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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스승은 있는가
[젊은 크리스천에 보내는 편지 ⑥]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스승을 모시는 것
2008년 01월 12일 (토) 11:59:33 김태복 발행인 hipc6012@cry.or.kr

스승을 추방하는 사회

오늘 만큼 스승이 그리워지는 때가 없다. 지금 되고 있는 모든 사태를 보노라면 해도 너무 한다는 자탄이 절로 신음처럼 터져 나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당리당략에만 매여 민생을 위한 정치에는 한 발자국도 전진 못하는 정치가들, 전쟁 체험세대는 누구나 한번쯤 등골이 오싹 느껴지게 만드는 노사분규 시 나타나는 저 붉은 깃발과 화염병들, 부정한 방법으로 떼돈을 번 자들의 흥청망청 벌리고 방탕, 음란에 의해 날로 번창하는 향락 산업, 중학교 여학생들이 원조교제를 통해서 몸을 팔기를 다반사로 하는 세태들, 그리고 손녀 벌 되는 아이와 육적 관계를 맺고 있는 어른들, 이런 망국적 풍토 앞에는 성경 표현대로 유구무언(有口無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스승의 설자리가 점점 사라지므로 미래의 한국의 정신적으로 황폐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스승의 가장 큰 권한은 제자들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훈계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온통 부족한 것 투성이므로 스승에게서 훈계를 받아야 하고 어느 때는 매질을 통해서 나쁜 본능을 제어하고 모난 부분을 전정(剪定)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매를 때렸다고 해서 제자들이 경찰에 고발하고, 철없는 엄마들은 교무실에서 난동을 부리고, 교육당국은 그런 제도를 장려하므로 이제는 스승들의 권위라는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무슨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학교는 교육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학생들이 학교는 내 신성적을 받는 곳으로, 진학을 위한 지식은 학원이나 과외 공부로 충당하는 식의 교육이 되어버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도처에서 교육의 황폐함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고, 이런 낌새를 눈치 챈 사람들은 '한국에는 교육의 희망이 하나도 없다'라면서 교육 이민을 떠나는 가족들이 점증(漸增)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러한 징후들은 이미 80년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민주화 과정에서 노골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5공화국에서 권력자의 노리개처럼 무력하게 순응해 왔다는 죄목만으로 제자들은 명분도 뚜렷한 것 없이 총장실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심한 경우에 는 모든 집기를 부수거나 불 태워 버리기를 다반사로 하거나 어느 교수가 자기들과 뜻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교수의 암자 같은 강단에서 끌어내리고, 교수들이 젊은 날 고학할 때, 점심을 굶어가며 사들인, 이제 와서는 낡은 것이 되었으나 그에게는 생명이나 다름없는 서적을 연구실에서 꺼내어 불태우는 저 비정한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가 이미 살해된 끔찍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 이제는 쓴 열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급한 노파심일까?

도덕적인 황폐의 원인

오늘 한국사회는 심한 도덕 암흑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도덕적인 황폐의 원인이 사회의 저 탐욕의 검은 손길이 사기와 음란과 음모, 살인을 저지르도록 방치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덕적 제어능력이 상실되었는가? 아니면 이 사회는 그러한 범죄를 즐기고 있을 만큼 타락되어 버렸는가? 나는 어느 글에서 이러한 원인에 대해서 부족하나마 써본 적이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혹자는 악덕 재벌 탓이다. 혹자는 정치가의 부도덕 탓이다. 흑자는 국민의 도덕을 책임진 종교가들이 썩은 탓이다. 혹자는 끝없이 계속되는 데모 탓이다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 그것은 국민의 정신에 맑은 샘물을 넣어줄 스승이 없는 탓이다. 사무엘, 이사야가 없다. 안창호나 이승훈, 조만식이 없는 탓이다. 모든 정치, 모든 종교, 모든 교육에도 맑은 샘이 공급되어질 때, 맑은 정치, 맑은 종료, 맑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혹자는 설교를 맡은 목회자들이 잘못 계도(啓導)하는 탓이라고 비판하지만 목회자들도 사실은 전문인에 불과하다. 목회자들에게도 정신적인 스승의 맑은 물에 접할 때에 그 말씀들도 맑아지고 그의 목회도 맑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60년대, 70년대 정치가 범한 큰 실책은 정신적인 스승들을 모두 정치적인 교수로 몰아세워서 그들의 말, 그들의 글들을 봉쇄함으로 사상의 샘을 막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정신이 오염되어지고 혼탁해지는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 시대에 성장한 아이들이 오늘의 거리에서 무서운 아이들로 휘젓고 다니게 된 것이다.>


60년대 초에 나는 지방대학의 학생이었다. 그 대학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심한 열등의식을 상처처럼 숨기고 스스로 자학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로 더 오만한 듯 행동했고, 그것은 서울에 있는 대학의 배지를 단 학생들 앞에서는 더 심하게 노출되고는 했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더 심한 허탈감을 맛보곤 했다. 그러한 때, 내게 스승을 소개해준 책이 '사상계(思想界)'라는 잡지였다. 나는 그 지면에서 함석헌, 김성식, 홍이섭, 유달영, 김형석, 백락준, 안병욱 등을 만나 뵙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떠먹이는 대로 걸신들린 것처럼 사상의 음료들을 들이마셨다.

또한 역사에 대해 눈이 떴고 조국에 대한 깊은 아픔을 배태(胚胎)했다. 스승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의 또 하나는 조국의 역사 속에 거목처럼 버텨준 인물들은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도산 안창호, 월남 이상재, 김교신 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조국, 이웃을 향해 사심 없이 헌신하는 그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의기, 그 관용, 그 담대, 그 희생 앞에 나는 울듯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좁고 조잡스럽게 살고 있는가를 일깨워 주었다. 스승들은 내가 다니는 지방대학을 '똥통대학'이라 부르며 자조(自嘲)하던 그 열등의식의 사슬을 벗겨주고, 저 아파하는 조국을 향해 헌신하겠다는 뜨거운 의욕을 가슴에 심어 주었다.

그것은 지금에 와서는 아주 사소한 하나의 사건에 불과해 보이나 그 때의 저 열등의식을 앓으며 들짐승처럼 무엇인가 작살내지 않고는 안 될 것 같던 그 절박했던 입장에서는 엄청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었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여전히 보잘 것 없는 캠퍼스를 가진 대학, 노란 노트를 궁상스럽게 불러주고 있는 교수들의 졸강(拙講), 그리고 열등의식의 깊이만큼 더 각혈하듯 마구 고함을 질러대는 대학생들이 판치는 강의실이라도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본관 앞 숲의 잔디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며 환상의 날개를 펴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스승들이 준 가르침의 탓이었다.

그러나 비극의 날들이 왔다. 젊은 군인들을 중심으로 탱크를 몰고 혁명을 일으켰고 마침내는 바른 소리를 하는 스승들을 억압하고 '사상계'를 폐간시켜 버린 것이다. 민족의 사상의 샘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신 '우리도 잘 살아보자'라는 새마을 노래를 동사무소의 스피커를 통해 새벽부터 억세게도 들려주곤 했다. 시민들은 서서히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번 잘 살아보기' 위해 아무 철학적 바탕도 없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처럼 벌었다. 그 으뜸의 방법이 부동산투기였다. 그리하여 판자촌이 가득하던 도시 위에 거대한 빌딩의 타운이 건립하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놀라고, 세계가 경탄할 만한 기적적인 고도성장이었다. 시민들은 그처럼 동경해 마지않던 선진국이 이룩된 줄로 착각하고 너나없이 승용차들을 구입하고 휴일이면 식구들을 동반하고 교외에 나가 코에 냄새가 나도록 고기를 구워 먹고, 호텔에서 값비싼 '뷔페'를 먹는 것으로 자기의 부를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아무 도덕적인 바탕 없이 배부른 사회에 본능만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가장 큰 바람은 음란의 미친바람이었다. 초등학교 어린 여학생을 추행하고 목 졸라 살해하는 야수성이 여기저기서 터지면서 의식 있는 분들이 탄식하기 시작했지만, 그 미친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이 이 도시를 이처럼 성(性)에 굶주린 들짐승으로 화하게 했으며, 이리의 횐 이빨 같은 폭력이 횡행하게 되었는가? 분명하지 않은가? 쿠데타를 주도한 무장한 군인들이 연구실에 무단 침입하여 스승들을 끌어내고 그들의 붓을 꺾어 버렸을 때, 기성세대가 침묵한 탓이며, 도리어 '우리도 잘 살아보세'라고 노래 부르며 행진하는 군인들을 따라 오직 금광 캐는 데만 몰두하고 그렇게 번 떼돈을 음란의 물을 마시는 데만 낭비할 뿐, 저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자녀들이 샘 대신 오염된 탐욕의 독을 마시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결과였다.

60년대와 70년대의 거리에서 탐욕의 독을 마시고 성장한 세대가 지금 무서운 젊은이가 되어 각혈하듯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민족의 스승들을 추방한 형벌임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스승을 다시 모셔야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민족의 스승들을 다시 그들의 암자 같은 강단으로 모셔야 하며 그들의 붓을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지는 것이다. 민족의 스승은 윗물의 샘과 같다. 맑은 샘이 위에서 흐르기 시작할 때 위의 '화이트 컬러 그룹'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정치인, 기업인, 교수, 의사, 예술인의 사상과 삶의 태도가 맑아진다. 종교인들의 가르침도 맑은 샘이 흐르기 시작한다.
10여 전인가, 「마하트마 간디」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민족의 스승이었다. 그가 바로 서있을 때, 흔들리던 지도급 인사들도 안정되고 폭력과 테러가 난무하던 나라도 어둠이 벗겨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 탄탄한 안정의 도전 앞에 대영제국(大英帝國)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마틴 루터 킹」목사의 샘이 흑인사회를 안정시켰다. 그렇다면 우리 조국의 스승은 어디로 갔는가, 어서 모셔와 저 텔레비전 앞에라도 말씀하도록 서두르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는 사태가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 일본의 저 군국주의 시절에도 반정부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일본의 스승, 내촌감삼(內村監三)과 하천풍언을 추방하지는 않았었다. 그러한 스승을 존경하는 풍조가 패전의 잿더미 위에서도 일본을 의연히 일어날 수 있게 했다면 우리의 60, 70년대 실책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민족의 스승이 그의 정신적인 암자에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그 사회와 그 시민의 도덕성은 증진된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며,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로 알려진 「다니엘 벨」은 말하기를, '인류의 역사를 머리에 떠올리면 오늘의 인간이 가진 엄청난 파괴 잠재력이 부각될 것입니다. 인류는 이중적입니다. 인류에게는 사랑의 잠재력과 학살의 잠재력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대체로 학살의 잠재력 쪽이 더 강하다는 게 입증되었습니다'고 했다. 민족의 스승이 맑은 샘을 공급하는 동안 사랑의 잠재력이 증진될 것이나 스승의 부재 시는 학살의 잠재력이 증진되어 사회가 황폐화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정황이 그런 입장이 아닌가?
아니 된다. 젊은 크리스천들이여, 여러분부터 스승을 찾기 시작하라. 하나님나라 스승은 예수님이시나 이 땅의 나라에서는 자기의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을 존경하는 자만이 자기도 존경을 받는 자 되고 섬기는 자가 된다. 나는 대학 1년 때 유달영의 「인생노트」라는 저서에서 스승은 찾아야 만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그가 소개하고 있는 「달마」(達磨)를 찾아간 사나이」라는 이야기에서였다.

신광이라는 청년은 음력 12월, 깊은 눈 속을 뚫고 위나라의 낙양 근처의 소림사(小林寺)로, 9년 동안 면벽하며 도를 쌓고 있는 달마대사에게 가서 제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만나주지 조차 않자, 눈 속에 밤새도록 버티며 기다렸고 그래도 허락지 않자, 마침내 허리에 있던 칼을 뽑아 왼쪽 팔을 후려쳐 각오를 보이므로 제자가 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스승을 강단에서 끌어내리고 고발하는 시대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시대 젊은 크리스천이 반드시 들어야할 교훈이다.

나의 목회적 스승

나에게는 천만다행으로 목회상의 스승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지금 목회하는 교회의 전임자이신 김관호 목사님이시다. 스승을 만나 뵙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주관하는 잡지 「소리지」에서였다. 나는 그 지면에 투고할 기회가 있었으며 그 글의 내용이 스승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스승의 선비적인 고고함에 반했다. 그는 언제나 모든 면에 초연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스승을 처음 뵈었을 때는 이미 60대 후반의 나이에 이른 탓인지 몰라도 세상에 집착되지 않은, 학처럼 고고한 모습으로 그 앞에서는 언제나 욕망으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지곤 했다.

스승이 자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시기 전 출간한 「하늘노래」라는 시집 머리에 '축하드리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의 일부를 옮기면서 스승에 대한 소개를 대신하고 싶다.

<스승의 시(詩)는 골 하늘 노래였다. 그의 노년은 풍우(風雨)만이 찾아드는 강변과 황혼의 고독이 벌레의 구슬픈 노래처럼 희뿌옇게 뿌려지는 어둑한 계곡에서 돌을 모으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돌만이 진실과 세월과 저 은폐된 아픈 역사를 말해주기 때문일까? 그의 서가(書架)는 차츰 손때 묻은 책들이 치워지고 그가 한강과 한탄강과 영월과 강화도에서,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조국의 모든 후미진 곳에서 수집한 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간혹 찾아뵐 때마다 새로운 돌들이 나부(裸婦)처럼 수줍게 거기 앉아 있었다. 스승은 많은 시간 그 돌들을 면대하고 있었다. 그 돌들을 바라보며 인생의 지나간 노정을 되살리고 있었고 두고 온 고향 재령의 아름다운 산하(山河)를, 부모님의 품속을 거닐며 목이 메어했고, 그 돌들을 매만지며 조국의 아팠던 역사를 느끼고는 했다. 그러다가 그는 시를 적기 시작했다. 돌의 소리를 그의 노트에 옮겨보기 시작했다. 스승은 번번이 중얼거리고는 했다. '저 돌의 미와 깊이를 내 시는 표현 못하고 있어' 그리고는 그의 습작노트를 태워버리고는 했다. 그의 아호(雅號)처럼 툇돌 밑에 난초를 보았고, 초당(草堂)의 버들가지를 보았고, 무인의 들판 위에 흐느끼는 갈대의 노래를 들었다. 그 모습은 승화된 모습이었다.>


스승들이여, 순교적인 정신으로 암자를 지키시옵소서.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단호히 일러 주옵소서. 제자들이여, 앞으로 태어날 당신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당신네 스승의 암자를 지켜드리라. 저 난폭한 무뢰한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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