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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윤봉길의사 참배하러 일본에서 왔어요
2016년 05월 26일 (목) 13:10:01 이승철 장로 webmaster@cry.or.kr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서 만난 재일교포 여성

   
▲ 윤봉길의사 묘비 앞에서 재일교포 박천혜(45)씨

"저는 일본에서 왔어요. 재일교포에요, 우리말이 서툴러요."

혹시 후손이냐고 묻는 내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더듬더듬 서툰 우리말로 그녀는 자신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라고 했다. 서울 효창공원 안에 있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 묘역, 윤봉길 의사 묘비 앞이었다. 겨울날씨가 서늘했던 12월 9일 오후 효창공원은 썰렁한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아 고즈넉한 모습이었다.

효창공원을 찾을 때마다 버릇처럼 둘러보는 3의사 묘역으로 들어섰을 때 몇 미터 앞에 한 여인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일반 참배객이려니 하고 묘역을 둘러보고 있는데 앞서 오른 여인이 3의사 묘 중에서 가운데 위치한 윤봉길 의사 묘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일반 참배객들은 세 분 의사들 묘비를 차례로 둘러보거나 거리를 조금 둔 중간에서 참배하는 것이 상례인데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혹시 윤봉길 의사의 후손인가 싶어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여인은 우리말이 너무 서툴렀다. 우리말을 잘 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내가 묻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대화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설픈 영어를 사용해 보았지만 여인은 영어도 알아듣거나 말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서툰 우리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우리말이 매우 서툴렀지만 내가 윤봉길 의사와의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찾아왔느냐고 묻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가방에서 사진 한 장과 명함을 꺼내 놓았다. 명함은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인 '월진회' 이주응 회장의 명함이었다.

그리고 사진은 일본 이시가와 현 가나자와 시에 있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 앞에서 찍은 한 중년 남자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사진 속의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 박인조씨이며 월진회 일본지부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박인조씨의 딸인 박천혜(45)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아버지 박인조씨는 오래전부터 윤봉길의사를 누구보다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윤 의사가 일본에서 일제에 의하여 처형당하고 암매장되었다가 1946년 3월 4일 유해를 발굴하여 이곳 효창공원에 이장된 이후에도 가나자와 암매장 현장을 보존하고 지켜왔다는 것이었다.

   
▲ 월진회 일본지부장이었던 박인조씨, 가나자와 윤봉길의사 암매장지에 세워진 순국기념비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따님인 박천혜씨가 소지하고 있었다

박인조씨와 윤봉길의사의 암매장지와 관련된 이야기다. 윤의사는 일제에 의하여 처형당한 후 일반 민간인 묘지와 군인묘지 사이에 있는 좁은 오솔길 옆에 아무렇게나 암매장되었다. 그런데 암매장에 참여한 일본군 헌병 한 명이 근처에 있는 사찰의 야마모도 리요라는 여승에게 부탁하여 독경을 부탁하였는데 그 여승이 해마다 기일에 제를 올리다가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해방 후 1946년 3월 4일 한국의 발굴단이 와서 암매장지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사흘만인 3월 6일 이 여승을 수소문하여 그녀의 도움으로 암매장지를 발견하였다. 유해를 발굴하여 효창공원으로 이장한 후에는 예전의 묘지를 돌보지 않는 우리 풍습에 따라 암매장지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게 되자 박인조씨가 나섰다. 우리민족의 선각자요 독립지사로 일제에 의하여 처형당하고 암매장 되었던 민족의 한이 서린 유적지를 본국으로 이장했다고 해서 돌보지 않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인조씨는 그 해 8월 윤 의사가 암장되었던 자리에 유품과 영정을 새로 매장하고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비를 세워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8년 월진회 윤규상 회장이 처음으로 가나자와를 방문하여 박인조씨를 만나게 되었다. 윤 회장 일행은 박인조씨가 자주 암매장지를 방문하여 울타리를 세우는 등 관심을 갖고 돌보고 있음을 알고 1992년 4월 윤남의씨 일행이 민단과 협력하여 언덕 바른 곳에 순국비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박인조씨는 1929년 윤봉길의사가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농민운동으로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상하이 망명과 의거로 중단되었고, 1946년 다시 계승된 월진회 일본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박인조씨가 죽기 전에 딸인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 꼭 고국을 찾아 효창공원에 잠들어 계신 윤 의사 묘를 참배하라고 해서 휴가를 내어 이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작년에 작고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조국 땅에 잠들어 있는 선열의 묘를 찾은 재일교포 여인 박천혜씨. 그녀는 윤의사의 묘를 참배한 후 백범 김구 선생의 묘도 참배하고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날씨까지 썰렁한 겨울 아버지가 존경했었고 자신이 존경하고 있는 조국의 독립지사 묘를 찾은 여인은 참으로 귀한 모습이었다.

"장부(丈夫)가 집을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대장과 일행들을 폭살하고 일제에 의하여 형장에서 장렬하게 가신 윤봉길 의사, 후손들인 우리국민들의 뇌리에서 희미하게 잊혀져가고 있는 선열들의 드높던 기개와 정신이 많이 아쉬운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 윤봉길의사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3의사 묘역 입구


추운 겨울 멀리 일본에서까지 찾아와 참배한 윤봉길 의사를 기리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윤 의사가 만들었고, 그의 우국충정과 정신이 깃든 '월진회'는 어떤 단체였는지 알아보았다.

월진회 연혁
1929. 4. 23. 월진회 창립 <회장 윤봉길>
1932. 4. 29. 윤봉길의사의 망명과 상해의거로 활동중단
1944. 이석구, 김동렬, 맹완재, 윤재의, 윤규상 등이 우진회를 조직하여 계승
1946. 우진회를 월진회로 환원
1973. 제1회 매헌문화재 개최
1982. 제1회 매헌농민상 신설
1987. 제1회 소년소녀가장상 신설
1992. 일본 가나자와시에 윤봉길의사암장지적비 건립

월진회 창립취지서
만천하의 동포여! 18억의 인류가 생명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존경쟁에 천촉되어 만감(萬感)이 교지(交至)하매 그 좁은 심장이 찢어질 뿐이다. 만감(萬感) 만상(萬想)이 그 과연 어떠한 감상일까?

그야 물론 천차만별이겠지마는 일언이 폐지하면 고락(苦樂) 두 자로 편성되었도다! 환언하면 즉 남과 같은 사업을 성공하려고, 남과 같은 행복을 안형(安亨)하려고 노력을 할 때에 도덕과 인륜(人倫)을 허신적(許身的) 같이 내어 버리고 자아주의(自我主義)로 황금만능을 부르짖으며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관자(管자) 왈 창름(倉凜)이 실(實)이라야 지영욕(知榮辱)이라 하였고, 맹자 왈 인무항산(人無恒産)이면 구무항심(苟無恒心)이라 하였으니 신사언야(信斯言也)하여 현대를 고찰하면 우리는 자작자급(自作自給)에 힘을 써서 나의 전도를 내가 이행(履行)하며 나의 운명을 내가 개척지 아니하면 불가한 것은 삼척동자도 지실(知悉)하는 바이다.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요 천불능궁력사가(天不能窮役事家)라 하였으니 근검하면 될 것은 자연의 이치요, 춘불경작(春不耕作)하면 추무소망(秋無所望)이라 하였으니 노후에 안락을 누리려면 유시의 근검저축은 당연지리요 불가결자(不可缺者)이다.

태산이 불양토양(不讓土壤)고로 능성기대(能成其大)하였고 하해(河海)가 불택세류(不擇細流) 고로 능취기심(能就其深) 하였나니, 유원(維願) 첨위(僉位)는 물이망언(勿以妄言)으로 치지도외(置之道外)하시고 묵연히 과거를 회억(回憶)하시며 미래를 연상하시와 성연분비이(成然奮臂而) 본회에 광림하시와 원조하심을 경요(敬要) 함.
1929년 4월 23일 윤 봉 길
(자료는 네이버 검색에서 발췌했습니다) 

/홍익교회 장로, 시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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