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7.9.23 토 12:22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신학
     
대형교회의 문제와 진로
2014년 11월 27일 (목) 08:01:37 이승하 목사 webmaster@cry.or.kr

(출처:이승하 목사 지음: '목회자'에서)

외형적으로 훌륭한 교회다. 내용적으로도 훌륭해야 한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5천명이 모인 중에 5병2어로 먹이신 것은 중요한 기적이었다. 예수 부활 후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전도할 때 하루에 3천 명,5천 명씩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예수님과 초대교회에 대형교회가 있었다. 이것은 초기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미국교회도 각성운동으로 대형교회가 많았다. 오늘 한국에 대형교회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대 역사에서 대형교회에 긍정적인 결과 몇 가지가 있다.
1) 먼저 된 교회로 모범이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 교회로서 모범적 교회라는 긍지가 있었다.
2) 큰 교회로서 큰 일,사명적인 일에 선봉이 되었다.
a. 선교 b. 지도자 파송 c. 박해와 순 교 d. 문제 해결의 주역이었다. 그것은 예루살렘 총회 이다(행15장).

그러나 한국의 대형교회는 많은 폐단을 낳고 있다.
1) 작은 교회 폐쇄. 그 이유는 평행이동이다. 세속화된 방법으로 대형 마트가 구멍가게들을 모두 없어지게 한다는 것과 같다.
2) 교회의 계급화. 작은 교회는 교역자로부터 교인에 이르기까지 어떤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3) 성직 세습. 이것은 매우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안 된다.
4) 목회자의 독재. 대형교회의 대표적 목회 스타일이 목회자의 권위이며 그것이 독재자로 나타난다.
5) 한 교회만 아니라 교단이나 연합기관 에서 권좌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은 정치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그런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교회의 능력으로 재정적 부담을 많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6) 대형교회 목회자는 자동적으로 목회 성공자란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이것이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평가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다.
7) 개 교회주의. 대형 교회 일수록 개 교회주의에 사로 잡혀 있다. 자기네 교회가 가장 크고 가장 능력 있고,가장 좋은 말씀이 있다고 자랑한다. 타 교회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경쟁적이다. 대형 교회끼리 경쟁하는 모습은 가관 이다.
8) 대형교회 성도들의 편협된 자긍심을 갖게 한다.
9) 그 구성원들을 묶어주는 별다른 구심점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물량주의이다. 이것은 세속화이다. 어느 목회자나 교회의 숫자적 성장과 외형적 발전 그리고 많은 헌금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실제로 현대사회는 ‘물량 팽창시대’ 이다. 한국교회의 물량주의는 바로 우리 시대의 나쁜 산물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현대인의 사고에는 소유가 곧 삶이다. 그래서 정하은 목사는 ‘소유가 아닌 존재를 위한 목회’를 제창하기도 했다.

물량주의의 결과는 비인간화이다. 인간은 사라지고 물질로 가치를 인정한다. 소수보다는 다수를 인정한다. 민주주의의 한 가지 폐단이 있다면 그것은 다수가 진리라는 것이다. 성경적 근거는 그렇지 않다. 진리는 다수일 수도 있으나 소수일 때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 인데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에 순종했는가? 그러나 말씀은 진리이다. 박해를 받고 불태워지고 금서처리를 당하면서 전파했으나 만고의 진리이다.

그런데 물량주의는 다수로 밀고 나간다. 세계 역사는 지금 민족주의이다. 그리고 수가 많은 민족이 강하다. 그러므로 중국이 미래에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 이것이 물량주의의 강한 면이다.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소형교회들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일 수도 있다. 이것이 교회 외적인 이유만이라면 그래도 좋다. 그러나 교회 내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교회 안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장로,권사, 안수 집사로 피택 되면 임직 받을 때 많은 헌금을 해야 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통하는 한국교회를 어찌 가진 자의 교회라 하지 않을 것인가? 실제로 인구 밀도로 볼 때 서울 강남에 기독교인이 가장 많다는 것 이 현실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상류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수적이고 민주화를 싫어하고 개혁보다는 안정을 원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기독교 역사에서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숙한 교회로는 별로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 한국교회는 성장과 성숙 사이에서 한 편으로 치우쳐 있다. 교인의 숫자는 증가한 반면에 성경적 진리로 성숙 하는 데는 세심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교회다운 교회로 성숙되지 못 했다. 그래서 교회는 침체해가고,감소하며,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여기에 대형교회가 주범이다.

한국교회가 목회 성공을 물량적인데 두는 데서 날카로운 비판이 있다. 교회 역사는 짧은데 성장했다. 그것을 분석하면 부흥회,십일조 강조,교회당 건축, 교인 배가운동으로 교회성장을 이룩했다. 경제적 성장과 외형으로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성도들이 믿음으로 성숙해 지고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빛이 되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전도해서 교회에 나온 사람을 죄에서 구원 받는 체험을 갖게 해야 하는데 이것에 실패했다.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양육 하는데 실패했다. 한국교회는 국가가 멸망할 때 눈물을 흘리며 애국애족에 앞장섰다. 그리고 식민지하에서 독립운동의 선두에서 지휘했으며, 절제운동이나 국민의 지식 함양을 위해서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운동을 했다. 그러나 현재 교회는 대형화되었고 기독교인 수는 1,000만 명이라고 큰소리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기독교가 우위에 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인들도 기독교 지도자들의 말에 그렇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이 오시면 큰 교회에는 안 가실 것이며,사람들이 외면한 교회,사랑이 없는 교회,무당과 돈이 판치는 교회에 예수님이 오실 자리가 있겠느냐고 한다. 예수님은 어디에나 가신다. 가장 조건이 나쁜 곳에 가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정상화시켜 놓기 위함이다. 대형교회를 나쁘다고 하면서 대형교회 목회자를 독재자라고 몰아세울 필요도 없다. 대형교회 목회자 중에 훌륭하고 모범적인 분도 계시다. 예를 들면 한경직 목사다. 이렇게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은 대형교회 목사들에 대한 것이다. 대형교회 교인들은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가르친다. “목사님,우리 교회 목사님처럼 목회하세요.”라는 것이다. 이것이 교만이요,목회자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자기 다니는 교회, 즉 대형교회이기 때문에 훌륭한 목회자라고 한다. 그렇게 믿는 것은 그런 능력이 있으니까 대형교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 목회자의 사명으로 목회자의 심정으로 목회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자부심이다. 그리고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설교는 모두 성경적이고 신학적이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결과를 많이 보게 된다. 너무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행하는 것은 대형교회 목회자답지 못한 면이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자만이란 어떤 데서 나타나는가? 같은 목회자 들을 모두 자기 교회 교인처럼 여긴다. 그래서 자기에게 강의를 들어야 하고 설교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는 목사들에게도 지도자란 착각을 하고 있다.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가? 그 대형교회가 지원하는 개척교회 또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서 온 것이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대형화된 것은 불신자를 전도한 교인들로 된 것이 아니라 평행 이동으로 된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교인들이 모여든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그렇다. 그 특징이 있었으므로 대형교회가 되었고,유지된다.

마치 대형 백화점으로 몰려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구멍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된다고 아우성이다. 작은교회,개척교회가 너무 어렵다. 같은 값이면 큰 교회에 가서 편하게 은혜 받겠다는 교인들의 심리가 적중한 것이다. 땀나는 구멍가게보다 에어 컨디션이 잘 작동하는 대형마트에 가겠다는 시민심리이다. 그렇다고 대형교회 폐지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대형교회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고,장점도 있다.

먼저 세계적인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10개를 드는 데 한국교회에서 다섯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대형교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땅 속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대형교회에 가면 모든 것이 편리하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모든 시설이 좋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편리한 곳을 좋아한다.

세 번째는 감격의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환경 좋고,많은 성도들이 큰 소리로 찬송하는 자리는 진정 예배의 분위기가 좋다. 거기에 합류된다는 것은 동화된다는 것이다. 좋은 설교라고 인정된다. 찬양대의 합창은 천상의 천사들처럼 우렁차고 감격적이라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아멘’이 절로 나온다.

넷째로,조직이 분명하다. 그 많은 성도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니까 질서가 있다. 만일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 많은 성도들이 혼잡을 이루게 된다. 다섯째로,재정이 풍부하므로 선교사업,구제사업, 교육 사업에 투자해서 큰 성과를 거둔다. 도움 받는 교회가 아니라 많은 도움을 주는 교회의 본래적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한다.

마지막으로 주일학교가 훌륭하게 운영된다. 물론 많은 예산과 기독교 교육전문가로 구성된 지도자들, 그리고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지만 교사들에게 사명감,즉 어린이를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자질을 훈련시켜서 행하기 때문에 그렇다. 젊은 부모들이 대형교회로 평행 이동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녀들이 그 교회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다니 던 교회를 떠나 대형교회로 간다.

한국교회에 ‘어린이 성령운동기’가 있었다. 그것은 I960년 초반부터 10년간이었다. 어린이들이 갈 곳이 없을 때 교회로 초청했다. 그리고 열성 있는 교사들이 그들을 가르치고 함께 노래하고 사랑했다. 거기서 많은 지도자들이 양육되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부흥한 기초적 인재는 그 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며 또한 그때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친 교사들이다. 주일학교 운동은 미래 교회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형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잘 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대형교회를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대형교회에 대한 부정적 면이 있다. 그러나 긍정적 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부정적인 것은 시정하고 긍정적인 것은 계속 살려갈 때 대형교회 의 존재는 자랑으로 남을 것이다. 대형교회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형교회들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형교회는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겸손하게 동역자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군림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섬기는 목회자가 될 때 대형교회는 훌륭한 한국교회 역사를 창조할 것이다. 대형교회가 모순이 있다는 것은 교회 자체가 아니다. 대형교회 목회자의 문제이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라는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는 훌륭한 말씀이 있다고 선전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분리주의 근성이다.

누가 그 교회 말씀이 훌륭하다고 하는가? 누가 그 교회 목사가 설교를 잘한다고 하는가? 설교 비평가의 글을 읽어 보라. 어떻게 평가가 나오는가? ‘그것도 설교냐?’는 평이 나온 목사가 있었다. 그 목사가 대형교회 목회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설교 잘 한다고 자부심을 갖지 말고, 자기 교회가 세계 최고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교만이다.

/해방교회 원로목사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하늘과 땅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
풀리는 인생이 되라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역사의식 없는 설교는 헛소리"
종교개혁500주년 기념 공동신학선언
먹거리 안전보장 국가의 기본 책무
행복은 관계에 있다.
7. 7. 7 꿈
유명인들의 자녀 교육법
“승급시험"
최근 올라온 기사
유대인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선민인가?
아브라함의 큰 믿음
소망의 인내
여호와는 나의 편이시라
9월의 선교편지
9월의 선교편지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 저럴까?
코로 숨쉬는 것 이렇게 좋구나!
선봉에 서면 선봉이 된다.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