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10.22 월 21:14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신학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교회 개혁 과제는 무엇인가?
2017년 11월 07일 (화) 08:45:35 이학준 교수 webmaster@cry.or.kr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영적·도덕적·신학적·이성적 역량' 키워야

  • 이학준
  • 승인 2017.11.01 15:55

'역량'이라는 말은, 여러 반대에도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는 힘의 크기 또는 정도를 뜻한다. 21세기 후기 산업사회에서 '역량'의 의미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화가 가져온 사람들의 높은 이동성, 인간관계의 수평화, 가속화하는 경쟁으로 점점 전통적 신분(학벌·지연)과 허세, 고리타분한 명분보다 '역량'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허세나 명분에 빠진 개인이나 집단은 시간이 지나면 그 역량이 드러나 도태할 수밖에 없다. 역량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역량 있는 인재를 잃고 국제 경쟁에서도 뒤지게 된다. 역량은 전문화와 관계있다. 어느 개인이나 기관의 역량은 모든 것을 잘하는 일반적 능력이라기보다 전문적 영역에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실력이다. 예를 들면, 야구선수와 농구선수는 둘 다 운동선수지만 역량의 영역과 종류가 다르다. 전문성과 역량이 있는 개인과 기관은 신뢰를 받고, 이것이 브랜드 파워 성장으로 연결된다.

'역량'을 종교 영역에 적용해 보면, 현재 한국 개신교가 안고 있는 '사회적 역량' 문제를 조명하는 데 도움을 된다. 교회 역량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영적 역량(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도덕적 역량(얼마나 바르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가) △신학적 역량(무엇이 오늘에 적합한 복음의 메시지이며, 이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이성적 역량(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상징을 사용해 어떻게 복음을 문화와 소통하게 할 수 있는가)다.

영적 역량은 드러나지 않는 역량으로, 흔히 쓰는 '내공'이라는 말처럼 교회의 내적 힘이자 하나님과 갖는 관계의 깊이에서 나오는 힘이다. 영적 역량은 밖으로 당장 환산하기는 어려우나, 시간이 지나면 (위기 상황에서) 영향력이 드러난다. 도덕적 역량은 교회가 얼마나 성서가 가르치는 기본 규범과 가치(사랑·용서·평화·정의·정직·화해 등)를 안팎으로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교회 공동체 내부 성숙도와 분위기를 결정해 주는 것은 물론, 교회 외부 사람들의 직접적 평가 대상이 된다.

마지막으로 신학적 능력과 이성적 능력은 복음(영적·도덕적 역량)을 어떻게 시대적·문화적 상황에 맞게 잘 해석하며, 사회에 전달·설명해 주는가를 측정하는 역량이다. 신학적 역량은 현재 교회가 자신들의 사역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이해하는 사회·문화 분석과 더불어, 복음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묻힌 것이나 잊힌 것들, 그리고 좁게 해석했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고)를 통해 발전한다.

종교개혁 500주년,
제대로 된 변화 일으키려면

영적·도덕적 역량이 교회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정체성의 역량이라면, 신학적·이성적 능력은 교회가 사회에서 사역하는 데 방향을 찾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적합성의 역량이다. 이 네 가지 역량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신실하면서도 역동적이며 효과적으로 교회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사회적 역량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역량은 이 네 가지 역량과 모두 관련돼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직접적으로 도덕적 역량과 이성적 역량과 직접 연관이 있다. 사회적 역량은 도덕적 역량과 이성적 역량의 합산으로, 복음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살아 내고, 깨달은 진리를 사회의 상황에 맞게 소통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교회의 힘의 크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른 사회 여타 정치·경제·사회·문화 기관과 달리 어느 종교 기관이 갖는 대사회적 역량은, 권력의 힘이나 경제력에서 나오기보다 사회적 역량에서 나온다. 사회적 역량의 중심에는 사회적 자산(Social Capital)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 자산은, 사회가 갖고 있는 교회에 대한 신뢰도를 말한다.

사회적 자산은 최소·최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교회는, 최소면에서 부도덕한 일(비윤리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최대면에서 사회가 당면한 문제나 가야 할 길에 대한 바른 비전·판단력·행동력을 보여 줘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바른 방향으로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고 모범을 보여 줘야 한다.

예를 하나 들면, 한국 개신교 선교 초기(19세기 말~20세기 초) 교회 모습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자산은 없었다고 해도, 한국 개신교는 새로운 도덕규범은 물론 독립·개화를 갈망하는 민족에게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 엄청난 사회적 자산을 얻었다. 이것이 한국교회 부흥을 기초가 됐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그 반대다. 경제적으로는 건물과 재화를 가졌다. 정치적으로는 두 명의 장로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사회 상류 계층에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는 비윤리적이라며 지탄 대상이 된 것은 물론, 한국 사회를 위한 어떤 비전 및 판단력·행동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 발전에 걸림돌인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더 나아가 개교회 생존과 교회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교권과 경제 이권 중심으로 생겨난 여러 계파 갈등과 뒷거래가 교회를 어지럽힌다. 이 같은 한국 개신교 내부 모습은, 영적·도덕적·신학적·이성적 역량을 잃어버리고 정치적·경제적 역량 배양에 혈안이 된 종교개혁 당시 유럽의 로마가톨릭교회와 별다르지 않다.

500년 전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정치적·경제적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교회가 사회적 역량(사회적 자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기독교 본연의 본질·사명에 대한 업무를 등한시하고, 제왕 군주들과 정치권력을 놓고 다투고, 경제적 이익 획득과 사회적 지위 유지를 위해 혈안이 된 결과 일반 시민과 지식인으로부터 배척을 받은 것이었다.

사회적 자산을 잃어버린 종교는 사회적 변화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종교인들은 고금을 막론하고 신뢰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아무리 설교가 훌륭해도 인격과 신뢰와 삶에서 결정적 문제가 있다면 배척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을 탐하거나, 경제적 이익에 몰입하는 교회는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하듯이, 교회가 스스로의 주권 영역을 잃어버리고 다른 주권 영역들에 침입하는 것으로 필히 부패·타락·불의를 낳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

​현재 한국 개신교회들은 잘 지어진 예배당, 호텔에 방불케 하는 인테리어, 미디어 시스템, 비싼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을지 몰라도,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역량 모두 저하된 상황이다. 한국 개신교의 사회적 역량 저하는 도덕적·이성적 역량만이 아닌 영적·신학적 역량 저하에서 비롯한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권력과 돈을 우상숭배한다. 빈약한 교회 내 신학이 경건성과 신앙적 판단력도 흐리고 있다.

영적·신학적 역량 개선 없이 도덕적·이성적 역량을 고칠 수 없다. 교회 개혁 운동은 최소 도덕적 역량 회복은 물론, 영적·신학적 역량 증진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할 때, 교회 안팎에서 새로운 교회를 시도해 보려는 긍정적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움직임도 단순히 대형 교회에 대한 감정적 반발이나 특정 이데올로기만으로는 근본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다. 위에서 말하는 네 가지 역량(영적 역량·도덕적 역량·신학적 역량·이성적 역량)의 점진적 강화가 필요하다. 교회 지도자의 부패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안 된다. 비판보다 더 어려운 것이 대안 제시다.

새로운 교회라는 제도적 대안을 세우기 위해서는 순수성과 경건성 위에 신학적 역량이 동시에 필요하다. 루터와 칼뱅이 훌륭한 개혁가였던 이유는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할 때 외형적 부패와 타락의 도덕적 측면만 지적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그들의 비판에는 신학적 깊이가 있었다. 루터의 이신칭의와 칼뱅의 성화론(율법의 세 가지 기능: 그리스도의 3가지 직분) 등이 대표적 예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과제는 정치·경제적 역량에 눈멀어 사회적 역량을 잃어버린 한국 개신교회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주일학교 감소, 교인의 노령화, 청년·지식인의 조용한 탈출 등 한국 개신교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체질을 바꾸는 개혁 없이 살아남기 힘들다. 인구 절벽, 3포·5포로 이어지는 청년들의 좌절, 북핵 위기 등 한국 사회는 신뢰할 궁극적 대상과 희망의 이유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 복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한국 개신교회는 정치·경제적 역량이라는 본연의 영역이 아닌 것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 한다. 교회 본연의 역량 향상을 위해 힘써야 하리라. 하나님 사랑의 영적 역량과 이웃 사랑의 도덕적 역량, 시대의 징조를 바르게 읽고 판단하는 신학적 역량, 민족에게 바르게 복음의 소망과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이성적 역량이 필요하다. 이 같은 역량 배양 없이 한국 개신교는 세계화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반성·회개 속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 개신교는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도전과 기회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성서와 전통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한국 개신교의 영적·도덕적·신학적·이성적 역량이 향상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학준 / 풀러신학교 기독교윤리학 교수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9월 각 교단 총회 결산
“총신 개혁에 진력해 주기 바란다”
가짜뉴스와 개신교 연계 우려
사도신경 해설-5 (“모든 성도의 교
살겠다고 하라
2018년 자살률 통계 발표를 보면서
내가 죽고 너희를 살린다.
잠언21강 10:17-32 생명의 길
아들 결혼식 주례사
잠언22강 11:1-15 속이는 저울
최근 올라온 기사
교인들의 성질을 고치려는 노력(2)
인생승리(人生勝利)의 십계명
잠언23강 11:16-31 의인의 열...
인생을 산다는 것
하나님이 보우하사
예수를 믿으면
사람들은 말한다.
어리석은 예루살렘 딸들
가짜뉴스
“총신 개혁에 진력해 주기 바란다”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