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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행복한 삶
2017년 05월 27일 (토) 08:54:49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창26:1-11)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지난주에는 이삭의 부모공경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오늘은 이삭의 부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입니다. 그 가정이 훌륭한 부모나 자녀가 있을지라도, 혹은 호화주택에 살거나 풍부한 재산이 있을지라도 부부가 불화 하면 온 가정은 불행의 기운으로 가득 찹니다. 반대로 부부가 화목하면, 그 가정에 노부모 중 망령이 든 분이 계시거나 정신박약아가 있더라도 그 가정은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는 가정위기의 시대에 우리 부부들은 화목함으로 가정을 잘 지켜 나가야 합니다. 지금 미국은 이혼한 가정이 이혼하지 않은 가정보다 더 앞서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미국의 경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이혼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젊은 부부들 중의 3분지 1이 이혼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 이혼율은 더 가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을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2003년도 「월간목회」4월호에서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부부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마침내 큰 소리가 나고 주먹다짐까지 일어났습니다. 분을 참지 못한 아내가 방안에 불을 질렀습니다. 열을 받은 아들이 20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이에 절망에 빠진 어머니도 뒤따라 베란다에서 몸을 날렸습니다.
 
소화기로 불을 끄던 아버지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20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세 사람이 모두 죽지 않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아버지는 제비족이요, 어머니는 날라리요,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우수개 소리에 불과하지만, 너나없이 참을성이 점점 사라짐으로 오늘 많은 부부들이 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혼이 부부 문제의 해결책입니까? 아닙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가정문제 연구센터」가 최근 10년간 60쌍의 이혼부부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 중 90%가 “이혼한 결과 더욱 불행해졌다“고 고백하더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들은 어찌든지 부부관계가 튼튼하도록 서로 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 부모들도 자녀들의 부부관계가 행복하기 위해서 적극 도와야 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 부부가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부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 가지 원리를 배우는 데 있습니다.
1. 부부 행복의 원리는 결혼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데 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결혼하기 때문에 부부간에 문제가 생길 때에 극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결혼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피차 돕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제도를 만드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창2:18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남자를 돕는 배필로 여성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배필’이란 영어로 ‘help-meet'인데 돕기 위해 만난다는 뜻입니다. 반쪽 인생 아담과 또 하나의 반쪽 인생 이브가 만나 한 몸을 이룰 때에 완성된 인간이 되었고, 그 때서야 하나님께서 “심히 좋았더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결혼 후에 둘이 아니요, 하나입니다. 한 몸이 되어 서로 부족을 도우며 살아가야 그 삶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가지는 큰 착각은 완전히 남편, 완전한 아내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기대했다가 많은 결함이 발견되면 속았다고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서로 할퀴기 시작하고 마침내 서로 상처를 받고 헤어지는 경우까지 만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100점짜리 남편감이나 아내감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 결함도 없는 그런 배우자는 좋지 않은 짝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전혀 실수나 결함이 없는 완전무결한 자라면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앞에서 내 결점, 내 실수가 들어 날까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결국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부간에 여러 가지 결함을 주신 것은 서로 그 결함을 메워주고 씻어주고 덮어주다 보면 깊은 정이 들면서 결국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 올림픽 때 스타디움의 확장 공사를 위해 주위에 있는 몇 채의 집을 헐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다가 도마뱀 한 마리가 꼬리에 못이 박힌 채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살펴보니 이 도마뱀은 3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와 물을 계속하여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년간을 먹이와 물을 날라다 준 또 다른 도마뱀은 암놈이었다고 합니다. 감동을 받은 인부들은 못을 뽑아주고 자유의 몸이 되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어느 아내가 실직한 남편을 버려두고 나가거나, 어느 남편이 병든 아내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은 도마뱀만도 못한 인간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부로 묶어 주신 것은 서로의 부족과 허물을 메워주고 씻어주고 덮어줌으로 한 몸이 되어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카터 대통령의 부인은 얼마나 좋아 보입니까?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종종 싸우는 것이 있는데, 카터는 시간을 칼같이 지킴으로 절대 지각하는 법이 없는데 부인은 시간이 늦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종종 다투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부인생일 때 생일축하카드를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여보, 내가 오늘까지 당신을 너무 많이 괴롭혔는데 지금부터 당신은 시간 지키는 면에 있어서는 자유하시오. 내가 당신을 봐 드리리이다.>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부인이 그 카드를 받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당신이 내게 준 최고의 생일선물이라’고 했답니다.
 
부부 여러분들이여, 남편이나 아내의 결함이 보일 때마다 하나님이 그것을 채워주라고 짝 지워주실 줄 알고 서로 간에 채워주고 씻어주고 덮어주시기를 바랍니다.
 
(2)결혼의 두 번째 목적은 함께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는 남편과 아내에 대해 벧전3:7에서 표현하기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받을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짝 지워주신 것은 에덴동산을 더 잘 섬기고 관리함에 있었습니다. 즉, 동역자로 짝 지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오늘의 에덴동산인 교회를 잘 섬기고 충성하고 함께 은혜 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행복한 부부는 신앙이 비슷한 수준이 될 때입니다. 교회 안에서 보면 한쪽만 기도를 많이 하거나 충성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같이 성경을 연구하고 같이 충성하는 부부가 행복한 삶을 삽니다.
 
(3)결혼 목적의 세 번째는 음란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결혼제도를 만드셨을 때는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범죄 이후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지금은 온 세상에 죄악이 만연되었습니다. 특히 지금은 영화, 비디오, 인터넷 등을 통해서 음란의 유혹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들의 성생활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고전7:2에서 바울은 “음행한 연고로 남자마다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남편을 두라”고 했습니다.
 
또한 고전7:4에서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그 아내가 하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부간에 음란을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떨어져 살거나 분방하지 말고 어디 여행을 가더라도 함께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남편이나 아내 중에 누구인가 바람을 피운다면 서로간의 책임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삭과 리브가 부부의 삶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위대한 사람 중의 두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여인들은 사라와 하갈과 그두라였고 다윗의 여인들은 미갈, 아히노임, 아비가일, 밧세바 등, 복잡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부다처제이기 때문에 그런 삶이 크게 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 속에서라도 이삭 옆에는 일생동안 오직 리브가만 있었습니다. 이는 이삭의 바른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리브가가 남편에게 영육간의 만족을 준 탓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부부들은 엄청난 위력으로 몰려오는 음란의 물결 앞에 순결의 노를 저으며 가정이라는 배를 저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여자 성도는 성생활을 무슨 죄 비슷하게 여기어 남편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함으로 음란죄를 저지르게 합니다. 제이 애덤스가 저술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이라는 책을 보면, 어느 여인이 교회 나오기 전에는 부부간에 화목하게 살았는데, 교회 나온 다음부터 남편에 대해서 존경심이 사라지고, 오히려 교회 안에서 충성하는 어느 중직이나 남자 집사들의 모습에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죤과 같은 훌륭한 그리스도인 남편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남편에 대해 점점 거리감을 가지게 되므로 성적생활도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남편이 술 먹고 접근하려고 하면 마치 외간남자처럼 꺼리는 자세를 가지게 됨으로 남편이 점점 비뚤어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 후에 아담스는 충고하기를 “고전7:1-5절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적이며 매혹적이며 성적으로 만족을 주는 반려자요, 애인이 되도록 노력한다면 믿지 않는 남편이라도 교회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장개석이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에 대해 말하기를 “아내는 믿는 사람으로서 내게 너무 큰 감명을 주었고, 성경을 읽는 아내의 모습을 보다가 성경을 읽게 되었으며, 믿을 수 있는 장교들이나 사람들은 거의 다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부부들은 음란한 시대일수록 음란이 틈타지 않도록 부부의 사랑을 잘 가꾸어 나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부부 행복의 원리는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줄 믿는 데 있습니다.
마19:6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부부들의 삶이 행복하려면 지금의 내 남편, 내 아내가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줄 굳게 믿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서로 간에 화가 났다하면 근본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편은 화가 난 나머지 “내가 속아서 결혼했다.” 더 심한 경우에는 “내 팔자야, 어쩌다가 저런 웬수를 만났는가?”라고 나오는 대로 떠듭니다. 그러면 아내는 자존심이 없습니까? 한 수 더 떠서 노골적 말로 대꾸합니다. “참 말 잘했어요. 내가 눈이 삐었지. 그 때 부모님이 소개하는 좋은 신랑감을 마다하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으니, 내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점점 불신과 미움의 골이 깊어갈 뿐만 아니라, 그렇게 입으로 믿음이 없는 말을 하는 부부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주시겠습니까?
 
이규태씨가 쓴 「눈물의 한국학」이라는 책에서 보면 미국의 2,000명의 부부에게 면담 조사한 결과 여성의 70%, 남성의 60%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아닙니다. 후회한들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 부모들이나 우리 청년들은 결혼하기 전에 충분히 배우자감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결혼하면 배우자가 잘났거나 못 났거나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줄 굳게 믿으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이 그런 믿음의 부부들을 강하게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짝 지워 주신 줄 분명 믿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향에 가서 종이 기도하는 중에 만난 리브가요. 그리고 자기도 종이 자기 아내감을 구하러 간 동안 내내 기다리면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여인이 바로 리브가임을 믿었습니다. 또 창24:50-51에 보면 리브가의 오빠 라반이 말하기를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리브가를 데리고 가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고 허락합니다.
 
우리 청년들이나 결혼 적령기에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배우자감을 위해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이 되면 마음이 들든, 아니든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줄 믿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캐나다 면려회의 운동 창시자인 프랜시스 클라크는 어릴 때부터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내를 나에게 주셨다”고 하면서 너희들도 일생의 반려자를 택하는 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청년이 된 프랜시스는 배우자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는 그는 사귀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에 그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말을 썼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녀가 내게 합당한 여자가 아니라면, 주여, 무슨 방법으로든지 내 마음에서 떠나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만약 오랫동안 사귀던 여인과 헤어진다면 엄청난 상처가 남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3년 동안 계속 기도하는 끝에 아주 극적이요,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응답이 임하였습니다. “네 아내 될 사람은 벌써부터 네 곁에 있는데 왜 그렇게 배우자 때문에 기도하느냐?”는 응답이었습니다.
 
그에게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부터 50년 동안 하나님이 그들을 결합시켰다는 것을 조금이라고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부부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를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줄 굳게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부부 행복의 원리는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엡5:22-25에서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주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부부의 삶의 마차는 사랑과 순종이라는 이 두 바퀴를 통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바퀴 하나라도 결함이 있다면 그 마차는 덜커덩거리며 제 속력을 낼 수가 없는 것이요, 그 마차에 타고 있는 식구들도 불안과 고통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순종이라는 이 두 바퀴가 균형을 이루면서 견고히 제 자리를 지킬 때에는 그 마차 위에서 온 식구들이 아름다운 삶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삭과 리브가는 이 원리를 잘 지켰던 부부입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이삭이 40살 때 결혼했는데 거의 20년 동안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보통 이 정도가 되면 이삭은 대를 잇기 위해 다른 여인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창25:21에 보면 “그 아내가 잉태치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그 사랑은 얼마나 귀한 사랑의 모습인지 모릅니다. 리브가도 지극히 순종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창24:60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결혼약속이 되자마자, 곧 데리고 가려 하자, 어머니와 오빠가 10일만 더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에게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그 때에 리브가는 “내가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남자를 향해 그 수백, 수 천리 타향길이라도 순종으로 나가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오늘 본문 26장에서도 그 순종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어 할 수 없이 이삭의 가정은 그랄의 불레셋왕 아비멜렉 땅으로 피난 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리브가가 너무나 아리따워서 그곳 사람들이 탐을 내면서 이삭에게 묻기를 리브가가 어떠한 관계냐고 묻습니다.
 
그 때 이삭은 아내 때문에 해를 받을까봐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2-5절에서 약속하시기를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 그랄에 가면 너와 네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셨음에도 목숨이 두려워 거짓말을 나타낸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태도, 십자가를 피한 자세였습니다. 그런 비겁한 남편의 모습을 보고 리브가는 얼마든지 따지고 화를 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12절부터 25절까지 보면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불레셋 사람들이 와서 우물을 메웁니다. 또 파면 와서 메웁니다.
 
그 당시 우물을 판다는 것은 대역사로 엄청난 인원도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이삭은 양보하고 다른 곳에 가서 또 우물파기 공사를 하고 또 빼앗기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머저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리브가는 한 번도 이삭을 비난하거나 반항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순종이라는 두 바퀴로 끄는 마차 위에서 이삭과 리브가 부부는 행복을 가득 싣고 삶의 길을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의 가정에도 큰 위기가 왔습니다. 사랑과 순종의 원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마, 리브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목숨이 아까워 자기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는 모습을 보면서 겉으로는 불만을 표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무엇인가 실망감이 고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을 낳은 뒤부터 남편에 대한 불순종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야곱을 변장시켜서 눈이 어두워진 남편을 속이고 축복기도를 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삭의 희생을 잃은 사랑과 리브가의 거짓 순종의 결과, 그때부터 그 가정에는 불행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식 간에 살인적인 싸움이 일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를 따르지 않은 결과입니다. 남편 여러분들이여, 주님이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같이 십자가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 여러분들이여, 교회가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을 나타내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 부부들과 가정 위에 행복한 삶을 반드시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슈바이쳐는 신학교 교수요,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로서 장래가 크게 촉망되는 위치에 있었으나, 어느 날 거리에서 벌거벗은 흑인 상을 보고 거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아프리카로 가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5년 후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쳐에게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유태계인 간호원인 헬레나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여인과 결혼하여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행복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밀림으로 가는가?’라는 갈등에 빠졌습니다.
 
그는 큰 고민과 기도 속에 지내다가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고 헬레나를 만났습니다. “나는 아프리카의 불쌍한 흑인들을 돕는 의사가 되기로 이미 결심한 사람이요. 헬레나, 당신은 나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보낼 생각은 없습니까?”라고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헬레나의 대답이 너무 뜻밖입니다. “나는 정식으로 간호원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간호원인 내가 없이 당신 혼자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위대한 사랑, 위대한 순종의 모습들이었습니다.
 
그 후, 헬레나는 슈바이쳐 아내요, 동역자로서 20년 동안이나 함께 지내면서 불쌍한 흑인을 돌보는 위대한 일에 자기 생애를 바쳤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부부 여러분들이여, 청년 여러분들이여, 수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는 위기 속에서 여러분들은 결혼의 목적을 바로 알고 하나님이 부부로써 짝 지워 주신 줄 믿고 사랑과 순종의 원리를 따라 살므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을 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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