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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 엇갈린 운명의 현장
실미도의 젊은 넋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을까?
2011년 01월 14일 (금) 17:02:53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 무의도에서 바라본 저 작은 섬이 바로 실미도
ⓒ 이승철
 
"지금 정체불명의 무장괴한 20여 명이 인천 쪽에서 서울로 진입 중이라고 합니다."

1971년 8월 23일 점심시간이 약간 지난 시간, 누군가의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방송이었다. 무더위에 지쳐있던 버스승객들 중에는 으레 그렇고 그런 방송이려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혹시 또 무장공비가 나타난 것 아니야?"

그러나 승객들 중의 몇 사람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8월 하순이었지만 아직은 무더운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빛이 도심의 아스팔트를 녹이고 있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 서울 영등포를 지나고 있던 시내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 몇 시간 후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시외버스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말이 시내에 떠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몇 달 전에 군에서 제대하여 심신의 피로를 삭이고 있던 기간이었다. 이날은 영등포의 어느 다방에서 친구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근처의 음식점에서 저녁과 술을 마신 날이었다. 폭음소리를 듣거나 사건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사건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사건이 터진 몇 시간 뒤 송도 남쪽 조개고개에 상륙한 무장공비 21명의 서울진입을 저지했다는 대간첩대책본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3시간 후 정래혁 국방장관은 실미도에서 공군이 관리하던 특수범 23명을 격리수용 중이었는데, 이들이 불만을 품고 난동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정정 발표했다.

 
▲ 무의도 큰무리선착장 풍경
ⓒ 이승철
 
 
▲ 무의도 갯벌과 저멀리 보이는 샘물이 나온다는 작은 바위섬
ⓒ 이승철
 
2003년 우리 영화사상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넘긴 <실미도>는 이렇게 실제 있었던 실화였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이 사람들의 기억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 않았다. 선거 때나 국가적인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무슨 간첩단이니 휴전선에서 총격이 벌어졌느니 하는 보도에 너무나 식상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2003년 강우석 감독이 만든 영화 <실미도>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엄청난 사건을 다시 떠올리며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영화가 나온 이후 인천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 실미도는 일약 유명관광지로 부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영화 속의 실미도. 아니 1971년 내 또래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운명이 엇갈린 채 죽고 죽였던 현장은 그러나 나와는 별 인연이 없었던지 찾아볼 기회가 없었다.

오늘 우리 민족이 짊어지고 있는 현대사의 무겁고, 아프고, 쓰라린 상처가 만들어낸, 그래서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비극의 현장. 그 실미도를 찾은 것은 지난 2월 24일이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노인들로 대부분 구성된 모임에서 이 섬을 찾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꺼이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 일행들이 탄 버스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영종도와 한 몸이 된 용유도를 거쳐 역시 도로로 연결된 잠진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는 건너편의 무의도가 바로 눈앞이다.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바로 배를 타고 강처럼 좁아 보이는 해협을 건너 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 올라섰다.

 
▲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과 바다풍경
ⓒ 이승철
 
 
▲ 썰물 때 무의도에서 실미도로 건너가는 목새길
ⓒ 이승철
 
선착장에는 무의도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 외에도 20여 명의 관광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바로 앞의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랐다.

산 위에 오르니 주변의 풍경들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저쪽을 한 번 보십시오. 영종도와 인천 사이 커다란 배 두 척이 정박해 있는 사이에 작은 바위섬 하나가 보이지요?"

일행 중 한 사람이 옛날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는 20∼30대 때 이곳 바다에서 어선들이 잡은 생선들을 수집하여 뭍의 시장에 내다 파는 생선 도매상을 했었다고 한다.

"저 조그만 바위섬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이 있습니다. 그 조금 떨어진 곳에 보이는 훨씬 큰 섬에도 물이 없는데 말입니다."

멀리 바라보이는 작은 바위섬은 크기가 주변에 정박해 있는 선박보다도 작아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섬에서 샘물이 나온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 시절에 난 이 바다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지요."

한 번은 태풍경보가 내려진 바다에서 급히 돌아오다가 거센 바람에 밀려 어두운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 모두 이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 그것을 꼭 붙잡았는데 그것이 배에서 늘어진 밧줄이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이 순간이더라고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생명은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절감했지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역시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무의도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작고 길쭉한 섬이 내려다보인다. 그 섬이 바로 문제의 실미도였다.

 
▲ 무의도 바닷가에서 굴까는 할머니
ⓒ 이승철
 
 
▲ 실미도 그 비극의 현장
ⓒ 이승철
 
"저 섬이 실미도입니다. 오후에 썰물이 되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지요, 걸어서 저 섬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미리 답사를 했었던 리더 한 사람이 설명을 해 준다. 문제의 실미도는 무의도에 비하여 아주 작은 섬이었다.

우리는 썰물도 기다릴 겸 무의도 바닷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 메뉴는 굴이었다. 굴밥에 굴콩나물국, 그리고 생굴을 초장에 찍어 먹었는데 양식굴이 아닌 자연산이어서 맛이 특별했다. 작게 썰어서 무친 밴댕이회도 맛이 일품이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나오자 그 사이 바닷물이 줄어 갯벌이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 갯벌에 널브러지듯 주저앉아 있는 작은 어선들의 모습도 볼 만하다. 바닷가 도로 옆에서는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굴을 까고 있었다.

뾰족한 쇠갈고리로 굴을 한 번 찍을 때마다 틀림없이 아가리를 벌려 놓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노인이지만 정확하고 민첩한 손놀림이 오랜 경륜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이 못 깝니다. 손님들도 자주 찾고, 이런 일 저런 일 하다보면…."

할머니가 그렇게 하루에 까는 굴이 10kg 정도라고 한다. 이 자연산 굴은 1kg에 1만원씩에 팔리고 있었다.

점심 후 우리는 실미도를 향했다. 실미고개를 넘으며 조금 아래 넓은 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서 실미도 입장료를 징수했다. 어른은 2천원 노인과 어린이는 1천원. 실미도는 사유지로 땅 주인이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 실미도 현장 부근 바닷가에 있는 특이한 모습의 바위
ⓒ 이승철
 
 
▲ 옛 병사들의 막사터와 치우지 않고 쌓여 있는 쓰레기들
ⓒ 이승철
 
무의도에서 실미도로 건너가는 모세 길은 가운데 물길 위에 커다란 돌을 듬성듬성 놓아 밟고 건널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주변 갯벌이 모두 넓게 열려 있어서 모세의 기적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실미도에 들어섰지만 풍경은 비슷하다. 반달형으로 펼쳐진 모래사장과 그 앞에 널브러진 갯벌, 저 멀리 밀려난 바닷물이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모래톱을 걸어 섬 중간쯤에 난 오솔길을 넘으니 눈앞에 그때 그 비극의 현장이 나타났다.

넓은 바다를 품어 안듯 아늑하게 자리 잡은 모래사장과 양옆에 모여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광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는 정말 멋진 풍경이다.

언덕을 내려가는 소나무 밭에는 층층이 축대의 흔적들이 보인다. 아마 그때 그 실미도 684 부대의 막사가 있었던 자리일 것 같다. 아름다운 풍광에 어울리지 않게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던 현장에는 그러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만약 그때 기관병들이 먼저 행동을 했더라면 북파훈련병들이 이 자리에서 모두 죽었을 것 아니에요?"

정말 그랬을 것이다. 어느 쪽에서 먼저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상황과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도 저 바위틈에 숨어서 살아난 기관병도 있었고 화장실에 숨어서 살아난 사람도 있었다니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고나 할까요?"

전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던 중 약혼녀의 면회로 인천으로 되돌아가 살아난 김방일 중사는 실미도행 배를 탔다가 되돌아가서 살았으니 정말 구사일생이었던 셈이다.

 
▲ 돌아오는 길에서 바라본 영종도 갯벌 풍경
ⓒ 이승철
 
그러나 죽고 죽여야만 했던 그 젊은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우리 시대가 안고 있었던 시대적인 아픔이요 운명이었을 뿐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말없이 자리 잡고 있는 비극의 현장에는 관광객들만 찾아와 그저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떠올리려는 듯 무심한 눈길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모두가 무심한 가슴 아픈 비극의 현장에는 '영화 실미도 촬영장소'였다는 입간판이 두 개 세워져 있을 뿐, 주변에는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이 찾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사람들 입장료까지 받으면서 청소는 전혀 하지 않는구먼. 저것 좀 보세요. 쌓여 있는 쓰레기. 작년 가을에 왔을 때 보았던 모습 그대로인데요. 관할 관청인 인천시는 감독을 하기나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작년 가을에도 다녀갔다는 일행 한 명이 혀를 끌끌 찬다. 버리는 사람이나 관리하는 사람, 감독관청, 모두가 이 시대의 무책임한 방관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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