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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2011년 05월 10일 (화) 07:53:50 이만규 목사 morningcome.org

나는 젊었을 때 사람들이 부모님의 무덤을 꾸미고 가꾸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못마땅하기도 했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고 남아 있는 육신이야 썩어 흙이 되어 버리는 것이기에 무덤을 찾는 일이야말로 헛된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흙더미에 제물(祭物)을 바치고, 절을 하고, 제사(祭祀)를 지내는 일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일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의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무덤을 찾고 꾸미는 일이야 말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맞는 생각이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그것에 대한 제 감정은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어머님이 분명 천국으로 가셨고, 무덤은 단지 남기고 가신 육신을 묻은 곳이고, 이젠 그 육신조차 흙이 다 되어 버렸을텐데도 그래도 왠지 순간순간 어머님이 그리워질 때는 그 무덤을 찾고 싶고 또 무덤에 갈 때면 가능하면 예쁘게 꾸미고 가꾸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쁜 꽃을 보면 어머님의 무덤 곁에 심어주고 싶고 또 잔디도 잘 가꾸어 주고 싶어졌습니다. 뭔가 마음의 고향처럼 생각되고 사실 내가 고향을 찾아가는 중요 이유도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고 계신 형수님을 찾아뵈어야 하는 도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어머님의 무덤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고 할아버지가 되어갈수록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짙어감을 느낍니다. 근래에는 너무 바쁘고 틈을 낼 수 없어서 2년간이나 가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고향 생각을 하면 늘 내가 오르내리던 그 야산과 산자락에 모신 어머님 무덤이 생각납니다. 물론 어머님은 지금 천국에 계시고 무덤은 다만 어머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입고 다니시다 벗어놓고 가신 낡은 옷(육신)에 불과하고 그 역시 이젠 썩어 흙이 되어 버렸기에 아무 의미가 없는 곳임을 잘 압니다. 신학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곳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남에게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그런데도 어머님이 그리워질 때면 그 무덤이 생각나는 것은 어머님이 남기고 간 가장 강한 인상의 유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월이면 어머님이 더욱더 그립습니다. 어머님이 필요하고 어머님이 그리운 것은 어린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도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더 짙어갑니다. 참으로 엄격하고 무서운 어머님이셨지만, 더욱이 신앙생활에 대하여는 조금도 양보가 없이 철저한 분이셨지만 우리들을 신앙으로 세우는 길이야 말로 우리의 장래를 보장해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아셨기에 우리를 그렇게 키운 것임을 우리는 철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신 뒤에야 오늘의 내가 있도록 철저히 세우신 어머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형제들은 몰락한 선비가문의 어린 손자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양반의 체면을 무릅쓰고 생존의 한 방법으로 늦게야 의생(醫生)이 되셨지만 그것도 늑막염으로 아들을 잃고서는 “자식도 살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병을 고치는 의사 노릇을 하는가?”라는 선비의 양심 때문에 한의사조차 접어 버리고 가난한 농사꾼이 되셨고, 어머님은 시부모와 또 6.25 사변으로 행방을 모르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나이 어린 며느리, 그리고 어린 4남매와 유복자인 어린 손자를 부양하는 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시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40대 초반의 과부였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어머님은 우리들의 장래를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에 주저하지 않았고 수많은 난관을 무릅쓰고 우리들을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와 내 동생(이상규 박사, 고신대학교 교수) 그리고 조카(이종대 장로, 부산 감전교회)를 믿음으로 세운 뒤에야 평안히, 그렇게도 사모하시던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린 어머님의 무덤에 “우리 가정의 신앙의 선구자이자 자랑스러운 어머니이시며 자애로우신 할머니였던 고 박귀돌(朴貴乭) 권사는....”으로 시작되는 묘비를 세웠습니다. 무섭기만 했던 어머님이셨지만 그건 바로 우리를 신앙으로 세우기 위한 어머님의 교육방법이었을 뿐이고 자랑스럽고 자애로우신 어머님이셨음을 늦게야 알았었습니다. 그래서 어버이주일을 맞을 때마다 더 많이 효도하지 못함에 대한 회한(悔恨)과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을 가득 채웁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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