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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민어철잉게, 홍어는 봄에 와야지라
[빗속여행 3일의 기록 3]갯냄새 물씬 풍기는 목포항
2010년 08월 17일 (화) 22:04:38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 항구풍경1
 
ⓒ 이승철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 1절-


옛 노래의 가사처럼 예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역시 목포는 항구였다. 그냥 항구가 아니라 갯냄새가 진동하는 항구 중의 항구,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항구가 많다. 그런데 왜 바닷가 어느 곳에나 흔하디흔한 것이 항구인데 목포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올까.

목포 땅을 밟아본 것은 이번이 내 생애 통산 네 번째다. 자주 국내여행을 하는 편이지만 목포는 내게 그만큼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그 목포는 갈 때마다 새롭고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맨 처음 목포 땅을 밟은 것이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 그때는 회사에서 목포출신의 후배가 부친상을 당해 회사 대표자격으로 방문했었다. 서울에서 서둘러 출발했기 때문에 목포 땅을 밟고 보니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 그 유명한 유달산을 먼저 올랐다. 조각공원도 둘러보고 산 위에서 목포시가지와 항구를 둘러보며 "저 섬이 삼학도겠지" "저기가 목포항이로구먼"하며 두리번거리다가 정작 빈소가 마련되어 있는 어느 병원영안실을 찾아가려니 지리가 어두워 조금 난감했었다.

그때 마침 도로변 주택에서 50대쯤으로 보이는 신사 한 분이 나타났다. 그에게 길을 물으니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내를 손으로 가리키며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차를 몰고 내려가는 방향을 일일이 짚어주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배를 돌보는 선원들
 
ⓒ 이승철
 

 
▲ 선박과 시가지 풍경
 
ⓒ 이승철
 
"내가 지금 가는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길을 기억하여 찾아가기 어려우면 목적지까지 직접 안내해주겠다"고까지 자청하는 신사가 정말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유달산 구경은 잘 했느냐고 물어보면서 유달산의 유래까지 설명을 해주었다.

"이 유달산은 암산이지요, 산의 크기에 비해서 바위봉우리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목포사람들은 본래 이 바위산인 유달산의 기를 받아서 사람들이 조금 거칠고 기질이 강한 편이지요."

친절한 초로의 그 신사는 우리들이 길 안내를 사양하자 조심해서 잘 다녀가라고 격려하고 다른 길로 내려갔다.

이번 여행길에서는 유달산에 오를 기회가 없었다. 목포 땅으로 들어서면서 우회전하여 왼편에 유달산을 끼고 오른편으로 해안 길을 달려 목포항을 찾은 것이다. 항구는 아침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조용했다. 정박하고 있는 일부 화물선들에 짐을 싣는 모습도 보였지만 대부분의 배들은 한두 명의 선원들만 배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신 텅 빈 배위의 높은 장대 끝에 앉아있는 갈매기들이 두리번거리며 우리들을 살펴보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 이채로웠다. 항구 안쪽의 바다는 가끔씩 쏟아지는 소나기와 돌풍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기만 했다.

눈물나게 톡 쏘는 홍어 대신 민어를

"자, 이제 흑산 홍어집을 찾아봐야지."

일행 한명이 서두른다. 그는 이번 여행에서 꼭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숙성된 흑산도산 홍어를 먹어보겠다고 별렀던 친구다. 일행들은 바닷가 도로를 건너 시장통으로 들어섰다.

이번 여행의 길잡이인 다른 일행이 몇 년 전에 이곳에서 먹었던 바로 그 홍어집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런데 골목길을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그 홍어집이 나타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근처 가게에 들러 흑산 홍어를 파는 집을 가르쳐 달라고 물어 보았다.

"이 부근에는 홍어를 요리해서 파는 집은 없구만이라,"

50대의 아주머니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근처에 홍어라고 쓰인 간판들은 몇 개 보였지만 홍어를 그냥 통째로 파는 가게들이었다. 전문 홍어요리집은 근처에서 찾을 수 없었다.

 
▲ 작은 배들과 선창가의 일행들
 
ⓒ 이승철
 

 
▲ 항구 앞 시장입구 풍경
 
ⓒ 이승철
 
"왜 꼭 홍어를 드실라고라? 지금은 철이 아닌디. 지금은 민어 철잉게 민어를 잡숴보시지 그라요? 홍어는 봄에 와서 드셔야지라."

우리들이 홍어집을 찾고 있을 때 부근에 서 있던 40~50대로 보이는 남자들 몇이 우리들에게 다가와 민어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홍어는 요즘이 제철이 아니라 비싸기만 할뿐 본래의 맛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구먼, 눈물나게 톡 쏘는 홍어는 다음에 먹기로 하고 오늘은 민어로 대신하는 게 어때?"

홍어를 꼭 먹겠다고 별렀던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신 민어를 먹기로 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홍어 요리집이 근처에는 없고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 생각보다 참 친절하네. 이 지방 사람들 매우 억세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먼, 친절하기도 하고."

일행들은 우리들이 묻기도 전에 찾아와 안내해주는 그들의 친절에 모두들 고마운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들이 일러준 민어 요리집을 찾아들었다.

그런데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시키고 잠깐 기다리자 종업원이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 민어회를 4만 원짜리 한 접시를 시키고 민어매운탕을 시켰는데 민어회 주문량이 적어서 매운탕을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매운탕이 여느 횟집처럼 공짜인 것도 아니었다. 1인분에 5천 원씩을 따로 받는 별개의 음식이었다. 그런데도 회를 적게 주문해서 매운탕을 해줄 수 없다니 이런 음식점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음식 주문량이 너무 적다니, 아침식사인데 얼마나 많이 먹으란 말인가, 순간적으로 계산해도 1인당 1만원씩이 넘는 금액이었다.

"우리 그만 가자고, 뭐 이런 집이 다 있어? 목포에 와서 좋았던 인상 다 망쳐놓는구먼."

너무 의외의 반응에 몹시 기분이 상한 일행들이 모두 일어섰다. 그러자 종업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종업원이 돌아왔다.

"사장님이 그냥 모시라는데요, 주문하신대로 음식 준비하겠습니다."

종업원은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일행들은 역시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눌러 앉았다. 아침부터 홍어집을 찾느라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 어느 골목길 재활용품으로 가득한 구두센터 풍경
 
ⓒ 이승철
 

 
▲ 홍어를 썰어놓은 모습
 
ⓒ 이승철
 
조금 기다리자 민어회 한 접시가 먼저 나왔다. 일행들은 간단한 반주를 곁들여 민어회를 곁들여 먹었지만 별다른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기분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리라. 이어서 나온 매운탕도 맛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음식 맛처럼 그런 퉁명스럽고 불친절함은 계산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마찬가지였다.

다들 친절한데 왜 그 음식점만 불친절했을까

"음식 맛이 어쨌능기라? 민어 맛이 매우 좋았지라?"

음식을 먹고 나오는 길에서 마침 우리들을 안내해준 사람들을 다시 만나자 그들이 자신 있는 말투로 묻는다. 그 음식점은 목포에서 많이 알려진 제법 유명한 집이었나 보았다.

"네.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친절한 그들에게 차마 그 음식점의 불친절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들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말하면 공연스레 그들이 미안해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홍어 좀 사가지고 가면 안 될까? 숙소에서 먹을 수 있게 말이야."

시장통으로 나와 길가에서 홍어를 파는 작은 가게가 보이자 홍어에 잔뜩 기대를 했었던 일행이 앞장을 선다.

"이 홍어는 흑산 홍어가 아니지라. 수입산이랑게요. 그러나 지금 가지고 가시면 적당히 숙성이 되야서 저녁에 드시면 맛이 좋을 것이구만이라."

이 지방 특유의 억양으로 말하는 가게 아주머니도 친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많은 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성껏 썰어서 포장해주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정겨웠다.

"다들 이렇게 친절한데 왜 그 유명하다는 음식점만 그렇게 불친절하지?"

일행들은 아직도 그 불친절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처럼의 여행에서 아주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었던 지역이 한 음식점의 불친절로 아쉬운 기억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 곱게 포장한 홍어
 
ⓒ 이승철
 

 
▲ 바닷가 소나무 위의 모형 학
 
ⓒ 이승철
 
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목포는 항구다> 뱃고동 울리는 선창가 어디에선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은 이난영의 애절한 노래 한 자락이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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