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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구원에 이르는 시험이 상대평가였다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심
2008년 09월 03일 (수) 21:48:26 이수미 holysumi@hanmail.net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평가의 종류는 기준에 따라 다양합니다. 교육 진행 과정에 따라 구분하는 평가로는 수업 전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진단평가, 수업 중 수시로 학생들의 이해 정도를 확인하여 수업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형성평가, 수업 후 최종적으로 보는 평가를 총괄평가라 합니다.

또, 평가의 목적이 개인의 위치를 타인과의 비교에 의해 상대적으로 서열화하는데 있는지, 아니면 주어진 교육목표의 절대적 달성 정도를 파악하는데 있는지에 따라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상대평가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를 말해주는 평가로 학생들 간의 경쟁을 통해 동기유발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경쟁과 분류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인해 학생들의 정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학생의 수학성적이 ‘수’라고 할 때, 그것은 그 학생이 속한 학급에서 최상위 몇 % 이내에 든다는 것만을 알려 줄 뿐이지 수학교과에서 무엇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는 바가 없는 단점도 있습니다.

반면 절대평가는 교육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평가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어떤 반 학생의 수학 성적을 절대평가하는 경우 수업목표에 달성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여 평가합니다. 그러니까 90점을 통과하면 수, 80점을 통과하면 우, 70점을 통과하면 미 이런 식으로 말이죠.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모든 학생이 수나 우를 받을 수도 있고 양이나 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8월 초, 전남 곡성에 있는 작은 시골교회로 선교활동을 다녀왔습니다. 말이 선교활동이고 실은 봉사활동인 셈이었죠. 마을 아이들을 위해 여름성경학교를 했고요,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며 마을잔치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믿지 않은 영혼들을 위해 제가 흘린 땀방울과 눈물이 그들에게 작은 도움라도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마을잔치 중에 어떤 할머니께 사영리를 전하다가 문득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방법이 바로 절대평가의 방법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이 무척 쉬운 방법이라는 것도요. 그러니까 일정한 기준, 즉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대한 기준만 통과하면 누구나 구원에 이르게 되는 거죠. 그 구원의 방법이 너무나 쉬워 어린 아이들도, 시골에서 농사만 짓는 어르신들도 다 믿고 따를 수가 있습니다. 그 사실이 새삼 은혜롭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구원에 이르는 시험이 상대평가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 혼자 열심히 믿어서 되는 게 아니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믿음의 서열 중 상위 몇 %만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나의 구원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믿음을 행하는지를 관찰해야 하고 그보다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피곤하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삶의 기쁨이 아니라 그 믿음의 경쟁이 오히려 삶을 지치게 하겠죠.

요즘 사회는 지나치게 ‘경쟁=발전’의 논리를 내세웁니다. 일부 경쟁이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볼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발전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경쟁’의 논리를 내어 밀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삶의 고난이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것은 다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 안에 있는 고난이나 어려움인거죠. 무작정 약육강식의 경쟁 논리에 우리를 내몰고 끝까지 살아남은 건강한 믿음만 골라내겠다는 태도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겁니다.

오늘 조간신문 1면 기사 제목이 ‘초중고 학교별 성적 3등급 공개-성적 무한경쟁 내몰린다.’ 입니다. 참 씁쓸합니다. 아니, 씁쓸한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까지 합니다. 학교라는 곳이 약육강식의 사회와 똑같아야만 할까요? 오히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그 마음으로 우리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니까요. 상한 갈대 같고 꺼져가는 등불 같은 학생들에게 '너희는 경쟁에서 졌으니 버리고 가야겠다'라고 말하는 일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이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이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논리에 휘말려야만 합니까? 경쟁이 모든 것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는 거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그 표정에는 갈수록 피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친구를 이기기보다 나 자신을 이기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길이 될 테니까요.

* 월간 기독교 음악 비평지인 ‘ccmer'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 삼일교회 집사, 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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