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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있는 집에 책과 차 향기를 채우라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보내는 엽서 ②] '철학의 우물'을 파라
2008년 01월 08일 (화) 19:08:35 김태복 발행인 hipc6012@cry.or.kr

창이 큰 집 구해야

한국의 창은 시적(詩的)인 데가 없다. 민족의 신음처럼 문풍지가 울고, 잔뜩 겁을 집어먹은 아이처럼 조그마한 유리가 달런 창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소견(小見)이 있는 창이어서 불만이다. 여러분이 집을 구할 때 창이 큰집을 구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서양의 창은 얼마나 풍부한 것을 담고 있는지 우리나라는 창부터 고치는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 너무 어둡고 막혀진 창부터 크게 뜯어고침으로 어둡고 음울한 심성(心性)에 저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 흑은 거센 폭풍우라도 부딪히게 하여 밝고 강하고 진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몇 푼의 돈으로 일생의 귀한 분위기와 시감(詩感)을 불러일으킨다면, 우리의 못난 조상들은 먹는 데나 제사지내는 데는 엄청나게 낭비하면서 그 답답한 창하나 고쳐놓고 살지 못했는가? 우리는 창부터 고쳐야 한다. 비록 셋방을 구하던지 집을 개축하든지, 새집을 건축할 때는 창부터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밤늦은 시간, 책을 보든지 혹은 글이라도 쓰다가 지친 시간, 문득 내다 본 도시의 야경, 멀리 어디에선가 꿈에서처럼 막차가 돌아오는 기적이 울리고 지치어 입을 헤벌린 채 졸고 있는 막차가 시그널이 내린 종착역에 들어서는 지친 기적소리가 얼마나 따스하고 아늑한가?

   
▲ 여러분이 집을 구할 때 창이 큰집을 구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너무 어둡고 막혀진 창부터 크게 뜯어고침으로 어둡고 음울한 심성(心性)에 저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 흑은 거센 폭풍우라도 부딪히게 하여 밝고 강하고 진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 http://www.freedigitalphotos.net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밤에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그리고 한밤중에 문득 깨어났을 때, 그 창문에 부딪히며 떨어지는 억수 같은 빗소리는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적인가를 일깨워 주게 했던가? 함박눈이 쏟아지는 밤에 그 창가에 앉아 그 여인네 손길처럼 부드럽게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은, 아!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무엇인가 쓰고 싶은 감동에 취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네가 삶을 시작하는 집을 구할 때 생활의 편리만을 위해 너무 낮은 곳을 택하지 말라.

비록 서민아파트라는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창을 가진 높은 곳을 택하라. 너무 시장 가까이 위치해 있어서 지나친 탐욕의 악취가 여러분의 창에 가득히 배이게 하지 않도록 하고 비록 계단에 오르내리는 불편이나 연료 값을 더 지불하는 많은 손해가 뒤따른다 할지라도 너의 가정에,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의 삶 위에 호수처럼 아름다움을 고이게 하기 위해서는 멀리 산이 보이든지 숲이 보이든지 혹은 곱게 휘어간 강이 보이는 창이 있는 곳을 택해야 한다.

그 때 그 창으로부터 많은 것이 가정을 채우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리라. 여름 저녁, 멀리 산 저쪽으로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처럼 펼쳐 있는 서편 하늘의 찬란한 노을, 숲을 향해 잠자리로 돌아가는 한 떼의 새들, 강 위에 은어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파문들, 수많은 밀어(密語)를 나누며 강가를 거니는 연인들의 정경들이 너의 가정 가득히 흘러들어 올 것이며, 때로는 시장 가까이 위치해 있어도 몇 층의 위치에 있는 창으로 그 시장을 내려다본다면 엄청난 삶의 활기를 그 창은 흡수해 버리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장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는 그처럼 탐욕의 악취로 가득 차 보이던 그 상소리, 그 욕지거리, 바가지 씌움, 능청스러운 거짓말, 어느 때는 멱살을 잡고 싸우는 듯 한 삶의 투쟁들조차도 그 창은 묘하게 승화시켜서, 저리도 흥정하고 능청스럽게 웃는 것조차도, 자리다툼하는 노점상의 아웅타웅조차도, 산다는 것의 의욕찬 합창들로 들려지게 만들며, 탐욕의 악취조차도 활기찬 삶의 향기로 변모시켜 전달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그 창가에서 본적이 있는가? 이제 좀 전까지 도시는 취한(醉漢)처럼 흐느적거리며 남녀 서로가 사뭇 희롱하는 듯 농염한 몸짓으로 유혹하던 그 분위기가 사라지고 모든 인파와 모든 차량의 불빛과 모든 창의 불빛이 갑자기 지하로 잠적한 듯이 텅 빈 거리에, 간간 심야에 운행되는 몇 대의 택시만 밤 고양이처럼 휙휙 지나치고 그 후에는 더 큰 적막이 가득한 도시의 쓸쓸한 야경을 보면서 그 때 묘한 경건의 감정을 그 창은 배워주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은 하나님과의 시간이다. 창은 당신에게 기도하는 감정을 일으켜 줄 것이다. 도시와 조국과, 그리고 그 속에서 가난하고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고독한 이들을 위해서 아니 저 취한, 사기꾼, 악덕재벌이나 기만의 정치가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기구(祈求)를 올리고 싶은 사랑의 감정을 그 창은 전해 줄 것이다. 창가를 사랑하기 시작할 나이가 되면 인간의 참 고독을 배우기 시작할 시기로 하나님을 찾아 구도(求道)의 길을 오르는 순례자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서가에 책들이 채워갈 때

그 창 옆에는 책상이 놓이고 거기 서가를 세워 놓아야 제격이다. 그리고 그 서가에 중후한 내용이 담긴 책들이 꽂혀 있는 만큼 그 방은 무게를 더 할 것이요, 그 창의 능력도 깊어갈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단칸방에 산다할지라도 조그마한 서가가 놓여 있고 거기 방의 주인의 손때가 묻어있는, 그리고 제법 귀한 명저(名著)라도 몇 권 꽂혀 있을 때, 방문객은 주인의 인격을 높이어 볼 것이나, 아무리 넓고 큰 현대식 방에 비싼 가구를 비치해 놓았더라도 장식장 안에는 외제의 양주병이나 값비싼 컵들, 인형들만 놓여 있을 뿐, 모처럼 꽂혀 있는 책들이라는 것이 여성잡지, 요리책, 혹은 가볍게 읽어버릴 수필집 등이라면 이미 그 방의 주인을 천박한 정신의 소유자로 낮춰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방이 초라하더라도, 혹은 그 방에 놓인 가구가 낡은 것이라고 부끄러워 말라. 너의 서가에 꽂힌 책들이 너무나 빈곤한 것임에 얼굴을 붉히라. 이제부터는 젊은 날에 점심 한 끼라도 거르면서라도 청계천의 헌 서점을 구도자의 자세로 찾아다니면서 귀서(貴書)를 수집하라. 수석 채집가에서 배워야 한다. 풍우(風雨)만이 찾아드는 강변과 황혼의 고독이 벌레의 구슬픈 노래처럼 희뿌옇게 뿌려지는 어둑한 계곡에서, 혹은 한강과 한탄강과 영월과 강화도에서, 또는 조국의 모든 후미진 곳에서 귀석(貴石)을 찾기 위해 긴 날을 순례자처럼 헤매듯, 서점상의 눈총을 받을 정도로 저 엄청나게 쌓인 책들 속에서 영원한 진리를 담은 책들을 찾아내고 마치 샘을 마시듯이 그 책들을 깊이 들이키고 들이키라.

그 책들을 소중하게 서가에 꽂아 놓으라. 그러한 책들이 많아갈수록 너의 정신의 산(山)은 높아가고 그 계곡은 깊어가며 그 계곡에서는 어느 날 맑은 정신의 샘이 흐르기 시작하리니, 그 날이 이를 때까지 구도자처럼 그 반복을 계속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느 날 너의 서가에 그러한 책들이 가득 꽂혀질 때, 그것은 너의 안식처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때로 거리에 나가서 수많은 화려한 인파 틈에서 더 큰 고독을 느끼고 힘없이 돌아왔을 때, 또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다는 어두운 열등감으로 휩싸일 때, 너와 가까웠던 이들에게서 감정이 상처를 받았을 때, 삶의 단조로움에 견딜 수 없는 권태와 염증으로 이 모든 것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으로 가득할 때, 감당할 수 없는 큰 풍랑에 의해 삶이 파선(破船)된 듯 한 절망의 날에 너의 서가 앞에 빈 마음으로 앉아 있어 보라. 그리고 귀를 열고 경청해 보라.

때로 거기에서 칼 ·힐티, 혹은 에픽테토스, 스피노자, 하이데거, 때로는 채근담이나 파스칼, 임어당, 때로는 황순원이나 헤밍웨이, 도스토옙스키 등, 수많은 위대한 혼들의 소리가 혹은 강렬하게, 혹은 감미롭게, 혹은 위로자로, 흑은 충동자로 다가와 너의 엄청난 난제들을 향해 도전하는 용기와 인내와 관용을 일깨워 주리라. 그때부터 그 서가는 너의 정신적인 안식처요, 역사에로의 통로이며 위대한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교실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국 산하 모든 후미진 곳에서 구도자처럼 헤매며 수집한 수석들로 가득한 진열대를 보면서 또는 그 수석 하나를 집어 들고 쓰다듬을 때, 문득 떠오르는 추억들로 가슴이 감동이 차오르게 될 것이다.

이름 모를 야화(野花)들이 고독하게 흔들리던 강가들, 피라미들이 한가로이 떼 지어 몰려다니던 맑은 강물들, 초가을 벌레의 구슬픈 노래처럼 희뿌옇게 뿌려지던 어둑한 계곡 등 그 정경(情景)들이 삶의 새로운 의욕을 가져다주듯이 그 서가에 꽂힌 한권 한권의 책들이 네가 젊은 날, 점심을 거르며 청계천 헌 서점 속에서 구입한 것들이요, 그 책을 붉은 줄을 그어가며 목마른 사슴이 샘물을 마시듯이 갈급히 독파하던 것들이라면 어느 날,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안정을 찾은 나이에서도 이미 낡아버린 그 책이나마 결코 내다 버릴 수 없는 너 의 분신(分身)이며 너의 고독하고 눈물겹던 청년 날들의 산 비석임을 뜨겁게 느끼게 되리라.

   
▲ 40대에 들어서서는 지나간 날들 속에 너무도 스스로를 혹사(酷使)시켰는지, 쉽게 피곤이 오고 지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쉰다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차 한 잔의 여유를 배우기 시작했다. ⓒ http://www.freephotosbank.com
차 한 잔과 음악

이제 차 한 잔의 여유를 배우고 음악의 맛을 익히는 것이 순서이리라. 차 한 잔의 여유, 내가 그것을 배운 것은 우습게도 40대가 넘어서였다. 가난한 대학생 때나 신학생 때, 혹은 시골 목회시절이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던 30대 후반의 나이에는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일종의 일의 연장이요, 일을 위한 것이었다. 빠른 시간에 커피 한 잔을 먹어 치우고는 곧 다시 새 일에 몰두하고는 했다. 그러나 40대에 들어서서는 지나간 날들 속에 너무도 스스로를 혹사(酷使)시켰는지, 쉽게 피곤이 오고 지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쉰다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차 한 잔의 여유를 배우기 시작했다.

설교 준비를 하다가 막힐 때, 글을 쓰려고 하는데 의욕이 일지 않을 때는 차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한 때이다. 불신자들은 아마 이 때에 담배 한대의 여유를 가지리라. 차 한 잔의 여유는 모든 것을 잠시 접어두고 손수 차를 준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좋다. 물을 끓이고 잔에 가루를 넣고 스푼으로 천천히 휘젓는 그 적은 과정에서 여유가 시작되는 것이요, 이제 한 모금씩 천천히 맛을 보며 마시는 것은 차 맛 자체 그것보다 그 잠깐의 여유의 맛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시간에 음악이 곁들여 진다면 그 여유는 제왕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비싼 것이 되리라. 나는 6·25의 폐허 위에서 중·고생의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에는 명작을 구하기 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명곡(名曲)이었다. 라디오도 흔하지 않은 때에 전축으로 명곡을 듣는다는 것은 가난한 가정에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가서 아주 낡은 전축으로 잡음으로 뒤범벅된 음반이었으나 베토벤의 「운명」곡을 감격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고도로 발달된 오디오와CD, MP3 플레이어 등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나 TV에서 보여주는 관현악단, 이제는 영상까지 보여주며 들려주는 명곡들을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어서인지 이제는 그 모든 명곡이라는 것도 시들해 버린 느낌이 드는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마치 거리에 나가면 리어카 좌판 위에 화려하게 반짝이는 모조품 보석을 보고 난 후에는 진품(眞品)조차도 모조품인가 의구심을 가지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이런 모조품과 진품의 구별이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더 선별력을 키워가야 한다. 너의 귀가 저 난잡한 음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리하여 어느 날인가 녹슬어 버리는 비극을 만나지 않도록 보석 같은 음률들에 익숙하도록 연단해야 한다. 이제 모든 것은 구비되었다. 멀리 산과 강, 아니면 삶의 의욕이 활기차게 소리치고 있는 시장이 보이는 큰 창이 있고, 너의 분신과 같은 책들이 숨 쉬고 있는 서가가 있고, 손수 타온 차와 저 위대한 영혼의 기구 같은 노래가 울려 퍼지는 그 분위기에 한동안 근심, 책임감, 두려움, 모든 계획들을 접어두고 휴가 나온 병사처럼 빈둥거리며 그 분위기에 너를 맡겨보라.

아니 거기에 대화가 통하는 진솔한 벗이나 연인이라도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때야 깊이 깨달으리라.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적은 것에서 샘처럼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인생의 대부분의 고난은 어느 의미에서는 지나친 과욕에서 연유되는 것이요, 무욕(無慾)의 경지에 이르러 자연과 역사와 진리,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거기에 임하는 빛과 희열, 그리고 인간애(人間愛)는 마치 오랜 가뭄 끝에 대지 위에 임하는 단비와 같은 축복으로 내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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