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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女王처럼 받들면 아이들이 바로 큰다
[아내를 사랑하는 법]
2009년 07월 27일 (월) 11:37:03 크리스천웹진소리 webmaster@cry.or.kr

(주: 아래의 글은 '월간조선' 7월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감동적인 글이라 소개합니다.)

글쓴이 金智龍
⊙ 1964년 인천 출생.
⊙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일본 게이오대학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 저서: <나는 일본문화가 재미있다> <승부에 강한 딸로 키우는 법> <전교 1등 하는 법> 등 다수.

무슨 대답이 나올까 궁금해서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면 누구하고 살래?”
딸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엄마”라고 말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와 다투고 야단을 맞고 눈물을 흘리곤 한다. 그래서 “아빠하고 살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이유를 물어보았다.

“엄마 잔소리 듣는 것이 싫지만, 아빠랑 살면 매일 라면만 먹어야 하잖아.”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라면과 김치볶음밥이 전부다. 잠시 나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끔찍했다. 도저히 인간다운 삶을 살 자신이 없다.

대개의 엄마는 팔방미인이다. 집안에서 요리사, 보모, 교사, 가족 주치의, 안전요원, 위생 담당관, 의상 코디 역할을 척척 해낸다. 대개의 아빠는 그중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아빠는 집을 한 달을 비워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엄마는 하루만 없어도 집안이 엉망이 된다.

가정이 행복하려면 먼저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가정을 유지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고, 끝이 없고, 어렵고, 재미도 없다. 한마디로 지긋지긋한 일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김혜자 분)처럼 집안일에서 손을 놔 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가정이 행복할 수 있다.

아빠들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회사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고객만족’일 테니까. ‘고객은 항상 옳다’라는 슬로건으로 성공한 회사들도 많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아 성깔을 부리는 고객이든, 원래 성질이 못된 고객이든 항상 깍듯이 대해야 한다. 아빠들은 고객만족의 원칙과 방법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집에서는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고객들은 조금만 심기를 건드려도 곧장 나가버리거나 윗사람에게 항의하지만, 아내는 계속 자신의 곁에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를 대하는 것은 고객을 대하는 것과 같다. 고객은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떠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지금 떠날지 나중에 떠날지 모를 뿐이다.

아내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해 주려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내 사랑은 결심에 달려 있다

몇 년 전까지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 왜 그렇게 싸우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사랑이 식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내를 뜨겁게 사랑했고 그래서 결혼했다. 처음 사랑에 빠지면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지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랑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사랑의 수명은 18개월 정도. 아내와 처음 만난 것은 15년 전이고, 결혼생활은 14년째다. 열정적인 사랑은 이미 식은 지 오래다. 서로 성격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이 식은 채로 살고 있으니 티격태격 싸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아내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 기억상실에 걸리거나 미치지 않는다면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이 다시 생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 같았다.

하지만 방법이 하나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심의 문제다. 아내를 다시 뜨겁게 사랑할 수는 없지만, 따스하게 사랑할 수는 있다.

아내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먼저 자기 암시를 걸었다. ‘나는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고 의식적으로 자주 생각했다. 그러니까 진짜로 그런 것 같았다. 자기 암시는 일종의 최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내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아내의 결점을 보통과는 다른 잣대로 보기로 했다. 설거지나 청소를 대충하는 것은 지저분한 것이 아니라 소탈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이 많은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느긋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신경질이 많은 것은 감수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아내와 14년째 살면서 수도 없이 외식을 했지만 고기 한 번 시원하게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아내는 고기 종류를 거의 먹지 않는다. 불판의 3분의 2에 김치를 올려놓는다. 삼겹살을 구워먹으러 온 것인지 김치를 구워먹으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불판의 3분의 1에 올려져 있는 고기는 아이들 입에 들어가기 바쁘다. 하는 수 없이 상추에 구운 김치를 싸 먹곤 한다. 짜증이 나는 그런 상황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덕분에 고지혈증 안 걸린 거야!”

아내를 사랑하기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 뒤로 예전의 열정 비슷한 것이 다시 생겨났다. 그 결과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다.

아무리 옆집 아이가 똑똑하고 예의바르고 얼굴이 예뻐도 “이 아이가 내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괜찮은 여성을 보거나 만나면 “저 여자랑 결혼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상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내도 아이들처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면 나도 모르게 “확 이혼해 버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내와 헤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굳게 박힌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부부싸움을 크게 하다 보면 문득 “이 여편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후유증이라고나 할까.

아내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부부싸움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싸움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 못된 상사를 많이 만났다. 아내가 못된 상사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를 못된 상사라고 생각했더니 부부싸움이 크게 줄어들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지각을 자주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한 것 같다. 못된 상사는 이런 말을 했다.

“허구한 날 지각을 하는구먼.”

‘자네 또 늦었나?’라든가, ‘이번 달 들어 벌써 몇 번째인 줄 아나?’ 같은 말을 들었다면 반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허구한 날 지각한다’는 말을 들으면 반성보다 반발의 마음이 앞섰다. ‘내가 얼마나 지각을 했다고 X랄이야’라면서.

그런데 아내도 이런 말들은 많이 한다. “당신은 항상~” “당신은 절대로~” “다른 남편들은 모두~” “아무도 그런 일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허구한 날’이다. 내 아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은 여성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무조건 사과하라

“축구랑 결혼하지 그랬어. 축구 중계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보는구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집안일 때문에, 가족 여행 때문에, 특히 결혼기념일에 외식하다가 놓쳐버린 축구 중계를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다른 남편들은 모두 부인에게 꽃도 선물한다는데….”

친구들을 들먹이며 평생 꽃 한 번 선물하지 않은 남편이 얼마나 많은지 설득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부인들이 사용하는 ‘항상, 절대로, 모두, 아무도’ 같은 말은 대개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순간 남편에게 느끼는 불안이나 야속한 감정이 얼마나 큰지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항상, 절대로, 허구한 날’이라는 말은 실제 빈도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감정의 크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못된 상사가 ‘허구한 날 지각한다’는 말을 할 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는 것을 말해 봐야 못된 상사의 화만 더 돋울 뿐이다. 그저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아내가 ‘허구한 날’ ‘항상’ ‘절대로’ 같은 말을 사용하면 나는 그저 미안한 표정으로 묵묵히 듣거나, 무조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이므로 이성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일단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 상책이다.

아내를 못된 상사처럼 생각하고 나니까, 아내와 대화할 때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가르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아내의 말을 듣다가 어떤 잘못이 있고, 아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해결책인지 가르치려 들지 않아야 한다. 그런 것은 대개 아내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단지 자신의 고민을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묵묵히 들으면서 때때로 맞장구를 쳐주면 된다. 단 “요즘 내가 너무 게을러진 것 같아” “뱃살이 더 나온 것 같아” 같은 말들은 강하게 부정해야 한다. 상대는 못된 상사 같은 사람이다. 못된 상사는 조그만 일도 꼼꼼히 기억해 두었다가 틈만 나면 끄집어낸다.

둘째, 아내가 말을 시작하면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한다. PC로 작업하고 있을 때 못된 상사가 말을 걸어오면 자판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린다. TV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말을 걸어오면 먼저 TV를 끈다. 하다못해 음성이라도 오프(off)로 바꾼다. 신문을 보고 있는 중이라면 신문을 내려놓는다. 아내는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기를 바란다.


하녀와 여왕의 차이

셋째, 아내의 말이 장황해서 중간에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발각되었다면 즉시 사과한다.

“미안해. 요즘 몸이 안 좋은가 봐. 오래 집중을 하는 것이 힘들어. 그런데 방금 뭐라고 했지?”

아내와 14년째 살아오면서 부부싸움을 수없이 많이 했지만, 아이들 앞에서 싸운 적은 없다. 냉전을 벌이면서 하루종일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을 보고 딸아이가 “엄마아빠 싸우는 거야?”라고 물은 적은 몇 번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 아내에게 큰소리를 낸 적은 없다. 내 아이들을 하녀가 아니라, 여왕이 키우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를 이기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엄마에게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 안되는 일은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주지시키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할 때가 많다.

아이가 엄마의 단호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엄마에게 끝도 없이 떼를 쓰게 된다. 결국 엄마는 아이에게 지게 되고, 아이는 버릇없고 인내심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로 자랄 위험이 있다.

왜 어떤 엄마들은 단호함을 갖추고 있고, 어떤 엄마들은 아이에게 끌려 다니는 것일까.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에 달려 있을 것이다. 엄마를 ‘무섭게’ 바라보느냐, ‘우습게’ 바라보느냐.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각은 아빠의 태도로 결정된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배우는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여왕처럼 떠받들면 아이는 엄마를 무서워한다. 함부로 막무가내 떼를 쓸 수 없다고 느낀다.

아빠가 엄마를 하녀처럼 부리고 무시하면 아이도 엄마를 하녀로 취급한다. 떼를 쓰고 말을 듣지 않는다. 여왕인 엄마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대하고, 하녀인 엄마는 아이들에게 끌려 다닌다.

많은 아빠가 엄마를 하녀처럼 대한다. 자신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내를 떠받들지는 않지만 평등하게 행동하고 있거나, 적어도 최소한의 인권은 존중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하녀처럼 대하는 것이 꼭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하대를 하는 것일까.

주말이 되면 많은 가정에서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아빠와 아이들은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엄마 혼자 집안일에 분주하다. 안 그래도 바쁜데 아빠와 아이들은 툭하면 과자를 갖다 달라, 물을 갖다 달라, 점심은 언제 줄 거냐고 보챈다. 엄마는 청소를 하는데 아빠와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발만 들어 올린다. 이런 것이 바로 하녀처럼 대하는 것이다.


아내를 여왕으로 만드는 법

엄마를 여왕으로 만드는 일은 간단하다. 왕관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 앞에서 엄마에게 커피를 타 주고 물을 가져다 준다. 집안일을 시키면 냉큼 일어나 실행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엄마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다. 아빠가 먼저 솔선수범을 해야 아이도 엄마의 말을 무섭게 여긴다.

‘嚴父慈母’(엄부자모),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말처럼 집안에 엄한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엄한 역할은 일종의 惡役(악역)인데 나는 아내에게 주어버리고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 버릇이 나빠지지 않게 하려면 엄마에게 여왕의 자리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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