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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나는 여행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20대에 반드시 해볼 도전 6가지 ③]
2008년 05월 22일 (목) 16:51:52 정은혜 webmaster@cry.or.kr

내 안에도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는 나 혼자 떠난 배낭여행에서였다. 가난한 목사의 딸로 자란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는 숫기 없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수업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할 용기가 없어 결국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린 아주 소심한 아이였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그렇게 소심하게 살다가 2학년 교육 심리학 시간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배웠다. 내 안에는 에고, 슈퍼에고 이드가 있는데 엄마 같은 슈퍼에고가 어린아이인 에고를 키우고 성장시킬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즉 나 자신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음을 배웠다. 내가 나를 키우기 위해 선 택한 방법은 배낭여행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홀로 30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 한 달간은 내가 인생을 더욱 용기 있게 살아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I have a confidence.' 나는 자신 있다. 1997년 6월 한 달간, 서울을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여행 마지막 날까지 매일 일기장 맨 첫줄에 쓴 문장이다. 나는 부모 없이 혼자서도 비행기를 탈 수 있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자신이 있다.

나는 어려운 점을 솔직히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할 자신이 있다. 나는 호텔에 전화를 걸어 예약할 자신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존재를 무시해도 내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할 자신이 있다. 나는 내가 친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할 자신이 있다. 유럽여행은 지구 반대쪽에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22년간 내성적인 모습으로 살아온 내 안에도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적극성과 용기가 있음을 처음 깨달았던 기회이기도 했다.

30일 가운데 8일간은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자고, 경비를 아끼기 위해 빵으로 두 끼니를 해결하곤 했지만 즐거웠다. 나에게도 내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배낭여행을 위해 그해 1월부터 5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 경비 300만원을 모았다. 여권도 만들고 모든 준비를 끝낸 뒤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했다. 부모님은 선뜻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 말고는 주일 예배 반주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 끝에 같은 과 친구에게 한 달간 교회 반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해본 부탁이었다. 그전까지는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누군가에게 내 일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해본 적이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친구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기쁘게도 나는 자유가 되었다. 부모님을 떠나 잠을 자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나는 소심한데다 독립심도 없었다.

엄마가 안 보이면 눈물부터 짜던 의존적 인 어린애였다. 대학교 1학년 때 2박 3일간의 입학 오리엔테이션 때도 적응하지 못해 혼자 눈물을 흘렸다. 남들은 쉽게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부모님과 오빠들은 물론 친구들도 내가 정말 유럽으로 떠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첫 여행지는 영국이었다. 낯선 곳에 도착하자마자 시련에 부딪혔다.

같은 여행사를 통해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온 무리들에서 떨어져 미아가 된 것이다. 그날 묵을 숙소를 정하기 위 해 여행 가이드북에 나온 호댈 목록을 보며 지하철에서 전화를 거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 너무 두려워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 마치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몇 시간 후 다행히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겁부터 먹는 아이 그게 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누드로 레즈비언 모델이 되어달라는 사진작가를 만났고, 섹스를 가르쳐주겠다는 남자도 만났다. 이탈리아로 가는 열차에서는 가방을 도둑맞았고 벨기에에서는 여권을 분실해 다시 만들어야 했다. 열차에서 아침에 눈을 뜨니 목적지와 전혀 다른 나라에 와 있었던 일, 흑인 아저씨에게 벨기에 돈을 구걸해야 했던 일, 프랑스 지하철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고 벌금을 물었던 일, 체코로 가는 열차에서 여권을 빼앗겼던 일 등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여행 중에 만난 친구와 싸우고 헤어져 남은 보름 동안 혼자 다녀야 했던 것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에서는 적극적인 그 친구를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여행 가이드북을 보며 유명한 유적지들만 찾아다니면 되었다. 하지만 친구와 헤어진 후로는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러나 독립심을 키우는 데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를 여행하면서 내가 보고 싶은 곳과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잘 곳을 혼자 계획하고 찾아다녔다. 빠른 시간에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누구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아 나 자신과의 대화로만 하루를 채웠다. 누구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사나흘이 지나자 외로움이 밀려왔다. 누군가와의 대화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사실을 그때만큼 절실히 느낀 적도 없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려고 노력했고 그랬더니 친구들이 생겼다. 늘 수동적으로 행동하며 누군가로부터 선택을 받아야만 친밀함을 나눴던 나로서는 대단한 경험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선택할 수도 있고 상대방도 그 선택을 매우 달가워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특히 독일 마르부르크의 시골 마을에서는 이탈리아 연인들을 만나 염치 좋게 차를 얻어 타고 함께 다니기도 했다. 오늘은 일본 사람, 내일은 이란 사람, 모레는 홍콩사람 이런 식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탁구도 치며 즐겁게 어울렸다.

귀국 1주일을 남겨두고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정희라는 아이를 만났다. 빈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던 정희는 어려서부터 유학 생활을 해온 부잣집 딸이었다. 그녀는 나를 친언니처럼 따랐고 오스트리아에 머무는 1주일 내내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자신의 옷도 내게 주고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주었다. 천사 같은 아이였다. 나를 나그네가 아닌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어떤 조건도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애정이었다.

내 인생의 고작 7일 동안 이었지만 내게 그토록 사랑을 듬뿍 주었던 사람을 전에는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나도 누군가를 믿고 사랑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랬다. 그 한 달 동안 외국인을 비롯해 다양한 한국인들을 만났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모두 자신만의 꿈과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세상에는 내가 몰랐던 다양한 삶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드넓은 세상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적응해기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에너지를 얻었다.

나도 내 인생이라는 도화지 위에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전까지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라 부모님이 그려준 인생대로 나의 삶을 살려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원하는 사범대를 선택했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여자의 평생직장으로 더할 나위 없는 교사가 되려고 했다. 내 꿈은 교사였다. 그런데 꿈을 생각하면 즐겁지가 않았다. 그것은 나의 꿈이 아니라 부모님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가 되기보다 학교를 설립하고 싶었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성인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강사가 되고 싶었다. 여행이 끝났을 때 나는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니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생은 태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다. 이제는 나 스스로 나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자신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일기를 그렇게 마무리했다.

 ('가난을 핑계로 꿈을 버리지 마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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