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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에 대하여
[20대에 반드시 해볼 도전 6가지 ②]
2008년 05월 21일 (수) 11:27:36 정은혜 webmaster@cry.or.kr

다섯 살 때, 한 아저씨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에게 남자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20 대 초반에 나의 인생에서 남자에 관한 상처를 치유해준 고마운 사람이 등장했다. 나는 그를 통해 남자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남자는 나를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길을 가는 데 꼭 필요한 동반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그는 지금 신부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

2 년 전 일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어 도움을 청했을 때 그는 수도원 친구와 함께 찾아와 집을 말끔히 청소해주었다. 청소도구들을 직접 챙겨와 욕실 바닥이며 베란다, 유리까지 구석구석 정성을 다해 청소해주었다. 형광등을 갈아주고 구겨진 옷들을 다려주는 그를 보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그를 만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에서였다.

처음 만나 편지를 주고받던 1년과 그 후 서로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며 좋은 친구로 사귀었던 세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축복 받은 날들이었다. 내 인생에 그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여전히 난 남성을 적으로 생각하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바빠 내 안의 여성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피해의식으로 남자를 향해 굳게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을 결코 열지 못했을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3학년이 될 때까지 미팅에서도 누군가와 연결된 적이 없었고 남자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대학 시절 내내 청바지에 점퍼 하나 걸치고 다녔던 나는 누가 봐도 호감 가는 외모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화를 이끌어갈 풍부한 상식과 말솜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교 3 학년이 될 때까지 나는 친오빠들 외에는 어떤 남자와도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여학생들하고만 어울리다가 친구들이 하나둘 남 자친구가 생기고 연애하는 것을 보면 시샘이 나곤 했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진심으로 이성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내 안에는 이성 교제를 두려워하는 어린 소녀가 여전히 존재했다. 나는 특히 나이 많은 남자들을 두려워했다. 그때 나는 소녀 시절 풋사랑의 대상 같은 깨끗한 미소년을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인이라기보다는 편지를 주고받고 서로를 격려해주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남자. 이성과의 대화 수준을 성숙시켜줄 수 있는 남자친구. 그리고 나를 아껴주는 친구.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교생 실습을 마치고 동아리로 돌아왔을 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한 청 년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는 맑은 눈에 고운 피부를 가진 미소년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그의 곁을 맴돌았고, 마침내 친구가 되었다.

편지도 주고받고, 일기장도 서로 바꿔 읽고, 영화도 보러 가고, 성당에도 같이 가고, 등산 도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나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남자 기피증을 극복하며 한 여성으로 성장해갔다. 그로 인해 내 안에도 여성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를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아, 좋은 남자와의 만남이 이렇게 즐거운 거구나. 남자가 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구나’하고 느꼈다.

그를 알게 된 후 나는 외모에도 신경 쓰게 되었고, 인생을 하루하루 즐기면서 사는 법도 배웠다. 그는 앞으로 내가 만날 남자가 어떠해야 된다는 지침이 되어주었다. 남성은 여성의 적이 아니라 좋은 동반자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나는 그와의 만남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스물셋, 다른 친구들은 다들 연애에 빠져 있는 나이에 나는 아직도 소녀처럼 풋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감사했다. 그를 만나고 1 년 후 나는 졸업을 했고, 그는 공익근무를 하게 되었다.

내 마음속 그의 자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나는 신부가 되고 싶어.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충격으로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얼마나 많은 밤을 울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하나님도 원망스러웠다. 난생처음 반한 남자, 내 사람을 하나님이 빼앗아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도 나의 슬픔을 아셨던 걸까.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비록 그가 나의 배우자는 아니지만 나의 영원한 친구로 남을 거라는 메시지가 남긴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그제야 그를 한 남자로서 잊을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한 길을 축복해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고 훌륭하게 잘 일구어 나가기를, 나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준 것처럼 상처받은 수많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가난을 핑계로 꿈을 버리지 마라'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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