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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가 머리핀을 떨어뜨려 등산을 포기했다고요?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남양주 천마산
2011년 05월 22일 (일) 22:50:30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해발 812미터 천마산 정상
ⓒ 이승철
 

"왜, 무슨 우울한 일이라도 있나?" 

산행을 할 때면 항상 즐거워하던 친구가 표정이 어두워서 물어보았다. 

"어젯밤 꿈자리도 그렇고, 오늘은 그냥 산행 포기할까 하다가 왔어." 

그는 어젯밤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길 것 같은 불안감과 함께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꿈자리?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개꿈이지 뭘 그런 걸로 걱정하고 그래." 

다른 일행이 별 걸 가지고 신경 쓴다며 묵살해 버리자 그도 애써 잊으려고 하는 눈치다. 경기도 남양주 마석 근처 마치고개 터널 입구에서 시작된 산길은 완만한 경사에 5월의 싱그러운 숲 향이 온몸과 마음까지 상큼하고 포근하게 감싸는 느낌이었다. 

등산길에서 상쾌하게 기분 전환한 친구 

지난 화요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천마산 등산은 일행 다섯 명과 함께한 즐거운 산행이었다. 잠깐 올라가자 오른편 산자락으로 스키장이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계절이 여름이어서 리프트 시설과 함께 파랗게 풀이 자란 슬로프가 지저귀는 새소리에 묻혀 있다. 

"저 뾰족한 꼭대기가 정상 아냐? 힘들겠는 걸." 

서울에서 자랐으면서도 천마산이 초행이라는 일행 한 사람은 뾰족하게 높아 보이는 산에 지레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야? 소백산도 거뜬하게 오른 친구가 겨우 800미터급 산에 겁을 먹다니."

"아! 그렇던가. 그래도 조금 힘들어 보여서." 

겁을 먹었던 일행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등산이 꼭 높이로만 쉽다거나 어렵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날 몸의 상태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리꽃처럼 하얗고 예쁘게 피어난 꽃
ⓒ 이승철
 
   
정상에서 바라본 근처의 봉우리
ⓒ 이승철
 
"미리 겁을 먹으면 힘이 더 드는 법이니까 자신감을 갖도록 하라고." 

가까운 다른 일행이 충고를 해준다. 옳은 말이다. 몸의 상태도 마음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행은 어젯밤의 기분 나쁜 꿈은 잊어버린 듯 곧 명랑해진 기분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은 서쪽으로 향한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정상이 바라보이는 북동쪽 길로 이어졌다. 그런 길을 잠깐 걷자 경사가 점점 급해지기 시작한다. 더운 날씨에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린다. 5월 중순의 날씨 치곤 꽤 높은 기온이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더욱 급해져 오르기가 힘이 든다. 산의 높이가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완만하게 시작된 길이 이제 정상으로 치닫게 되었으니 경사는 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6 미터쯤의 암벽을 밧줄에 의지하여 오르는 길도 있었다. 

"아저씨들, 지금부터 조심해서 가세요. 길이 개떡 같아요."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고 있던 여성 등산객 4명이 우리 일행들이 염려스러운지 조심하라고 일깨워주며 내려간다. 그렇게 정상이 가까운 능선에 오르자 이번에는 대부분 바위너덜길이다.  

이런 길이 조심스러운 길이다. 아차, 실수라도 하여 넘어지기라도 하면 심한 부상을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등산객들이 조심하라고 일러준 모양이었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아주 뾰족해 보였던 정상은 그러나 실제론 그리 뾰족한 모습이 아니었다. 

   
짙푸른 녹색 숲의 바다에 피어난 하얀 꽃들
ⓒ 이승철
 
   
예쁘게 피어난 쪽동백
ⓒ 이승철
 

작은 바위능선으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해발 812미터라는 작은 표지석과 함께 근처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골짜기와 산자락은 짙푸른 숲의 바다다. 그 푸른 바다에 하얀 색 넓은 천이라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쪽동백과 산사나무 꽃이었다. 

짙푸른 녹음과 아름다운 꽃  뒤덮인 싱그러운 숲의 바다 

69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 천마산에는 5월에 꽃을 피우는 쪽동백과 산사나무, 층층나무가 많았다. 푸른 능선이 이어진 산줄기와 숲의 바다에 펼쳐진 하얀 꽃에 취해 있다가 하산길로 나섰다. 

"이렇게 잠깐 있다가 내려갈 걸 왜 올라온겨?"

"그야, 내려가기 위해 올라왔지. 설마 산꼭대기 위에서 살려고 올라 왔겠어? 허허허." 

싱거운 친구의 농담 물음에 역시 싱거운 답변을 하며 웃을 수 있는 것도 가까운 친구들끼리만 할 수 있는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가 왼편으로 방향을 잡았다. 수련장과 공원관리소가 있는 골짜기로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길은 이쪽도 경사가 급했다. 그러나 동남쪽 자락이어서 그런지 길옆에 피어난 꽃들이 곱고 향기롭다. 

역시 쪽동백과 산사나무 꽃, 그리고 층층나무 꽃들이었다. 그런데 이 능선길에는 쪽동백이 유난히 많다. 쪽 동백은 노르스름한 꽃술과 하얀 꽃잎이 열매처럼 나뭇잎 아래로 매달린 모습이 여간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꽃과 벼랑길
ⓒ 이승철
 
   
지기 시작한 층층나무꽃
ⓒ 이승철
 

산사나무 꽃도 귀엽기는 마찬가지다. 섬세한 꽃잎이 새하얀 서리꽃 같기도 하고 세공한 보석처럼 귀엽고 찬란하다. 짝짓기 철이어서 그런지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유별나다. 목소리가 큰 어느 산새는 올라가는 길에서도 우리들을 뒤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주변에서 맴돌았는데 내려가는 길에도 마찬가지로 따라오며 지저귄다. 

그렇게 7부 능선쯤 내려오다가 잠깐 쉬기로 했다. 소나무 그늘 밑에 앉아 쉬기에 아주 좋은 장소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려다가 살펴보니 여성 등산객 한 사람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그런데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이 여성 등산객은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 놓고 아주 느긋한 모습이 아닌가. 벌써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이냐고 물으니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친구랑 둘이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친구만 혼자 올라갔다가 내려오라고 했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여러 사람이 같이 온 것도 아니고 친구와 달랑 둘이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정상에는 친구 혼자만 올라갔다니. 

"어디 다치기라도 하셨나요?" 

일행이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만일 다쳤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리하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역시 아니라고 한다. 

"찜찜해서 그냥 그만뒀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오르라는 것 같아서요." 

점점 모를 소리다. 거의 다 올라왔는데 오늘은 누가 여기까지만 오르라고 했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조금 전에 친구랑 여기까지 올라와서 잠깐 쉬고 있는데 작은 박새 한 마리가 제 머리 위에 날아와 앉았어요, 그런데 그 박새가 제 머리카락에 꽂혀 있던 머리핀을 저 아래로 떨어뜨렸지 뭐예요." 

   
깔딱샘에서 물 한모금
ⓒ 이승철
 
산새 때문에 등산을 도중에 포기한 여성 등산객 

요즘 산새들은 사람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 겨울철 먹이가 귀할 때 등산객들이 나눠주는 먹이에 익숙한 산새들은 더욱 그랬다. 이 여성 등산객의 머리 위에 날아와 앉은 박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일이네요,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그러나 여성 등산객의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다. 

"그렇잖아요? 하필 내 머리 위에 날아와 앉아서 머리핀을 떨어뜨렸다는 것이. 제 머리핀 저 아래로 떨어져서 다시 주우러 갈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인가 보다 하고요, 찜찜하기도 해서 더 이상은 등산을 않기로 했어요, 친구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같이 내려가려고요." 

여성 등산객이 앉아 있는 바로 앞은 30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벼랑이었다.  

"정말 그러네요. 더 올라가지 않기를 잘한 것 같네요. 그 박새가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를 보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 여성 등산객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근처에 앉아서 쉬고 있던 다른 여성 등산객이 우리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거들고 나선 것이다. 

"에이! 무슨 말씀을,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 가지고, 산에 다니시면서 별 걸 다 신경 쓰시고 그러네요. 너무 민감하신 것 아닌가요?" 

우리 일행이 어이가 없어 허허허 웃으며 말했지만 여성 등산객 두 사람은 박새가 떨어뜨린 머리핀을 아주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표정이었다. 무슨 예고라도 한 것처럼. 그녀들과 헤어져 하산하다가 뒤돌아보았을 때도 그녀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여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모처럼 마음먹고 시작한 등산을 정상이 가까운 지점에서 아주 우연히 발생한 작은 일로 포기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능선길을 벗어나 오른편 공원관리소가 있는 지점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일행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무계단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계단길에서 조금 더 내려오자 '깔딱샘'이 나타났다. 샘물로 목을 축이고 내려오는 산길도 우거진 숲으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골짜기를 가로지른 출렁다리를 건너면 관리소가 지척이다. 평일에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천마산은 이날따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한 모습이었다. 

"거봐? 아무 일도 없었잖아? 오늘 등산 잘했지? 꿈자리 그거 개꿈이었어."

"정말 그랬네. 이렇게 멋진 등산을 꿈자리 때문에 포기했다면 얼마나 억울할 뻔했어." 

등산을 시작할 때 조금은 우울해 했던 친구의 얼굴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밝고 환하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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