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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삶
2017년 06월 15일 (목) 12:41:32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벧후1:1-11)
 
오늘은 7월 첫 주로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입니다. 여름의 그 무서운 뙤얕빛과 폭풍우 속에서 모든 식물들이나 나무들은 왕성하게 자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성도들도 여름을 성장의 계절로 삼아야 합니다. 여름을 무조건 쉬는 계절로 삼지 말고 열심히 은혜를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함으로 성장의 계절로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걸음마를 해야 할 때 걷지 못하며 말할 때 말하지 못하고, 또한 몸집은 커졌는데 지혜가 자라지 못하면 얼마나 속이 상합니까?
 
초등학교 3학년 자리가 학교 갔다 오기 바쁘게 “엄마, 젖 쥐”라고 한다든지, 장가를 간 아들놈이 첫날밤을 지내고 나더니 “엄마, 나는 색시가 무서워, 나 엄마하고 잘 테야”라고 한다면 속이 뒤집힐 일이 아니겠습니까? 목회자의 입장에서도 교인들이 말씀을 잘 먹고 쑥쑥 자라서 열심히 충성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때로 주일날 오후에 집사님들이 기도할 때 보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교회 나온 지도 오래되지 않았고 많이 배우지 않은 것 같은데 ‘치유’니, ‘선포’니, ‘공동체’니, ‘하나님 나라 확장’이니 유식한 용어를 섞어가며 뜨겁게 기도할 때는 감동을 받으면서 목회자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집사님은 교회 나온 지가 제법 여러 해가 되었음에도 기도의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빠지거나, 어느 때는 기도를 시키지 말라고 염치 좋게 부탁까지 합니다.
 
그 때에 목회자인 제 마음이 대단히 아픈데 영적 농부이신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 농부들은 씨앗을 심어 놓고 싹이 나지 않거나 싹이 나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너무 속이 상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성장하고 있는 단계에 있습니까? 아니면,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살펴보시고 이번 여름 어찌든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성장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어느 분이 누에를 조사해 보니 일생 네 번 껍데기를 벗는다고 합니다. 알로 지내는 기간이 15일, 애벌레로 25일, 고치를 짓는 기간이 48시간, 번데기로 15일, 나방이로 5일입니다. 어느 원로 목사님은 이 누에의 성장기를 통해서 우리 신자들의 일생과 비유하기를, 알 기간은 모태기간이요, 애벌레 기간은 자연인(自然人) 기간이요, 번데기 기간은 중생의 기간이요, 나방이 기간은 영적으로 날개 치며 올라가는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교회는 나오지만 아직도 세상사람 그대로인 자연인 상태입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중생 받은 상태입니까? 아니면 중생은 받았으나 자라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날개 치며 올라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홍익 성도들은 이번 여름동안 한 단계 더 성장함으로 올라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단계로 올라가는 삶을 삽니까? 바울은 갈5:22-23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 그리고 절제를 말했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성품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신(神)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고 하면서 8가지 열매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올라가야 할 8가지 단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8가지 단계는 무엇입니까?
 
1. 첫 단계는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초는 믿음입니다. 모든 매사를 믿음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1)구원의 믿음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있든 가, 없든 가, 둘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으면 구원의 믿음이 있는 것이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나온 지 10년이 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못했으면 구원의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모든 신앙생활은 바로 이 구원의 믿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옳은 것입니다.
 
(2)생활의 믿음이 있습니다. 사사건건 우리 삶에서 주님을 의존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병 고침을 받으며. 능력을 받는 믿음이 생활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삶을 살려고 해도 우리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령의 강하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엡2:8에 보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니까, 이상하지요. 어제까지 믿지 못하던 것이 믿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행함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고 그 능력을 따라 행할 때에 우리는 올라가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영적으로 올라가는 삶을 살려고 애써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러나 또한 성령께서 강하게 능력을 주심에도 우리가 그 능력을 따라 힘써 행하지 않으면 그 또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더욱 힘써”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믿음을 받고 그 믿음대로 힘써 행할 때에 우리는 올라가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만 가지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의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받고, 생활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은 받으나 천국에 가면 아무 상급, 아무 보화가 없습니다. 이러한 구원을 바울은 ‘부끄러운 구원(고전3:15)’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칭찬과 상급을 받으려면 그 믿음 위에다가 집을 더 지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 둘째 단계는 덕입니다.
어느 성도는 기도도 잘하고 충성이나 헌금에도 앞장을 서는 등, 하나님께는 잘 하는 데, 사람들에게는 덕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람들에게 본을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덕이란 우리들이 보통 말하는 덕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뛰어남’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서 이웃을 배려하는 따듯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자기의 믿음만 믿음이라고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의 믿음을 너무 내세워서 상처를 줍니다.
 
어느 분은 ‘술 담배 먹는 것이 무슨 죄냐? 나는 전혀 믿음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라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술 담배를 먹음으로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것은 덕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는 덕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자기는 우상제물을 먹는 것이 양심에 전혀 거리낌이 없을지라도 자기가 그 제물을 먹는 것을 보고 누가 실족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분은 교회에서 자기 믿음을 너무 고집한 나머지 교회가 파가 갈라지게 하고 심한 경우에는 분열을 시키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바로 선다면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에게도 덕을 나타내야 마땅한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끼리 서로 화목하고 우애하는 것도 기쁨이 됩니다. 부모에게는 잘 하는 데 어려움을 당하는 다른 형제를 외면하는 것은 반쪽자리 효도에 불과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큰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동시에 사람들에게 덕을 나타내려고 힘씀으로 한 단계 더 올라가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세 번째 단계는 지식입니다.
여기서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남녀가 교제할 때에 먼저 그 사람 가정이 어떠하며 학벌, 취미, 재주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먼저 성경을 공부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지식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 남녀는 지식으로만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만나서 교제함으로 그의 성격적인 장점과 단점, 생활 태도를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 족하지 않고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그 분에게 내 사정을 아뢰기도 하고 도움도 요청하면서 체험적으로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는 믿음도 좋고 덕도 있지만,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잘 모르기에 나중에는 이단에 빠지기도 하고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노라 한 노릇이 오히려 예수님의 뜻과는 반대가 되는 일을 저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4. 네 번째 단계는 절제입니다.
이제 믿음도, 덕도, 지식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이제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절제입니다. 절제란 영어로는 ‘셀프 컨트롤(self-control)'입니다.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제일 어려운 것이 자기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보다 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좋지 않은 말을 안 하려고 혀를 물고 있어도 그만 심한 말이 나와서 남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성질을 한번만 참으면 될 것을 욱한 성격을 참지 못하다가 결국 부부싸움이 벌어져서 나중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싸움이 벌어져 ‘사니, 안사니’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자존심 때문에 가방을 싸들고 나와 보니 아무도 반겨해 주는 사람이 없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어느 날 퇴근하다 보니 술집 옆을 지나갑니다. 꾹 참고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딱 한잔만 하고 간다는 노릇이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음으로 인사불성 꼴이 됩니다.
 
결국 옆 사람과 시비가 붙어서 싸웠는데 나중에 치료비가 엄청나게 나오고 얼굴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아이들 앞이나 직장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교회에서도 절제하지 못함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고 나니 얼마나 기쁜지,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고 전도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만큼 지나고 보니 교만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자기는 열심히 대부분의 예배에 참석하고 새벽기도도 하고 제반 일에 충성 봉사하는데, 교회 중직들은 보니 잠자는 것 같아 분통이 터집니다. “아니,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은 왜 기도를 안 합니까? 건축헌금을 하는 것 보니 너무 한심합니다.”라고 떠들어댑니다. 마음을 절제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타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교만한 마음은 마귀가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런 마음이 일어나거든 어찌든지 절제하십시오. 절제가 안 되거든, 절제의 열매, 절제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5. 다섯 번째 단계는 인내입니다.
인내는 참는 것입니다. 참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영어로는 ‘페이션스(petience)'로 수동적으로 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인내는 적극적인 인내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퍼서버랜스(perseverance)'입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승리의 골인 점을 향해 달리면서 참는 것이요, 고시공부 하는 학생이 먼 훗날 변호사나 검사가 되어 일하는 꿈을 가지고 먹을 것, 입을 것, 놀 것을 참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인내를 가진 자가 결국 승리하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은 사업을 하다가 고비를 만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참고 견딘 결과 다시 상승세를 탈 때에 손해를 보았던 것을 다 회복하고도 엄청난 이익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분은 공부나 사업을 하다가 인내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를 잘 합니다. 그런 사람의 삶은 실패로 얼룩집니다.
 
어느 목사님은 유도 2단인데 미국 이민 와서 목회할 때 어느 제직이 너무나 속을 썩입니다. 어느 날은 너무 노골적으로 목사님을 비난하면서 반대합니다. 그 목사님은 욱하는 성질에 제직회 하다 말고 “너 이리 나와”라고 한 다음, 밖에 나가서 손을 봐주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후련하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그의 목회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 눈을 딱 감고 한번만 참았더라면 모든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 참으로 훌륭하구나.”라고 존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참지 못함으로 목회가 실패로 끝나고 만 것입니다. 한번은 어느 후배가 저에게 “목사님은 어떻게 한 교회에서 30년 이상을 장기 목회 하셨습니까? 저는 지금 5년째인데도 견디기 힘듭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하기를 “대부분의 교회 문제가 주일날 발생합니다. 제직회나 당회에서 의논 중에 누가 지독하게 반대할 때 목회자들은 못 견디어 합니다.”
 
“자기는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결정한 문제를 너무 쉽게 반대하면, 그 문제보다는 자기를 반대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화가 납니다. 그 때 무조건 꾹 참고 인내하면, 다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해결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때는 지독하게 반대하던 분이 집에서 전화로 사과를 해오는 경우도 있음으로 문제가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일날 제직회나 당회에서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서 지나치게 말다툼으로 끝난다면, 대부분의 교인들이 목회자의 인격에 결함을 느끼므로 그 때부터 그의 설교조차도 감동을 주기가 힘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는 자가 승리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정 못 참을 때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참으십시오, 그 때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6. 여섯 번째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으로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누워도 하나님이요, 일어나도 하나님, 걸어가도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유행가 가사 대로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이라는 말대로 앉으나 서나 주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자의 모습을 경건한 자요, 주님에게 속한 성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분은 돈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서 기도를 해도 가장 중요한 제목이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느 분은 오직 자식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말끝마다 자식 자랑 뿐이요, 남편에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언제인가 신문에 보니까, 강남구 도곡동 모 오피스텔에서 사업을 하는 36세 신 모씨가 넥타이로 목을 맸습니다. 그는 지난해 아내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두 남매를 데리고 캐나다로 조기 유학갔습니다. 남편은 너무나 외로워하다가 우연히 만난 여성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아내는 간통죄로 신씨를 고소했고 결국 지난 달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자녀의 학비를 대기도 빠듯했고 직원 월급 또한 수개월 밀린 데다 어머니가 쓰러지자 죄책감으로 사무실에서 목을 맸습니다. 신씨가 남긴 유서에는 "여보 사랑해요. 잘 살아요. 미안해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식 교육이 중요해도 36세 젊은 남편을 두고 떨어져 산다는 것은 자식이 우상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출석한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재물이나 성공, 세상의 향락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세상에 속한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도란 구별된 자란 말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 시간,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 찬 세상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주님의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살도록 경건의 연습에 힘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 일곱 번째 단계는 형제 우애입니다.
형제 우애는 마음으로나 입술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형제가 고난 중에 있을 때 돌아보는 사랑입니다. 형제가 주릴 때에,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어 유숙할 곳이 없을 때에, 헐벗었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는 것이 성숙한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남들을 돌볼 줄 모릅니다. 옆에 있는 아이가 내가 가진 과자를 먹고 싶다고 울어도 주지 않습니다.
 
젊은 엄마가 죽어 장례식을 치루는 날에도 나만 배가 부르면 장난을 치면서 놉니다. 어느 성도는 자기는 축복 받은 것이 너무 많다고 늘 간증하면서도 불우한 자를 돌보는 데는 인색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은 불우한 자에게 나누어 준 것은 곧 자기에게 대접한 것으로 인정하신다는 말씀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도와주시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8. 여덟 번째 단계는 사랑을 더하는 것입니다.
형제 우애란 헬라어로 ‘펠라델피아’로 '인간적인 사랑'을 말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아카페적인 사랑’, ‘신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원수까지 용서하시는 사랑, 곧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누구나 형제나 불우한 자는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닮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지금까지 믿음의 터 위에다가 덕의 기둥, 지식과 절제의 기둥, 인내와 형제우애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 위에 아카페적 사랑으로 지붕을 덮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습니다. 모든 허물을 감쌉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성장의 계절 여름을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는 믿음에서 덕의 단계로, 덕에서 지식으로, 지식에서 절제의 단계로, 절제에서 인내로, 인내에서 형제우애로, 마침내 형제우애에서 아카페적인 사랑의 단계, 즉 예수님을 닮는 단계를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 여름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고 그 능력을 따라 더욱 힘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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