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1.1.14 목 09:50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교육 | 젊은 크리스천에게 보내는 엽서
     
젊은 크리스천이여, 여행을 떠나라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보내는 엽서 ①] 조국의 가슴 속 깊이 고인 눈물을 퍼 올리어 마시라
2008년 01월 04일 (금) 10:11:13 김태복 발행인 hipc6012@cry.or.kr

1990년 초에, 「젊은 크리스챤에게 보내는 엽서」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었다. 그 책의 내용을 다시금 개작(改作)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모두 청년이 된 자녀들에게 아버지들의 잠언(箴言)을 남기고 싶은 생각에서 이 글을 써본다. 그 글에는 나의 젊은 날의 고백들도 들어 있지만, 전쟁의 상처가 도처에서 신음을 나타내고 있던 극한 상황에서 방황하던 모습들이, 풍요로 배불러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호소력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을까가 우려가 되는 점이다.

제 1 장 젊은이여, 여행길을

너는 여행의 의미를 아는가?

오늘을 사는 너희 젊은이들이 몸집은 점점 거대해가고 문화의 기름기가 너희의 단아한 용모 위에 윤택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죽대처럼 치솟는 그 의기(義氣)는 점점 왜소해 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가? 담배연기와, 고막을 찢을 듯 한 크고 빠른 음악으로 숨 막힐 듯이 가득한 지하 카페에서 하루 종일 처박혀 몇몇의 여자 계집애들과 일상 잡사(雜事)를 화제로 시간들을 메우면서 노닥거리는 모습은, 차라리 고독한 몸부림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아버지 세대가 땀내가 배인 중학교 교모를 쓰고 지나던 1950년대 거리는 아직 전쟁의 상흔(傷痕)이 파편처럼 얼굴과 건물과 기념탑에 박히어 있고 원조물자로 하루를 연명하는 판자촌의 허기진 몸뚱이들이 밤이면 망령처럼 거리를 헤매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국을 잃어버린 노란 머리로 염색한 채, 거의 벗다시피 한 여자들이 키가 큰 이국(異國) 군인들의 팔에 매달려 가면서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모습에서도 우리는 분노조차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우리의 누나들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 조국의 역사와 현실, 온갖 사상에 대해 개안(開眼)이 되었을 때, 우리의 가슴은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강대국의 길목에 창녀 꼴이 되어 이 나라, 저 나라에게 겁탈만 당해온 지지리 못한 역사를 가진 민족, 강대국의 꼭두각시가 되어 형제와 형제들이 갈라져서 총부리를 겨눈 채 한바탕 전쟁을 벌이므로 금수강산 골짜기마다 피의 강을 이루게 하고 시신(屍身) 썩는 냄새를 진동하게 했고, 무슨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그 개념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처지에 빨간 완장을 차고 우쭐거리는 맛에 죽창을 들고 서로 찔러대던 한심한 민족을 바라보며 누구엔가 그 분노를 터트리지 못해 가슴앓이를 했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너희들처럼 발랄한 재치도, 서구적인 체취를 풍기는 단정하고 헌칠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러나 염색한 군복과 낡은 군화를 신은 가난뱅이 대학생이요, 그 흔한 호떡조차 사먹을 돈이 없어서 쩍하면 점심을 거른 채 캠퍼스를 오를락 거리며 강의를 듣는 입장이었으나 투사처럼 의기만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우리는 처절히 죽어간 사람들의 망령이라도 배회할 듯싶은 개천의 뚝방 길을 밤늦게 거닐면서 조국과 세계정세와 독재자들의 독선과 우리의 꿈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며 토론하고 했었다.

오늘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아버지들이 너희에게 그것을 지니기를 간절히 희구한다. 너희가 그것만 너희 풍요한 가슴에 참나무처럼 심기만 한다면 세계 어느 젊은이들과 비교하여도 뒤 떨어지지 않으리라. 이제 산속 깊은 계곡을 오르는 구도자(求道者)처럼 그 의기를 키워내기 위해, 저 권태와 노닥거림과 더욱 고독의 짙은 냄새로 가득한 카페를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기를 권하고 싶다. 여행이란 충분한 돈이 있던가, 아니면 우화에 나오는 주인의 천막을 끝내 차지하고야만 낙타의 뻔뻔스러운 심보가 있어야 한다.

여행의 맛은 우리를 간섭하고 때로는 선의의 감시를 멈추지 않는, 모든 속박하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문득 생경(生硬)한 도시의 역에서 내리게 되고, 그리하여 아무도 알지 못하고 누구 하나에게도 전화 걸 곳조차 없는 도시의 광장에서 가로등 밑을 지나치며 시작되는 것이다. 어쩌면 짜릿한 자유감과 도피행각 같은 음모 같은 스릴과 새로운 도시와 읍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여서 일으키는 여행의 독특성이 그 진미(眞味)이기도하다. 여행은 간섭해 주는 이가 없어서 좋다.

여행은 여인숙이든, 시끄러운 삼류 하숙이든, 점잖을 부려야 하는 여관이든, 두둑한 호기(豪氣)로 들어서지만 왠지 자꾸 꿀리게 만드는 호텔이든 아무 곳이나 유숙할 수 있어 좋다.

또는 여행은 한참 근무에 시달리던 시간에 영화관이든, 도서실이든, 경쟁의 열기가 가득한 운동경기장이든, 노인들이 동상처럼 앉아있는 공원이든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쥐고 있어서 좋다. 여행은 아침에는 된장찌개를 먹고, 점심에는 칼국수로 먹고 저녁에는 시장 내 좌판에서 쭈그리고 라면으로 때우든지 간섭하는 이가 없어 좋다.

그러면서도 여행은, 다소 무관심한 시민들의 태도 때문에, 또는 다소 계산적인 도시 때문에 어느 만큼의 서러운 생각이 들게 됨으로 서정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기어이 자정이 가까운 시작에 도시 변두리를 지나치는 열차의 기적 때문에 목이 메어지게 되고, 그래서 다시 사랑으로 간섭하고 끈끈한 정으로 속박해대는, 서로의 아이들의 이름까지 소상히 아는 우리의 가난한 거리와 가정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일게 해서 좋다.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거리가 얼마나 인정이 넘치고 또한 생활이 생동하며 비록 어린애의 칭얼댐이나 이웃집에서 들리는 욕지거리 소리라도, 그리고 빨래줄 위에 걸린 여인네의 색 바랜 속옷까지라도 얼마나 정겨운 것 인가를 깨닫게 해주기에 좋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를 정리해보고, 또 철지난 옷들을 장롱에 정리해 넣는 것처럼, 우리의 얻은 것과 잃은 것들을 차곡차곡 기억의 방들에 정리해 넣을 수 있어서 좋다.

조국산하(祖國山河)를 순례자 되어

그러나 여행이 다만 낭만적인데만 치우쳐 열차를 타고 어느 시골 역에 내려 적당히 피곤할 만큼 도보로 걸은 후, 어느 계곡에 텐트를 치고 버너에 음식을 해먹고 연인이든, 벗이든 함께 밤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기타에 맞춰 캠프 송을 부르는 것으로만 끝나든지, 혹은 어느 생경한 도시에서 삼류영화나 보고 포장마차에 앉아 키들거리며 먹는 싸구려 음식 맛의 그 자유감으로 족하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여행의 진수를 잃은 모습에 불과하다. 여행은 조국산하를 순례자 되어 아픈 마음으로 헤맬 때 무게가 있다.

   
▲ 너, 젊은이여! 이제는 네가 배낭을 메고 조국의 산과 강과 들길을 헤매어 보라. 눈 덮인 산 준령에서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는 강가에서, 혹은 어둑한 황혼이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산 계곡을 네가 헤매는 동안 너는 거기에서 살다가 간 하얀 옷을 입은 조상들의 질긴 인고(忍苦)의 아픔 들을 읽고 터득하게 되리라. ⓒ http://blog.naver.com/estheris1004
조국 산하는 어머니의 가슴이다. 철부지 어린아이가 어머니 가슴에서 칭얼대며 성장하는 동안은 어머니의 가슴속에 고인 그 눈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멀어진 후에야 그 가슴속에 고인 한(限)같은 눈물의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너, 젊은이여! 이제는 네가 배낭을 메고 조국의 산과 강과 들길을 헤매어 보라. 눈 덮인 산 준령에서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는 강가에서, 혹은 어둑한 황혼이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산 계곡을 네가 헤매는 동안 너는 거기에서 살다가 간 하얀 옷을 입은 조상들의 질긴 인고(忍苦)의 아픔 들을 읽고 터득하게 되리라.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여행을 권장해 보는 것이다. 계절마다 여행의 맛은 다르리라. 봄과 여름의 여행은 상당한 유혹이 올무처럼 너의 순수한 배움을 어지럽힐 것이다. 저 울긋불긋 한 의상, 저 남녀들의 교성(嬌聲)처럼 들려지는 그들의 노래와 웃음들, 저 여름날, 해변의 반라(半裸)의 붉은 몸짓들은 너의 사념(思念)을 흐트러지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떠나가 버린 텅 빈 늦가을의 들길과 낙엽들이 사체(死體)처럼 질펀히 누워있는 산로(山路)를 헤매는 동안 너는 더 많은 습득물을 발견하게 되리라.

모든 것이 매장되어버린 겨울의 저 살벌한 대지 위에서, 저 교성과 향연으로 몸부림치다 못해 결국 음란을 배설하던 그 여름 바닷가 모래 벌, 그러나 이제는 사나운 파도소리와 죽음의 정적이 싸여 있는 그 곳에서 너희는 진정한 조국을 배울 수 있고 비수처럼 깊숙이 감춰진 조상들의 한(限)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조국에 대해 눈이 뜬 것은 군(軍)에 입대할 때부터였다. 그때까지는 어머니 조국의 젖가슴에서 칭얼대며 자랐을 뿐, 조국의 가슴속에 있는 아픔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군대에 가서 논산 훈련소에서 초봄의 차가운 눈과 비를 맞으며 훈련을 하고 행군을 하는 동안, 그리고 임진강변 최전방에 배속 받은 날부터 북쪽에서 들리는 대남방송을 들으면서, 그리고 황혼의 붉은 빛이 가득 차 흐르는 임진강의 물결과, 트럭에 짐짝처럼 처박힌 채 동두천과 포천읍을 지나칠 때 목격한 미군병사들에 매달리다 가다시피 하는 양공주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전방 참호 속에서 차가운 엠원(M1)을 움켜쥐고 전선을 지키는 동안 밤새도록 울어대는 밤새들의 슬픈 지저귐을 들으면서 두려움을 떨던 초년병 시절을 겪으면서, 나는 어머니 조국의 저 눈물, 저 찢겨져 가던 조상들의 절규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태백산맥」이라는 장편의 작가 조정래(趙廷來)씨는 머리말에서 쓰기를 <매달 월말이면 보따리를 싸들고 열흘 정도씩 집을 비웠다. 그러다보니 3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것들을 올올이 간추리고 엮어 베를 짜기로 한 것이 「태백산맥」이다. 그 베는 소수인의 치장을 위한 비단이 아니라 다수인의 살을 감싸는 삼베나 광목이어야 한다. 민족분단의 삶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민중의 상처와 아픔을 감싸고자 하는 베자기 작업이 어떻게 종합되고 통일을 이루어, 잘려진 태백산맥의 허리를 잇는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 짐을 나는 지금 지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허리 잇기' 염원이 언제인가는 성취될 것을 믿으며 앞으로도 동반자 없는 등반을 계속 해나가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고 했다.

한마디로 그의 끝없는 여행과 동반, 피를 짜내는 그 저술은 바로 그의 구도(求道)였고 조국의 순례였다고 할 수 있다. 점점 졸목(拙木)만 양산되어 가는 오늘의 풍토 속에서 너희만이라도 비록 번뜩이는 재치나 뛰어난 성적이나, 내놓을만한 어느 화려한 경력이 없을지라도 거목(巨木)이 될 만한 큰 그릇, 큰 꿈, 큰 패기가 죽대처럼 너의 가슴에 뻗쳐오르고 있으면 바라고 싶다. 아무리 뛰어난 재질이 있을지라도 서투른 목수에 의해 이리 깎이고 저리 다듬어져 버린 매끈하고 정교한 자보다는 비록 통나무 그대로의 거침이 남아있는 편이 훨씬 귀한 것이다. 너희가 거목이 되기를 이리 애타게 바라는 것은 소시민으로 오늘의 생활에 찌들어 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 세대들의 초라함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희구일지 모른다.

조국 사랑, 하나님 사랑

너희가 크리스천으로서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하나인 것을. 조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요, 이 나라를 지키고 성숙하여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로 발전시킬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조국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세계를 또한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된다는 점이다. 일찍이 함석헌 씨는 “세계는 교향악단과 같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라마다 각각 하나님이 독특한 악기를 주시고 그 모든 악기를 통해서 대교향악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악기는 무엇인가? 고난이라 했다. 그것은 피리에서 울려나는 저 한(限)의 음색이 바로 우리의 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때 위대한 진가를 발취하는 민족이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세계 사랑을 논할 수 없다.

안병욱 씨는 말하기를 “민족은 우리가 그 속에서 태어나서 그 속에서 살다가 그 속에서 죽어야 하는 우리의 품이요 어머니요 운명이요 기반이다. 같은 땅, 같은 핏줄기, 같은 말, 같은 문화, 같은 역사, 같은 습관, 같은 전통 속에서 동고동락하고 공존공영 하는 운명공동체이다. 민족은 하나의 생명체다. 국토는 민족의 몸이요, 문화는 민족의 머리요, 언어는 민족의 입이요, 역사는 민족의 맥박이요, 전통은 민족의 기성이요, 사상은 민족의 혼이다.”고 했다.

너, 젊은 크리스천들이여, 이제 너를 졸아지게 만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한 권의 성서와 한권의 시집(詩集)이라도 담긴 배낭을 메고, 조국 산하를 향해 구도자의 자세로 순례의 길을 떠나라. 꽃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있는 봄의 산하든지,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날의 계곡이든지, 찬연한 색조로 황홀한 춤을 추고 있는 가을의 산로든지, 눈 덮인 산과, 꽁꽁 얼은 강위를 눈보라를 헤치며 과감히 여행을 떠나보라.

때로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 울기도 하고, 때로 어느 외진 산골에서 따스한 인정을 만나기도 하면서 거기에서 조국의 가슴 속 깊이 고인 눈물을 퍼 올리어 마시라. 거기에서 우리 민족들이 수천 년 동안 이 지지리도 못나게 눌리어 살았음에도 질기게 생존시켜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내라.

김태복 발행인의 다른기사 보기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2020년 성탄절에 드리는 기도
5개 대형교회, 기도원 등 치료센터로
2020년, 교회협 10대 뉴스 선정
“Are you Jesus?”
중국 공산당, 가정 교회 급습해 예배
겨울은 용서의 계절이다.
하늘이 주신 권리
12월 선교편지
예수님과 함께
창립 60주년 맞는 홍익교회
최근 올라온 기사
1월의 선교편지
제7강 습3:14-20 시온에서 울려...
파도
파도
세계의 새해풍습 공통점
나 없이 너 없다.
자가 격리도 해 봤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미 민주주의 심장, 시위대에 훼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와 한국교회...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