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5.18 금 11:55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문화/미디어
     
도둑맞고 빼앗겼지만 그래도 세계최고의 박물관
[룩소르에서 다마스쿠스까지 69/64]이집트 카이로박물관
2010년 05월 10일 (월) 13:06:32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카이로 박물관 전경
ⓒ 이승철
 

“자! 여러분을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모시겠습니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행들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카이로 박물관이었다. 그런데 카이로박물관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면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아닌가요?”

누군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가이드의 안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 일행 한 사람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면 당연히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라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에 우선 입장하다

“물론 단순히 소장품만으로 평가한다면 당연히 루브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이 최고지요. 그러나 그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은 솔직히 말해서 침략과 약탈로 얻어진 유물들 아니겠습니까? 순수하게 조상들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서는 카이로 박물관이 세계최고라는 뜻이지요.” 

그때야 그 일행도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박물관 안에 들어가 보시면 당연히 알고 느끼시겠지만 카이로박물관을 보시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서구 열강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유물들을 도둑맞고 빼앗겼지만 전시된 작품들을 보시면 제가 세계최고라고 말씀드린 이유를 금방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버스가 박물관 정문 앞에 도착했다. 우리들이 일찍부터 서둘렀는데도 벌써 정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박물관 안에서는 일체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카메라는 놓고 들어가십시오.”

당연한 조치이겠으나 혹시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카이로 박물관 정문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 이승철
 

버스에서 내리자 가이드와 현지인 가이드가 함께 정문을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띤 표정으로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자! 들어가시죠. 우리들 먼저 들어가랍니다. 머나먼 코리아에서 온 손님들이라고 특별히 배려를 해주겠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입장 우선권을 준다는 말이었다. 가이드를 따라 우리가 우르르 안으로 몰려 들어가자 현지인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런 조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그들의 표정에서는 어떤 미움이나 적대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하는 여성들도 보였다.

정문 안으로 들어섰지만 곧장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마당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입장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물관 마당에도 상당한 볼거리들이 있어서 무료하게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박물관 마당에 허술하게 놓여 있는 진품 고대유물들

“여기 이렇게 노출되어 있는 것들도 유물처럼 보이는데 혹시 모조품입니까?”

마당에 꽉 들어찬 사람들이 걸터앉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는 돌조각상들이 궁금했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감식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예사로운 것들이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돌조각상들도 모두 진짜 유물들입니다. 몇 천 년이나 된 것들이지요. 진품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 반질거리는 돌조각상들이 진품이라니 선뜻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했다. 그런 진품 유물들이 마당에만 몇 개가 방치되다시피 놓여 있었다.

 

   
박물관 앞에 몰려든 인파
ⓒ 이승철
 

“이것이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수많은 외침과 약탈로 많이 빼앗겼지만 남은 유물들을 모두 보관하기에는 이 박물관이 너무 비좁기 때문이지요.”

그 가치를 돈으로 쉽게 계산할 수 없는 유물들이 이렇게 박물관 마당에 놓여 있다니. 어찌 보면 한심한 일이었지만 이집트의 현실은 더욱 크고 완벽한 박물관 건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은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외벽과 지붕의 돔이 붉은색인 이 박물관은 2층 건물로 그 규모가 화려한 소장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고 초라한 것이었다. 

이집트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1858년 6월 1일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이집트관 소속 연구원이었던 고고학자 아우구스트 마리에트(Auguste mariete)가 이집트의 고적 관리 감독관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에 의해서 처음으로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현재의 이집트 박물관의 모체가 된 것이다. 

카이로 박물관의 역사 

1799년 7월에 발견된 로제타 석(Rosetta Stone) 비문의 연구가 프랑스의 석학 쟝 프랑소아 샹폴리옹(Jean Francoise Champollion)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 결과는 1809~1816년 사이에 18권의 책으로 발표되었다, 이때부터 유럽의 열강들은 이집트의 고대 문화유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이집트의 고분들과 신전들은 일대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수난의 혼란기에 프랑스의 일부 학자들이 이집트 정부에 박물관을 설립하여 문화재 유출을 막고 관리하도록 건의한 것이다, 이로써 1834년 이스마일리아에서 발견된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 어설프나마 체계적으로 소장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이집트는 아직 유물들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체계적인 관리의 어려움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이집트 정부는 결국 1855년 이집트를 방문한 오스트리아의 맥시밀리안 왕자의 청을 받아드려 이 유물들은 모두 비엔나로 옮겨졌다. 이렇게 되어 이집트 최초의 박물관은 비엔나에 세워지게 된 셈이었다. 

실제로 이집트에 최초의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1863년 10월에 나일강 수리회사의 건물을 빌려 유물들을 소장 전시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집트의 박물관이 1887년부터 1901년에 걸친 5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된 현재의 건물로 이전한 것은 1902년이었다.

 

   
박물관 마당의 고대유물
ⓒ 이승철
 

“이제 안으로 들어가시죠. 이 정도면 우린 참 빨리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박물관 마당에 놓여 있는 유물들을 살펴보며 이집트 박물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 우리들의 입장 순서가 된 것이었다.

“이 박물관에는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에서 3500년 전의 유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의 유물들은 알렉산드리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법 까다로운 검색대를 거쳐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지만 역시 사람들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저곳에서 시끌벅적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소리는 모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유물에 대해서 설명하는 가이드들의 목소리였다. 

“히야! 정말 대단하구먼, 중국의 박물관 유물들하고는 그 규모의 차이가 심하군.”

엄청나게 크고 정교한 돌조각상들을 바라보며 우리 관광객 한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그는 중국의 박물관들도 많이 둘러보았다고 했다. 

“스스로 세계 최고의 고대문명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중국인들도 이곳에 오면 입을 다물지 못한답니다.”

우리 가이드가 한 술 더 떠 이집트 고대문명을 칭찬하는 말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소년 왕 투탕카멘의 유물관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한 유물들에 매료되어 두 눈이 둥그레져 있을 때 가이드가 우리들을 2층의 또 다른 전시실로 안내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화려하고 정교한 유물들

우리가 들어간 곳은 1922년 11월에 영국의 카나본 경과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투탄카멘 왕의 유품들을 전시한 특별전시실이었다. 이 특별관에는 당시에 발굴된 유물 모두를 한 장소에 전시하고 있는 정말 아주 특별한 전시실이었다.
 

   
저 석상은 진품일까? 모조품일까?
ⓒ 이승철
 

당시 투탕카멘의 왕릉발굴은 이미 다른 고대 이집트의 왕릉과 고분들이 무려 900여 개가 발굴된 후였다. 당시 고고학계에서는 다른 왕들과 달리 투탄카멘은 소년 왕으로서 18세까지 불과 9년밖에 집권하지 않은 왕이어서 많은 학자들이 무덤이 없을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고고학계는 물론 도굴꾼들까지 수색을 중단했었던 관계로 발굴 당시 유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유일한 왕릉이었다. 

그 투탕카멘 왕릉에서 발굴된 유품들 중에서도 그 유명한 황금가면과 황금관은 정말 가슴을 설레게 하는 눈부신 모습이었다. 

박물관의 유물들은 왕조별 시대별로 구분되고 건축물의 일부, 도는 각종 조상(彫像)과 부조(浮彫), 벽화, 공예품 등 당시의 생활 전반에 걸쳐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파라오들이 사용했던 수레와 투탄가문의 무덤에서 발굴된 의자의 장식은 섬세하고 화려해서 도저히 수천 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음 세상에서의 부활과 영혼이 잠들 육체가 있어야 한다는 신앙에서 만들어진 미라의 수술대는 너무 끔찍했지만, 아직도 잠자듯 천에 둘러싸인 채 누워있는 미라의 모습은 아직도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죽은 자의 미라를 만드는 풍습은 고대 이집트뿐만 아니라 남미의 잉카제국에서도 성행하였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6000년경부터 기독교 시대 도래기까지 이 풍습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 박물관 지하에는 12명의 파라오 미라가 있는데 따로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박물관마당에서 기념촬영 가운데 앞줄 파란모자가 필자
ⓒ 이승철
 

10만 점이 넘는다는 이 박물관의 그 많은 전시 유물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히 눈길을 끈 것은 유리로 만든 황금관이었다. 유리로 만들어 황금으로 정교하게 세공을 하여 시신을 안치하는 관은 마치 요즘의 플라스틱 반찬통처럼 한 번에 위아래 관이 이가 딱 맞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정교함이 너무 놀라웠다. 당시 그렇게 정교한 유리관을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눈앞에 있는 유물은 당당하게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으니 그저 감탄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라는 꼭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동물들의 미라도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곳에는 파피루스에 죽은 자의 심장과 새의 깃털의 무게를 측정하는 모습의 그림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죽은 자의 심장이 반대쪽에 있는 새의 깃털보다 가벼워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고. 그래서 신이 깃털 쪽의 저울 줄을 붙들고 심장이 더 가볍다는 사인을 보내면 그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 그림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앙이고 내세관이기도 했다. 이집트는 5천년의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었지만 신 왕국이 멸망한 후 1952년 나세르 장군이 이집트 인민공화국을 세울 때까지 26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동안 그들 고유의 문자와 언어는 잊어버리고 지배자들의 문자와 언어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 또한 땅에 묻히고 말았었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땅에 묻혔던 역사가 유물들을 통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그 찬란했던 과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카이로 박물관이었던 것이다.

카이로 박물관의 유물들은 1층에 고왕조시대의 유물과 멘카우레왕, 두 여신의 석상, 카프레왕의 석상, 서기관의 좌상, 촌장의 목상, 귀족부부상, 거위 벽화, 중왕조시대의 유물, 멘투호테프 1세의 석상, 귀족의 분묘 벽화, 신왕조시대의 유물, 핫셉수트 여왕의 석상, 쿠쿠모스 3세의 석상, 암소신의 석상. 람세스 2세의 석상, 기타 석관, 목선, 미라 수술대. 로제타 수톤 모형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박물관 관람 후 마당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 이승철
 

2층에도 투탕카멘의 특별전시실과 함께 수많은 소품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역시 가장 관심을 두는 곳은 투탕카멘의 전시실과 파피루스와 관, 그리고 파라오들의 미라 전시실이었다. 그리고 복도에도 수많은 돌조각품들과 유물들이 마치 도열이라도 하듯 많이 늘어서 있는 것은 소장 유물에 비하여 전시공간이 부족한 박물관의 한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어땠습니까? 정말 대단하지요?”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가이드가 다시 확인이라도 하듯 내게 묻는다. 그러나 가이드가 묻지 않았어도 나는 사실 그 대단한 유물들에 충분히 감탄하고 있던 중이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다시 현장으로 나가볼까요. 먼저 기자의 피라미드부터 보러 가겠습니다.”

우리 일행들은 어렸을 때부터 사진으로 보고 배웠던 피라미드를 보러 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2007.11.04 09:42 哲李印承

 



 

이승철 시인의 다른기사 보기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교회 문을 잠그라
중국의 종교박해
"통일 향한 비핵화, 종전협정 꼭 이
기적을 일으키는 사랑의 능력
WCRC 실행위원회에서도 '한반도 평
남북정상회담
하나님의 응답
“이 사람들..."
이런 이들을 택해주세요.
바나나, 지구에서 사라지나?
최근 올라온 기사
잠언 2강 잠 1: 1 -7 잠언을 ...
기독교 입장에서 본 자본주의와 공산주...
미국 홀리크로스 채플교회
생(生)이음
제 2기 일천번제를 시작하며
앗, 아까시아 꽃이다.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남북이 열려야 할 숙명
교계연합기관 통합, 험로(險路) 예상
'새로운 출발점이기를'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