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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붙드시는 사람
2017년 08월 03일 (목) 18:16:34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롬9:19-24)
 
우리 인간은 강한 것 같으나 연약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학벌은 신통치 않아도 자기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 반면에 아무리 많은 배운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인생은 자기가 힘이 있을 때, 자기가 부한 자리에 있을 때 인심을 많이 베풀어 두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살이라는 것은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는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시절에 가정 교사하던 집은 6․25 사변 전 많은 땅과 하인들을 거느리던 큰 지주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의 할머니는 사변 전에 집에서 일하는 많은 하인들의 가정을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왔다고 합니다. 병든 집에는 약을 지어다 주고, 아기 낳은 집에는 미역과 생선을 사다 주고, 공부를 잘 하지만 학비가 없는 집에는 남편 몰래 학비를 대어 주는 등, 많은 인심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고 공산치하가 되었습니다.
 
모든 지주들이 붙들리고 재산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고 심지어는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참극을 만났으나, 이 할머니의 집은 모든 하인들과 동네 사람들이 변호하고 나섬으로 무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열심히 사랑의 씨를 많이 뿌려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지금 차지하고 있는 높은 자리, 부한 자리, 힘있는 자리를 너무 의지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가진 것은 바람을 잡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로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야 살수가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니까, 맨 손으로 사자를 죽였고, 당나귀 턱뼈 하나 만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천 여 명이나 물리칠 수 있었으나, 아무리 천하 장수라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 않으니까, 쉽게 체포되고 눈이 뽑히는 비극을 만났던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과거에는 양이나 치던 보잘 것 없는 막대기였으나, 하나님이 역사 하시니까 10가지 기적을 나타내고 홍해바다를 갈랐으며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붙들어 주십니까?
세 가지로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깨어진 심령을 붙들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토기장이라고 했습니다. 토기장이란 진흙으로 옹기그릇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진흙의 태도는 토기장이가 하는 대로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도자기로 만들든지, 아니면 항아리를 만들든지, 심지어는 천한 그릇인 오강을 만들든지 무조건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토기장이가 그 진흙을 붙들고 자기의 뜻대로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기장이는 그릇을 만들기 전에 진흙을 철저히 깨뜨립니다. 경기도 이천 도자기 공장에 가 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도자기 공장에 가면 진흙을 파다 물에 씻어 나뭇잎, 풀뿌리, 모래나 돌멩이 같은 것들을 모두 걸려냅니다. 그리고 반죽을 만들고 방망이로 두드립니다. 인절미 치듯이 두들겨서 완전히 깨뜨려 가루로 만듭니다. 그 다음에는 토기장이가 자기 마음대로 그릇을 빚습니다.
 
불가마에 넣고 불을 활활 땝니다. 얼마 후에 꺼내서 철저히 검사합니다. 무슨 흠집이 있거나 마음에 안 들면 망치로 때려서 부수어 버립니다.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쓰실 때도 이런 방법을 택하십니다. 철저히 연단의 방망이로 우리의 자아를 깨뜨리십니다. 우리의 교만과 자존심, 우리의 육적 성질과 아집을 깨뜨리시고 깨뜨리십니다. 그 때 우리 할 일은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대로 순응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여, 너무 하십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라고 원망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여, 나는 존귀한 도자기가 되어 저 화려한 진열장에 있고 싶은데. 왜 나를 이처럼 초라한 항아리로 만드시려고 하십니까? 너무 하십니다. 저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못 합니다.”라고 반항한다면, 더 큰 연단의 방망이로 맞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붙들어 쓰신 인물들은 다 이러한 깨어지는 연단의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함으로 영적으로 교만했던 요셉은 13년의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에서 깨어지고 깨어진 후에 큰 인물로 빚음을 받았고, 애굽 궁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아 지적으로 교만했던 모세는 40년 광야에서 지겹도록 깨어지는 연단을 받아서, 나중에는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길 정도로 낮아지는 과정을 겪게 만드신 후에야 이스라엘 지도자로 만드셨습니다.
 
다윗도 대단히 아주 어린 나이에 당대의 최고의 장수인 골리앗을 꺾은 후에 온 국민들로부터 최고의 스타가 되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잘못하면 교만으로 무너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사울 왕이라는 몽둥이를 통해서 깨어지고 깨어짐으로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은 깨닫게 하신 후에야 성왕(聖王)으로 세움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런 엄청난 연단을 받았음에도 최고로 높아진 후에는 얼마나 교만했는지, 충신의 아내를 범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야비한 방법으로 그 남편을 죽이는 모습을 나타냄으로 하나님을 무서운 줄 모르는 자가 되었다가 무서운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제가 목회 초기에 제가 존경했던 인물 중의 한 분이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분은 감리교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첫 번째 목회한 곳이 경기도 가평에서 수 십리 들어가는 골자기인 상천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곳 땅은 대부분 박토요, 자갈밭뿐이고 교인들은 얼마나 가난했는지 논 다섯 마지기 이상 가지고 있는 교인이 없었고, 먹고사는 것은 감자와 옥수수뿐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곳에서 목회 하면서 쩍하면 철야하고 금식하면서 힘을 다해 목회 해 보았지만 농촌교회라 도무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양복은 다 낡은 것 단 한 벌뿐일 정도로 어렵게 지내면서 4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는지, 한번은 무척 더운 여름날에 어디 심방을 갔다 오는데 너무나 출출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리어카로 참외장사를 하는 집사님이 만났습니다. “목사님, 어디 다녀오십니까? 저기 시원한 그늘에 가셔서 참외 좀 잡수시고 가시지요.”라고 하더니 내어놓는 참외를 보니, 멍든 것, 찌그래기 등 못 팔 것만 내어놓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내가 어쩌다가 이런 초라한 대접을 받는 신세가 되었는가?”라는 생각을 하니 목이 메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매어 달리는데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토록 초라하게 내팽겨 두실 수 있습니까?”라는 원망의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 깨어지고 녹아져서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완전히 순복한 후에야 길을 열어주시더랍니다.
 
서울로 올라오게 하신 후에는 나중에는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고. 12,000평의 건물에 세계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를 이룩하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홍도 목사님은 최근에 와서 검찰에 체포 직전에 놓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리교 감독회장 선거 시 수억의 부정선거 비용, 불륜 문제, 배임과 위증 문제 등, 8가지 범법행위 문제 때문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연단 받아 그렇게 높은 자리에 앉혔더니 교만으로 가득 차 하나님이 무서운 줄 모르다가 그렇게 비참한 결말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하나님이 강하게 붙들어 주시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연단하실 때에 자기 자존심과 아집 등, 철저히 깨어지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겠다는 자리까지 깨어지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부터 하나님이 강하게 붙잡아 쓰시는 것을 발견할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를 붙잡아 주십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진흙 같은 존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질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겸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심히 연약하나 주님은 강하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연약함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를 강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기에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요? 항아리를 보십시오. 겉으로 보기에 얼마나 강해 보입니까? 그러나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만 맞아도 쩽그렁 깨어지고 맙니다. 우리의 건강이나 지식, 우리의 재물이나 지위, 우리의 자녀나 후원자들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바람처럼 쥐고 있다가 새어 나가 버리고, 어느 날 보면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명직 목사님이 지은 ‘허사가’를 들어보십시오,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놓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인생 백년 산대도 슬픈 탄식 뿐, 우리 생명 무언가 운무로구나.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 묘 널 기다린다./ 토지 많아 무엇해 나 죽은 후에 삼척광중 일장 지 넉넉하오며 의복 많아 무엇해 나 떠나갈 때, 수의 한 벌, 관 한 개 족치 않으랴.”
 
인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인간은 질그릇처럼 약한 존재이면서도 스스로 강하다고 교만한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조금만 학벌이 높거나 가진 것이 많거나 집안이 좋으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우지 못한 것들’ ‘없는 것들’ ‘아래 것들’하면서 얼마나 업신여기는지요? 인간의 눈에도 꼴사납게 보이는 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얼마나 한심할까요? 아니 됩니다. 그것은 성경적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의 교훈은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들어서 강하게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고전1:28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처음에는 ‘자기는 강하다, 많이 배웠다. 로마 시민권자다.’라는 식으로 교만했지만, 몸이 너무나 아프고 병든 속에서 깨어지고 깨어지면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다 보니 한 가지 놀라운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고후12:9에서 보면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바울은 세상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자랑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약한 것들을 자랑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약할 때에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 때에 주님의 능력이 강하게 임재 하시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주요한 교훈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에서 목회자를 선택할 때에 얼마나 하나님 방법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을 앞 세웁니다.
 
많은 교회들이 주님이 붙들어 주시는 사람이냐를 보지 않고 수십 통의 이력서 중에 누가 가장 학벌과 경력이 좋으냐를 보고 택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자기는 약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주님의 능력만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그런 자를 붙잡으시고 강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바른 정신입니다. 우리나라에 왔던 초기 선교사들도 다 이런 정신으로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왔을 당시 한국 사회는 네 가지 계층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1)양반으로 문관과 무관이요, (2)중인(中人)으로 역관, 재정관, 의원 등이요, (3)상인으로 농업, 어업, 상업에 종사하는 계층이요, (4)천인(賤人)으로 기생, 관노비, 역졸, 사노비, 창기, 점쟁이 등이었습니다. 이 천인들보다 더 천하게 취급받던 자들이 포졸, 갖바치, 백정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와집을 지을 수 없고, 족보도 없고, 장가를 가는 경우에도 가마나 말을 타고 갈 수 없습니다. 심지어 죽은 후에도 상여 대신에 지게에 메고 가야 했습니다. 이처럼 양반, 상놈이 엄격한 사회에서 모삼열 선교사는 백정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 교회를 세웠고 1911년에는 승동교회에서 박성춘이라는 백정을 장로로 임직시켰습니다. 그래서 양반들이 백정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고 갈라져 나가 세운 교회가 바로 오늘의 안동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한국교회는 이조 500년 동안 그렇게 병들게 했던 양반 상놈 계급과, 남성과 여성 계급을 무너뜨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1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교회 일군들을 뽑는데 세상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느 분은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자녀 결혼하는 데 너무 가문이나 재산, 지역을 따집니다.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낮추시는 날이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반대로 어느 분은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쩍하면 세상 것이 없음을 너무 탄식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의 연약함을 통해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뻐하십시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질그릇같이 연약한 존재인 줄 깨달으시고 재물이 있거나 없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거기에 매이지 마시고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 자를 붙잡아 주십니다.
고후4:7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배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연약한 인간이지만, 예수님만 모신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붙잡아 주십니다. 고후4:8-9에 보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게 하시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게 하십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게 하시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몇 천 원 짜리 뚝배기라도 그 속에 금덩어리를 담으면 주인으로부터 뚝배기도 특별대우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몇 십 만 원짜리 도자기라도 그 속에 오물을 담으면 오물단지 취급을 면치 못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일지라도 그 속에 사탄의 마음을 품으면 사탄의 사람이 되어 사탄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운 것은 많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예수님의 중심,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열매를 맺어갈 뿐 아니라 하나님이 강하게 붙들어 주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그릇됨이 좋으냐 나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항상 넘어지기 잘하는 존재였습니다.
 
이상하지요. 이 질그릇 속을 내 자아가 차지 하니까, 온통 낙심과 원망, 시기와 증오, 탐심과 음란의 마음이 넘치더니, 이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니까, 사랑과 긍휼, 평안과 감사, 다른 이를 높이는 마음이 가득 차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하나님이 강하게 붙들어 주는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연약한 질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열매도 달라집니다.
 
유명한 화가 레오날드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그릴 때, 예수님의 모델을 찾아 헤매던 중 어느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하는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의 믿음이나 인물됨, 생활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여서 마침내 예수님의 모델로 정하고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이제는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적격자 없어서 몇 년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날, 교도소에서 발견했습니다.
 
복역 중인 한 흉악범의 인상이 너무 사납고 배신자의 표본처럼 느껴져서 이 사람을 잘 설득한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어 갈 즈음에 그 죄수가 계속해서 울고 있었습니다. 다빈치는 그 연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 대답이 너무나 놀라왔습니다. “몇 년 전에 당신이 예수님을 그릴 때에 제가 그 모델 노릇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 저는 교회를 떠나 세상길로 나가 타락하여 오늘은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었으니 너무나 기가 막혀 웁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 때에는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향기가 가득하더니, 세상의 마음, 욕심의 마음을 품을 때는 사탄의 모습, 사탄의 악취가 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진흙 같은 우리는 토기장이가 되시는 하나님이 지으신 대로 나의 인생을 맡깁시다. 그 다음, 우리 속에 있는 자기중심을 뽑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 모십시다. 그 때부터 하나님이 붙잡아 주심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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