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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냐, 그리스도 예수냐?
2017년 01월 28일 (토) 17:32:46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마27:11-26)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내일부터 일주일은 고난주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과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으신 채 이제 오직 혼자 남으신 처절한 고독 속에, 이번에는 3년 동안 온갖 사랑을 부어 주었던 군중들로부터 조차도 버림받는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로마 총독이 백성들 앞에 나서서 ‘나는 이 예수란 자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치 못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 대해서 형벌을 가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그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쿨라의 전갈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재판 자리에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부하를 시켜서 편지를 보내기를 ‘당신은 이 의로운 사람을 상관하지 마십시요. 내가 오늘도 이 사람의 꿈을 꾸고 마음이 대단히 산란한 가운데 있습니다. 억울한 재판을 내리면 안됩니다.’라고 써있었습니다.
 
그 편지 밑바닥에는 예수란 분을 만약 죽이면 무서운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될수록 형벌을 가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재판을 하면서 예수님을 심문하고 있습니다. 과연, 오랜 세월 동안 온갖 수많은 죄수들을 심문하여 본 빌라도의 날카로운 눈에도 예수님은 전혀 범죄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평화로운 얼굴, 그 깊고 빛나는 눈망울, 그 잔잔하면서 무게 있는 음성에 자신이 끌려 들어가고 있을 정도로 고귀한 분인 것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형을 시켜 달라고 고소할 정도의 죄커녕, 매 한대 때릴 만큼의 죄도 짓지 않는 분임을 느끼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백성들 앞에 서서 말하기를 ‘내가 아무리 심문하여 보아도 저에게서는 아무 죄도 발견할 수가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점점 더 고함을 지르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일들이 무슨 모함에 의해 되어 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어치든지 이 존귀한 분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서 무리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그것은 명절 때가 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슨 삼일절이나 광복절, 성탄절에 대통령이 모범수들을 특별 사면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이 특전을 이용하여 의로운 예수와 아주 대조가 되는 가장 흉악한 죄수인 바라바와 동시에 세워 놓고 ‘내가 누구를 놓아주랴?’고 외쳤습니다. 그러면 군중들이 아무리 예수에게서 미운 것이 있다 하더라도 소리치기를 ‘예수를 놓아 주소서.’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라바는 너무 무서운 흉악범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18:40 ‘강도’로 표현했고, 막15:7에서는 ‘사람을 죽이고 옥에 갇힌 폭도였다.’고 했고, 마27:16에서는 ‘소문난 죄수’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 눅23:19에서는 ‘성중에서 민란과 살인으로 옥에 갇힌 자’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로 바라바는 복수심과 원한으로 가득 차서 목표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피를 흘리기를 서슴지 않는 잔인한 인물의 대표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예수님은 일생동안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든 자들 위해서 식사할 겨를도 없고 주무실 겨를도 없이 갖은 고생을 다하시다가 마침내는 자기의 목숨까지 백성들을 위해서 희생 제물로 십자가 제단에 바치려고 할 정도로 인간 중에 가장 의로우시고 가장 선하시고 가장 완전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지금 빌라도는 자기 한 쪽에는 인간 중에 가장 흉악한 바라바를 세우고 다른 한 쪽에는 인간 중에 가장 선하신 예수님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묻기를 “여기 두 사람 중에 내가 누구를 놓아 주랴?”고 외치면서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의례히 백이면 백 사람이 ‘예수를 놓아 주고 바라바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함성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웬 변괴입니까? 정반대의 함성이 빌라도 법정을 흔들듯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바라바를 놓아 주십시오.” 빌라도는 ‘자기가 잘못 들었는가?’라는 의아한 생각으로 다시 확인하듯 “그러면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라고 물었습니다.
 
모든 군중이 하나같이 외치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것이 아닙니까? 빌라도는 너무 기가 막혀서 재차 묻기를 ‘어찜이뇨. 저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라고 하자, 이미 잘못된 선택을 한 군중은 더욱 미친 듯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칠뿐이었습니다. 빌라도 법정에 모여 서 있는 군중은 이미 이성이 마비된 미쳐버린 상태였습니다. 그 군중은 ‘선이냐? 악이냐?’의 선택에서 선을 버리고 악을 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생명과냐? 선악과냐?’의 선택에서 선악과를 택함으로 멸망을 자초한 것처럼 지금 가장 선하시고 의로운 예수님을 버리고 가장 흉악한 바라바를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길을 등지고 사탄의 길을 택한 것이요, 좁은 길을 포기하고 넓은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축복을 버리고 형벌을 택한 것입니다.
 
24-26에 보면 빌라도가 아무리 구명하려고 애써도 피에 굶주린 미친 군중의 함성이 점점 높아가자, 마침내는 포기하고 “대야에 물을 떠오라.”고 한 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하자, 군중들은 더욱 소리 높여 외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지어다.”고 했습니다. 과연, 악을 선택하고 선을 버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 핏값을 유대인은 2천년 동안 치르기 위해 얼마나 참혹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까?
 
나라를 빼앗기고 세계 곳곳으로 추방당하고 학대를 받았으며 많은 나라에서 비참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심지어는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이 가스실에서 비참하게 죽어갔고 지금도 이스라엘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을 정도로 테러로 가득한 나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조상들의 원죄 탓이었습니다. 선을 버리고 악을 택한 쓴 열매를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빌라도 법정에 모였던 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바라바를 택했는가? 왜 선을 버리고 악을 택하게 되었는가? 바로 자기 욕심 탓입니다. 자아중심 탓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 때문에 생명과를 버리고 선악과를 택한 것처럼, 법정에 모인 모든 자들이 자기 욕심 때문에 그런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욕심으로 잘못 선택하므로 큰 죄를 범한 세 종류의 부류가 나옵니다.
 
1. 유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제사장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이었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종교적 기득권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란 자가 갑자기 나타나 민중들의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그리고 자기들에 대해서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에 큰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지나친 욕심에 집착한 나머지 메시아인 예수를 제거하려고 혈안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군중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도록 선동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임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지나친 욕심에 매여서 하나님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양심의 눈이 어두워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고 더 나가서는 악한 자들도 감히 생각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잔인한 십자가형으로 예수님을 죽이도록 갖은 수단과 술책을 동원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자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살해하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율법의 생명은 사랑인데, 사랑이 없는 율법에만 매여 지낸 결과입니다. 더 나가서는 빌라도 총독이 세 번씩이나 예수님의 무죄를 호소했음에도 그들은 그 죽은 율법을 오직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결과 역사상 가장 무서운 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도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노릇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주안에서 거듭남으로 십자가 사랑으로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유대 군중들입니다.
이들은 어느 의미에서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무리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병 고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열심히 따라 다니거나 벳세다 광야에서 기적의 양식을 먹었거나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시에는 종려나무를 가지고 환호하면서 그가 유대인의 왕, 그들이 그렇게 대망하던 메시아가 되기를 갈망했던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식의 왕이나 메시아 되기를 거절하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 군중들은 마치 큰 배신이라도 당한 듯 허탈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틈을 이용하여 종교지도자들이 무리들에게 자기들이 요구하는 대로 외치면 일당을 주겠다고 하자, 그 돈에 대한 욕심에 눈이 어두워 돈 몇 푼 때문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돈 몇 푼 때문에 역사상 가장 무서운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던 목적도 순전히 자기 욕심 때문이었던 것ㅇ;요, 예수님이 그 욕심을 채워주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대신 돈을 채워 주는 자의 편에서는 짐승 같은 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신(神)은 곧 돈이었던 것입니다. 돈으로 인해 병들대로 병든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 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일행의 회계를 맡게 되었는데 말씀을 듣는 시간에도 돈만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소홀히 한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예수님에 대해 예루살렘 입성과 함께 초인간적인 능력으로 로마의 지배를 뒤엎고 유대 왕으로 등극할 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이 오면, 자기는 경제부총리든지, 재무부장관은 맡아 논 당상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력이 자꾸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패배자가 되기 전에 자기 이득을 챙기겠다는 빠른 계산 하에 예수님을 은 30냥에 파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말씀보다는 돈에 매이다 보니 나중에는 돈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 스승조차도 은 30냥 자리로 보이는 돈독에 오른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돈이라는 것은 귀한 것이지만 인간이 돈에 매이면 친구도 배신하고 부모도 죽이고 자기 자녀까지 사창가에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돈만 아는 수전노가 있었는데, 어느 날 죽게 되자 아들들을 불러서 물어 봅니다. ‘너는 내가 죽은 후에 장례를 어떻게 지내겠느냐?’ ‘네, 아버지, 돈을 많이 들여서 꽃상여를 만들어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야, 이놈아,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네가 돈을 낭비하느냐? 둘째야, 너는 어떻게 지내겠느냐?’ ‘네, 아버지, 돈을 조금 들여 들것을 만들고 두 사람을 사서 내다 묻겠습니다.’ ‘이놈아, 들 것 만드는 것, 두 사람을 쓴 비용은 어디서 나느냐?’
 
‘너는 안 되겠다. 셋째야, 네가 대답해 보아라.’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숨이 끊어지려고 하면 밖으로 나가서 칼을 새파랗게 갈아 가지고 들어와서 숨이 끊어지면 살을 베어다가 시장에 내다 팔겠습니다.’ ‘오, 셋째야. 너는 과연 내 아들이다. 그런데 고기를 팔 때에 명심할 것은 절대로 외상은 놓지 말아라.’고 하더랍니다. 얼마나 돈독이 올랐는지 자기가 죽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군중들은 돈 몇 푼에 눈이 어두워 완전히 망하는 것도 모르고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빌라도 입니다.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이 전혀 죄가 없음을 알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몇 번이나 노력했으나 나중에는 예수님의 사형을 언도하는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 이유도 알고 보면 자기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몇 개월 후에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요즈음 정치가들 보면 나라와 민족을 어떻든 자기 권력을 위해서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또한 어제의 적과 야합하는 등,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대선은, 우리나라의 정치가 선진정치를 이루느냐, 아니면 다시 퇴보하느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서 가장 발전이 부진한 분야는 정치입니다. 오히려 정치가 모든 분야의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서 정치가 새로워짐으로 경제, 사회, 문화, 국방, 통일, 외교 등 모든 분야가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빌라도의 실수는, 자기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유대 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치면서 마침내 폭동이 일어날 것처럼 야단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수백만이 모이므로 이러한 폭동이 전 도시로 번지면 자기의 지위에 큰 위험을 만날 것이 자명한 사실이 될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에 선을 버리고 악을 택하여 비겁하게 사형언도를 내리고 손을 뺀 것입니다. 그 결과, 전설에 그는 후에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네로 황제에 의해서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선을 버리고 악을 택한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을 것입니다.
 
‘생명과냐? 선악과냐?’ ‘좁은 길이냐? 넓은 길이냐?’ ‘예수냐? 바라바냐?’ 그 선택은 각자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따라 ‘영원한 축복이냐, 영원한 저주냐?’로 판가름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선택합니까? 멸망으로 인도하는 쪽을 과감히 버리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길을 택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고난주간에 우리 자아의 욕심, 자아의 주견, 자아의 자존심, 자아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그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 주님의 자랑, 주님의 능력으로 사십시오. 요셉처럼, 기생 라합처럼, 에스더처럼, 다니엘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좁은 길을 택함으로 하나님의 강력한 부활의 능력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만나는 생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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