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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엄과 책임감을 중시하는 한국사회 바란다
2014년 05월 01일 (목) 10:31:52 김영한 박사 webmaster@cry.or.kr

(출처:베리스타)

편법과 성공주의 버리자

머리말

이번 진도 앞바다 참사 사건은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허술한 안전망의 실태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인재(人災)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외 언론들은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한국에서 20년 만에 벌어진 최악의 해양 사건"이라며 "한국은 지난 20년간 일어난 대형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방글라데시 등 개도국에서 일어나는 침몰사고가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수많은 어린 승객들을 선실에 남겨두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먼저 빠져나온 선장과 선원들의 모습은 인간 존엄보다는 편법과 출세주의 위주로 살아온 우리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여져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2017년에는 국민소득 4만불 달성이라는 열정 아래 그동안 달려온 우리 사회의 경제성장의 시스템이란 그 내면에 탐욕과 편법과 부실로 점철되어있음이 드러나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1. 승객을 죽음의 지경에 내버려두고 먼저 탈출한 무책임하고 비겁한 선장과 선원들

배가 파선에 직면하자 배의 구조를 잘 아는 선장과 항해사·기관사·조타수는 일찌감치 떠나고 갓 입사한 말단 신참이 끝까지 배를 지켰다. '세월호' 승무원 29명 중 승객 탈출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은 말단 직원 박지영(22)씨였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면서도 정작 본인 것은 챙기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가난한 집안의 휴학생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승객을 버리고 먼저 도피한 선장과 선원들을 “국제 해운계의 수치”라고 하면서 승객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 말단 직원 박지영을 찬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체면을 그나마 세워주었다. 심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사고의 책임자들은 도망가고, 보호받아야 할 어린 학생들이 줄줄이 희생됐다. 이래 놓고 우리는 과연 선진국이며 후진국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은 2013년에 20-50 클럽에 가입하였고, 국민소득의 수량적 치수로는 올해 2만6천불에 도달하면서 3년 후 2017년에는 3만불을 능가하고 4만불에 도달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우리사회의 선진 시민의식과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은 전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1912년 4월 12일 영국의 대서양 횡단 여객선 타이태닉이 좌초하자 영국인 선장은 여성과 어린이부터 구명보트에 태우라고 지시한다. 건장한 남성은 후순위였다.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 선장은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며 선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와 함께 선장과 선원은 전원 사망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그의 위대한 정신을 기념하는 이야기를 통하여 영국 선원의 자부심으로 영국인의 가치관을 대표해주고 있다. 타이태닉호 선장의 영웅적 행동 뒤에는 그러므로 영국인들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민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100년 전 영국 선원들의 더 높은 가치관에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우리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보여준 무책임한 비겁한 행태에 대하여 같은 한국인으로서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2. 법과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사회

타이태닉호 선장은 빙산에 충돌하여 배가 좌초하게 되자 먼저 선장으로서 자신의 지휘에 따르지 않는 자를 즉시 체포·구금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를 우선적으로 탈출시켰다. 20세기 초까지 세계 질서를 주도한 영국은 강자(强者)가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문명(文明)'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준칙은 국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1852년 2월 남 아프리카 케이프타운 근처에서 암초에 부딪쳐 침몰직전에 직면한 영국의 해군 수송선 베큰헤드호의 함장 세튼 대령의 위기대피 지침, 바로 “베큰헤드 정신”(Birkenhead spirit)에서 나온 것이다. ①여성·노약자 ②남성 ③선원으로 정해진 탈출 순위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국제 공용의 여객선 대피 매뉴얼에도 '선원은 마지막까지 승객을 도우라'고 적혀 있다. 선진국이란 사회의 각 분야와 사건에 있어서 대처하는 기본적 준칙, 즉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국제 공용 여객선 대피 매뉴얼에 따라 승객을 구하기는커녕 자기들만 도피하여 도피 지침을 전혀 모르는 승객들을 도리어 죽음의 지경으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이들은 자신들은 배를 떠나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움직이지 마라'는 안내 방송을 계속 시킨 것이다. 방송을 믿은 사람은 배 속에 갇혔고, 안 믿은 사람은 살았다. 안내 방송대로 객실에 머물렀던 안산 단원고 2학년생들은 지금까지 250여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아마도 학생들은 선원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원들을 믿은 순진함이 아이들을 희생시켰다. 우리 사회 시스템이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정부에 대하여 적지 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정부 관료들과 정치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행위로 생겨난 것이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하여는 앞으로 정치 지도자들은 솔선수범하는 것이 요청된다. 정부 관료들이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니 아래 각계 부서의 사람들이 그렇게 할 줄을 몰랐다고 볼 수도 있다. 평소에 몸에 익히지 않았으니 비상시에 매뉴얼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이다.'세월호' 선장은 자질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자를 475명을 태운 여객선의 선장으로 앉힌 것은 청해 해운사라기 보다는 종국적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이다. 선장뿐 아니라 나머지 대부분 선원 역시 일찌감치 배를 버렸다. 그가 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의 월급 전반만 받는 ‘계약직 대타’요 ‘바지사장’이라고는 하는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수백 명 승객의 목숨을 맡기는 한국사회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법과 매뉴얼이 있긴 하나 그것을 평소에 익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자동반사적으로 이에 대처하는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허술한 사회안정망과 직업윤리의식 부재에서 승객 안전에 대해 의식이 없고 책임감을 모르는 선장과 선원들이 나오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이번 세월호 참사는 압축성장을 해온 졸부(猝富) 한국사회의 부산물이요, 희생된 어린 학생들과 유족들 모두는 희생양들이다.

세계은행이 한국을 '개발도상국' 명단에서 뺀 것은 1997년이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고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결과였다. 그해 가혹한 IMF 경제 위기를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위기는 자극제가 됐고 한국은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온 국민이 허리를 졸라맨 덕분에 위기를 빠른 시기에 극복하고 압축적 성장과 도약이었다. 미숙한 졸부(猝富)는 성공 신화를 통해 아픈 과거를 잊는다. 수십 명을 희생시킨 성수대교, 수백 명을 희생시킨 삼풍백화점 자리에 선 번듯한 거대한 새로운 구조물을 보면서 지난 날 참사 교훈을 잊어 버린다. 20년 전 성수대교 관리, 삼풍백화점 경영 그대로 세월호 운영 시스템에는 변화가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 공중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 경영 시스템은 '안전‘을 뒷전으로 하고 성공과 압축 성장에만 매진하고 있다. 46개의 구명정이 열리지 않은 것은 페인트 칠을 진하게 하여 열리는 부분이 붙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소에도 전혀 비상탈출 훈련을 한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런채로 여객선이 버젓이 운행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회시스템이 허술해서 그런 것이다.

세월호 침몰은 우리 사회의 후진적 모습을 보여줬다. 그 후의 구조·수습 과정은 더 큰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한국 네티즌의 말을 인용해서 비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망을 보유하고,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생산하고, 최고의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어린아이들을 구조해 낼 능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이성훈, “세월호 침몰로 다시 드러난 받아쓰기 정부,” 조선일보, 2014 4 21 A31)

사회시스템이 내실이 있고 투명하고 책임있는 구조로 바뀌기 위해서는 모두가 합심하여 자기 자리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하여는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이 솔선수범함으로써 이러한 사회 시스템의 변혁에 앞장서야 한다.

3. 선진국다운 인명 존중과 책임감 중시의 가치관을 형성하자.

2001년 9월 11일 쌍둥이빌딩인 월드 트레이드센터(World Trade Center)가 이슬람 과격 세력의 공격을 받던 순간 모건스탠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회사 안전 책임자 릭 리스콜라(Rick Rescorla)는 월남전 참전 용사 출신이었다. 그는 그날 아침 월드 트레이드센터 북쪽 빌딩이 공격받는 것을 보고 곧장 전 사원에게 대피 지시를 내렸다. 무조건 빌딩을 탈출하라고 명령했다. 옆 빌딩이 공격받은 지 17분 만에 모건스탠리가 입주한 남쪽 빌딩에도 테러 비행기가 날아들었다. 56분 뒤에는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모건스탠리 사원 2687명 거의 전원이 빌딩 밖으로 도피한 뒤였다. 리스콜라도 일단 빌딩 밖으로 나왔다가 "모두 탈출했는지 확인하겠다"며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10층에서 마지막으로 봤다는 목격자는 있었지만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송희영 주필, “좋은 선진국, 나쁜 선진국,” 조선일보 2014 4 19 A26).리스콜라가 위대한 것은 대피 지시를 빨리 내리고 타이태닉호의 선장처럼 현장을 끝까지 지켰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그런 큰 재앙에 대비했다. 그가 매년 전 사원을 대상으로 도피 훈련을 실시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화재라도 발생하면 24층에서 무조건 비상계단을 통해 빠져나가는 훈련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이처럼 미국이라는 사회는 매뉴얼이 있으며 매뉴얼대로 작동되는 사회다. 그러므로 선진국이라고 한다.모건스탠리는 시간당 임금이 적어도 수백달러, 많으면 수천달러에 이르는 고액 연봉자가 즐비한 회사다. 좀체 일어날 수 없는 재앙에 대비한 훈련에 반발은 거셌다. 그러나 리스콜라는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들 생명"이라고 했다. "인간이 재난으로 충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뇌를 움직이는 최상의 방법은 훈련이다. 똑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뿐." 이것이 리스콜라의 신념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최면에 걸린 듯 피난할 수 있었다"고 모건스탠리 임원은 말했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선진국이라는 것은 리스콜라 같은 각 부서의 안전책임자가 인명을 중시하고 투철한 직업의 책임감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한국인들은 한국 전쟁 후 근 60년간 생존과 성장을 위하여 살아왔다. 이제 우리사회도 인간다운 품위를 우선순위로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 한국인에게도 살신성인하는 유교적 가르침이 있고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기독교의 사랑의 계명이 있다. 이번에 수백명의 어린 생명들이 희생된 참사를 통하여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생명과 삶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감과 직업적 의무감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값진 배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참사가 헛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식을 선진의식으로 고양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은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매뉴얼은 작동될 수 있도록 평소에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럴 때만 매뉴얼은 위기상황 속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4.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자기 반성 : 세상을 거슬러가는 예언자적 삶

한국교회 신자와 목회자, 종교인들은 수백명의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번 참사에 대해 커다란 책임을 느껴야 한다. 번영과 성공에 우선순위를 둔 사회적 추세에 거슬리지 않고 이에 따라가거나 방관한 우리 교회의 허물에 대하여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익과 생명을 맞바꾸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회에 침묵하며 방관의 모습을 보였던 교회 지도자들의 허물을 고백해야 한다. 또 모든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꿈꾸고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음에 마음 깊이 사죄를 드리는 태도를 가지고 기독교인으로서 교권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버림으로써 사회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침몰해가는 배를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피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이 세상이라는 죽음의 바다에서 침몰해가는 이웃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배만 채우며 자기 명예와 이익만을 찾으며 자기 교회 몸집 불리기에만 몰두하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번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는 우상숭배적인 문화, 맘몬의 노예가 된 이 사회의 전 영역에 부활의 생기가 불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부실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윤리적 삶에 있어서 비리(非理)와 허물을 범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재속에 앉아 회개하고 새로워 질 수 있어야 한다. 번영과 성공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메시지가 청산되고 십자가와 회개와 나눔과 섬김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메시지가 증거되어야 한다. 이것은 소유와 번영이 신앙의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직의 삶이 중요시되는 것이다. 신앙이란 얻고 쟁취하기보다는 버리고 섬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이웃은 부유하고 권세 잡은 자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소회된 약자들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사회적 소외자들과 약자들의 안식처와 사회적 정의와 평화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마른 뼈가 가득한 에스겔 골짜기 같은 이 사회에 생기가 불어오게 하여 허술한 사회안전망이 수축(修築)되고 인간 존엄(尊嚴)을 보장하도록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역할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는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말로만 아닌 삶으로 이러한 가치관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유행에 거슬러가는 예언자적 메시지와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맺음말: 소유적 편법적 가치관 아닌 존재적 책임적 가치관

이번 세월호 참사(慘事)를 계기로 볼 때 우리 사회는 경제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정작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지켜내야 할 위기관리와 대응력은 아직도 후진국 수준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각종 선심 공약으로 국민 인기를 끌기에 급급하나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임무수행에는 얼마나 무력한지가 드러났다. 그러나 정부만 탓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도자들을 뽑은 우리 모두의 부실한 모습을 같이 보면서 반성해야 한다. 20년 전 서해 페리호 사건처럼 잊어버리지 말고 이번을 계기로 구멍난 사회안전망을 다시 보수하고 사회적 책임감과 의무감을 다시 배양하여 소유와 번영과 성공이 지고의 가치가 아니라 생명과 책임과 의무가 지고한 가치라는 것을 우리 사회 구성원 전원이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일본 동경지하철에서 위험에 빠진 일본 승객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이수현이나 이번 참사에서도 학생들의 탈출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박지영 교사 같은 위대한 정신들의 귀감이 있다. 이것은 소유적 편법적 가치관이 아니라 존재적 책임적 가치관이다. 인간의 가치는 소유와 성공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는 소유로 수량화 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이며, 이러한 인간 존엄을 보존하기 위한 책임감을 느끼고 실천하는 것이 지고한 가치로서 평가되는 것이다. 이 가치관은 바로 복음이 가르치는 가치관이다. 이러한 가치관이 바로 한국교회의 설교강단에서 흘러나오고 이 설교가 생활화된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흘러 넘치도록 되어야 한다. 이럴 때 한국기독교는 우리 사회를 향하여 초창기 기독교의 위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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