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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고가 정말 옥녀의 한 때문일까?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사량도 지리산
2011년 06월 22일 (수) 20:31:52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사량도 대항 유람선에서 바라본 옥녀봉과 바위봉우리들
ⓒ 이승철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산이 어찌 이렇게 날카로울 수가 있나?"

"못된 애비 때문에 죽은 옥녀의 한이 서린 산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낮고 작은 산이지만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야, 조심해야 되겠어." 

마지막 코스인 가마봉에서 옥녀봉까지 가는 길에서는 모두들 진땀을 흘린다. 더구나 암벽에 약한 일행들이 쩔쩔매는 모습이 여간 아슬아슬한 것이 아니었다. 바위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야 별 것 아니겠지만 우리 일행들은 달랐다. 

지난 14일 경남 통영시 사량면에 있는 지리산을 올랐다. 작은 섬에 있는 낮은 산이지만 결코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갔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산악회 주최로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떠난 사량도 지리산은 고성군 덕명마을 상족암 포구에서 유람선을 빌려 타고 25분을 달려 섬에 도착했다. 산행 시작은 내지 선착장에서 오른 편 바닷길로 잠깐 가다가 왼편 산길로 곧장 올라가는 길이었다. 앞장선 사람들의 발걸음들이 날렵하다. 

등산로 입구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리본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이 산의 인기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리본들은 하산할 때까지 몇 곳에서 더 볼 수 있었다.  

   
사량도 가는 뱃길
ⓒ 이승철
 
   
유람선에서 바라본 사량도
ⓒ 이승철
 

70여 명의 남녀 등산객들 대부분이 만만치 않은 등산실력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등반대장은 육지로 돌아가는 배 떠날 시간에 늦지 않게 하산하라고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자신 없는 사람은 미리 샛길로 빠지라는 것이었다. 일행 여섯 명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앞장을 서보려 했지만 200미터도 오르기 전에 후미 그룹으로 밀리고 말았다. 

처음의 등산로는 무난했다. 가파르긴 했지만 흙길이어서 위험하지 않고 느낌이 좋았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과 전망이 땀을 씻어준다. 조금 전에 상륙한 대지포구의 모습이 아담하다. 바다 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섬이며 하늘에 둥실 떠있는 뭉게구름, 멀리 바라보이는 육지의 모습이 아련하다, 

"저 아래 섬 좀 봐? 꼭 쥐처럼 생겼잖아? 머리와 등, 그리고 꼬리까지." 

이곳에서부터는 능선 길이었다. 두 번째 봉우리에서는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작은 섬이 마치 생쥐처럼 생긴 모습이어서 웃음을 자아낸다. 쥐섬의 모습은 능선길을 걷는 동안 자주 눈에 띄어 묘한 모습으로 섬과 바다에 대한 다정한 정감을 불러 일으켰다. 

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줄기는 양쪽 해안의 아름다운 포구들과 작은 섬들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어서 멋진 운치가 산행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드디어 '지리산 398미터'란 표지석이 있는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앞뒷면이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아슬아슬했지만 툭 트인 전망이 여간 아름다운 봉우리가 아니었다. 이 봉우리에서 바라보면 육지의 지리산이 보인다하여 지리망산(智異望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냥 쉽게 지리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이 봉우리까지는 대체로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다시 불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날카로운 바위 능선을 타거나 오르내리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발아래는 깊은 낭떠러지여서 실수로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무사할 수 없는 위험한 모습이었다. 

   
등산로에 매달아 놓은 리본들
ⓒ 이승철
 
   
쥐섬, 꼭 쥐같이 생겼지요?
ⓒ 이승철
 

이 산에서 제일 높고 바위봉우리인 불모산 달봉은 해발 399미터로 정상인 지리산보다 오히려 1미터가 더 높았다. 봉우리가 험하여 위험을 느낀 몇 사람은 옆으로 우회하는 길로 돌아갔다. 불모산에서 조금 아래쪽으로 바라보기에도 아찔한 가마봉과 향봉, 옥녀봉이 줄줄이 이어진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어떻게 할까? 저 봉우리들을 모두 거쳐서 내려가려면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상당히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우리 일행 다섯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산세는 소문 이상으로 날카롭고 위험한 모습이었다. 

"이건 군대생활 할 때 유격훈련 경험이라도 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보이는데."

"고소 공포증이나 암벽 등반에 겁이 많은 사람은 그냥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길은 삼거리였다. 위험한 봉우리들을 오르지 않고 곧바로 하산하는 길과 옥녀봉 쪽 바위봉우리들 쪽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냥 포구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결국 두 사람은 위험한 구간을 거치지 않고 곧장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나머지 네 사람은 바위봉우리 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가마봉부터 바위봉우리들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오금이 저리는 바위 능선을 겨우 지나자 밧줄에 매달리며 직각에 가까운 바위를 올라야 하는 구간이 나타났다. 봉우리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사량도 돈지항, 바로 앞의 작은 섬모양이 제주의 성산 일출봉과 비슷하다
ⓒ 이승철
 
   
산 위에서 내려다본 사량도 대항 풍경
ⓒ 이승철
 

수직으로 놓인 철제 사다리는 현기증이 일어나 도저히 앞을 보고 내려갈 수가 없었다. 손잡이를 잡고 엉금엉금 걸어 내려가는 일행의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밧줄을 붙잡고 내려가거나 사다리를 밟고 내려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손이라도 실수하여 놓치는 경우에는 그대로 낭떠러지 아래로 곤두박질쳐 떨어져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시각적으로 공포심을 더욱 증폭시켜 그만큼 위험도 높아진다. 일행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바위봉우리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어렵게 가마봉으로 올랐다가 내려서자 이번엔 향봉이다. 이 향봉은 오르기도 가마봉 못지않게 어려웠지만 내려가기는 더욱 어려웠다. 수직의 바위절벽에 걸린 밧줄 사다리를 밟고 내려가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앗!" 

밧줄 사다리를 밟고 간신히 내려가던 내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쪽 발을 헛디딘 것이다. 순간 내 몸이 공중에 부웅 매달렸다. 붙잡고 있는 밧줄이 미끄러질까봐 손목과 손가락에 힘을 주면서 가까스로 다시 사다리를 밟을 수 있었다.  

수직절벽의 중간쯤이었다. 10미터 아래로 그대로 떨어지면 죽거나 중상을 면치 못할 판이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닥에 내려서자 뒤이어 다른 일행이 조심조심 사다리를 내려왔다. 그의 이마에도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도 아까 그 삼거리에서 그냥 내려가는 건데 공연스레 이쪽 길을 택한 것 같아." 

사다리에서 내려선 일행이 비지땀을 흘리며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후회하는 말이었다. 이 봉우리들은 정말 대단했다. 줄사다리를 내려오다가 나도 혼쭐이 났지만 몸이 약간 비대한 일행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안겨준 것 같았다. 

그렇다고 뒤돌아 설 수도 없었다. 앞에는 아주 위험해 보이는 옥녀봉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넘어온 가마봉과 향봉을 거쳐 되돌아 내려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사량도 지리산 정상 표지석
ⓒ 이승철
 
   
가마봉 오르는 길
ⓒ 이승철
 

"자!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조심스럽게 저 옥녀봉만 오르면 그 다음은 하산길이라니까." 

주저앉아 있던 일행이 체념한 듯 일어섰다. 얼굴은 창백하고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밧줄에 의지하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능선을 걸었다. 옥녀봉에 오르자 돌무더기 하나가 덩그렇다. 다른 아무런 시설이나 표지도 보이지 않았다. 웬 돌무더기뿐이냐고 하자 먼저 올랐던 사람이 돌무더기가 아니라 옥녀의 무덤이라고 한다. 

옥녀봉의 전설은 이랬다. 옛날 이 섬에 아버지와 딸이 살았다. 다른 가족은 없었다. 처녀인 딸의 이름이 옥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비가 짐승으로 돌변했다. 성숙한 딸을 범하려고 덤벼든 것이다. 그러나 딸인 옥녀는 그런 아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찌 천륜을 범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옥녀는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다. 그런데 아비는 막무가내였다. 옥녀는 할 수 없이 아비에게 "그럼 산 아래로 내려가 소처럼 음메! 음메! 하면서 올라오면 허락 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비는 정말 산 아래로 내려가 짐승처럼 "음메! 음메!" 하면서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천륜을 범하려고 하는 아비를 막을 길 없던 옥녀는 이 옥녀봉까지 아비를 피해 올라왔다가 천길 절벽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아비도 그 벼락에 맞아 죽고 말았다고 한다. 

"가마봉과 향봉 그리고 이 옥녀봉 구간에서 가끔 사고가 발생하는데 옥녀의 한풀이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더군요."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그러나 너무나 험한 산세 때문에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 해도 사고를 일으키기 때문에 애꿎은 옥녀의 전설이 사고요인으로 등장하는 것이리라. 

   
바위절경과 사량도 윗섬과 아랫섬 해협풍경
ⓒ 이승철
 

옥녀봉에서 바라본 사량도 윗섬과 아랫섬 사이 좁은 해협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옥녀봉에서 내려와 대항으로 하산하는 길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출항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유람선에 올라 바라본 봉우리들이 우람한 몸짓으로 우리들을 전송이라도 하듯 다소곳한 모습이었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20여 분을 달려 상족암 포구에 이르렀다. 덕명마을 주차장 입구 바닷가엔 하얀 꽃을 피운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멀리 바다 건너 사량도 지리산과 옥녀봉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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