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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과 감사의 생활
2017년 01월 28일 (토) 23:36:37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시149:1-7)
 
이제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봄에 가장 보기가 좋은 것은 꽃입니다. 겨울 내내 앙상한 가지만 보이던 나무들이 싹을 내고 꽃을 활짝 피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서 바로 찬송과 감사의 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왜 찬송과 감사의 꽃을 보고 싶어 하십니까? 먼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는 목적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상의 방법은 예배인데, 예배의 최고의 내용은 찬송과 감사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찬송과 기도, 감동적인 설교와 많은 헌금이 있는 예배일지라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반대로 곡조가 틀리는 찬양, 표현이 미숙한 기도, 짜임새가 없는 설교와 빈약한 헌금이 있는 예배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진심의 찬양과 감사가 담긴 예배라면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찬송과 감사를 원하시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언제나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사는 자에게는 건강을 유지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미국의 빌 메모리얼 병원은 “하루에 15초 정도 웃으면 이틀을 더 오래 산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그 이유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등의 분비를 감소시키고, 장수 호르몬인 엔돌핀을 왕성하게 분비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은 척추염, 당뇨병, 고혈압, 암, 에이즈와 같은 모든 질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점점 감사가 사라지고 있고 그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니, 오늘의 근심 뿐 아니라 몇 년 후까지의 근심까지 끌어다가 걱정함으로 항상 우울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시간까지 찬송과 감사가 사라짐으로 죽은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니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할 일은 찬송하고 감사하는 삶인 줄 아시고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간에, 아니 역경 가운데서라도 항상 찬송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때에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사는 자들에게 큰 은혜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찬송과 감사에 힘쓰는 자에게 큰 능력의 은혜를 나타내십니다.
본문 149편은 찬송과 감사가 지니고 있는 놀라운 능력과 권능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자기를 믿음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라도 자기를 바라보고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을 큰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큰 능력, 큰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7-9절까지는 찬송과 감사하는 자에게 큰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7절 “이것들로 열방을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한다”고 했습니다. 찬송할 때에 모든 적들을 우리 대신 하나님은 벌하시고 물리치십니다. 여호사밧 군대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찬양대를 앞장세우고 찬송을 부르며 전쟁터로 나갈 때에 모압과 암몬 자손의 수 십 만의 군대가 갑자기 자중지란이 일어나면서 자기들끼리 칼질하고 싸우므로 시체로 들을 덮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편안할 때든지, 역경 가운데 있든지 우리 성도들의 할 일은 찬송과 감사하는 것입니다.
 
(2)8절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 고랑으로 결박하고”라고 했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열방의 왕은 사탄입니다. 그는 공중권세 잡은 자로 이 세상을 자기 손아귀에 쥐고 성도들을 끊임없이 공격하여 신앙생활을 못 하도록 방해하고 실족하게 합니다. 사탄이 왕이라면 귀인은 그 졸개로 귀신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항상 찬송과 감사하는 자에게는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합니다.
 
오히려 찬송과 감사할 때에 사탄의 세력은 꺾고 결박시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할 때에 매인 것이 풀리고 옥문이 열리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매일같이 나팔과 찬송으로 여리고성을 돌 때에 난공불락의 성이 무너지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3)9절 “기록한 판단대로 시행할지로다”라고 했습니다. ‘기록한 판단대로’라는 말씀은 ‘성경의 약속’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적들, 모든 문제들을 자기가 약속하신 대로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찬송과 감사할 때에 그러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선하신 뜻, 선하신 계획대로 모든 일을 진행하여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송과 감사하는 자에게 이 같은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활동했던 옥호열 선교사님은 6.25 때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군목으로 계시면서 북한의 인민군 포로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녁 식사 후 막사를 한 바퀴 돌다가 화장실에서 어떤 포로 청년이󰡒내가 죽일 놈이지. 내가 죽일 놈이지󰡓하며 울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청년. 나는 아시다시피 여기서 여러분을 돕기 위해 있는 군목인데 무슨 사정이 있으면 이야기하시오. 내가 도울 테니󰡓라고 말하자. 이 청년은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결혼한 아내가 얼마나 교회에 열심인지 나는 마음이 상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아내를 찾으러 교회에 갔는데 예배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보란 듯이 신발을 신고 뚜벅뚜벅 들어가 제 아내의 머리칼을 휘어잡고서 예배당 뜰에서 한참 때려주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도 반항하지 않더군요. 이상한 것이 다른 말은 제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내는 아내인데, 교회 나가지 말라는 말은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인민군에 징집이 되어 전쟁을 하다가 유엔군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미군 장교가 나오더니 우리 포로들을 한 줄로 세우고 뭐라고 말을 하면서 손짓을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을 골라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살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 차례가 되었는데 가슴에 십자가를 그렸더니 노래하라고 손짓을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제가 찬송가를 압니까. 갑자기 머리속에 제 아내가 저한테 매 맞고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저 살기 위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O.K.'하면서 저를 따로 세워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지금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구원받게 된 것은 제 아내의 찬미 때문이었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기쁜 때나 슬픈 때나 답답한 문제 앞에서나 언제나 찬송과 감사의 삶을 사십시오. 그 때 하나님이 그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을 친히 주관하셔서 가장 선하고 복된 곳으로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러면 찬송과 감사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1)예배 중에 전심으로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1절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시149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찬양의 노래입니다. 성도는 새 노래로 하나님께 노래하는 자이고 회중으로 모여서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으로의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너무나 기뻐서 춤추며 찬양하며 각종 악기를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3절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왜 우리는 노래와 춤으로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 중에 반드시 명심할 것은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점과 예배의 생명과 같은 찬양과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전심으로 찬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우리 찬양대원들도 사람들에게 칭찬 들으려는 자세로 찬양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께만 향해 전심으로 찬양하십시오. 그 때에 찬양과 감사의 능력이 나타나 사탄이 결박했던 것들이 끊어지고 막혔던 것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줄 믿어야 합니다.
 
조지 베벌리 쉬아라는 청년은 성공회 교회의 목사의 아들로서 그의 아버지 교회에서 매주 찬송을 불렀습니다. 1928년 미국이 대공황으로 인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기 때문에 그는 대학을 중퇴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천부적인 음악의 재능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시카고 방송에서 전속가수를 뽑는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1,5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어려운 난관을 뚫고 당당히 합격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보던 그의 어머니는 자기가 10년 동안이나 애송하던 밀러 부인이 지은 시 하나를 그에게 주면서 읽어 보라 했습니다. 그는 그 시를 읽고서는 큰 감동을 받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떠오르는 영감에 따라서 그 시에 곡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찬송이 바로 102장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입니다.
 
그리고는 그날 아침 예배 시에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다음 날 시카고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때 그는 대답하기를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하나님이 주신 음악의 재능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사용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부귀와 명예가 보장된 가수의 길을 그는 주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그 때부터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의 한 일원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가 한국에서 열렸을 때도 쉬아가 나와 이 찬양으로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몇 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대규모 전도 집회에서도 할아버지가 다된 쉬아는 굵직한 저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영감에 넘치는 이 찬송을 듣던 사람들이 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 때 쉬아는 말하기를 "여러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뜨거운 박수갈채와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는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는 찬양하고 감사할 때에 찬양과 감사의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께만 향하고 찬양하고 감사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오직 겸손한 자세로 찬송과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4절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할 때에 겸손한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신하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하고 감사할 때에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그에게만 영광을 돌리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그러한 겸손한 자를 능력을 통해서 구원하시고 높이시는 것이지, 자기의 공로나 자랑을 과시하는 교만한 자세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심으로 아무런 능력도 나타내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눅18장에 보면 두 사람이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또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이 두 사람을 비교하면 누가 보더라도 바리새인은 일등 신자이고 세리는 꼴지 신자입니다. 세리야말로 너무나 죄가 많고 부끄러운 사람이라, 바리새인과 비교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백이면 백 번이라도 하나님은 이 두 사람 중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에게 능력을 베푸셔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꼴지 신자인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수가 있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간단하게 평가하시기를 눅18:14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바리새인의 문제는 교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순전히 제 공로에 대한 자랑 뿐이요, 자기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불의를 들추어냈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나 교만하였습니다. 그 바리새인이 열심히 충성한 후에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삽니다. 오늘도 승리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했어야 옳고 누가 칭찬하더라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다만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했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기 공로만 내세우면서 반드시 은혜를 주셔야 한다는 식으로 교만으로 가득 찼으니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슴만 치면서 하는 기도가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철저한 겸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은혜 받는 그릇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보여준 교훈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공로가 많을지라도 교만한 자보다는, 부족한 것 투성일지라도 겸손한 자를 하나님은 더 기쁘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충성을 많이 하고 공로가 많을수록 교만에 빠지지 않고, 이러한 충성이나 공로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임을 겸손히 고백하면서 항상 찬송과 감사에 힘쓰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큰 역경이 닥쳐올 때라도 찬송과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5절 “성도들은 영광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침상에서도 노래할지어다’라는 말씀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동안 대적들의 억압과 압제로 인해 긴긴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하루라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침상은 고통과 한숨의 잠자리였습니다. 때로 그 침상은 병들어 누워 있던 잠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통의 자리에서도 찬송과 감사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생길에서 희망에 가득 차서 올라가는 때도 있지만, 어느 때는 절망에 가득 차서 내려가는 길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식구 중에 사고를 만나서 병원에 입원하는 때도 있고, 그렇게 반듯하게 자라던 자녀가 가출하여 돌아오지 않음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울 때도 있습니다. 때로 잘되던 사업이 부도를 만나 빚더미 위에 앉을 때도 있고 갑자기 수해나 화재를 만나는 때도 있습니다.
 
그 역경의 날에도 찬송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 때에는 누구든지 “하나님, 이 가로막고 있는 문제의 산을 어서 물리쳐 주십시오. 견딜 수 없습니다. 어서 속히 해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는 성숙한 기도가 아닙니다. 성숙한 기도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 주님, 이제 주님께서 제 앞에 놓으신 산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찬양합니다. 이 산을 넘으면 반드시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신 줄 믿습니다.”
 
“제가 이 산을 지나가는 동안 주님께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지켜 주시고 능력과 용기를 주실 것으로 믿고 감사합니다.”라고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산을 넘어가는 도중에 험한 골짜기를 만나기도 하고 심한 폭풍우에 시달림으로 불평과 원망이 가슴 가득히 차오를 때에라도, 혹은 온 몸이 완전히 피곤에 젖어 자포자기하고 싶은 때에라도, 억지로라도 찬송하고 감사해 보십시오. 어느 순간에 이상한 평안과 기쁨이 마음 가득히 차오르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산이 높을수록 오를 때는 고난이 심하나 산 정상에 섰을 때에 기쁨은 산의 높이만큼 큰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는 너무나 두렵지만, 어느 순간 주님이 자기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친히 인도하시는 체험은 그 어느 것으로도 살 수 없는 보배로운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침내 뜨거운 불 속에 던져 넣는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왕은 이 청년들의 뛰어난 재주가 너무나 아까워 마지막으로 달랩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 청년은 대답하기를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 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분이 가득하여 명하기를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하고 그 청년들을 결박한 후 불 속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 속에라도 저들을 보호하셔서 머리 터럭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하시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만약 그 청년들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상에게 꾸벅 절하면 이런 고난을 겪지 않고 육신적으로는 평안하게 살 수 있었으나 그 때부터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고난이 올지라도 순종의 좁은 길로 나가면서 오히려 찬송과 감사할 때에 역사상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보호받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북청 사변 당시에 여선교사 한 분이 폭도들에게 붙잡혔습니다. 폭도들은 여선교사에게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한 후 목을 자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선교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이제 집행인이 그녀의 목을 자르려고 칼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여선교사는 칼을 들고 있는 집행인을 올려다보며 얼굴에 미소를 띄웠습니다. 그녀의 눈은 평안과 감사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지켜보던 증인들의 말에 의하면 그 여선교사가 집행인의 눈을 쳐다보며 미소를 머금자, 증오와 살기로 가득 찼던 집행인의 표정이 놀람으로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몇 걸음 뒤로 멈칫 멈칫 물러난 후 다른 폭도들과 함께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더라는 것입니다.
 
분명, 그들은 여선교사를 지키는 불 칼을 가진 천사들을 보고 도망쳤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평안한 삶을 사시든지, 산 같은 큰 역경을 만나고 있든지,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여러분의 삶을 주관하시면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으로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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