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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하는 청년들에게
[젊은 크리스천에게 보내는 엽서 ⑤] 광야길 2년…주님의 뜻을 발견하라
2008년 01월 11일 (금) 10:16:36 김태복 발행인 hipc6012@cry.or.kr

여름의 뜨거운 합창들이

한 교회에서 30년 이상 목회를 하다 보니 많은 젊은이들이 군(軍)에 입대하기 위해 인사를 하러 오고, 혹은 훈련소에서, 외진 산골에서 보내는 고독이 담긴 서신들을 받고는 한다. 그때마다 묘한 감동이 젖어오는 것은 세월이라는 흐름과 어떤 아픔들이 뒤섞여 떠오르는 것이다. 나보다 덩치가 큰 그의 건장한 체격과 굳은 표정, 의젓하게 자기 소신(所信)을 피력하는 그의 어른스러움, 그럼에도 어느 구석에는 군대의 2년이라는 미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파문처럼 떨리고 있음을 발견할 때, 나는 거기에서 그의 중학교 초년시절, 풋과일처럼 싱싱한 동안(童顔)과 여름날의 햇볕처럼 해맑던 그의 웃음들이 기억 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여름수련회 때 산골 계곡 냇가에서 여학생들에게 물을 먹이면서 장난치던 그 소년이 이제 저처럼 건장한 청년으로 입대하기 위해 인사하러 오다니……. 목회의 끝없는 업무에 부딪히면서 망각했던 세월이 그만큼의 큰 크기로 오늘 내 앞에 서있는 느낌은 차라리 아픔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나는 40대 중반까지 여름이면, 학생회나 청년회, 수련회에 함께 참여해왔다. 그 관계로 서울 근교의 산골짜기나 강가, 멀리는 동해안까지 다녀오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7월만 되면 유랑벽(流浪癖)같은 충동이 솟구치고는 했었다.

특히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이나 멀리 전방에서나 외국에 취업 차 나간 청년들의 엽서를 받을 때, 그 충동이 더해지며, 그들과 함께 유숙했던 수많은 골짜기와 냇가, 처소(處所)가 떠오르곤 했던 것이다. 만원된 기차 속에 끼어 가면서도 기타에 맞추어 뜨겁게 합창하던 복음송들, 10여 리 길이나 되는 시골길을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서도 즐겁게 깔깔거리던 웃음들, 어느 소녀의 가정사(事)를 들으며 아파하던 순간들, 학교 앞마당의 큰 나무 그늘과 둘러선 숲, 앞 강가나 유난히 아름답던 원주 부근의 어느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특강하던 일,위험스러웠으나 한없이 맑았던 한탄강에서의 수영하던 일들이 빛바랜 사진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어느 대학교의 수양관을 빌려서 사용하던 때, 여름날의 황혼 속에서 식판으로 밥을 먹던 일, 밤하늘을 길게 가로질러간 찬연한 은하수를 보며 우리의 꿈을 활활 태우던 캠프파이어 시간들, 그 모든 추억들은 아직도 내 가슴에 꺼지지 않은 축제(祝祭)의 모닥불로 남아 있어 언제라도 다시 장작을 던지면 활활 타오를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속에서 나는 이제 목회 종반전에 들어서게 되고, 아들 둘이 군에 다녀오는 경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을 교인들 앞에 세우고 기도해 주고는 하는데, 그 때마다 가슴이 눈물처럼 뭉클해지는 것은 다만 그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공유(共有)한 여름날의 추억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밤 숲속에서 너는 보초를 서는가

나는 너의 때 묻은 엽서에서 너의 얼룩진 땀을, 고독의 눈물자국을, 자유에의 진한 열망(熱望)을 읽는다. 7월의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 훈련소에서 사격연습 하느라 수없이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고된 훈련과 점호를 마치고 소등(消燈)이 된 내무반 침상에 누워 취침나팔의 구슬픈 곡(曲)을 들으며 고향집 거실이나 옥상, 혹은 마당에서 늦은 시간에 여름 과일이라도 먹고 있을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제 장교로서, 혹은 사병으로서 또는 아직도 무등병으로 전방 외진 골짜기에서 하루 일과의 훈련을 마치고 먼지와 땀, 혹은 표현할 길 없는 분노가 배인 군모(軍帽)를 쓴 채, 너의 허기진 옆구리에 찬 수통이 덜컹거릴 때 자유에의 갈증으로 가슴이 타 있을 시간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넓은 들녘에서 한 두 명의 농부가 김을 매는 한가로운 농촌의 길게 뻗은 들길을 완전군장을 한 채 장거리 행군을 할 때, 저쪽 밤나무 숲 속에 서 구성지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소리는 너의 노스탤지어(Nostalgia)에의 손짓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식기를 냇가에서 씻다말고 문득 바라본 외진 계곡 위로 여름 황혼의 경건한 그늘이 덮이는 것을 목도하면서, 중대본부 사무실에서 끝없이 욕지거리와 함께 윽박질러 대는 상부(上部)의 명령과 강요에 기어이 지쳐서 창으로 내다 본 대대 연병장 위에 한가로이 모이를 쪼고 앉아있는 산비둘기 떼들을 바라보면서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한번쯤 심각히 생각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연대본부 정문 앞 언덕 위에 세워진 자그마한 군대교회에서 찬송가 333장 2절 <메마른 들과 험한 산 갈 바를 몰라 헤매며 죽게 된 지경에서 어머니기도 못 잊어 새 사람 되어 살려고 나 집에 돌아갑니다>는 내용의 합창은 이미 하나님에게 드리는 찬양이기 보다 늘 가슴만 아프게 해드렸던 탕자들이 공동으로 드리는「어머님전 상서(上書)」로서의 뉘우침의 호곡(號哭)이 되어 지고는 했을지도 모른다. 너는 자정이 넘은 깊은 밤 시간에 숲에서 보초를 서본 경험이 있는가?

곰처럼 검고 우뚝 서있는 산, 토하듯이 울어대는 이름 모를 밤새의 울음, 어느 계곡에서인가 들리는 산짐승의 굶주린 부르짖음, 그 두려운 밤 숲에서 오직 혼자 깨어 있다는 고독에 시달리며 교대시간을 기다리며 숨 막히던 시간들, 그때 오직 위로가 되었던 것은 밤하늘 가득 펼쳐있던 찬란한 은하수의 향연이었으리라. 나는 1960년대 초,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었다. 그 당시는 대학생들에게 학보병(學步兵)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18개월만 복무하는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 대신 최전방에 보내서 온갖 고생을 시키게 했다. 나는 제대를 하면서 낙서를 하듯이 다음과 같은 글들을 기념으로 남겨 놓았다.

<길고 긴 산 계곡을 따라, 혹은 높고 높은 고지(高地)의 능선을 따라 행군을 하면서, 혹은 먼지가 가득한 군 트럭의 바닥에 총을 움켜쥔 채 주저앉아 병사는 전쟁을 배워가고 인생의 밑바닥을 느끼고 인간의 본능을 들여다보며 염세(厭世)를 구역질로 토한다. 전쟁 찌꺼기, 살인연습, 고향, 개새끼. 그 속에서 나는 배낭을 메고 뛰었고, 비상에 긴장했고, 회식시간에 병사들이 부르는 '오늘도 걷는다마는'라는 유행가 가락에 젖어들고 융통성 없이 들볶아대는 해내기 소위 새끼들에게 증오를 보내곤 했다.>

<산과 숲과 강을 지나가는 행군. 그것은 기동훈련이었고 전쟁연습이었다. 들을 가로 질러가고 또 산을 돌아가는 끝없는 고독의 길, 비는 끝없이 쏟아 내리고 어깨에 멘 60M박격포 포판(砲板)이 주는 아픔에서 십자가를 배운다. 전방의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 산짐승처럼 웅크리고 겨울을 지나노라면 삶과 죽음의 의미들, 전쟁의 아픔들, 고독의 찬 눈물이 가슴 갚은 곳에 고이는 것을 절감한다. 나는 거기에서 드디어 역사에 눈이 뜨임을 발견했다. 역사의 하수구에서 허우적거리던 군상들, 절규들, 그 통한들, 그 잔인한 미소들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눈뜨고 있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무시했다. 잘 가꾸던 정원도, 수천 년 보존해온 국보도, 인류에 공헌했던 성자도, 죽음을 불사하고 파낸 진리도 전쟁의 캐터필러는 잔인하게 짓밟고 찬연한 문화의 의상을 벗기고 흰둥이, 검둥이, 노랑이가 돌아가며 여인들을 윤간(輪姦)하고 기어이 목 졸라 살해한 그 붉은 의미를, 그것은 카인의 후예들이었다.>

<붉은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들고 저 양민을 수없이 찔러대고야 직성이 풀리는 저주로 뒤엉킨 검붉은 분노는 카인의 뿌리에서 연유된 원죄(原罪)라는 것을, 나는 몇 달간 임진강변의 초소(哨所)에서, 초겨울의 기동훈련에서, 얼음을 깨고 이가 득실거리는 군복을 빨면서, 황토 위에서 끝없이 포복을 하면서, 사격장의 참호 속에서 타깃을 들고 앉아서,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분단된 채 광대짓 하는 초라한 조국의 모습을 나는 산하(山河)를 군용차에 짐짝처럼 실려 오가면서 눈이 뜨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고.

광야 길은 가나안의 지름길

너희들의 가장 큰 고통은 2년의 세월을 낭비하는 느낌일 것이 분명하다. 어서 빨리 군복을 벗고 고향으로 달려가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활개 치며 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지 모르나, 아니다. 너희들의 지금의 날들은 천금같이 귀한 시간들이거니, 거기가 너희의 광야인 것이다. 광야 없이는 위대한 혼이 태어날 수 없고, 가나안 입국을 광야 길을 지나지 않고는 할 수 없다면 오히려 그 귀한 기회를 선용하라. 낭비하지 말라. 모세는 40년의 광야에서 얼마나 낭비되고 있다는 쓰레기 같은 시간들을 탄식했겠는가?

애급에서 40년 동안 높은 학문과 무술을 연마한 모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애급의 왕위(王位)를 맡긴다 할지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썩히고 있었다. 학문과 무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양떼를 맡기고 계실 뿐, 그에게는 어느 사명도 맡기지 않고 계셨다. 그는 우리 안에 갇힌 사자처럼 그 고독한 광야에 갇혀 으르렁거리며 분노와 울분의 부르짖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라도 도망칠 수 없는 수인(囚人)이었다. 그렇게 참담한 40년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시덤불 가운데서 하나님은 그에게 애급에서 백성을 구하여 인도하라는 대명(大命)을 내리셨다. 그때 그는 무엇이라고 답했는가?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고 하며 자신 없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의 지팡이로 능력을 나타나게 하시나 “나는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거듭 거부한다. 놀랍지 않은가? 모세가 ‘할 수 있다’고 하는 때는 사명을 맡기지 않으시다가 ‘할 수 없다’고 할 때는 맡기시는 것은 무슨 일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쓰시는 방법임을 알라. 하나님이 인간이 자기의 무력을 느끼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 연약한 자를 쓰셔서 자기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신다. 그러기 위해 모세의 40년 동안 익힌 학문과 무술, 교만을 부수기 위해 40년이 필요했다. 또한 놀라운 것은 40년의 광야의 연단은 40년 동안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는데 쓰도록 만드셨다. 그 경륜 놀랍지 않은가? 나는 너희들이 군대라는 조직에 매여 지내는 동안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저 엄청난 훈련이나 욕지거리, 혹은 인격을 무참히 짓밟는 듯 한 상관의 무례함보다 2년의 세월을 속절없이 낭비하고 있다는 그 아픔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 보라. 모세의 40년의 쓰레기처럼 낭비된 시간들이 마침내 그의 삶의 밑거름이 되어서 위대한 재목으로 키워내고 위대한 지도자로 성숙되었다면, 또한 그가 무지몽매한 양떼를 이끌고 이 들녘, 저 계곡, 저 뜨거운 열사(熱砂)를 헤매던 그 길들, 그 냇가, 그 그늘들이 바로 후에는 양떼처럼 무지할 뿐 아니라 염소처럼 반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끌고 가는 노정이요, 계곡이요, 혹은 요새였다면 어찌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 하나님의 그 큰 경륜을 탓할 수 있는가?

또한 모세가 광야에서, 애급에서 연마한 학문과 무술을 배설물처럼 버렸던 것을 하나님이 다시 승화시켜서 오직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위해 쓰시는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을 모세는 발견하고 그 깊은 경륜에 감탄하게 된다. 그대들이여, 거기 그 병영이 너의 광야 2년의 길이거니 그 참호에서, 그 무지한 강요 속에서 황토 위를 버러지처럼 포복하는 참담한 비굴함 속에서, 그리고 그 시리도록 아름다운 숲과 냇물과 찬연한 은하수, 저 가슴을 에는 밤새소리 속에서 더 썩어지라. 뛰라면 뛰고, 기라면 기고, 고함치라면 짐승처럼 고함치는 철저한 무력자(無力者)가 되라.

그리고 어느 날엔가 밤 숲 속에서 보초를 서는 때에 울고 싶거들랑 꺼이꺼이 울어버려라. 그리하여 이제 2년의 그 쓰레기처럼 낭비된 시간들과 이제 텅 빈 머리와 막대기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제대하는 날, 그때에 눈 여겨 보라. 그 숱한 쓰라리고 고독한 시간 시간들은 구슬처럼 너의 가슴에 훈장처럼 빛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너의 무력한 지팡이를 능력의 지팡이로 사용하시기 시작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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