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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섬기는 교회블 위해서 울라
2014년 12월 03일 (수) 10:26:00 최윤식 목사 webmaster@cry.or.kr

(출처: 최윤식 지음 '한국교회 미래지도')

이제부터는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를 살릴 해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 번째는 철저한 회개,관심과 기도,희생하겠다는 다짐이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목회자와 교인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종교다. 예수님의 철저한 십자가의 희생 위에 초대교회가 시작되었다. 한국 교회 역시 토마스(Robert Thomas) 선교사 같은 분들의 순교 위에 세워졌다.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는 "한국 교회의 성장과 그 요인’이라는 글에서 한국 교회의 성장 발판은 고난과 고통의 시기에 형성되었음을 말한다. 조선 후기 민중이 철저하게 권세가들에 의해 착취와 억압을 당하던 시기,1894~1895년의 청일전쟁,1904-1905년의 노일전쟁 시의 박해와 형벌 속에서도 목숨 걸고 헌신했던 성도들의 신앙 때문에 교회가 뚜렷한 부흥기를 맞이했다고 기록한다.

청일전쟁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평양의 선교사였던 마펫(Maffet)은 “교인과 그 가족들, 구도자들,그리고 하나님이나 예수의 이름을 들어 본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자들은 박해와 그에 따른 형벌을 목격하고,또 그 같은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교인들의 모습을 본 후에 사방에 홈어졌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예수 교리의 소식을 전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이만열 교수는 그뿐 아니라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탈당한 민족적 박해의 시대에 오히려 ‘대부흥 운동’과 ‘100만 구령 운동’이 일어났으며 1905~1910년 약 5년여 간에 한국에서 선교하고 있던 미북감리회는 180%, 미북장로교회는 250%, 미남감리회는 700% 성장률을 보였다고 밝히고 있다. 오히려 일제 치하의 혹한 탄압과 박해 속에서 한국 교회는 세계에 유례없는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후로도 한국전쟁 가운데,군부독재하에서 한국 교회는 민족 복음화 운동을 뜨겁게 전개하여 I960년대에는 연평균 약 10만 명씩, 1970년대에는 연평균 약 20만 명씩,1978년부터는 연평균 약 100만 명씩 급성장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를 기점으로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한국 교회에 일기 시작하면서 세계에 유례없던 부흥의 속도는 약 5% 미만의 성장으로 주춤했다.

1990년대부터는 완만한 마이너스 성장(어떤 통계조사에 의하면 약 4%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핍박이 있었거나 전도할 대상이 없어서가 아니다. 식민지배와 전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목회자와 교인들이 웰빙과 물질 앞에 흔들리면서 교회가 침체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생명력이 희생에서 물질과 세력과시로 전환되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외형적 과시에 대한 열정으로 전환되면서부터 한국 교회의 부흥은 멈춰 버리고 만 것이다.

교회를 생명력 있게 만드는 것은 물질의 힘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도와 선교를 말하면 “돈이 있어야 하지요. 예산을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돈입니다”라고 말하는 목회자와 교인을 너무 쉽게 만난다. 사실 돈은 수십 년 전보다 많다. 믿음과 헌신,그리고 희생 부족에 대한 핑계일 뿐이다. 교회의 역동성과 생명력의 유지는 사람 수와 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전도와 선교로 그 역량을 집중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는 교회가 늘어 가고, 전도 독려를 꺼리는 교인이 늘어 가고,오히려 전도하는 교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아냥 뿐인 분위기 속에서는 침체의 악순환만 일어난다. ‘튀지 말고 나 혼자만 신앙생활 잘하면 돼’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교회는 가득해진다. 혹은 ‘누구 좋으라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헌금하나?’하는 회의적인 태도가 퍼지고, 헌금하면 목사가 다 자기 맘대로 쓰는 거 아니야?’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늘어난다.

안정지향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교회가 늘어 가고 있다. 안정이란 기존에 있는 떡 덩이를 서로 나눠 먹는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윤 의미한다. 낸 헌금은 자기들끼리 다시 사용해 버리고 “변화의 필요성은 알지만……”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교회가 늘어 간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해져 가는데도 한국 교회가 이 정도로 건실(?)하다는 것이 기적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10~20년 이내에 한국 교회들은 그 수명이 급격히 짧아지면서 소멸하는 현상이 확산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과연 10년 뒤에도 우리 교회가 문을 닫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윤까?”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져야 한다. 그런데 교회를 책임져야 할 목회자나 중직자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지도자들에게서 한국 교회의 심각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 계획과 비전을 기대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한번 떠난 교인은 획기적으로 교회가 변화되지 않는 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단순히 몇백만이라는 기독교인 숫자와 대도시의 몇몇 초대형교회들의 약진에 흥분해서 코앞에 닥친 위기를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한국 교회의 미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면 10년 후 교회는 텅빈 의자들과 백발이 무성한 노인들로만 채워질 것이다.

2006년은 19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이 되는 기념적인 해였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비탄과 절망에 빠져 있던 백성에게 오순절 다락방의 사건처럼 천지가 진동하는 감격과 민족의 가슴을 태워 버리는 성령의 불이 떨어진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한국 교회는 2006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평양 대부흥 운동을 부르짖었다. 그 후 7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겉으로는 세계 최고의 기독교 아성을 자랑하는 한국 교회지만,속으로는 영적으로 곪고 문드러져 바싹 마른 뼈로 가득한 세계 최고 세속 교회의 모습이 바로 그 현주소다.

도대체 무엇이 1907년과 현재의 한국 교회를 하늘과 땅 차이로 바꾸어 놓았을까? 그것은 바로 ‘통회하는 울음’의 차이다. 100년 전 1907년 1월 14일 저녁 평양 장대현 교회에 모인 성도들은 나라를 빼앗긴 잘못이 바로 자신과 한국 교회의 죄악 때문이라고 고백하며 가슴을 찢는 통회 자복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시작된 통회의 울음은 삽시간에 전국 교회의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회개운동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질주하는 속도로 죄악으로 가득 차고 있는 사회. 경제적으로 심한 침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국가. 거리에는 부랑자가 가득하고 매일 자신의 존재를 비관하며 자살하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교회와 교인들이 앞장서서 세속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미 세속화가 될 대로 되어 버린 한국 교회와 교인들에게 무엇을 기대 할 수 있을까? 이 말이 불편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교회’의 전형이 되어 버렸다.

한국 교회와 교인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길은 하나다. 오순절 다락방 사건처럼, 평양 대부흥 사건처럼 다시 한 번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불덩이가 한국 교회 위에 쏟아지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울어야 하고 우리가 울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교회를 위해 울어야 한다. “앞으로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지리라’ 라는 요나의 한마디 외침에 왕에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물도 마시지 않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어 재앙을 피해 갔던 니느웨 백성처럼 울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후회하지 않도록 통회하는 울음을 터뜨려야 한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열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욘3:9) 우리에게 강철 같은 기도가 필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앞으로 도래하는 기술들은 자칫 잘못 사용하면 지금보다 더 교묘하고,더 강하고,더 유혹적으로 교인들을 죄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성경의 예언처럼 죄가 더욱 가득 찰 것이다.

겉으로도 타락의 모습이 강해지겠지만,죄는 더욱 미화되고 교묘하게 포장되어 대중을 열광시키고 안심시킬 것이다. 세상을 더욱 가깝게 만들고 24시간 소통을 가능케 하는 미래형 인터넷 기술과 매체들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맛있게 요리된 악(惡)으로 마비시킬 것이다. 우리의 발이 빠르게 죄악의 소굴로 달음질하도 록 자극하고 격려(?)하는 내용일수록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것이다.

영적 어둠의 소굴은 지옥 한가운데로 질주하는 깊은 터널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 사회는 겉으로는 환상적인 문명사회이지만,속으로는 지금보다 몇 십 배 강력한 사탄의 도전이 기다리는 사회다. 그 파괴력도 지금보다 몇 십 배 이상 강력할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 안의 세속화는 더욱더 심해져서 죄와 선의 구별이 모호 해지는 범주가 커질 것이다.

교회라는 건물이 우리를 죄악된 세상에서 구해 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 숨어 있으면 죄악의 검은 그림자가 우리를 조용히 넘어갈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은 이런 저런 꼴이 보기 싫다고 힘겨운 세상을 뒤로하고 사이버 세상의 판타지 속으로 도피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다고 죄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남아 자신과 가족, 교회를 지킬 유일한 길은 레오나드 레이븐힐의 외침처럼 되는 것 뿐이다.

그는 “죄를 짓는 사람은 기도를 중단할 것이고, 기도하는 사람은 죄 짓기를 중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를 자극하고 흥분 시키는 죄플 이기는 유일한 길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강철 같은 기도뿐이다. 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죄가 우리의 신앙을 죽인다면 기도는 우리의 죽은 신앙을 다시 살린다. 습관처럼 무너졌던 죄악된 과거 때문에 비관해서는 안 된다. 기도의 능력은 측량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다.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었던 크리소스톰은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도의 능력은 불의 능력을 잠재웠다. 기도는 날뛰는 사자를 제어 했고,무정부적인 혼란을 안정으로 이끌었고, 전쟁을 끝냈고,폭풍우를 멈추게 했고, 귀신들을 쫓아냈고,죽음의 사슬윤 끊었고, 천국의 문을 넓혔고,병마를 몰아냈고,도시를 멸망에서 구했고,태양을 멈추게 했고,벼락을 막았다.”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소장, 소망과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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