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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이제는…
2017년 11월 01일 (수) 14:54:44 크리스천웹진소리 webmaster@cry.or.kr
(출처:들소리신문)
 
  편집부 기자 dsr123@daum.net
 

그 험악한 교황권 폭력과 착취의 시대에 목숨 걸고 인간 한계를 극복해낸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의 헌신에 한량없는 마음으로 경의와 찬하를 보냅니다. 그러나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개혁의 마무리 과정 또한 험난한 고난과 죽음까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16세기 후예들이 오늘 명심하고 실현에 옮겨야 할 개혁과제는 세 가지가 우선 급합니다.

첫째, 만인제사의 신학 수립과 실천신앙.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느니라’(롬 10:10) 한 말씀을 눈여겨보세요. 이신칭의(롬 1:17)의 해석이 아닐까요. 답안을 여기에 숨겨두었군요. 바울 선생은 ‘이신칭의’의 완성은 ‘마음’과 ‘입’을 동원하고 있어요. 이를 우리가 늘 하는 말로 바꾸면 구원의 길은 마음의 결단까지이고 그것의 완성, 곧 그 열매는 입술의 시인이니 행위 열매가 되는군요. 이로써 신자의 완전, 또는 만인제사의 성립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절차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는 이신칭의는 입술의 시인 곧 행위의 열매에서 완성됩니다. 프로테스탄트의 탁월한 신앙의 힘은 ‘마음’과 ‘입술’의 ‘동시동원’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역시 예수의 말씀대로 “그 열매”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프로테스탄트의 돌파능력과 모험심 탁월한 조건 위에 행위의 열매이면 금상첨화와 같은 믿음의 완전한 단계입니다. 이 과정을 좀더 명쾌한 신학논리로 정립해 21세기 이후의 종교개혁과 그 완성의 시대를 도모해야 합니다.

둘째, 폭력과 결별, 비폭력 선언입니다.

우리 예수의 사람들이 언제부터 폭력을 즐겼습니까? 카타콤을 떠나 콘스탄티누스의 그레코로만 시대, 또는 헬레니즘 기독교 시대가 열리는 (AD 313년) 때부터 우리 교회가 손에 피를 묻혔고, 피 흘리고 폭력을 저지른 로마의 황제나 권력자들이 준 재물과 헌금을 성물(聖物)로 받아들이면서 중세 기독교는 병들었지요.

하나님의 지극하신 은혜로 16세기에 이르러서는 폭력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세계 기독교는 폭력과는 단호하게 결별해야 합니다.

겟세마네에서 칼을 함부로 휘두르는 제자를 꾸짖으시던 예수님을 아시죠(마 26:52). 주님은 말씀했어요. 칼을 거두어라!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하느니라. 이 말씀이 얼마나 단호하고 냉정하셨는지는 성경을 읽으면 알게 됩니다.

잘못 길들여진 기독교 역사는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폭력 거부, 비폭력이라면 이는 기독교의 제1의 교리, 모든 가르침을 잠시 멈추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폭력은 완전히 거두어내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폭력이 용납되거나 그 방법은 반드시 포기해야 합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평소 자기는 120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948년 거의 나이 78살 때 죽음의 위기가 왔어요. 그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시간에 비서들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주변에서 피 냄새가 나고 분위기가 살벌합니다. 오늘은 예배 참석자들 몸수색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간디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 예배하는 자리에 모이는 사람들을 의심할 수 있겠느냐”면서 검색을 못하게 했어요. 그리고 그는 예배실로 들어가다가 힌두교 열심당 청년이 쏜 총 세 방을 맞고 죽었지요.

간디는 죽음이 자기 가까이에서 자기 목숨을 노리고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함께 예배하려는 자리에 모인 자들을 의심할 수 없었어요.

폭력과 결별하는 자세,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신뢰하고 성도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야만 오늘 이후의 기독교는 드디어 완성지향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셋째, 불평등 경제생활로 공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2015년 기준으로 지구 인구 70억 명 중에서 64명이 가진 재산이 하위 35억 명의 순자산과 같다는 통계를 <불평등의 역사>를 쓴 발터 샤이델은 말하고 있더군요.

이는 소유의 불평등은 인류의 지성이나 도덕성과는 별개로 결코 자랑스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아와 과부의 구세주이십니다. 늘 그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 곁에 계십니다. 옥합을 주 앞에 내어놓는 여인 문제로 시비가 있었을 때,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들 곁에 있으니 너희가 도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방법론까지 말씀해 주셨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문명역사 이전부터 인류 모두가 악성종양처럼 가지고 있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용기와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남을 도울 수 없는 만큼만 가지고 사는 것도 남을 돕는 것”이라 하더군요. 아주 뜻깊은 생각입니다. 돕는다, 도움을 받는다 하는 과정 가운데서 발생하는 오해의 싹을 미리 제거하는 방법이 되겠군요. 남을 도울 수 없을 만큼만 가지고 살면서 미리 이웃과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근세사 출발점을 열었던 때에 존 칼빈 선생이 열었다는 근대 자본주의는 몇 번의 수정을 거치면서 사회주의, 더 나아가 극단의 사회주의인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를 토대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드디어 1917년 10월에 자리를 잡으면서 예측할 수 없는 냉전시대를 불러오기도 했으나 지금쯤은 인류의 앞날을 위해 기독교가 불평등 경제와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따위 이상론은 천년 왕국 시대나 천국에서 가능하다고 쉽게 말하지만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메시아 대망의 선지자 이사야는 주전 700여 년 전 사람이지만 그의 글 곳곳에, 특히 11장에서는 마치 그림 같은 모습의 인간사회를 제시하고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불평등 사회, 불평등 경제문제는 기독교의 개혁시대 현안에서 제외하고 싶으신가요. “아닙니다”, “결코 아니어야 합니다.” 회피해 가야 할 곳은 지옥밖에 더 있겠어요.

신앙의 온전을 뒤로 미루고, 비폭력이나 불평등 사회까지 구원하겠다는 깃발을 내걸 수 없다면 기독교의 완성은 불가하고, 그 결과는 다시 오시는 예수와의 만남도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역사의 현재가 아니라 박물관 기념물 신세로 끝나지요.

종교개혁 500주년 이후, 늦어도 1천년까지 가지 않고 앞당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여! 모두 제3개혁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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