입은 옷 보다 입히지 않더나.

  6: 29 그리고 너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있어요.

  6:33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여러분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해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이게 중요합니다. 매우 그런데 여기에만 붙들려 살기에는 여러분 인생이 너무 안타까운 것이어요.

  그런데 이 문제에만 노심초사 하다보면 이 문제도 해결 할 수있는 능력이 없어져요. 이 문제가 심각할 수록 더 근본적인 것에 두면 이 문제도 풀려요

  이게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야기 하고 있어요.자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에만 붙들려 살 때 우리가  삶을 확고하게 붙들기 때문에 자유가 없어져요.

  이것이 너무 힘겨울 때 여쭙기 시작하는 순간 내 삶속에 자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이문제가 다소 부족하다고 하여도 받아 드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겨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유라고 생겨요.

  3절 이스라엘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바랄찌어다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바로 이런 태도를 우리가 가지고 산다면 별로 걱정할 것이 없을것 같아요.

  여전히 인생에 풀리지 않는 문제는 있어요. 이것은 인정할 수 밖에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속에 든든함이 있다고 한다면 외적으로 채워 지지 않은 인생 때문에 전전 긍긍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정말 근본적인 문제를 붙들게 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는 신뢰를 가지고 살면 내 마음속에 여백이 생기지 않을까

  여러분 시편 131편은 그런 삶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신뢰를 가지고 살면 멋진 삶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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