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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서 유명산? '유명'이가 올라사 유명산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 가평 유명산
2011년 08월 20일 (토) 20:55:45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유명산 정상의 표지석 뒤로 바라보이는 용문산과 뭉게구름
ⓒ 이승철
 

"아저씨 뭘 좀 여쭤볼게요, 이 산 이름이 유명산인데 혹시 너무 유명해서 유명산인가요?" 

유명산 정상에 올라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네 명의 여성들 중 한 명이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서는 내게 물었다. 

"아, 네, 유명해서 유명산이 아니고요, 유명이라는 여성이 이 산에 올라서 유명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고 하네요." 

정말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유명산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묻는 등산객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그때까지 이 산에 이름이 없었다는 얘기네요? 그때 내가 올랐더라면 내 이름이 되는 건데, 아깝다 아까워, 호호호." 

내가 알고 있는 유명산에 대한 이름의 유래를 설명해 주자 여성등산객들은 더욱 신기한 표정을 짓는다.  

   
유명산 입구 계곡 풍경
ⓒ 이승철
 

그러나 본래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옛날의 이름은 말을 방목하여 기르던 산이라 하여 '마유산'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1970년대 국토대장정을 하던 대원들이 이 산에 올랐을 때 지도에 이름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홍일점 대원이었던 '진유명'이라는 여성의 이름을 따 유명산이라고 부른 것이 그대로 산 이름이 되고 말았다. 

유명산의 이름 유래와 가장 적은 교통비로 찾아가기 

그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유명산을 오른 것은 8월 중순이었다. 기름값도 만만치 않은데 승용차를 몰고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중교통요금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유명산까지 가는 대중교통요금도 상봉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직행버스요금은 6200원이었다. 

그런데 정보검색으로 찾아낸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좌석버스요금은 1700원이었다. 직행버스요금의 1/3도 안 된다. 요금의 차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현지까지 가는 시간이 직행버스보다 조금 더 걸리기는 하겠지만 백수 등산객들이 그리 바쁠 일이 뭐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하루에 겨우 3회 왕복운행이라 운행시격이 너무 컸다. 더구나 아침시간에 출발하는 좌석버스는 9시 정각 딱 한 대뿐이었다. 이 버스를 놓치면 낭패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일행들에게 시간 여유 있게 8시 40분까지 청량리 역 앞 버스 환승센터로 모이도록 연락을 할 수밖에. 

   
저 앞쪽의 뾰족한 산이 중미산
ⓒ 이승철
 

일행들은 약속시간을 그야말로 칼 같이 잘 지키는 사람들이어서 지하철을 타고와 약속시간 5분 전에 모두 모였다. 그런데 정류장에서 운행안내판을 살펴보니 유명산 행 버스노선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청량리에서 유명산으로 가는 좌석버스는 1330-6번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번호가 아예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 안내판엔 1330-1번과 2번 두 개밖에 안 나와 있는 걸. 6번은 보이지도 않아. 그쪽으로 운행되는 버스 혹시 없어진 것 아녀?" 

일행들이 걱정을 한다. 있지도 않은 버스 기다리다가 낭패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9시가 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는 수밖에. 그런데 9시 정각이 되자 1330-6번이 아닌 1330-7번이 들어왔다. 버스 앞머리에는 청량이-설악(유명산)이라는 운행구간이 쓰여 있었다. 버스에 오르면서 운전기사에게 확인하자 유명산까지 가는 버스가 틀림없었다. 

버스는 청평터미널에 들러 자동 세차까지 한 다음 유명산으로 달렸다. 날씨는 쨍하고 맑았다. 참 오랜만의 밝은 햇빛이었다. 청평대교를 건너며 바라본 청평댐은 다섯 개의 수문을 열고 물을 방류하고 있었다. 버스는 청평 호수를 끼고 달리다가 설악을 거쳐 곧장 유명산 입구로 들어섰다. 정확히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정상의 소나무 아래 명산카페(?)
ⓒ 이승철
 

유명산 입구 입장권을 파는 곳까지 가는 동안 등산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자 뒤 따라 온 듯한 젊은 커플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들을 앞지른다. 골짜기를 타고 조금 올라가다가 숲길로 들어섰다. 

"천천히 올라가셔도 됩니다. 참 좋은 산이네요. 잘 다녀오세요." 

이번에는 맞은 편 산 위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줄줄이 내려온다. 아침 일찍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었다. 등산객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멀리 평택에서 왔노라고 하면서 우리들의 산행을 격려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덥지 않고 선선하니까 산행이 한결 수월하구먼. 숲이 우거져서 햇빛까지 가려주니 정말 더 시원하고 좋네." 

이 산을 난생 처음 오른다는 일행 한 사람은 모처럼 시원한 날씨에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우거진 숲길, 평원처럼 넓게 툭 트인 정상 풍경과 맨발 3총사 

오르는 산길은 싱그러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쨍쨍하게 빛나는 햇볕을 완전히 가려주는 울창한 숲 때문이었다. 길가에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잣나무들과 함께 각종 잡목들이 빽빽하여 열대우림을 연상케 했다. 

   
정상까지 맨발로 오른 아주머니 등산객 3총사
ⓒ 이승철
 

산은 육산이어서 흙길이었다, 더구나 어젯밤 비라도 내린 듯 촉촉하게 젖어 있는 산길을 밟고 걷는 발바닥의 감촉이 매우 부드러웠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걸어 능선길에 오르자 여기서부터는 바윗길이다. 험하지는 않았지만 크고 작은 바위들이 늘어선 길은 흙길과는 또 다른 등산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였다. 우리 일행들이 잠깐 쉬며 간식을 먹고 있을 때 샛길로 올라온 듯한 할머니들 셋이 구성진 노래를 부르며 올라오고 있었다.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우리 일행을 발견한 할머니들이 노래를 멈추자 일행 중 한사람이 할머니들이 부르던 노래를 이어 불렀다. 

"정상까지 아직 멀었수? 아이쿠 힘들어." 

가까이 다가온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다. 약 500미터쯤 남았다고 가르쳐드리자 할머니들은 다시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올라간다. 느릿느릿 여유롭고 한가한 걸음이었다

   
유명계곡의 작은 폭포
ⓒ 이승철
 

정상에 오르자 시야가 툭 트인다. 어비산 너머로 우뚝 솟은 용문산 위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풍경이 그리움처럼 아련하다. 양평 쪽으로는 한강 물줄기가 용트림을 하는 모습이고, 서쪽으로는 소구니산을 거쳐 중미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정상에는 해발 862미터라는 정성 표지석과 함께 작은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여기 명산 카페가 있네. 이곳에서 간식을 들며 쉬었다가 내려가지." 

산꼭대기에 웬 카페일까? 그런데 커다란 소나무 밑에 정말 카페가 있었다. 막걸리와 물, 음료수를 파는 카페, 그러나 자리만 마련되어 있을 뿐 사람이나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소나무 밑 명산카페에서 쉬고 있을 때 40대로 보이는 여성들 세 명이 올라온다. 그런데 이 여성들은 모두 신발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맨발이었다. 정상에 도착한 이 여성들도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럼요. 괜찮아요. 맨발 등산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자주 하다보면 보통이에요." 

밑에서부터 맨발로 올라왔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이 여성들은 산행을 맨발로 한다는 것이었다. 산이 아주 험할 때만 등산화를 신는다는 것이었다. 

   
남자들도 발자랑 하느냐구요? 물이 차가워 발이 시리답니다
ⓒ 이승철
 

요즘은 맨발 등산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 여성등산객들도 그들 중 하나였다.  

"얼굴은 찍지 말고 예쁜 발만 찍으세요. 호호호."  

맨발로 산을 오른 건각들 사진 좀 찍자고 하자 얼굴은 찍지 말고 발만 찍으라고 한다. 

하산은 골짜기 길을 택했다. 날씨가 서늘하다고는 해도 오를 때 흘린 땀도 식히고 발이라도 물에 담그고 싶었기 때문이다.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은 곳곳에 졸졸 물이 흐르는 곳이 많았다. 골짜기는 어비산과 유명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으로 산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유명계곡'이었다. 

산만큼이나 유명한 '유명계곡',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네 

계곡이 가까워지자 콸콸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골짜기로 내려서자 들려오던 물소리처럼 정말 넉넉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양쪽의 어비산과 유명산이 급한 경사를 이루어 폭이 좁은 골짜기는 역시 하늘을 가릴 만큼 숲이 우거져 어둑어둑한 모습이었다.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물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귕소 가까운 곳에서 작은 개울 두 개가 합쳐지면서 수량은 더욱 풍부해졌다. 그렇게 양이 많아진 물은 바위에 부딪쳐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져 내리기도 하고 폭포가 되어 뛰어내렸다. 

   
유명계곡의 용소, 물이 깊어 빠지면 위험합니다
ⓒ 이승철
 

완만하고 넓은 곳에서는 조용히 흐르다가 비좁고 급경사를 이룬 곳에서는 어김없이 굉음을 터뜨리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사람들의 세상살이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다. 인생살이가 어디 평탄하기만 하던가,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처럼 때로는 평안하지만 어느 때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진 시련을 겪으며 살아내는 것이 아니던가. 

계곡은 중간 중간에 귕소와 용소, 그리고 박쥐소라는 세 개의 아름답고 깊은 소(沼)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명소 외에도 작은 폭포와 깊은 웅덩이는 곳곳에 널려 있어서 계곡 전부가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이쯤에서 발이라도 물에 담그고 땀 좀 식히고 내려가지." 

앞 장서 내려가던 일행이 적당한 자리를 잡고 배낭을 벗어 놓는다. 먼저 모자를 벗고 머리에 물을 끼얹자 시원한 느낌이 온 몸으로 퍼져 내려간다. 

"어, 발 시려, 오래 못 있겠는 걸, 어느새 가을인가 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간 일행이 발이 시리다고 한다. 뒤따라 들어간 일행도 마찬가지다. 머리에 끼얹은 감촉보다 물속에 잠근 발에서 오는 느낌이 더 차가웠던 모양이었다. 

   
물에 떠내려가다가 구조된 여성
ⓒ 이승철
 

"정말 그래. 며칠 사이에 가을이 왔나봐. 물이 이렇게 차가운 걸 보면, 거참 계절은 어김이 없구먼." 

물 속 바위에 걸터앉은 세 사람의 다리와 발이 파리해 보인다. 차가운 물 온도 때문이었다. 지독한 무더위로 밤잠을 설치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그 사이 가을이 성큼 다가와 서늘한 바람과 함께 개울물까지 차가와진 것이다. 

"그만 내려가지, 발도 시리고 몸도 추워지려고 그래." 

일행들이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오자 차가운 물속에서 물놀이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대부분 아이들과 젊은이들이었다. 

"아아 악!" 

바로 그때 앞 쪽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젊은 여성 한 사람이 물살에 떠밀리며 지르는 비명소리였다. 그러나 다행히 바로 근처에 있던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이끌려 물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차! 했으면 익사는 아니더라도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던 순간이었다. 

근처에는 '이곳은 익사 사고가 난 곳이니 익수금지'라는 안내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급한 물살로 흐르는 깊은 개울에 들어갔다가 혼이 난 셈이었다. 조금 더 내려오자 산림청 직원 두 사람이 작은 트럭을 타고 올라오다가 물놀이 하는 사람들을 물 밖으로 나오라고 단속하고 있었다. 

   
방류 중인 청평댐과 호명산 구름 풍경
ⓒ 이승철
 

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좌석버스 시간은 오후 5시 55분이어서 점심 겸 저녁을 먹을 시간은 충분했다. 일행들은 근처 식당에서 모처럼 소주를 곁들인 얼큰한 민물매운탕으로 산행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늘해진 날씨만큼이나 낮의 길이도 짧아져 있었다. 오후 6시경에 출발한 청량리  행 버스가 청평호수를 지나 댐 근처에 이르자 서쪽 산 위에 걸린 태양이 구름 속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고 밝게 빛난다, 청평 댐은 여전히 수문을 열고 방류하고 있었다. 청평댐 뒤쪽으로 불쑥 솟아오른 호명산 위의 하얀 뭉게구름이 석양빛을 받아 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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