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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휴식
2017년 07월 12일 (수) 08:19:23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막6:31, 46)
 
이제 긴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주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복잡한 도심지를 떠나 숲으로 우거진 산이나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혹은 하얀 모래벌이 펼쳐 있고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로 떠날 것이요, 사정이 여의치 못한 이들은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 가서 2-3일이라도 쉬면서 밤에는 모깃불을 피워 놓고 옥수수나 감자, 참외나 수박을 먹기도 할 것입니다.
 
그 나마라도 시간이 없는 가정들은 식구들의 등쌀에 못 이기어 한강 고수부지 파란 잔디라도 찾아가서 저녁의 강바람을 쏘이면서 준비해 간 음식이라도 먹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휴가라는 것은 감히 꿈도 못 꾸었습니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고 생각하여 그 무서운 뙤약 빛에 나아가 땀으로 목욕하고 고작해야 집에 돌아와서 우물가에서 목물정도요, 여자 분들은 밤에 냇가에 나가서 목욕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쉬는 계절이 겨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휴가’나 ‘바캉스’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바캉스’라는 말은 프랑스 말로 ‘비운다’라는 뜻입니다. 한 여름철이 되면 파리의 시민들이 거의 모두가 며칠씩, 혹은 한두 달 동안 집을 비우고 휴가여행을 떠남으로 파리 시내가 텅 비어 짐으로 생겨진 말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뿐 아니라, 서구 대부분의 나라나 미국 등은 여름이 되면 도시가 텅 비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교인들도 대부분 휴가를 떠남으로 교회도 몇 주 동안 방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바캉스 바람이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사회에 불어 닥쳐 이제는 여름에 휴가를 못 가면 무슨 큰 억울한 일이나 당하고 있는 양, 부인들이나 아이들이 남편을 들들 볶는 풍속도가 가정들마다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들이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어서인지, 많은 음식물을 싸 가지고 좋은 산이나 계곡, 강이나 바다에 대거 몰리므로 교통전쟁, 인파전쟁, 무질서전쟁, 쓰레기 전쟁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생의 여행이 되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기분이 새워지기는커녕 완전히 녹초가 되어 불쾌감이 최고도에 이른다고 너나없이 탄식합니다. 어찌 그 뿐입니까? 온 산야가 쓰레기에 오염되므로, 여름동안 가장 시달리는 것은 자연입니다. 이는 국민들이 돈과 여유는 엄청나게 많아졌으나 공중도덕에 대한 훈련이나 여가선용, 환경오염에 대한 교육이 전혀 안된 탓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에서도 환경보호에 대해서나 여가선용에 대한 교육, 즉 바른 휴식의 태도나 건전한 놀이에 대해서도 교육해야 합니다. 그러면 휴가나 여가선용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휴식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어느 분은 휴가 기간 동안 너무 지나치게 오락을 빠져서 휴식은커녕 녹초가 됩니다. 어느 분은 과도한 등산, 빡빡한 여행 스케줄로 인해 휴식이 아니라 중노동을 한 꼴이 되어 노독(路毒)에 걸리기도 합니다.
 
안 됩니다. 휴가는 조용한 산이나 계곡, 강이나 바닷가에서 쉬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데 있습니다. 어느 성도들은 휴식을 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할 일 많은 때에 무슨 휴가, 무슨 휴식이냐고 합니다. 잘못된 신앙입니다. 성경을 보면 쉬라는 명령이 많이 나옵니다. 안식일에도 모든 일을 놓고 쉬라고 했고,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같은 명절을 당하면 한 주일씩 쉬게 했습니다.
 
그리고 6년 일하고 7년째 되는 때에는 안식년이라고 1년 쉬게 하고 이 안식년이 7번 반복되는 50년째 되는 희년(禧年)에는 큰 안식을 하라고 명하였던 것입니다. 많은 교회 목회자들이 부임하고 7년 째 되는 해에는 안식년 휴가를 곧잘 떠납니다. 어느 분은 1년 동안 외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어느 분은 한 3개월 동안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휴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도 일하시고는 안식하셨고,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식사할 겨를이나 잠잘 겨를이 없고 무리한 전도여행으로 너무 지쳐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때때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쉬시거나 피곤하시면 배에서도 주무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보면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면 ‘경기장에 가서 관람하는 것이 취미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 그러면 휴가의 목적인 휴식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 합니까?
1. 일을 더 잘하기 위하여 휴식해야 합니다.
휴식의 목적은 원기회복 함으로 일을 더 잘하기 위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한 가지 일에 8시간 계속 일하고 나면 피곤합니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하노라면 신경이 긴장해지고 온 몸이 곤비해지고 짜증이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한참 쉬거나 잠을 자거나 무슨 오락을 하고 나면 긴장이 풀리고 일할 의욕이 다시 생기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취미는 새를 기르는 것이었던 같습니다. 그의 노년에는 그가 길들였던 메추라기와 함께 지내기를 기뻐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사도 요한이 메추라기를 가슴에 품고 쓰다듬고 있을 때 한 사냥꾼이 이상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사도님은 위대한 분으로 많은 분들이 사도님과 가까이 지내기를 원하는데 그처럼 하찮은 새 한 마리를 돌보는데 열중하시다니 이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요한은 사냥꾼이 쥐고 있는 활을 보면서 “그러면 왜 당신은 활을 언제나 시위를 당긴 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냥꾼은 답하기를 “사도님, 그거야 활을 언제나 시위를 당기고 다니면 활의 탄력이 없어져서 정작 활을 쏘려면 화살이 잘 날라 가지 않기 때문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말하기를 “그렇다면 내가 지금 새나 가지고 지내는 이 잠깐의 휴식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내가 이러한 휴식이 없다면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영적인 활력을 잃고 정작 내게 중요한 임무가 주어질 때 그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일에 너무 오랫동안 과로하면 우리 건강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어떤 영업용 택시 기사가 있었는데, 그의 소원은 개인택시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면서 쓰지 않고 모아서 드디어 개인택시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버는 대로 자기 수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면 만족해야 할 텐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밤중에 할증요금이 있기 때문에 12시 넘어서 일하게 되면 더 많은 수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피곤해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번만 더 태우고, 그리고 한번만 하면서 계속 하다보니까 점점 과로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날도 밤늦게까지 일하고 녹초가 되어서 집 앞까지 왔습니다. 그리고는 핸들 위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고 영영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로사입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이렇게 과로하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교회를 성장시키노라 쩍하면 금식하고 철야하며, 또 교회 건축한다고 월요일도 전혀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재정 때문에 너무 긴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교회건축을 마쳤으나 중병이 들어서 교회가 치료비까지 전담하게 되니, 건축 때 지은 엄청난 부채로 어려운 판에 큰 문제가 아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만하고 전혀 쉬지 않는 것은 잘하는 것 같아도 오히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에 주님이 건강을 책임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느 분은 일을 더 잘 하기 위해서 오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락하기 위해서 돈을 법니다. 그러다가 오락에 중독이 됩니다. 그래서 3일을 밤낮 놀음하는 데 보낼 정도가 됩니다. 바둑은 사실 건전한 오락입니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고 바둑을 뛰는 데만 정신을 뺏기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어느 분은 가게를 운영하는데 가보면 옆집 사람과 많은 시간을 바둑을 뛰는데 시간을 뺏깁니다. 누가 와서 “이것 얼마요?”라고 물으면 대충 보고 다시 바둑판을 보면서 “얼맙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무슨 물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면 턱으로 가리키면서 “저쪽에서 찾아 보슈.”라고 한 후 다시 바둑판에 몰두합니다. 그런 모습 보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 손님은 그 가게에 더 이상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휴식의 목적은 더 일을 잘 하기 위함입니다. 열심히 일한 후에 휴식이나 오락을 가질 때 가치가 있고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에게 우리에게 맡기신 가정이나 직장, 교회나 사회 일을 열심히 하십시다. 그리고 피곤하고 지치면 충분히 휴식함으로 원기와 의욕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러면 휴식이나 취미를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 합니까?
(1)자연 속에서 육신의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취미는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등산이나 자연관찰이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시간만 나시면 한적한 산에 가셔서 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도 대부분 자연에 대한 소재가 많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들에 나갔더냐 바람에 날리는 갈대냐” 그리고 겨자씨나 밀 하나의 비유, 등등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자연을 사랑하시면서 그 품속에서 먼저 하신 일은 육신의 휴식을 취하셨을 줄 압니다. 예수님에게는 많은 사람들, 특히 병자들이 몰려들므로 잡수실 겨를이나 주무실 겨를이 없으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동안도 많은 병자들이 옷이라도 만지면 나을까 하여 밀고 당기고 하여서 어느 때는 강가에서 배를 띄우시고 말씀을 전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때로 사람들을 피해서 한적한 산 속에 들어가셔서 쉬셨습니다.
 
어느 분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금식이나 철야를 하시더라도 혹은 아무리 하루 종일 일하신다고 할지라도 피곤도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슈퍼맨처럼 완전히 강철 같은 육체를 가지셨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도 우리 똑같은 몸을 가지셨기에 과로하면 피곤하시고 주무시지 않으시면 지치십니다.
 
그러므로 종종 사람들을 피하시고 쉬셔야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휴식은 대부분 산에서 이루셨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산림욕’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물로 목욕하는 것이 아니고, 광릉수목원 같은 숲 속에 들어가 맑은 공기로 목욕한다는 말입니다. 일본의 의학자이이고 자연 치료의 권위자인 신산혜삼 박사의 발표에 의하면, 푸른 하늘과 숲, 대양과 물의 소리, 새와 곤충의 소리가 현대인의 누적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는 비할 데 없는 치료효과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창조되었기에 자연과 흙 속에서 놀라운 치료효과가 있고, 숲의 공기는 우리의 폐에 알맞은 산소와 질소로 이루어져 온 몸의 피로를 놀랍게 씻겨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도시의 공기는 너무나 오염되어 있습니다. 어느 의미에서 우리는 독가스를 마시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그것도 부족한지 줄담배를 핍니다. 아니, 어느 분은 갓 난 아기 앞에서도 담배를 핍니다.
 
그러면서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인삼이나 녹용, 보신탕이나 생사탕은 무엇이든지 먹습니다.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번 여름 동안 온 식구들과 며칠이든, 아니면 단 하루이든 자연에 나가서 육신적인 피로나 스트레스를 풀고 새 힘을 얻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자연 속에서 정신적인 새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셔서 마음을 정리하신 줄 압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신 것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때로 안타깝고 속상하고 분노심으로 시달리셨을 줄 압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노라고 자부하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의 저 위선적인 모습 때문에, 더 나가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가장 반대하고 십자가의 못 박으려는 모습을 보실 때에 마음이 상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어느 때는 군중들이 말씀을 들을 때는 딴청을 부리고 있다가 병고치고 기적을 나타낼 때는 열광하는 모습을 보셨을 때는 실망감을 금할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제자들 중에 귀히 여겨서 회계 일까지 맡겼던 가룟 유다가 자기를 은 30냥에 팔아먹으려는 모습을 볼 때는 배신감에 시달리며 밤에 주무시지를 못하셨을 것입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리할 때는 예수님에게 가까이 하려 하지만, 조금만 불리하면 도망칠 궁리나 하는 한심한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3년 동안 열심히 가르치고 기적을 보여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낙심하는 마음에 시달리셨을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요6:66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불리한 입장이 되자 떠나갈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탄식조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마음이 상하실 때마다 한적한 곳을 찾으시고 기도와 명상 중에 마음을 정리하신 사역을 시작하셨을 줄 압니다.
 
사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마음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때는 주일날 “용서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그날따라 어느 여전도회에서 월례회 하다말고 대판 싸웠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설교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낙심의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친구 목사는 순천에서 목회 할 때에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자기를 몰아내는 데 가장 앞장을 서더라고 하면서, 그 때부터 하나님만 바라보고 목회하기로 결심했답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섭섭함이나 분노심이 가득 찰 때가 있을 줄 압니다. 어느 때는 인간에 대한 상처 때문에 교회 일을 전혀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라도 여러분을 상하게 만든 사람을 결코 미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사탄 마귀가 다만 인간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낙심하게 만들거나 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적(主適)은 사탄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사탄의 짓인 줄 모르고 서로 미워하고 다투면 좋아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예수님도 가룟 유다가 자기를 팔려고 하는 것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 역사 하는 것으로 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러한 섭섭함이나 분노심에 시달릴 때에 무엇을 합니까? 그 때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대자연에 들어가 하나님의 품에 거하면서 조용히 가셔서 명상하고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독일의 교육자요,「인간교육」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겼고, 근대 유치원의 창설자인 프뢰벨은 인간적으로 불행한 자였습니다. 생후 9개월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늘 마음의 외로움이나 상함, 아픔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어릴 적부터 자연계와 식물계와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고 했습니다.
 
그가 태어난 지방은 수목이 우거진 산림지역으로 마음이 외롭고 상할 때마다 자연 속에 들어가 그 우주와 세상,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품에서 쉬면서 자기의 마음을 정리했고 큰 꿈을 키우고는 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이 가정이나 교회,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지치고 낙심하는 마음이 생기거든 이번 여름 조용한 자연을 찾아가 하나님의 품에 쉬면서 마음을 정리해 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자연 속에서 영적인 새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산으로 가신 이유는 육신과 정신의 휴식도 목적이시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도하시기 위해서요, 영력을 보충하시기 위하심입니다. 본문 46절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오천 명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신 대 기적을 나타내신 후입니다. 그러므로 대단히 피곤하십니다.
 
지금은 어디 조용한 다락방에 가셔서 편히 쉬셔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산으로 홀로 기도하러 가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막1:35에서 보아도 예수님은 각색병자와 많은 귀신들을 내어 쫓으신 다음날 대단히 피곤하셨음에도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영적인 일을 한 만큼 영력을 보충해야 한다는 모습을 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이나 지혜로 하면 낙심하기 쉽고 또 열매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에 반드시 명심할 것은, 주님의 일은 하면 할수록 배터리처럼 능력이 빠져나가므로 수시로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목회 경험에 의하면 주일날 세 번 설교하고 나면 육신이 지치고 영력이 빠져나간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3부 예배를 마치고 나면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제직회나 당회를 인도해야 합니다. 귀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의논하다가 누가 무엇이라고 했다 해서 제가 공연히 화가 나는 경우를 발견합니다. 평소에는 능히 웃으면서 참을 일도 그 때는 심신이 약해져서인지 공연히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스스로 부끄러워집니다.
 
그 시간에 그만큼 영력이 약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월요일부터 다시 기도생활을 합니다. 다시금 주님의 능력이 심령으로 차 오르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일해야지, 내 힘이나 지식, 내 경험이나 실력으로 하면 어느 순간에 쉽게 지칩니다. 탈진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내게 맡겨진 사명이 큰 사람일수록 더 기도하는 생활을 통해서 영력을 끝없이 보충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고백하기를 “나는 아침마다 두 시간씩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 날은 온종일 마귀에게 진다. 아무리 다른 일이 바쁜 때라도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는 나는 이겨 나가지 못한다.”고 했고, 로버트 M. 맥춰인은 “나는 가장 귀중한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여름을 육신과 정신의 새 힘을 얻는 기회 뿐 아니라 영력의 새 힘을 얻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때로 식구들과 바닷가를 간다고 하더라도 새벽 미명에 모래벌에 나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온 식구들이 손을 잡고 찬양하거나, 아니면 깊은 산 계곡에서 텐트를 세우고 식구들과 함께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혹은 기도원에 가서 능력을 달라고 간구해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영적으로 새 힘이 임하는 것을 분명히 체험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사의 가장 큰 능력이 있는 부흥사 김익두가 전도사님으로 사역하고 있을 때 일입니다. 한번은 어디 심방 갔다가 오는데 앉은뱅이 거지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자신도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보겠다는 생각으로 그 거지를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과수원 돌담으로 업고 가서 붙들고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친 다음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 때에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한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요? 그러나 보십시오. 거지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뭐, 이런 사람이 있는가?’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한지, 즉시 담요를 싸서 산으로 들어가 금식하며 철야하면서 바윗덩어리를 안고 “주님, 사명만 주시지 말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며 얼마나 몸부림치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불같은 성령이 임하면서 기쁨과 확신이 충만해 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찬송을 부르며 산을 내려오는데 예전의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제 조금도 부끄러움도 없이 손을 잡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소리치니 놀랍게도 앉은뱅이가 그 자리에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첫번 기적이요, 그 이후 2만 명의 난치병을 고쳐 주었고 280여 교회를 세웠고 200여명의 신학생들을 공부시켜 주었다고 한국교회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번 여름을 낭비하지 말고 대 자연이나 한적한 곳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시고 육신과 마음의 새 힘 뿐 아니라 영적으로 새 힘을 얻으시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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