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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회자부터 바른 예배를 드리라
2013년 06월 12일 (수) 11:12:54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1. 한국 목회자들과 예배 매너리즘(mannerism)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의 목회자들처럼 예배를 많이 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의 예를 들더라도 목회 초년기에 해당되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는 부교역자가 없는 때여서 모든 예배를 도맡아 인도해야 했다. 주일오전예배, 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매일 새벽예배는 물론이고, 1982년 교회 건축 때부터 시작된 밤9시기도회가 계속되었으므로 매일 밤 예배까지 인도해야 했다.
더 나가서는 봄, 가을 대심방 때는 하루 보통 7-8세대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그 외에 이사, 돌, 입주 등, 각 가정의 애경사를 중심한 예배까지 계산하면 어느 주간에는 수십 번의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마, 다른 나라 목회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 한국 목회자들의 초인적인 모습에 경탄하든지, 아니면 목회자들을 그처럼 혹사시키는 한국교인들에게 경멸을 보낼지 모른다.
여하튼 한국 목회자들은 엄청난 양의 예배에 시달리다 보면,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이 설교이다. 매 예배 때마다 설교에 대한 부담 때문에 다른 순서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마련이다. 물론, 한국교회의 풍토는 모든 예배의 중심을 설교에 두는 좋지 못한 경향이 있다.
찬송이나 기도는 설교를 하기 전에 준비과정이고, 헌금은 설교를 통해 은혜 받은 보답으로 드린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교인들이 대다수이다. 그런 잘못된 예배 관행을 목회자들이 개선해야 함에도 오히려 목회자 스스로가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베풀겠다는 지나친 생각 때문에 설교 외에 예배 순서를 소홀히 취급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찬송을 부르는 동안이나 다른 이가 기도하는 동안도 설교할 내용에 골똘하기 일 수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롭게 전하겠다는 중심을 훌륭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배의 중심은 결코 설교가 아니다. 하나님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목회자가 훌륭한 설교를 전하겠다는 마음에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의 존재를 잊은 채 예배를 인도하는 경우가 많게된다는 점이다. 또한 수 없는 예배를 인도하는 동안, 예배를 능숙하게 인도하는 프로가 되고 있지만, 예배의 정신은 매너리즘에 젖어 생명력을 잃고 있다.
필자부터가 주일 아침 예배를 인도하면서 초신자가 문 앞에서 서성이면서 자리를 찾고 있음에도 부교역자들이나 안내 위원들이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함에 은근히 짜증을 나타내고, 심지어는 예배 인도하는 중간 중간 잔소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마디로 필자부터 예배의 중심을 잃을 때가 많았다는 고백이다.
아니 된다. 예배에서 설교도 중요하지만, 다른 모든 순서도 중요한 것이다.
오래 전에, 악령 들린 자를 찾아가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다.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공포에 질린 얼굴로 갑자기 귀를 막고 고함을 지르는 것을 보았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도 똑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찬송과 신앙고백에도 큰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 목회자들은 솔선하여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의 모든 순서도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 드리는 온전한 정신을 소홀해서는 안 된다.

2. 예배의 올바른 정신
예배에는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의미와 정신이 함축되어 있다.
(1)예배는 경배(worship)요, 고백이다.
예배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의지하고 우리의 창조주요,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시오,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에 대해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를 경배하기 위해 감사를 드리며 찬양하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행위이다.
(2)예배는 섬김(service)이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신민(臣民)으로, 그의 종으로 섬기는 시간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희생제자를 통해서 예배를 나타냈고, 신약에 와서는 자신을 산 제물(롬12:1-2)로 헌신하는 시간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3)예배는 만남이요, 교제이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찬양과 기도, 헌신과 헌금을 바칠 때 하나님은 회중 가운데 친히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성도들이, 같은 형제와 자매인 성도들의 거룩한 만남을 이루고 풍성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4)예배는 결단의 시간이다.
하나님이 회중 가운데 오셔서 명하시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결단하여 다시금 세상을 향하여 전도자로, 봉사자로 파송되는 시간인 것이다.
장신대 실천신학 교수였던 정장복 교수는 「월간목회」지, 1999년 3월호 특집대담에서 말하기를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잘못된 예배신학이 예배의 뿌리로 되어버렸습니다. 정상적인 예배는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구원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종교들의 예불, 제사를 통해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 우리 예배신학을 흐렸고 오늘의 예배를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라 했다.
참으로 옳은 지적이다.
오늘 한국교회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간다.’라는 말 대신에 ‘은혜를 받으러 교회를 간다’고 표현한다. 기복신앙이 예배 정신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된다. 우리 목회자들부터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한다. 또한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만남 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결단하여 세상 가운데 전도자로, 봉사자로 파송되도록 도와야 한다.
성경에 보면 예배 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는 활기가 넘치나, 그렇지 못한 교회는 점점 활기를 잃게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3. 새로운 결심으로 시작한 예배
2004년 2월 두 주간 동안, 필자는 교회가 안식년 휴가 차 보내준 성장하는 미국 교회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미국의 4만 교회 중 90%가 하향 길에 들어서면서 교회가 비어가고 데 비해 그 중 30교회만 유독 성장하고 있는 데 대한 관심이 많던 차에, ‘한국강해설교학교’가 주관하는 ‘미국교회 견학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여간 귀한 기회가 아니었다.
미국 서부에서 동부까지의 6개 주 가운데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 15곳과 선교와 봉사기관들 10곳을 돌아보면서 필자는 내내 한국교회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방문한 교회는, L.A.에서는 새들백교회, 동양선교교회, 남가주 사랑의 교회, 크리스탈교회, 그레이스교회, 덴버에서는 헤리테이지교회, 뉴라이프교회, 시카고에서는 윌로우크릭교회, 무디기념교회, 록펠러메모리얼교회, 위싱톤에서는 휄로우십교회, 맥크린바이불교회, 뉴욕에서는 브룩크린타버나클 흑인교회였다.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1)예배가 뜨겁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교회들이 소위 열린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점이요, (2)인구 밀집지역에 교회를 세워야 성장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교회를 외곽지대로 과감히 이전함으로 엄청난 부속시설, 휴식시설과 엄청난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요, (3)온갖 다양한 성경공부반과 소그룹을 통해서 제자화 교육이 활발하다는 점이요, (4)성장하는 교회들은 구역운영 대신에 셀목회로 전향하고 있다는 점이요, (5)특히 무엇인가 봉사하려는 자로 가득 차다는 점이다.
특별히 그 성장하는 교회들의 예배 장면을 보면서 큰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장로교단에서 수십 년 동안 목회 하면서 길들여진 전통적인 예배의식과는 너무나 판이했기 때문이었다. 성장하는 교회들의 대부분이 예배 강단을 과감히 낮추어 버리고 강대상도 강의용 탁상정도요, 강단의자도 흔히 볼 수 있는 간편한 것이었고 찬양단들도 강단에 자유로운 복장으로 올라가 인도하고 있을 정도였다.
예배 순서도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롭게 찬송을 부르다가 설교하는 식이었다. 워싱톤을 방문하는 기간동안 주일을 맞아 휄로우쉽교회이라는 한인교회에서 아침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찬송은 복음성가 위주인데다가 내내 일어나서 무려 20분 이상을 부르는데 손뼉 치는 자, 손을 흔드는 자 등, 각양각색이었는데 거의 열정적이었다.
필자는 처음에는 상당히 비판적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 분위기에 동화되면서 생명력 있는 그 예배에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장로교의 전통적인 예배는 거룩함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속에는 생명력이 없기 일수인 데 비해, 소위 열린 예배는 겉으로는 무질서함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나 생명력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전통적인 예배만 고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갈등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의미에서 ‘열린 예배’의 원조는 새들백교회의 릭 위렌 목사이다. 그가 저술한「새들백교회 이야기」에서 그의 예배철학을 읽을 수 있다. “예수님은 합당한 예배를 위해서 단 두 가지 조건만을 주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나는 예배가 ‘영’과 ’진실‘로 드려지는 한 하나님께서 예배의 다른 여러 형식 때문에 기분이 상하시거나 불편해 하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하나님께서 다양성을 즐기신다고 확신하다. 우리를 모두 다르게 만드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착상이셨다.
사실은 성경적 예배 형식이란 없다. 매주 일요일 세계 각처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이 타당한 수천 가지의 표현과 형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린다. 형식이 어떻든 간에 진정한 예배는 우뇌와 좌뇌를 모두 활용한다. 그것은 감성과 지성, 가슴과 생각을 모두 움직인다. 우리는 영과 진실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했다.
성장하는 미국교회에서, 그 외 많은 것들을 배우고 돌아오면서 목회 말년이 아닌, 좀 이른 나이에 이런 견학을 했다면 필자의 목회가 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개선할 것을 개선하되 특히 생동 있는 예배를 드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우선 예배를 인도하는 필자부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1부 예배부터 3부 예배까지 20분전에 강단 의자 아래 무릎을 조아리고 신령한 은혜가 임하는 예배, 말씀으로 역사 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준비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다녀온 때부터 필자가 그런 변화된 자세를 보이니 당회원들부터 긴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배를 인도하는 때도 지금까지는 달리 찬송을 부를 때나 설교를 할 때나 다른 순서를 인도할 때도 필자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했다. 그러므로 예배 분위기가 달라지고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임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열린 예배란 별 것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전통적인 예배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을 향해서 신령과 진정의 자세로 심령 문을 열고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도 하늘 문을 여시고 그 예배 위에 신령한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그 예배가 산 예배요, 열린 예배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후배들이여, 여러분부터 진정한 자세로 예배를 인도하라.
그 때 교인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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