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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날
2017년 05월 27일 (토) 11:40:10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눅6:1-11)
 
때로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문제는 성수주일 문제입니다. 특히 주일날 각 기관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냐가 늘 문제의 초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론이 쉽게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적인 견해차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은 주일날은 일체 돈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 어느 교파에서는 토요일에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주일날에는 음식을 요리하지 않습니다.
 
주일날 오락이나 경기하는 것도 금했고 심지어는 주일날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까지 금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그러한 신앙 자세는 너무 고루한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순수해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점점 바뀌어져서 옛날 농경시대(農耕時代)에 가졌던 단순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이제는 교회를 오기 위해서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야합니다. 교회에서도 원거리 교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혹은 염가로 판매도 합니다.
 
자, 그러면 이러한 시대 속에서 어떻게 성수주일을 바르게 지킬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안식일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몇 가지로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의 일행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자들이 너무나 배가 고팠던지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트집 잡으려고 기회를 엿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따집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함에도 보고만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이 따진 것은 제자들이 남의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 곧 도둑질한 것을 트집 잡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구약 율법에는 나그네가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이삭을 베지 않는 한, 밀 이삭을 따서 먹는 것은 허용이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안식일 날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트집 잡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 중 제4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여기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계명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분량의 안식일 세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니 어떤 것이 일인가 아닌가에 대해 자세한 규정을 만들다 보니 무려 1,500가지의 세칙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치밀하게 만든 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안식일에는 절대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나무를 운반하고 불을 때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한 탓입니다. 또는 소가 웅덩이에 빠지면 끌어낼 수 있으나 사람이 빠지면 거기 그대로 처박혀 있어야 했습니다. 안식일 법이 얼마나 치밀한지, 안식일에는 밀가루 반죽하지 말 것, 빨래하지 말 것, 소금치지 말 것, 바늘로 두 번 깁지 말 것, 불을 켜지 말 것,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물건을 옮기지 말 것 등, 끝도 한도 없습니다.
 
우스운 것은 벼룩이 달라붙어 물어뜯어도 놓아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안식일 날 벼룩을 잡아 죽이면 안식일 날 사냥하는 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이러한 입장에서 본문을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서 비벼 먹었다는 것은 안식일 법을 어긴 죄가 되는데 밀 이삭을 잘랐다는 것은 수확한 일이요, 손으로 비볐다는 것은 타작하는 것이요, 껍질을 불어 날렸다는 것은 키질하는 일이요, 그것을 먹었다는 것은 안식일에 음식을 장만한 일이 되므로 안식일에 대한 네 가지 법을 어긴 죄가 된다는 지적입니다.
 
유대인들이 처음에 안식일 법을 만들 때, 목적은 하나님이 명하신 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 와서 그 법이 올무가 되어 안식일 날은 꼼짝을 못하는 날이 되고만 것입니다. 사실, 1,500가지 안식일 법을 지키려면 손을 꽁꽁 묶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안식일 날이 즐거운 날이 아니라 지겨운 날이요, 더 나가서는 하나님조차도 지겨운 존재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 날이 끝나는 날은 거리에 인파가 넘치면서 축제의 기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자, 이러한 터무니없는 안식일 법으로 옭아매려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어떠한 태도를 보이셨습니까? 먼저, 밀 이삭을 비벼 먹었다는 트집에 대해서는 다윗과 그 동료들이 시장했을 때에 성막에 있는 진설병을 먹은 기록인 삼상21:1-6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 진설병은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열 두 개의 밀을 열 한 번이나 채로 치어서 만든 떡을 드린 것으로,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일행이 너무 배고파서 굶어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굶어 죽는 것보다 그 떡을 먹고사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줄 믿었기에 과감히 그 거룩한 떡을 취하여 먹은 것입니다. 또는 6-11절에 나오는 오른 손이 마른 사람을 안식일 날 고쳐주실 때 트집 잡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일성수에 대한 세 가지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안식일과 주일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원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유대인의 하루는 해가 지는 시간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가 안식일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너무 거룩히 여기어 바로 안식일이 하나님보다 더 귀한 날이 되어 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즉, 안식일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 증거로 안식일 법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범죄자로 만들었을 정도인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인데 거꾸로 안식일이 예수님을 정죄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안식일을 폐하시고 새 날을 주셨는데, 그 날이 바로 일요일을 주일로 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금요일 날 돌아가시고 안식일 날 무덤에 계시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날이 바로 주일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그 때부터 토요일이 아니고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기 시작했고, 안식일이라는 말 대신에 주일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역사는 일주일 중의 첫째 날이 주일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1)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에 다섯 번 나타나셨는데 그 날이 전부 일주일의 첫 날인 주일이었습니다. (2)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바로 일주일의 첫 날인 주일이었고, (3)성찬식을 거행할 때도 언제나 주일날 모였으며, (5)밧모 섬에서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안식일이 시작되는 날 죽으셨다는 것은 구약의 안식일은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의미요, 안식일 다음날 부활하심으로 새 날, 새 계명을 주셨다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이라는 말 대신에 주일이라고 말해야 옳은 줄 아시기 바랍니다.
 
2. 주일은 주님의 날이라는 점입니다.
5절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했습니다. 주일은 우리가 우리를 위해 등산하고 여행하는 등, 자신을 위한 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날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주일은 주님을 위해 일하는 날입니다. 6일은 우리를 위해 살았으나 주일은 주님을 위한 날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은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까지 행군하는 동안 언제나 중심이 법궤가 되었습니다. 행군할 때도 법궤가 중심이 되어 북쪽에 세 지파, 동쪽에 세 지파, 서쪽에 세 지파, 남쪽에 세 지파가 포진되었습니다. 어느 지역에 유숙하는 때도 법궤가 있는 성막을 중심으로 모든 지파가 천막을 쳤습니다.
 
그러한 성막 중심한 생활은 후에는 성전 중심한 생활로 발전하였습니다. 비록 포로가 되어 먼 타국에 있을지라도 다니엘처럼 성전을 향해 기도를 드렸고 안식일이면 모두 법궤가 있는 성막이나 성전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한 정신이 서구 기독교에까지 영향을 주어 마을 중심에 교회당이 세워졌고 모든 집들을 건축할 때에 창들이 교회를 향해 짓도록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런 좋은 정신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의 삶도 언제나 하나님의 전인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주일 내내 비록 흩어져 산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교회 중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슨 좋은 소식이나 슬픈 소식이나 먼저 교회에 알리고 어디 멀리 출타하거나 무슨 사업이나 집을 신축할 때도 교회를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인들의 모든 삶의 중심이 교회가 되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즐거움과 슬픔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중직이라고 하면서 주일날 아무 연락 없이 교회를 빠지고 멀리 여행을 하는 모습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집에서 가정예배나 기도할 때도 교회를 향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부터라도 어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할 때도 우리 교회 쪽을 바라보고 합니다. 심지어 당회실에 있는 기도자리에서 기도할 때도 강대상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 기도합니다. 그런 자세가 우리의 삶을 주님 중심의 삶으로 만들어 주는 귀한 자세가 됩니다. 특별히 우리의 삶이 주님 중심의 삶을 사는 데 중요한 것은 주일은 주님의 날로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날인 주일에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1)교회에 참석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지정하신 주의 날에 예배를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생각하기를 “나는 기독교인들이 어디서, 어느 때든지 예배를 드리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할지 모릅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새벽예배나 가정예배, 혹은 수시로 예배드리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예배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주일날, 하나님이 각자에게 지정하신 각자의 교회당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 절대로 빠지지 마십시오. 그런데 지난 4월, 5월은 많은 행사 때문인지 집회 참석수가 뚝 떨어져서 많은 성도들이 주일 오전예배조차 빠지고 있습니다. 어느 분들은 주일 아침은 물론이고 주일 오후, 수요일, 금요일. 더 나가서는 새벽기도회나 밤9시기도회까지 열심히 참석하는데 제직이라고 하면서 주일 오후예배는 물론이고 주일 오전예배까지 빠진다면 과연 어떻게 신앙을 유지할지 목회자로서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말하기를, 주일 한번 빠지면 ‘이러다가 벌 받는 것이 아닐까?’라는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두 번째 빠지면 죄의식이 반감(半減)되며, 한 달 간 빠지면 빠질 만 해지고 석 달 빠지면 이제 주일날 교회 가지 않아도 거의 죄의식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만큼 깊이 병들어 가는 증거입니다. 아닙니다.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분들은 그런 상태에 이를지라도 하나님은 참으시지만, 어느 정도 믿음의 체험이 있는 성도들이 그런 상태에 이르면 기다리시던 주님이 매를 드실 때가 온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기 자녀가 점점 세상길을 향해 나가는 데 사랑의 채찍을 드시지 않겠습니까? 아니 됩니다. 각자는 깨어서 자기 신앙을 지키면서 정진해야 합니다. 주일 오전예배를 하한선으로 하여 어찌든지 오후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까지 참석하는 열심히 발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마다 신령과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교사나 찬양대, 안내나 봉사를 한다고 예배시간에도 늦게 들어오거나 들락거리므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2)주일은 주님을 위해 일하는 날입니다.
9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하셨습니다. 주일은 안식일이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히 쉬기만 하는 날이 아닙니다. 주일은 내 일은 쉬고, 교사나 찬양대, 안내나 중보기도, 식당이나 주차장 봉사, 혹은 전도나 심방 등,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날입니다. 주일날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기 전 이것이 주님을 위한 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일하는 것이 옳습니다. 각 기관의 물건판매도 이것이 주님을 위한 일인가 아닌가를 주님께 묻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드리러 오시는 분들에게 정문에서 물건을 강매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예배가 우선이요, 그 다음이 주님의 일입니다.
 
(3)주일은 주님의 자녀들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행2:42에 보면 초대교회의 모습이 나오는데 공동생활을 하면서 모이기에 힘쓰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고 찬미하기를 전혀 힘썼고, 서로 떡을 떼며 교제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모여서 서로 교제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들도 무슨 생신이나 칠순 잔치에 자녀들끼리 모여서 부모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자녀들끼리 서로 웃고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볼 때 대단히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주일날 자기에게 예배드리고 자기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시는 것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의 자녀인 성도들끼리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교제하는 모습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성도들은 예배가 끝나기 바쁘게 돌아가서 세상 친구들과 교제하기를 더 기뻐합니다. 아닙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지정하신 날인 주일에 우리에게 지정하신 교회당에 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봉사할 뿐 아니라 성도 간에 깊은 교제를 나누는 거룩한 날로 보내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주일은 복을 주시는 날이라는 점입니다.
출20:11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는 날입니다. 무슨 복입니까?
(1)주일은 영적인 복을 주시는 날입니다.
신8:3에 말씀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은 육신만 안식하는 날이 아니고 영적으로도 안식하면서 새 힘을 보충 받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을 때 영적인 능력을 공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 간에 깊은 교제를 통해서 사랑의 능력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2)주일은 육적인 건강의 복을 받는 날입니다.
우리 인간과 동물은 6일 일하고 하루는 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노동을 하고 쉬지 않으면 마침내 건강의 악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영국 로열 아카데미에서 사람이 노동을 하다가 며칠 만에 한번 쉬는 것이 좋은가를 여러 각도에서 조사하고 연구해서 데이터를 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7일 만에 한번 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는 역사상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서 입증된 사실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무신론 혁명인데, 그 혁명 주체들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7일 만에 쉬던 것을 10일 만에 한 번씩 쉬도록 해보니 후에 전 국가적으로 40%나 결손을 보았고, 소련 공산혁명 후 레닌은 7일 만에 휴무하던 것을 8일 만에 한 번씩 쉬도록 했더니 나중에 보니 전 국가적인 생산지수가 30%나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5일을 일하고 6일째 되는 날 쉬게 해 보았더니 이상하게도 생산성이 도무지 향상되지 않음으로, 다시 7일 만에 하루를 쉬게 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장수하는 민족은 유대인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철저히 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일 날 일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건강의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일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를 무시함으로 건강의 악화를 만날 수 있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주일 오후 예배드리고 집에 가서 식구들과 편히 안식하는 것을 의미가 있습니다.
 
(3)주일은 물질로도 복을 받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던 40년 동안 한 가지 놀라운 교훈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나의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매일같이 양식으로 만나를 주셨는데 그들이 욕심을 부려서 일용할 양식 이상으로 만나를 모으면 이상하게도 썩고야 맙니다. 그런데 안식일 전날에는 그들이 필요한 것보다 두 배를 모으라 했습니다. 그 때는 놀랍게도 모아둔 만나가 썩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 날 편히 쉬면서 저장한 만나를 먹을 수 있도록 하시려는 깊은 배려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주일을 지키는 자에게는 건강 뿐 아니라 물질의 복도 주신다는 교훈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복을 무시하고 주일날에도 예배를 드리지 않고 돈을 벌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일찍이 주일을 무시한 자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면치 못했습니다. 나폴레옹은 1813년 10월 17일 주일에 영국을 침공했다가 웰링톤 장군에서 패배했고, 일본 천황은 1941년 12월 8일 주일에 미국을 침공했다가 원폭(原爆)으로 망했으며,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주일에 남한을 침공했다가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주일을 귀하게 여기는 자들에게는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일제 때 평남 중화에 김천덕 장로님이 계셨는데 그는 장사하는 사람으로 이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주일에도 밖으로는 문을 잠그고 안에서는 물건을 팔았으며, 또 명절 대목장에는 문을 열고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장로가 된 다음부터는 문을 닫고 물건을 팔지 않았고 대목 때에도 주일날에는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일날 장사할 때와 않았을 때의 매상고를 비교 조사해 보니 오히려 주일날 장사하지 않을 때가 4활이나 더 많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니 우리 모두는 주일을 주님의 날로 바로 알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날, 성도 간에 깊은 교제를 나누는 날로 지키심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적인 복, 육적인 건강의 복, 물질의 복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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