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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길도 인생길과 비슷하네요 |
| 안개구름을 뚫고 오른 월악산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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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악산의 정상 영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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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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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긴 해도 등산길도 길이요, 인생길도 길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산에 오를 때면 항상 삶을 생각하고 길을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보이지는 않지만 인생에도 나름대로 길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다만 그 '인생의 길'이라는 것이 확실히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삶의 길에서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겪기도 하고 기쁘고 즐거운 길이 되기도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산에 나있는 등산로는 대개 확연히 보이는 길이다.
그래서 등산길은 육체적인 힘은 들어도 목표가 확실하여 길을 잘못 들거나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목표가 보이고 그 목표가 내게 적합한 것인지도 미리 판단하여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과 판단만 이루어진다면 큰 어려움을 겪을 염려는 극히 적다.
그러나 그 목표라는 것이 항상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등산길에서도 어쩌면 인생길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만나 고생을 하게 되는 일도 종종 발생하게 된다.
지난 3월 27일 충북 제천에 있는 월악산을 찾았다. 아침 일찍 승용차를 몰고 찾아간 월악산은 하필이면 우중충한 날씨에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가려 있었다. 동창교 부근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길에 나서자 서울 동작구에서 온 어느 단체 회원들 수십 명이 앞장을 선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깨에 자연보호 캠페인 문구가 적힌 띠를 두르고 있었다. 다양한 나이의 남녀 수십 명이 길 주변의 쓰레기를 주우며 앞장을 서자 등산로가 당장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우리 일행은 느긋한 마음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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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개구름 속의 월악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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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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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길에서 만난 혹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혹부리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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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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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깐 걸어가자 산길의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다. 이 등산로가 월악산의 정상인 영봉까지 오르는 가장 가까운 길이어서 경사는 그만큼 심한 것이다. 경사가 급해지자 캠페인 나온 사람들이 하나 둘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기 시작했다.
"기왕 나오셨으니 정상까지 오르시지 왜 포기하십니까?"
포기하고 물러서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보인다.
"어이쿠! 이제 힘들어서 더는 못 올라가겠구먼요."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천천히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들도 좀 쉬어가지, 상당히 힘든 코스구먼."
일행들 중에 맨 나중에 등산 멤버로 합류한 친구가 아무래도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거봐! 이제 선배들 좀 알아보겠어? 1학년이 3학년을 따라오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
정년퇴직을 한 후 3년째 등산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가 큰소리를 친다.
"어, 물론 알아 모시지, 좌우지간 좀 쉬어가자고."
지난해 말부터 직장의 일에서 손을 떼고 지난 3월 초부터 우리 팀에 합류하여 1학년생으로 불리는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정말 힘든 표정으로 말한다. 잠깐 쉬며 간식을 든 다음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산은 계속 오르막길이다. 오르막길도 평탄한 흙길이 아니라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계단길이어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올라가는 중간 곳곳에는 먼저 올라가다가 도중에서 포기한 캠페인 나온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대부분 등산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힘든 코스를 예상치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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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길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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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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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진 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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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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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라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제법 싸늘한 날씨였지만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노라니 주능선 안부에 이르렀다. 이곳까지 오르는 동안에도 역시 제일 힘들어하는 사람은 새로 시작한 등산 멤버다.
새로운 멤버가 나오기 전까지 제일 힘들어하던 친구는 새로운 멤버가 들어온 이후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소리가 쑥 들어갔다.
"어이! 3학년생 친구! 꼭 동생을 본 돌짜리 형아 같은 모습이야."
맨 앞장을 서서 오르던 친구는 무슨 말인지 얼핏 감이 잡히지 않는 표정이다.
"거 왜 있잖아? 평소 칭얼거리던 어린아이가 동생을 보면 갑자기 어른스러워지는 것 말이야!"
그때야 말귀를 알아들은 친구가 목을 으쓱 힘을 준다.
"알았어, 오늘은 이 형아가 맨 앞장을 서서 시범을 보여주지."
이 친구는 이날 정말 보란 듯이 정상까지 앞장서서 잘도 올라갔다. 전 같으면 이렇게 힘든 코스에 몇 번이나 쉬어가자고 주저앉았을 그였다.
주봉으로 오르는 능선길 옆에는 수백 년씩 자랐을 것 같은 소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쓰러진 채 썩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소나무는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저 소나무들 좀 보라고 천 년을 독야청청할 것 같았지만 저렇게 썩어가잖아. 우리 인생인들 별수가 있겠어?"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연도 저러할진대 짧은 인생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능선길은 바람이 제법 세차다. 그 세찬 바람 속을 뚫고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 자주 마주친다. 언뜻 바라보이는 정상 봉우리는 여전히 구름 속으로 희부연 모습이다. 정상의 날씨가 어떠냐고 물으니 보이는 그대로 안개구름 속에 바람이 세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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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 바로 아래의 철제 사다리 나무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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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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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에서 만난 새 한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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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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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르막길이 아니어서 걷는 것은 한결 수월하다. 정상인 영봉 밑에 이르자 길은 다시 오른편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상까지의 거리표지가 1300미터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곳이 정상 바로 밑인데 웬 거리가 이렇게 멀게 나와 있지?"
그러나 궁금증은 곧 풀렸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바위 봉우리를 안고 한 바퀴 돌아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절벽 바위봉우리를 곧바로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르다 보면 저 높은 곳이 정상이겠지 하고 올라보면 정상은 더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 가파른 나무나 철제 사다리를 올라가는 힘든 길인데 말이다. 그렇게 몇 번인가를 속아 넘어가며 드디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은 예상했던 대로 안개구름이 뒤덮인 가운데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바람막이 바위를 의지하여 잠깐 앉아 쉬자 초등학생의 주먹만큼은 커보이는 새 한 마리가 우리 주변으로 날아와 기웃거린다. 음식물 부스러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마침 잣을 가져온 친구가 있어 던져주자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주워 먹는다.
"자! 정상에 올랐으니 기념사진 찍어야지, 그런데 아직 1학년생이 이렇게 오르다니 정말 대단한 걸, 그렇지만 오늘은 이 형아가 앞장서서 올라온 것을 기억해 두라고."
종전과는 달리 이날 처음부터 이곳 정상까지 줄곧 앞장서 올라온 친구가 다시 한 번 큰소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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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의 바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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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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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려오는 길에서 뒤돌아본 월악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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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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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오늘부터는 3학년생으로 손색없는 실력을 인정해 줄 테니까. 앞으로도 계속 앞장을 서야 돼?"
체력이 약하여 산에 오를 때마다 항상 뒤처지고 힘들어하던 친구가 이날은 정말 3학년다운 놀라운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하늘의 달이 봉우리에 걸려 있는 것 같다 하여 월악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산의 정상인 영봉은 해발 1097미터로 우리나라의 '5대 악산'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산이다.
그러나 이날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이라곤 구름에 뒤덮인 근처의 봉우리와 골짜기뿐이었다. 그 멋지다는 조망과 풍경은 구름 속에 묻혀 버리고 정상은 휘몰아치는 세찬 바람을 맞은 바위에 구멍을 뚫어 세운 철제 울타리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안개와 바람, 으스스한 느낌까지 드는 정상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어 서둘러 하산길로 나섰다.
"우와! 저기 올라오는 사람들 좀 봐? 이런 악산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거야?"
우리가 정상에서 내려오는 아스라한 계단 아래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소문난 명산의 이름값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계단 아래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여성들 10여 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 위가 정상 맞습니꺼?"
그렇다고 대답하자, "정말 맞지예?" 하고 재차 확인한다. 우리도 몇 번인가 정상인가 하고 속았던 생각이 들어 웃으며 뭘 그렇게 많이 속았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걸쭉하다.
"속은 게 어디 한두 가집니꺼? 특히 남자들 말입니더. 신랑한테 속아서 지금껏 살았지. 또 자식한테 속아서 살고 있는데, 이 월악산에 오니 산도 자꾸 속인다 안 캅니꺼?"
40대 후반쯤의 여성이 큰 소리로 떠들며 앞장을 서자 다른 여성들이 와글와글 웃음보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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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악산 능선길에서 바라본 봉우리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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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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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정직할 줄 알았는데예 세상이나 남자들이랑 똑같은기라예!"
세상의 풍파처럼 세찬 바람 속에서도 안개에 뒤덮여 진면목을 보여주지도 않은 월악산이 믿지 못할 세상이나 남자들과 같다고 여성 등산객들에게 원망을 듣고 있었다.
인생길이나 등산길이나 길은 길이다. 더구나 명확하게 앞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길은 어느 길에서나 힘들고, 터무니없는 오해나 원망도 만드는 것인 모양이다. 터벅터벅 걸어 산 밑에 다다랐을 즈음에야 봉우리는 갇혀 있던 구름 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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