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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투자하는 것만큼 좋은 재테크는 없다
[20대에 반드시 해볼 도전6가지 ⑥]
2008년 06월 03일 (화) 09:04:10 정은혜 hipc6012@cry.or.kr

직장에 다니면서도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는 고객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대개 학비를 마련한다음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제적 여건이 되었을 때는 막상 주저하게 된다. 만만치 않은 돈과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가며 공부할 가치가 있는지, 괜히 시간 낭비 돈 낭비 힘 낭비하는 건 아닌지 회의가 든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일단 시작해보라.”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캐나다에서 또 하나 깨달은 것은 교육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캐나다 빈민촌 사람들과 홈리스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조금만 더 배웠더라면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자는 본능만 충족시키며 사는 그들을 보노라면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일해서 가난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결정했다.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고 각종 학원도 무수히 다녔지만 석사학위만큼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캐나다에서 돌아오자마자 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바로 그 때문 이었다. 캐나다에서 유학할 경우 학비와 생활비로 들어가는 돈이 1년에 5천만 원에서 1억 원 정도다. 한 학기당 등록금이 400~500 만원 하는 국내 대학원에 비하면 너무나 큰돈이다. 그러나 캐나다에서의 삶은 인생을 더 크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젊을 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아버지는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병이 나는 딸에게 대학원 입학금을 조금 보태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혜야, 그렇게 대학원에 가고 싶니? 사실 석사학위가 네 미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못해 병이 난다면 더 큰 일이지. 그러니 치료비라고 생각하고 네 인생에 학비를 투자하렴.” 사람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는 순수하게 공부를 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에 적용하고 인맥을 쌓기 위한 하나의 사업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한국의 카스트 제도인 학벌에서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동기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오히려 존중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생활에 여유가 없는 경우는 투자비용 대비 이득의 대차 대조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학비 3천만 원과 2년의 시간을 투자했을 때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그 이득이 공부의 즐거움이라도 좋고,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네트워크 형성과 학위 취득 후 연봉의 변화를 생각해보는 것도 필수다. 나 역시 돈을 버는 데 보탬이 되는 공부를 선택했다.

그래서 영어 실력을 더 향상시키기 위해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북미학과에 입학했다. 하부전공으로는 경제를 선택했다. 인지도에 비해 외대의 국제지역대학원은 입학금이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내가 입학할 당시에는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 70만 원이 주어졌기 때문에 등록금으로 실제 들어간 돈은 180만 원 정도였다. 일단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공부만 할 수는 없는 형편이라 매일 지역정보지를 뒤지며 일거리를 찾았다.

물론 이번에는 무턱대고 찾기보다는 대학원생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일을 찾았다. 그러다가 토익을 공부하고 싶다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 만나보니 어느 기업의 과장이었고, 나는 이력서를 건네며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어떻게 더 잘 가르칠 수 있는지를 피력했다. 결국 그는 많은 후보자들을 뒤로하고 나를 선택해주었다. 나는 6개월간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1주일에 두세 번씩 두 시간 동안 외대의 빈 강의실에서 그를 가르쳤다.

수업료로 한 달에 100만 원을 받았다. 그렇게 대학원 등록금과 교재비 및 생활비를 벌었다. 투자보다 수익을 더 크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실용 학문으로 선택한 북미 경제라는 전공이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친구들은 세 시간만 공부해도 되는 것을 나는 열 시간을 공부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경제학이라는 분야에는 꼼꼼하고 사무적이며 수치에 민감한 학생이 더 적합했다.

장사를 하거나 회사를 다니는 부모 밑에서 자라 셈이 빠른 사람이라면 더욱 맞을 것이다 . 반면 내 경우는 어찌어찌해서 졸업은 할 수 있겠지만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분야를 전공해야 즐겁게 공부하고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즉 2년을 투자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어떻게 과거의 이력과 공부를 연관시킬 수 있을까? 과연 내가 타고난 적성은 무엇이고, 잠재력은 무엇인가? 몇 달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심리학이었다.

부모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무의식중에 그렇게 훈육되었던 것 같다. 나는 어머니가 전화로 상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고, 교인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 해왔다. 캐나다에서도 팁을 받기 위해 손님들의 마음을 맞추려 노력했고, 면접에서 매니저가 원하는 대답을 하기 위해 애썼다.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사회심리학이 적합할 듯했다. 그해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심리학과에 들어갔다. 그때도 수중에 가진 돈은 고작 200만 원이었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마음으로 입학을 결정했다 . 한 학기당 400만 원의 등록금 네 번과 매달 100만 원의 생활비를 계산해보니 대략 4천만 원이 필요했다. 나는 매 학기마다 돈을 벌기 위한 전략을 세웠고 2년 동안 계획한 대로 벌고 계획한 대로 지출했다. 졸업하는 달에는 정확히 30만 원이 남았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첫 번째 무기는 장학금이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과 조교로 840만 원을 받았고, 그 외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세 번 더 받아 모두 1천 200만 원의 혜택을 받았다. 사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드물지만 학교신문을 꼼꼼히 읽다 보면 의외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장학금 수혜자를 찾는 공고가 나올 때마다 나는 재빨리 지원했고 적합한 서류를 제출해 합격할 수 있었다.

나의 두 번째 무기는 영어 실력이었다. 저녁에 중고등학생 을 대상으로 영어 과외를 하거나 성인들에게 영어회회를 가르쳤다. 내가 직접 가르치러 갈 때도 있었고 세 들어 살고 있는 빌라로 학생들이 올 때도 있었다. 직장인들에게는 맞춤식 과외를 하는 등 아이디어를 내 마케팅을 했다. 시간이 날 때 언제든 내 집으로 오면 시간당 2만 원의 수업료를 받고 발음 교정, 토익, 회화, 영작, 회사 프레젠테이션 등 원하는 영어 수업을 해주었다.

캐나다에서 인터뷰를 했던 경험을 살려 외국인 회사에 취직하려는 사람에게 인터뷰 요령을 가르치거나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협상하는 방법을 코치해주기도 했다. 호주의 웹사이트에서 푸들을 찾아 일본에 파는 무역상을 도와 정보 검색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돈을 벌면서 대학원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한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생을 길게 본다면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은 결코 아깝지 않은 일이다.

/ '가난을 핑계로 꿈을 버리지 마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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