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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데로 가라
2017년 07월 06일 (목) 11:40:47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눅5:1-11)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시원한 물가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게네사렛 호’이라고 부르고 있고, 구약시대에는 ‘긴네렛 못’이라고 불렀는데, ‘긴네렛’이란 비파란 뜻으로 갈릴리 호수가 그런 악기의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름이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게네사렛’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구약 표현대로 바다라고 불렀으나 누가는 유대인이 아닌 탓인지 호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길이가 21킬로, 즉 70리, 폭이 13킬로로 40리가량 되는 꽤나 큰 호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따르는 무리와 함께 이 호숫가를 지나시다가 어부들이 그물을 씻는 것을 보시고 호숫가에 있는 베드로의 배 위에 오르시고 바다에 조금 띄우라 명하신 후에, 그 배를 강단 삼아 무리에게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때에 어부였던 베드로와 요한, 야보고는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큰 감동,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거의 고기를 잡지 못함으로 심한 허탈감에 빠져 있던 그들의 마음속에 깊은 평안과 믿음이 고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얼굴이 새 술에 취한 것처럼 벌개졌을 것이고 눈은 새로운 희망으로 빛이 났을 줄 압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베드로의 모습을 눈여겨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신 다음, 베드로에게 난데없는 명령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시몬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가 그런 명령을 받았을 때 너무나 큰 갈등에 빠졌습니다. 지금, 그 장소에는 예수님을 따라온 엄청난 인파가 있고, 그 중의 상당수가 베드로를 아는 자들이요, 또한 요한, 야고보 등, 많은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그 장소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부로서 잔뼈가 굳은 베드로가 목수 출신인 예수란 분의 말을 듣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진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문 어부 베드로의 눈으로 보면, 지금 이 지역에는 고기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나가서 그물을 내린다면 90% 이상 실패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들 수 있는데, (1)일반적으로 고기는 얕은 곳에 있지, 깊은 곳에는 없습니다. (2)고기의 이동은 새벽이나 밤중에 이루어지지, 낮에는 고기 이동이 없는 것이요, (3)어제 밤에는 밤새도록 그 부근에서 그물을 내렸으나 허탕만 친 입장이어서 분명 그 부근에는 고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프로급에 속한 베드로의 합리적인 관측입니다. 그러기에 목수 출신의 예수님의 비합리적인 명령을 따라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렸다가 아무 것도 잡지 못한다면 그 많은 인파, 그 많은 친척, 그 많은 어부들 앞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참 한심하구나. 베드로가 굉장히 똑똑한 줄 알았더니, 저렇게 어리석고 미련한 줄 몰랐구나.” 또 어부들은 “고기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어부 망신은 베드로가 시키는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남자는 자존심으로 삽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의 무모한 명령을 따르다가 실패한다면, 그 마을, 그 어부들 사이에서 완전히 왕따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배웠던 어부의 방식대로 하느냐, 아니면 예수란 분의 명령에 따르느냐?’라는 기로에서 심한 갈등에 빠졌습니다. 우리 신자들도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것인가? 인간의 생각이나 계산대로 할 것인가?’로 갈등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베드로는 이 두 사이에 갈등하다가 마침내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단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지금 어부로서 심한 무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리고 다시 빈 그물을 끌어올리는 허무한 행동을 계속하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대로는 살 수 없다. 무엇인가,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라는 절박감으로 가득 찼을 것이요, 좀 전까지도 허무의 그물을 깁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에 골똘히 빠졌을 줄 압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강하게 느끼면서 ‘이제 이분만 따라가면 새로운 밝은 날이 펼쳐질 것이다.’라는 감동이 왔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갈등의 위치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깊은 사랑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일찍이 그런 깊고 평화로운 눈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예수님의 눈을 여전히 자기에게 자기의 명령을 따를 것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는 그 분을 통해서 새 날을 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들릴 정도로 외치기를 “내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배를 저어 깊은 곳으로 갑니다. 불가능의 바다를 향해 모험의 노를 젓습니다.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험을 감행하면서도 ‘지금이라도 돌아갈까?’라는 흔들림이 생깁니다. 갈등 속에 전진이요, 모험입니다. 자기 경험, 자기 주견, 자기 자존심을 다 버리고 오직 말씀 하나만 의지하여 깊은 곳으로 나아가 믿음의 결단의 그물을 내립니다.
 
그리고 말씀만 의지하여 믿음의 그물을 끌어올립니다. 여러분이여, 그 결과, 어찌 되었습니까? 놀라운 일입니다. 밤이 아니고 벌건 대낮에, 얕은 곳이 아니고 깊은 곳에서, 분명히 어부의 전문적인 판단에는 고기가 없는 곳에서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니 엄청난 기적의 고기들이 잡히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야고보와 요한의 배까지 채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불가능의 삶의 호수에서 이런 기적의 역사를 만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1.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기 전에 하나님이 뜻이 있는가, 하나님의 명령이 있는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베드로가 예수님이 명령하지 않으셨음에도 “주님, 밤이 맞도록 잡은 것이 없지마는 이 시간 주님만 믿고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면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실 줄 믿습니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 그랬더라면 빈 그물만 끌어올리고 큰 망신을 당할 뻔했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을 행할 때도 “주님, 나도 주님처럼 물위로 걸어가고 싶습니다. 도와주소서.”라고 말한 후에 무조건 물위로 성큼 내려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물위로 오라고 명하실 때에 믿음으로 걸어간 것입니다. 어느 분은 주님이 무슨 약속이나 무슨 명령을 하신 것도 아님에도 자기 혼자 결정하고 믿음으로 행합니다.
 
“하나님, 지금부터 10일 동안 금식하면 이 병이 나을 줄 믿습니다.” 혹은 “내가 100일 동안 아침마다 금식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빚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자기 멋대로 날짜를 정해 놓고 기도해서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거짓말했다고 낙심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을 따를 때에 불가능의 호수에서 가능의 고기를 낚아 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무슨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 내 뜻, 내 주장, 내 경험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도록 힘써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기도하시든지, 주님의 뜻을 알 때까지 조용한 방에 들어가 성경을 읽든지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 주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우리의 눈에 계산이 안 맞아도 담대하게 순종하는 태도를 보여 보십시오. 그 때 기적의 열림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해 보지 않아도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은 믿음으로 순종하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에 따르면 일주일 내내 밥 먹기도 힘든데 주일날 예배드리기 위해서 일을 쉰다는 것은 사업이 될 리가 없습니다. 지금 현재 봉급을 가지고도 생활비나 교육비도 모자랄 판인데 십일조를 낸다는 것은 전혀 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의지하여’ 담대히 십일조를 바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기적의 역사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플라스틱 회사를 운영하던 스탠리 탐은 회사 일에 너무 바쁘다 보니 자연 주일을 못 지킵니다. 때때로 십일조를 떼어먹습니다. 그러면서 사업을 번창시키고자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번창하기는커녕, 오히려 제품이 팔리지 않고 자금으로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네 번째 도산의 위기를 당해서야 물에 빠졌던 베드로가 주님을 의지하여 구원받던 일을 기억하고 곧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네 사업의 책임자를 내게 맡기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찾아가서 계약서를 작성하기를 “우리 플라스틱 회사의 사장은 하나님이시며, 매 수익금의 51%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니, 십일조도 감당하지 못하는 판에 51%라니 너무나 터무니없습니다. 그러나 스탠리 탐은 매일 새벽 2시간씩 하나님과 회사의 일을 상의했고, 수익금의 51%를 하나님께 드린 결과, 연간 2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매년 24억의 수익금을 올리는 큰 회사가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사업이나 건강, 가족문제의 어려움에 봉착할 때에 내 멋대로 믿사오니 행동하지 마시고 성경 말씀과 기도 중에 주님의 뜻, 주님의 명령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행하므로 불가능의 장소에서 가능의 큰 역사를 만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때로 주님은 불가능의 상황에서 도우신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분은 질문하기를 “왜, 주님은 하필이면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시는가? 얕은 곳으로 가라면 쉽게 순종하지 않겠는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여, 만약 얕은 곳에 던지라 해서 고기를 잡았다면 처음에는 감사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연히 주님이 배 위에서 고기 떼가 오는 것을 보시고 명령하신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처럼 인간은 간사한 것입니다. 어느 분은 분명히 난치병을 하나님이 고쳐주셨는데 처음에는 감사도 하고 간증도 하더니 나중에는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닙니다. “내가 무슨 한약을 먹은 것이 그때 와서 효과를 본 것 같다.“고 하면서 난데없이 어느 한약방의 선전원이 됩니다. 그러다가 재발되어 아무리 기도를 해도 낫지 못하고 그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래서 누가 기도를 받으려고 하면 병원에 가서 진단부터 받으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나은 후에 분명히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깊은 곳으로 가라 하심은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역사 하시려는 주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역사하심에는 우리의 믿음의 그릇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라 하심은 믿는가, 안 믿는가를 보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 역사도, 아무 능력도 행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사람은 약 먹을 것 다 먹으면서 열심히 안수기도 받습니다. 그것은 약으로 고치거나 안수로 고치거나 둘 중의 하나로 고치려는 양다리 걸치는 태도입니다. 물론, 약이나 의술도 다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약이나 의사를 통해서 고치려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약이나 의사의 손길을 통해서 치료하여 주옵소서.”라는 것이 옳은 태도입니다.
 
베드로는 “내가 믿나이다.”라고 신앙고백만 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순종의 행함을 나타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거기에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장님에게 묻습니다. “내가 고쳐줄 줄 믿느냐?” 장님은 큰 소리로 답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주님은 즉시 안수하여 고쳐주지 않으시고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고 명하시기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장님은 난처합니다.
 
‘무슨 장난도 아니고, 이 무슨 짓인가? 장님이 된 것도 억울한데 얼굴에다가 침으로이긴 진흙을 발라 추하게 하고 길거리를 지나가게 하다니’라고 화를 낼만도 한데, 장님은 그런 감정을 이기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을 때에 기적의 눈뜸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오늘도 주님은 불가능의 상황에서 기적의 역사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순종으로 행함으로 강하신 주님의 도우심을 만나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주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는 사명자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담대히 그물을 내린 결과 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 때 베드로와 그 형제들은 엄청난 고기를 낚은 후에 동네잔치를 벌렸습니까? 아니면 고기를 다 팔아서 새 배도 구입했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기적을 만난 다음, 너무나 떨리고 감격하여 주님 앞에 넓죽이 엎드리며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내내 의심하던 죄를 회개했습니다. 또한 자기 같은 죄인은 이런 거룩한 분을 감당할 수 없는 줄 알고 “나를 떠나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겸손한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10절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4:19에서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깊은 데에서 기적을 베푸신 목적이 “네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며 애썼으나 잡지 못했으니, 너희 식구들이 무엇을 먹고살겠는가? 너희를 불쌍히 여겨 기적을 베푸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주님의 목적은 기적을 통해서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전도 동역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11절의 말씀인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기록한 대로 주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위대한 사도가 되어 얼마나 큰 역사를 나타냈습니까? 지금도 로마에 가면 베드로 대성당이 있는 데,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다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배드로의 무덤과 유물들이 귀하게 보존되어 있고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찬 곳이 되고 있습니다. 갈릴리 저 촌구석에서 고기나 잡던 무식한 어부가 예수님이 부르실 때에 무조건 순종함으로 역사상 이렇게 높이 추앙 받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목적이 병을 고쳐주시면서 “그 동안 병중에 얼마나 불행하게 살았느냐? 이제부터는 건강을 줄 터이니 처자식과 함께 떵떵거리며 살아 보거라.” 혹은 물질축복을 주시면서 “그 동안 너는 어릴 때부터 너무 가난하게 살았구나. 이제 물질축복을 줄 터이니 큰 집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하는데 있습니까?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순전히 그런 목적으로 병 고침이나 물질축복을 구하기에 심령이 병든 신자가 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열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으나 병 낫자 마자 다 행복을 찾아 가버리고 말았으나, 오직 사마리아 문둥병자 하나만 감사할 때에 “네가 구원을 받았느니라.”고 하시면서 영적 축복까지 주신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깊은 데서 기적의 역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기도하여 보십시오. “주님, 사업이 너무나 부진하여 도산 위기에 있나이다. 이 사업은 하나님의 사업이오니 크게 일으켜 주옵소서. 주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겠나이다.” 혹은 “주님, 너무나 몸이 병들어서 견딜 수 없나이다. 이 몸을 주님을 위한 도구가 되겠사오니 기적으로 고치어 주옵소서.”라고 해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강한 도우심을 받으려면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대로 순종의 행함을 보이는 자요, 주님의 도구가 되려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로마 한인교회에 집회를 갔다가 이런 간증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 갔더니 몇 백 명이 모이는데 거의가 한국에서 성악을 배우러 온 성악가들이더랍니다. 그래서 전체가 다 성가대원입니다. 얼마나 잘하시는지요. 거기 있는 어떤 성악을 전공하는 한국 여자 분이 실력도 있고 곧 세계를 향하여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애가 된 것이 눈이 쌍꺼풀이 아니고 외꺼풀입니다.
 
그래서 여름방학에 한국에 와서 수술하려고 어머니한테 연락을 해서 한국에 있는 병원하고 연결이 되어서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이 하필 그날 설교에 “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꾸 고치냐? 그대로 살아라. 꼭 그래야 만이 행복한 건 아니다. 그래야 만이 미인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살아라.”라는 설교를 하더랍니다. 그런데 이 분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만 하면 은혜가 감사하다.’고 하면서 수술을 포기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유명한 성악가나 오페라 가수가 되려면 목소리도 좋아야 하지만, 얼굴은 간판이나 다름없으므로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리고 지금은 온통 성형수술이 유행하는 세상인데 쌍꺼풀 수술이야 무슨 대단한 수술이나 됩니까? 그런데 설교 말씀 듣고 이미 정해놓은 수술도 포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자기가 수술하는 것을 모름에도 그날따라 그런 설교를 하신 것은 분명 무슨 뜻이 있는 줄 알고 그 분은 나름대로 감동이 와서 말씀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마침 유럽에서 ‘나비부인’이라는 오페라를 하게 위해 동양인 가수를 찾게 되었답니다. ‘나비부인’의 무대가 일본입니다. 일본에 미국이 주둔할 때 해군 중위 되는 핑커톤이라고 하는 군인하고 나비라고 하는 아가씨가 서로 사랑하는 내용이 줄거리입니다.
 
그러므로 ‘나비부인’의 주인공은 동양인 여자 성악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때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성악가 중에 나비부인 역할을 할 동양인을 찾기 위해서 아시아권에 있는 최고의 솔리스트를 찾고 심사를 했는데 뽑힌 성악가가 놀랍게도 수술 안 한 그 성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심사 위원들이 그 여자가 성악가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동양에서 온 모든 성악가들이 대체로 유럽의 헤어스타일이라든지 얼굴이라든지 다 유럽식으로 꾸미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의 여자 성악가들이 다 성형수술 함으로 쌍꺼풀로 다 되어 있는데 외꺼풀을 찾으니까 이 사람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나비부인’이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둠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여자 성악가는 정말 그날 만약에 쌍꺼풀로 만들었더라면 끝나는 건데, 그 설교시간에 말씀 듣고 하나님 앞에 감동을 받고 말씀대로 순종한 결과 그런 큰 역사를 만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주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주님의 뜻을 발견하시고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의 행함을 나타내십시오. 무엇보다도 주님을 위해 쓰임 받기를 기도하십시오, 그 때 불가능의 상황에서 기적의 큰 역사를 베푸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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