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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 (환영주일)
2017년 01월 28일 (토) 22:05:05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요14:1-7)
 
지난주에 나오셨던 분들이나 오늘 처음 나온 분들이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초신자들이나 아직도 기독교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설교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한글 사전을 보니까,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행복을 찾아 헤매 입니다. 그러나 ‘나는 행복을 찾았다.’라는 분들은 좀체 찾기가 힘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커녕 불행하게 사는 이유가 인생을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차를 타고 가는데 목적지를 모르고 간다고 합시다. 그래서 운전사에게 ‘이 차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운전사도 ‘나도 모르지요, 그냥 가는 데까지 가는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차를 타고 가는데 어디로 가는지, 그 목적지를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글쎄요. 낸들 알겠습니까? 가보는 데까지 가는 것이지요.”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보이지 않는 불안과 초조,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가정용품회사의 생산부 부감독인 에드나 커어 여사는 말하기를 “가장 큰 비극은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가 정말로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끝내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직업에서 봉급 외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자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2)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기에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큰 착각 가운데 행복을 찾아 헤맵니다. 어느 분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진다고 믿으면서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아껴가며 열심히 돈을 모으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는 재벌에게 가서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물으면 분명 고개를 흔들 것입니다. 어느 분은 좋은 신랑, 좋은 신부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좋은 조건, 좋은 선택으로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화려한 고급주택에서 살고 있는 부부들 중에 깨어지고 있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즈음 많은 연속극과 영화가 그런 사실을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가난하게 살지만 행복 되게 사는 부부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배우자와 만나는 것만으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느 분들은 높은 권세, 높은 명예를 얻으면 행복의 정상에 서리라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 대통령들이나 몇 십 년 동안 독재하고 있는 자들에게 가서 질문한다고 할지라도 대답은 똑같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물이나 권력이나 그 무엇으로도 세상의 것으로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 가장 큰 재력, 가장 큰 쾌락을 누렸던 자는 칼리프 암두람 3세일 것입니다. 그는 서기 891년부터 962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왕국을 49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또 1년 수입은 3억불(우리나라 돈으로 3600억 원)이요, 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였고, 또 최고의 미인들을 첩으로 두었는데, 무려 3,321명이었으며 자녀들도 616명이나 되었을 정도이니 그는 세상 기준으로 친다면 세계 최고의 행복자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누가 묻기를 “당신은 진정한 행복을 누린 날이 며칠입니까?”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겨우 14일 뿐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부귀도, 권세도, 최고의 배우자와의 결혼도, 그 어느 것으로도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세상 것을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고 끝없이 애쓰고 있지만, 어느 날 허무하게 무너질 결국 모래성을 쌓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으면 그 행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흙으로 빚으신 다음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가는 자만이 참 생명, 참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은 보십시오. 예수님이 하신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진정한 행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칼 힐티라는 철학자는 말하기를 “인생의 행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진실하고 단순한 기독교이다”라고 했고, 일본의 신학자 내촌감삼은 말하기를 “최대의 행복, 최대의 은사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과 그 보내신바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것이 영생이요, 최대의 행복이다”고 했습니다.
 
또한 철학자인 파스칼은 “흔히 세속적인 행복을 찾다가 결국 발견하지 못할 때, 그 기진맥진한 두 팔을 그리스도 앞에 내어 놓으라. 그 때 큰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음으로 진정한 행복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뱅크」에는 어느 분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잘 아는 두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닌 두 여자는 결혼 조건이 서로 달랐습니다. 한 여자는 생활 능력이 있고 학벌이 좋고 가정이 좋은 건강하고 성실한 남성을 원했습니다. 결혼 조건 가운데 신앙이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예수를 잘 믿던 사람인데 결혼 조건으로는 신앙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 한 여자는 신앙이 없는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7, 8년이 지난 후에 그는 결혼해서 살고 있는 두 여자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한 여인은 사장 아들과 결혼해서 호화 주택에 살고 있었습니다. 고급 승용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문을 들어서니 정원은 황폐할 대로 황폐했습니다. 현관에 들어가 보니 신발들이 흙투성이가 된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아름답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기름기가 낀 뚱뚱한 여자로 변해 버렸습니다. 옛날의 이미지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방안에 들어갔더니 환경 정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주 지저분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화장대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외국의 상표가 붙은 화장품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응접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책은 고작해야 3류 주간지뿐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도 전부 죽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좋아서 결혼했던 남편은 신앙도 없고 도덕도 없는 무식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 미치든지 자살을 하든지 이혼을 하든지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얼마 후에 그는 신앙이 없는 남자와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던 여자의 집을 가보았는데 그녀는 전세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대문에서 나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와 같았습니다. 살도 찌지 않고 너무나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청초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현관에 들어가 보니 신발도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환경 정리도 잘되어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청포도를 심어 놓았습니다. 한 칸밖에 안 되는 마루에 성화 액자도 붙어 있었습니다. 화장대 위에는 화장품이 몇 개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성경을 비롯해 여러 가지 책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감사가 넘쳤습니다. 정말 축복해 주고 싶은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행복이냐. 불행이냐?’로 바뀌는 것입니다. 오늘 초청 받고 오신 여러분들이여,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영원한 행복의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영원한 행복의 진리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영원한 행복의 생명도 없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심으로 진정한 행복의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어떠한 복을 주십니까?
네 가지 복을 주십니다.
(1)영원한 천국의 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큰 근심 가운데 처했습니다. 그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가장 큰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 메시아가 되면 자기들에게 주어질 장관 자리, 고관대작의 자리를 얻게 되는 것이요, 그 때 고생만 해온 온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한번 떵떵거리며 살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3년 동안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이루었던 부푼 꿈과는 달리, 요13장에 와서는 예수님은 자꾸 자기가 고난을 받고 떠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행복에의 꿈은 무너지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주님이 떠나시면 우리는 어찌할꼬? 이 모양, 이 꼴로 고향에 돌아가면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을 무슨 얼굴로 볼꼬?’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엄습합니다. 왜 근심합니까? 인생의 목적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오늘 본문 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2-3절에서 약속하시기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할 곳’은 평화와 안식이 있는 곳, 영원한 행복이 있는 천국을 의미합니다. 믿지 않는 분들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목적 없는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 와서 사명을 다하다가 돌아가야 할 곳을 아는 순례자의 인생을 삽니다. 그 곳은 바로 천국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계21:4에 보면 거기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고난도 없는 완전한 행복의 처소가 천국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목자 되시는 예수님만 믿고 그만 따르면 이러한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천국 집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날을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2)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기도의 응답의 복을 주십니다.
13-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험한 세상을 사는 동안 필요한 것도 많고 어려움도 많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 성도들은 근심하고 염려대신에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필요한 모든 것을 응답 받는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동승교회에서 시무하셨던 정인영 목사님이 어느 교회 부흥회를 인도할 때, 하루는 어느 부부 집사님 가정에서 식사를 대접받게 되었는데 남자 집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더랍니다. 자기 어머니는 권사님인데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를 나가지 않다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 때문에 교회를 나가게 되었답니다. 이 아이가 식사 때마다 자기를 위해 기도했지만 처음에는 아무 가책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름 모를 병에 걸리어 연세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는데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의사에게 말하기를 “선생님, 내 병은 사람이 못 고칩니다. 그러므로 꼭 기도하고 치료해 주세요.”라고 함으로 장로님인 의사가 감탄하여 기도한 후 치료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선생님, 기도에 빠진 것이 있는데, 우리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해주시라고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아빠가 큰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잘 믿게 되었는데 그가 모든 죄를 회개하자 그 난치병이 완쾌되는 기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오늘 초청받고 나오신 분들이여, 예수님을 믿고 무슨 문제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심으로 여러분의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 받으시는 복된 체험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16-21절에 보면 예수님 대신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능력을 가지신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니 얼마나 행복된 삶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고아처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옆에 예수님과 똑같은 능력을 가지신 성령이 함께 계셔서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더 나가서는 주님의 능력인 은사를 우리에게 나누어주십니다.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보다 큰일을 행할 수 있도록 자기의 능력을 나누어주십니다. 이 약속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이루어짐으로 주님의 일군들이 가지가지 은사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4)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평안의 복을 주십니다.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일시적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 좋은 선물을 받았을 때, 혹은 원하는 대학이나 취직했을 때, 결혼할 때, 좋은 집이나 좋은 승용차를 샀을 때, 혹은 성공했을 때 잠깐은 기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마치 우리 속에 영혼의 샘이 터진 것처럼 계속 솟구치는 것입니다. 그 평안은 환경이나 물질, 병이나 죽음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캄캄한 감옥에 들어가 있을지라도 그 평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평안과 기쁨,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까? 바울은 바로 그러한 행복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빌4:11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빌립보에서 잘못된 고소에 의해서 간수에게 매를 실컷 맞고 깊은 감옥에 던져지는 너무나 억울한 일을 만났습니다. 육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지만, 이상하게도 자기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치는 기쁨에 의해서 찬송과 감사기도가 터져 나왔던 것이요, 동시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옥문이 열리고 매고 있던 수갑이나 착고가 다 풀리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일제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잡혀가 고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일본 경찰의 고문은 잔인하여 말로 다 형용하기 힘들었습니다. 엄지손가락 두개를 노끈으로 한데 묶어 대들보에 매다는가 하면. 고춧가루를 탄 물을 콧구멍에 붓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에 나무토막을 끼우고 짓누르며. 손톱 사이에 대나무침을 꼽고. 인정사정없이 몽둥이로 두들겨 팼습니다.
 
이러한 악형을 한 차례 가한 형사는󰡒잘 생각해 보고 마음을 돌이켜.󰡓라고 주 목사에게 말했습니다.“백 번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요. 참신은 하나님뿐 다른 신은 있을 수 없소.”라고 했습니다. 또 다시 몽둥이가 사정없이 날아듭니다. 주 목사님은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기절하였습니다. 얼마 후. 의식을 되찾았고 사방은 조용하였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엎디어 이 시련을 이기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참 기도하다가 우연히 시멘트 바닥을 만져보니 추운 겨울 물로 젖은 시멘트 바닥이 불 땐 온돌방처럼 따뜻하였습니다. 그의 온몸은 포근한 담요에 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이 사르르 저절로 감겨 그는 깊은 잠에 잠겼습니다. 주 목사님은 후에 이 일을 회상하며 고백하기를 “포근한 담요는 우리 주님 자신이었어요. 나는 주의 품에서 평안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고난에 동참하는 자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평안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평안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오늘 초청 받고 오신 분들이여,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으심으로 진정한 행복을 다 소유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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