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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서의 탈출
2017년 06월 28일 (수) 10:28:55 정달영 장로 webmaster@cry.or.kr
나는 요사이 이솝우화에 심취되어 있다. 유치원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내용이어서 부담이 없고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어리석음과 약점을 지적하고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어서이다. 이솝은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희랍)에 살던 노예였다. 신분이 비천하여 직설적인 표현으로 세상을 꼬집을 수가 없어 사자, 늑대, 여우, 당나귀 등 동물을 사람처럼 말할 수 있도록 하여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이 동물들의 이야기가 2천년 이상 구전되어 오던 것을 17세기 프랑스의 시인인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에 의해 정리되어 재탄생 되었다. 약 4백여 개의 이야기가 비로서 활자화 되
었다. 이솝의 우화 중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던 여우와 두루미의 만찬초대를 비롯,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등 익숙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우화 중엔 이런 이야기도 있다. ‘개, 수탉, 그리고 여우’란 제목의 이야기이다. 날렵한 사냥개와 널리 내다볼 줄 아는 수탉이 서로 도와가며 친구로 지냈다. 함께 여행을 하던 중 날이 어둡게 되자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잠자리에 들었고 개는 속이 텅 빈 나무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날이 밝아오자 닭은 평소처럼 울었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여우가 군침을 다시며 나
타났다.
 
여우는 나무에 오를 수가 없어 내려오도록 꼬드겼다.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분이 누구신지 꼭 만나보고 싶다”며 내려오도록 유도했다. 닭은 “나무 밑동에서 자는 제 짐꾼 좀 깨워 주시지요. 그를 먼저 만나 주시지요.”하자 여우는 좋아서 나무 밑동을 두들겼다. 이때 개가 뛰어나와 여우를 물어뜯어 산산조각 냈다.
 
또다시 현충일을 보내면서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 후 처음으로 맞게 된 보훈의 달에 위의 우화가 생각이 났다. 우리가 닭이라면 여우는 누구이고 개는 누구일까? 이렇게 저렇게 공상처럼 생각해 보았다. 여우는 북한일 것도 같고 그렇지 않으면 일본 아니 미국, 중국, 러시아 아니면… “우화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을 접으면서도、닭에게 친구인 개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믿음직한 우방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불안의 터널을 빠져 나올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경제가 그렇고 정치는 더 어려워 보인다.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했으나. 코드가 다른 쪽에선 경계를 하고 국회의 인사 청문회는 지난 정권 때와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이 바뀌어야 하는 것인지 장관할 만큼 깨끗한 사람이 없는 것인지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인다.
 
국민들이 우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안보와 문제이고 국론 분열의 치유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년도 현충일을 보내면서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산화한 분들에 대한 예우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 위해 몸 바친 일을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가지고 누가 나라위해 헌신한다는 말인가?
 
물질적 예우는 차지하더라도 기본적인 국기게양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충일엔 반기를 게양해야 하는데 모범을 보여야 할 관공서가 그리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반기는 깃봉에서 태극기의 가로 폭만큼 내려달아야 하는데 아예 게양을 하지 않거나 평소 게양된 데로 놔두거나 평소와 같이 게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직자의 가정에선 과연 게양을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제 힘을 합쳐야할 때이다. 싸우며 지지고 볶더라도 안보문제엔 무서울 정도로 하나가 된다면 북한의 핵 모자는 벗겨진다. 그 모자는 햇볕으로도 바람으로도 벗겨지지 않는다. 하나가 될 수 있다면 핵 모자는 벗겨지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고 불안의 터널을 나올 수 있으리라, 이럴 때일수록 우방이….
 
/홍익교회 장로, 평대원전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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