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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의심
2017년 05월 27일 (토) 09:36:30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약1:5-8)
 
믿음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의심에도 큰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에는 하나님이 역사 하시고 의심에는 사탄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자기의 부족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했습니다. 의심하는 자의 삶에는 풍랑이 심합니다. 때로 그 요동하는 물결에 빠지어 허우적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베드로의 사건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병이적의 기적 사건 이후에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은 밤중에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가끔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이 갈릴리 바다의 더운 바람과 만나면서 ‘유라굴라’라는 큰 풍랑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풍랑이 너무 심하므로 제자들은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이를 안타깝게 보시던 예수님은 밤4경(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3시부터 6시경)에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그러자 이제 죽음의 큰 두려움에 싸여서 아우성치던 제자들은, 갑자기 하얀 물체가 다가오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어느 성급한 제자가 “유령이라”고 하자 모두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때 베드로의 순발력은 대단합니다. 갑자기 예수님께 외치기를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조금도 의심치 않고 배에서 내려 물위를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풍랑 위를 걷는 기적, 너무나 신기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에게만 향했던 눈을 돌려서 바람과 풍랑을 봅니다.
 
갑자기 의심이 생기면서 두려워졌습니다. 그 순간,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치자,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아 올리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에 귀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갈 때는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바다와 풍랑을 보고 두려워 의심할 때에는 바다에 빠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믿음과 의심의 차이는 이처럼 판이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약속을 믿고 나가면 우리를 위협하던 온갖 문제의 풍랑 위로 거니는 기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문제의 풍랑에 놀라 두려워하거나 의심하면 마침내 그 문제의 풍랑에 빠져 큰 괴로움을 당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처럼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무슨 만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어떻게 믿음을 가질 때는 바다 위를 거닐 수 있고 의심할 때는 빠질 수 있느냐? 그것은 신화적(神話的)인 시대에 쓰여 진 기록에 불과하다’고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성경적인 사실이 전부 허위가 아니라 더 진실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령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과학적인 예를 든다면 전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통신시대로,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모든 곳에 전파가 흐르고 있습니다. 라디오나 TV의 모든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전파, 혹은 각종 핸드폰 등, 엄청난 전파가 이 공간 안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더욱이나 요즈음은 리모컨 만능시대입니다. 리모컨으로 TV, 에어컨, 자동차, 주차장의 문을 열게 하는 전파의 능력을 만끽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간 안에 흐르는 전파를 이용하려면 사이클이 맞아야 합니다. 가령 TV를 켜고 9번 사이클에 맞추면 KBS에서 보내는 뉴스나 음악, 드라마나 스포츠들이 화면에 나타납니다. 동시에 이 방안에는 영적인 전파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파와 사탄의 전파가 바로 그것인데, 그 영파(靈波)들은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전파를 받을 수 있는 사이클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약속의 말씀들을 믿을 때입니다. 반대로 의심이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사탄의 전파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비슷한 것이 많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탓인지 동물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동물이라도 영적인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나 예배를 드리는 동물은 전혀 없습니다. 인간 속에는 최성능의 레이더 전파발사 능력도 있고, 최성능의 컴퓨터 능력도 있습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최성능의 TV의 능력도 있어서 정신적인 것은 물론이고 영적인 전파도 흡인하는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 속에서는 거대한 용량의 잠재의식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는 인간에게는 150억 정도의 세포가 있는데 그 중에 136억 5천 300만개가 잠재의식에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잠재의식이라는 기관은 너무나 신비할 정도로 놀라운 기관입니다.
 
로렌츠 박사는 새를 시험하였습니다. 새끼 새가 태어날 때 제일 먼저 눈으로 보게 된 대상을 늘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기 어미인 줄 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진짜 어미 새가 나타나도 따르지 않습니다. 다른 새들도 조사해 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더랍니다. 이는 잠재의식에 녹화된 현상입니다. 한낱 미물인 새도 이러한 신비한 기능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인간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부모, 친구나 학교에서 영향 받은 모든 것을 잠재의식에 입력 저장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그의 성격, 그의 태도, 삶의 질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엄마들은 어린 아기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때라도 젖을 먹이면서, 혹은 잠을 재우면서 성경을 열심히 읽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일생 신앙의 큰 영향을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잠재의식이라는 기관에 영향을 주면 그에 따라 많은 능력을 나타냅니다. 마치 우리가 똑같은 TV라도 사이클을 맞춤에 따라 화면이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당회실에 있는 케이불 TV를 예를 들면, 36번을 맞추면 기독교TV가 나오면서 설교도 나오고 찬송가도 나오면서 거룩한 화면이 됩니다. 그러나 사이클을 어느 채널로 맞추었더니 성인용 방송이 나오면서 음란한 화면으로 바뀝니다. 똑같은 TV 화면인데도 사이클을 맞춤에 따라 화면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는 하나님의 전파가 우리 잠재의식에 작용하면서 우리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나타나 회개를 통해서 변화가 나타나고 기도응답이나 병의 치유하심이 나타나게 하시고 위험도 피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바라보면 근심과 두려움에만 매일 때는 사탄이 우리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주어 우리 삶의 현장을 어두운 일로 가득 차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전파발사 능력이 있는데, 브리스톨이라는 분은 인간이 어떤 신념을 품으면 사념파(思念波)라는 능력이 밖으로 발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미워하면 미움의 전파가 발사되고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면 사랑의 전파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전파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氣)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인가 제가 중국에 갔을 때 그 유명한 소림사(少林寺)를 방문하여 무술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기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해서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무술인은 기를 불어넣고 뾰족한 네 개의 창끝 위에 올라가 엎드려 있어도 전혀 다친 곳이 없습니다. 어떤 무술인은 바늘 끝에 기를 넣고 두꺼운 유리창을 찌르니 구멍이 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능력도 이처럼 대단하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받아 다른 이에게 그 능력을 발산한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뻐하시는 줄 믿으시고. 그만 바라보고 그의 약속을 믿음으로 문제의 풍랑 위를 걸어가는 능력의 삶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사는 자가 되어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해야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1.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자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중심에서 내가 왕 노릇했습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자랑, 내 이익에만 치우쳤습니다.
 
그러나 나를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이제 예수님의 것,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이 믿음의 기초요,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과 의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의심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의심하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한 가지 마음을 품은 사람, 주님 중심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은 정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물질 등, 두 주인을 섬기는 마음입니다.
 
채필근 목사님이 쓰신 「재미난 이야기 철학」이라는 책에는 의심에 대해서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과거 평양신학교 교수로 재직하실 때 한번은 고향에 쓸 일이 있어 35원(당시 쌀 두 섬 값)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가 길가 어느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다른 손님이 들어서 할 수 없이 합방하게 되었습니다. 미쳐 인사할 시간도 없는 채 잠을 자는데 자꾸 그 손님이 수상하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래서 벽에 걸었던 양복을 벗겨서 위를 덮고 시계는 풀어서 돈을 넣은 주머니와 함께 내복 속에 감추었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저쪽이 부스럭거리면 이쪽도 안자고 있다는 표시로 캠하고 헛기침하고, 저쪽도 이쪽이 의심이 되는지. 헛기침하더랍니다. 그런 식으로 서로 의심하다 보니 그날 밤 한 잠도 못 잤다고 합니다. 새벽이 되어서 문창이 환하게 밝아 오기 때문에 목침에 엎디어 아침 기도를 올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는 데 그 손님은 채 목사님의 거동을 엿보고 있다가 “손님, 예수를 믿으시는가요?”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예”했더니 “나도 예수님을 믿어요. 이제라도 서로 알고 지냅시다.”라고 하더랍니다. 알고 보았더니 그 분은 어느 교회 영수님, 요즈음으로 말하면 안수집사 직책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 분도 장으로 소를 사러 가노라고 돈 500원을 가지고 있었기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서로 기가 막혀 웃었겠습니까? 그 때 채 목사님이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지 못하고 한쪽은 목사요, 한쪽은 영수이면서도 돈 몇 푼 때문에 서로 의심하다 날밤을 새웠으니, 자기의 믿음 없음에 많은 반성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주님 중심의 마음, 주님만 의지하는 한 가지 마음만 품어야 합니다. 탕자가 지금까지는 자기중심과 계획, 자기 자랑과 욕망만을 위해 살아왔으나 실패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아버지의 아들도 포기하고 아버지의 종의 삶, 다시 말하면 이제부터는 철저히 아버지 중심한 삶을 살기로 결단할 때, 그 때부터 큰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저를 목욕시키고 좋은 옷, 좋은 가락지, 좋은 음식으로 환대해 주었고, 모든 종들 앞에서 아버지의 자녀로 다시 높이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능력을 통해서 실패와 빈궁의 삶에서 성공과 풍족한 삶으로, 내려가는 삶에서 올라가는 삶으로 승격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 시간 자기중심적인 삶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주로 고백하면서 그만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능력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성경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기도로 요청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을 주셨는데 그것이 구약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기를 구주로 영접한 새 백성, 성도들에게 새 약속을 주셨는데 그것이 신약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요14장에서 말씀하시기를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신약 안에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와 도움을 요청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도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후히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자세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여, 어떠한 어려운 문제가 여러분들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약속인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요청하십시오.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기쁨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되십니다.
 
일본 야마구치 고등상업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신앙이 없는 기독교 반대자였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인들만 보면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박해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집으로 가는 도중 오카야마 고아원의 이시쥬지 선생님을 방문했습니다. 때마침 이시쥬지 선생님은 고아원의 재정상의 궁핍을 하나님께 호소하고자 산에 올라가고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선생님의 부인으로부터 들은 그는 궁금한 나머지 선생님의 뒤를 쫓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산으로 올랐을 때, 선생님은 심혈을 기우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200명의 형제자매가 굶주리고 있습니다. 원컨대 큰 능력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이러한 기도를 듣고 있던 그는 심히 감동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그는 선생님을 따라 고아원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 부인이 한 통의 편지를 건네주면서 “방금 이 편지가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편지를 개봉해 보니 익명의 사람이 일금 30엔을 부쳐온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시쥬지 선생님은 그 학생을 향해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께서 이처럼 살아 계셔서 일하시며, 열심 있는 기도를 응답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깊은 감동을 받은 그 학생은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니 후히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 기도하심으로 여러분들의 문제가 해결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모든 결과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라”고 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담대히 순종으로 나아갑니다. 풍랑이 사납게 이는 바다를 향해 순종의 발을 내딛습니다. 잘못하면 물에 빠져 큰 망신, 큰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결과까지 다 주님께 맡기고 담대히 말씀의 약속만 붙잡고 순종의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 때 큰 능력이 나타나 풍랑 위로 성큼성큼 걷는 기적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칼빈이 저술한 「기독교강요」를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은 말씀에 대한 순종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의 확신에서 시작하여 순종의 행함으로 이어질 때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라는 영화를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산 어느 바위 곁에서 와서 회의심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고민하면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내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 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독자를 바치라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또한 다음 사람의 피를 요구하는 것은 이방신에게는 있어도 하나님의 법에는 없는데 아들의 피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명하시니 내가 순종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네 믿음의 순종이 크도다”라고 인정하시고 약속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계산을 다 버리고 오직 말씀대로만 믿음의 순종을 나타날 때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강하게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도무지 큰 손해가 예상됨으로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주일성수합니다. 어느 때는 십일조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식구들이 굶는 결과가 있을지라도, 말씀대로 순종하고 십일조 합니다. 어느 때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서 도무지 용서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무어라고 하든지 간에 용서의 손길을 내밉니다. 그 때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큰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1941년 8월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한상동 목사님이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입니다. 심한 고문과 감옥의 나쁜 환경으로 한 목사님은 폐병이 다시 도져 그의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고 죽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몸의 고달픔과 괴로움을 느끼며 몸부림치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잠결에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목사!” “예” 한 목사님은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기도하라” 한 목사님은 가누기 힘든 몸으로 밤늦게까지 기도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3일째 밤에는 기도 후 다 맡기고 잤습니다. 한 목사님은 꿈에 보니 파란 잔디밭이 끝없이 펼쳐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잔디밭에 서 있었습니다. 웃옷을 벗은 그 몸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고 팔뚝에 힘이 솟았습니다. 한 목사님은 눈을 뜨고 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건강을 다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후 몸에 피로가 없어지고 오후마다 오르던 미열도 없어졌습니다. 그의 병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깨끗이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무슨 문제, 무슨 풍랑을 만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고 기도로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결과는 다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십시오. 그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큰 능력, 큰 열림을 베풀어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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