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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길이 펼쳐놓은 곱고 화려한 색채의 향연
2010년 11월 05일 (금) 23:35:05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내장사 입구 단풍 풍경  

 

 
“히야! 골짜기가 온통 불바다가 되었구먼”
“정말 불바다네, 비가 내려도 꺼지지도 않는….”
내장산을 오르던 날은 전날 백암산 등산을 마치고 정읍시내의 한 모텔에서 묵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내장산 입구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아침은 간단히 해장국 한 그릇씩으로 때웠다. 전날 밤 일행들이 과음을 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으니 과음은 당연히 피할 수 없었다. 다음날의 산행을 생각하여 적당히 마시라고 내가 말렸지만 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늦으면 내장산 입구에 들어가기도 어려울 것 같아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했지만 술에 곯아떨어진 사람들을 깨워 일으키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일행들을 수습하여 찾아간 곳이 해장국집이었는데 이 해장국집이 또 아주 특이한 곳이었다.

 

쑥해장국으로 쓰린 속풀이를 하다 

“조금 전에 송해씨도 이 해장국 한 그릇 들고 갔지요.”
“송해? 송해씨가 누군데요?”

반찬을 차리며 주인 할머니가 뜬금없이 송해씨라고 하니 무슨 말인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 송해씨도 몰라요, 나이 많은 코미디언 송해를….”

그때서야 모두들 감이 잡히는 모양이었다. 전날부터 시작된 내장산 단풍축제에 맞춰 이날은 내장사입구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노령의 연예인이 그야말로 코딱지만한 이런 해장국집을 찾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송해씨가 먹고 갔다는 쑥해장국을 우리들도 한 그릇씩 먹으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쑥 냄새가 향긋한 쑥해장국은 이 지방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음식이었고, 얼큰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전날의 과음으로 속이 쓰리던 일행들이 시원하게 쑥해장국 한그릇씩을 비워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차를 몰고 내장사 입구에 들어선 시간이 아침 8시경. 그러나 아쉽게도 날씨가 흐렸다. 안개까지 희뿌연 하늘에서는 가끔씩 작은 빗방울이 솔솔 떨어지고 있었다. 

내장 저수지를 지나자 넓은 제5주차장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곳을 그냥 지나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국립공원이어서 입장료는 받지 않았지만 주차비로 2천 원을 지불하고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도로변에는 새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고운 자태를 가을비에 적시고 있었다. 우리들의 앞과 뒤에도 차량행렬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가장 안쪽에 있는 주차장까지 무사히 진입할 수 있었다.

 
   
연못과 단풍
ⓒ 이승철
 

 

   
내장사 일주문
ⓒ 이승철
 

가을비에 젖은 골짜기의 고운  단풍

“어머머! 저 단풍 좀 봐? 자!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자.”
“역시 단풍은 내장산이 최고라니까.”

촉촉이 가을비에 젖은 단풍이었지만 곱고 화려한 자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이곳저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앞서 걷는 일행들의 뒤를 따르며 나도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어쩌다 한 두 방울씩 비가 떨어졌지만 우산을 받치지 않아도 될 정도여서 단풍관광이나 등산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곳도 감나무가 많기는 마찬가지군.”
“단풍도 곱지만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모습도 멋있는 걸.”

정말 그랬다. 백양사 일대도 감나무가 많았는데 내장사 입구도 감나무가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길가의 단풍나무 사이와 산자락에 노랗게 익은 열매를 매달고 서있는 감나무들의 모습이 붉고 노란 단풍과 여간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과연 신의 손길이 펼쳐놓은 위대한 작품이야, 정말 대단하구먼.”

앞서 걷던 일행이 걸음을 멈추어 선 곳은 연못 앞이었다. 정자와 단풍, 산 그림자가 어우러진 연못의 풍경을 어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탁월하다 한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창조해낼 수 있겠는가. 과연 신의 작품이라 할 수밖에. 

연못 주변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시각은 사람들마다 거의 비슷한 모양이었다. 일주문 앞에서 일행들이 머뭇거리고 있었다. 등산코스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의논을 하자는 것이었다. 

“어때? 서래봉으로 올라 능선을 한바퀴 돌아내려 올까?“

내가 일행들에게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일행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가 않다. 이곳까지 걸어오는 모습에서 어젯밤의 과음으로 인한 후유증이 깊어보였는데 종주 등반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 반만 돌아오면 안 될까?”

산행은 항상 제일 약한 사람의 수준에 맞추는 것이 안전하다. 무리하면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일단 일주문에서 오른편 오르막길로 방향을 잡았다.

 
   
내장사와 뒤로보이는 서래봉
ⓒ 이승철
 

내장산 등산의 진수와 묘미가 넘치는 서래봉길

“아이쿠 힘들어 잠깐 쉬어가지?”

서래봉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힘들었다. 그 힘든 길을 어젯밤의 술독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오르려니 무척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어젯밤 술 좀 그만 마시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술 마실 때도 다음날까지 생각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는 항상 지난 후에 하는 법이었다. 전날 백암산 등산 때 허벅지에 쥐가 나서 쩔쩔매던 친구는 어젯밤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평소에는 제일 뒤쳐지는 이 친구, 이날만은 다른 친구들의 술독 때문에 제일 씩씩하게 앞장서서 잘도 걷는다. 다리 힘이 풀린 친구들 때문에 그렇게 몇 번인가를 쉬어가며 능선에 올라섰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비도 한 두 방울씩 떨어져 나무와 풀들도 축축한 모습이었다. 

서래봉으로 가는 길은 바위능선 뒷길이어서 내장산입구와 내장저수지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우리들이 산에 오르는 사이 많은 차량들이 몰려들어 주차장이 가득한 모습도 바라보인다. 예의 제5주차장에서는 노래자랑이 벌어지고 있는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온다. 

“어이쿠 힘들어 죽겠네. 무슨 놈의 산이 온통 쇠사다리천지야”
일행들이 비명을 지른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모습이 마치 옛날 모내기 전에 소가 끌게 하여 논을 고르던 서래처럼 생겼대서 특이한 이름이 붙은 서래봉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온통 쇠사다리 천지였다.  

오르고 내리는 두 줄로 만들어진 사다리는 대부분 급경사인데다 빗물에 젖어있어서 미끄럽기까지 했다. 산길이 험하여 쇠사다리는 꼭 필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다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니 힘든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곳의 사다리는 거의 직각에 가까운 급경사에 발판도 아주 좁아서 내리막길에서는 금방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쇠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서래봉에 오르니 시야가 툭 트인다. 

발아래 골짜기는 약간은 흐린 시야에서도 단풍이 곱게 물든 내장사와 골짜기가 바라보이고 건너편의 봉우리들도 아스라하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불출봉의 바위봉우리와 저 멀리 망해봉도 장엄한 모습이다. 

“정말 멋지고 대단한 산이야. 이만한 높이에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산이 어디 또 있겠어?”
내장사 입구 쪽만 열려 있고 타원형으로 둘러쳐진 능선과 그 중간마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들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 아래가 내장사 골짜기
ⓒ 이승철
 

 

서래봉에서 잠깐 쉬며 간식을 먹고 다시 불출봉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어진 길도 마찬가지였다. 급경사 길에 놓인 쇠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길은 일행들을 힘들게 하고 때로는 위험을 느껴야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불출봉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능선에 도착했다.  

“자! 이쪽으로 와서 쉬십시오, 저희들이 방 빼겠습니다.”

상당히 넓고 판판한 능선위에서는 몇 사람의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가 우리들이 도착하자 일어선다. 그들은 자리를 양보한다는 말을 방을 빼겠다고 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라버니들, 우리들에게도 과일 좀 나누어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 일행들이 잠시 앉아 쉬며 다시 간식으로 감과 사과를 먹기 시작했을 때였다. 밑에서 방금 올라온 4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여성등산객 4명이 다가오며 다정하게 인사를 한다. 

“아! 드려야지요, 젊은 미인들이 오라버니라고 불러주시는데 어찌 과일을 나누어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일행들이 선뜻 손에 들고 있던 과일들을 그녀들에게 내밀었다. 광주에서 왔다는 여성등산객들이었다. 

과일을 나누어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부터는 사다리 길이 아니었다. 쇠사다리 길에 혼쭐이 난 일행들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 보인다. 날씨는 서서히 개이고 있었다. 그런데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골짜기 군데군데에서 뭉클뭉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우와! 저것 좀 봐? 골짜기에서 연기처럼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잖아?”

그 모습이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모두 넋을 잃고 바라본다. 골짜기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큰 덩어리로 나누어져 산자락을 타고 위로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꺼내 그 모습을 담느라 바빴다. 

“이 서래봉 길, 정말 '쥑이는' 길이로구먼. 경치도 걷는 묘미도 정말 환상적이야. 저 어르신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뒤따르던 부부가 그 풍경을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리고 내게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나란히 서며 부탁을 한다.

 
   
서래봉에서 바라본 불출봉
ⓒ 이승철
 

  전망이 일품인 바위봉우리 불출봉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 사이 날씨도 많이 맑아져 시야도 한결 좋아져 있었다. 우리들이 잠깐 쉬고 있는 사이 광주에서 왔다는 여성등산객들은 어느새 다음 봉우리를 향해 저만큼 앞서 내려가고 있었다. 

“역시 젊음이 좋긴 좋구먼, 저 여성들 보라고 벌써 씩씩하게 저쪽 봉우리로 향하고 있잖아?”
“왜, 우리들도 저쪽 망해봉까지 더 가보지 않겠어?”

그러나 일행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놈의 술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공연스레 무리를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고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길도 무난해서 어려움 없이 불출암지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절벽 아래 뻥 뚫려 있는 동굴이 옛날에는 암자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이 불출암지는 고려 광종 26년(서기 975년)에 하월선사가 암자를 세웠던 자리였다. 그러나 나한전 등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그을린 자국만 남아 있었다. 

조금 더 내려오자 왼편 길 아래로 푸른 나무숲이 싱그럽다. 그 유명한 비자나무 숲이었다. 비자림 옆에는 원적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적암에는 누렇게 금칠이라도 한 것 같은 불상이 건물보다 훨씬 높게 세워져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이 원적암은 고려 선종4년(서기 1087년)에 적암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7간이나 되는 웅장한 규모였으나 역시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1년에 법명이 중창했다고 한다. 원적암 바로 아래에는 잎이 모두 떨어진 감나무 몇 그루에 노랗게 익은 감들이 매달려 있었다. 

내장사는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골짜기를 걸어 내려오는 동안 날씨가 맑게 개어 햇볕이 쨍하다. 백제 때 영은조사가 창건했으나 대부분 황폐화되어 근래에 세운 절집들은 규모도 크지 않고 내장산의 명성에 비하면 오히려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서래봉을 배경으로 고운 단풍에 감싸인 풍경은 가히 절경이라 할 만했다. 

훨훨 불타는 것 같은 세계 최고의 단풍 

골짜기를 걸어 내려오는 길가의 풍경이 들어갈 때보다 훨씬 화려하고 산뜻하다. 들어갈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날씨가 활짝 개었기 때문이리라. 

“히야. 정말 대단해. 이런 단풍은 세게 어느 곳에서도 다시 볼 수 없을 거야.”
“마치 산과 골짜기가 훨훨 불타고 있는 것처럼 찬란해!”

일행들이 새삼스럽게 감탄을 금치 못한다. 전에도 골짜기는 몇 번인가 들렀지만 내장산 등산은 우리 일행들 모두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다. 맑게 갠 날씨와 곱고 화려한 단풍 때문이었을까? 힘들어 하던 일행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불출암이 있었다는 동굴
ⓒ 이승철
 

아이야, 우리 불 끄러 가자
내장산이 지금 온통 불타고 있단다. 

산꼭대기 모닥불로
모락모락 피어난 불이
온 산을 태우고 골짜기까지 번졌단다. 

불 끄러 갈 땐 조심 하여라
네 마음도 태울까봐 걱정이구나.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이 너무 고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태워버리고 만단다. 

산에 갈 때는 마음에
새하얀 도화지 몇 장 간직하고 가렴 

울긋불긋
곱게 채색된 고운 산을
수채화로 고스란히 담아 올 수 있게 

아이야, 내장산에 불 끄러 가자
온 산을 붉게 태우는 불 끄러 가자. 

-이승철의 시 <내장산 단풍>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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