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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하지 않으면 痛한다
우리, 탈레반이 되지 말고 잘 통해봅시다!
2008년 03월 09일 (일) 08:45:16 이의용 교수 yyii@leecomm.co.kr

“通하지 않으면 痛한다”

지난 여름, 우리는 탈레반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그랬다. 언어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지 않아서였다. 그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아팠다.

“通하지 않으면 痛한다”- 필자가 자주 하는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일 것이다. 가족이든, 직장 동료이든 말이 안 통하면 그와 함께 사는 사람은 고통을 겪게 된다. 필자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 하는 사람을 ‘커맹’이라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사람을 ‘커짱’이라고 한다. 커맹은 자기 자신도 힘들겠지만, 다른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사람들은 ‘커짱’은 ‘말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히딩크 감독-그는 훌륭한 감독이라기보다는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였다. 그는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옆에는 언제나 통역이 따라붙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했다. 4강의 기록이 그걸 잘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 나라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적도 많지만, 도중하차를 한 적이 많다.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는 실력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국 사람과 한국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고, 정작 외국인과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다니. 결국 커뮤니케이션은 언어가 좌우하는 건 아닌 것이다. 그럼 뭔가?

‘조직체’와 ‘공동체’

한자로 ‘사람 인(人)’자가 잘 보여주듯,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關係 不可避的 존재’라고 정의한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다른 사람을 기대게 해주면서 더불어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 혼자 살아가도록 하는 것만큼 큰 벌도 없다.

그런데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에는 ‘사이(間)’란 게 있다. 그래서 사람을 ‘人間’이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의 ‘사이’를 좁히며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공간적 사이’와 ‘심리적 사이’가 그것이다. 멀리 사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가깝듯, 공간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는 매우 관계가 깊다. 공간적으로 멀면 심리적 거리도 멀고, 공간적으로 가까우면 심리적으로도 멀기 마련이다. 안 보이면 멀어지는 건 진리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라면 떨어져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간적으로 가깝든 멀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혀주는 열쇠가 있으니, 그게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전혀 남인 사람도 서로 자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면 ‘관계’가 생긴다. 같은 회사를 다녀도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면 남남이 되고 만다. 가족끼리, 이웃끼리, 조직 구성원끼리라도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면 남남이 되고 만다.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관계가 생기면, 그들은 진정한 커뮤니티(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공동체’란 ‘조직체’가 아니다. 조직체란 부품의 결합체이지만, 공동체란 생명체의 연합이다. 기계 부품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그걸로 끝이다. 다른 걸로 갈아 끼워야 한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다른 손가락이 그 일을 대신해준다. 조직체와 공동체는 이처럼 다르다.

기업을 조직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로 볼 것인가? 조직 구성원을 기계 부품으로 보느냐, 창조적인 존재로 보느냐가 그걸 구분해준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서로 관계를 갖지만, 조직체는 서로 관계를 갖지 못한다.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성원을 창조적 존재로 인정해주는 것이 공동체다.

조직체에서는 리더가, 어떻게 하면 부하를 리더의 뜻대로 움직이게 할 것인가로 고민한다. 그러나 공동체에서는 리더가, 어떻게 하면 부하가 자신의 잠재력과 창조력을 발휘하도록 도울 것인가로 고민한다. 과연 어느 것이 목표를 달성하고, 구성원들이 행복을 느끼게 해줄지는 자명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히딩크 감독은 팀을 조직체가 아니라 공동체로 운영했다. 선수 개개인을 창조적인 존재로 인정해주었다. 선수들에게 일일이 많은 지시를 하지 않아도 됐다. 언어 소통의 불편함을 ‘이심전심’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많은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과 마음을 읽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 깊은 관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팀을 조직체가 아닌 공동체로 승화시켰다. 그 결과 5개의 손가락이 뭉쳐져 강한 주먹을 이루어냈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말을 잘하고 말을 잘 듣는 게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내보이고 서로의 마음을 마음으로 읽어내는 일이다. 구성원들이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될 때, 공동체는 엄청난 성과를 내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마스터 키

오늘날 같은 유비쿼터스 시대에 ‘컴맹’으로 살아가기가 힘들 듯이, 미디어의 급증으로 커뮤니케이션 양이 폭주하는 이 시대에 ‘커맹’으로 살아가기는 힘들다. 생각해보라. 오늘 하루의 삶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지난 여름, 우리를 힘들게 했던 탈레반이 생각난다.지. 80% 쯤 되지 않을까? 그러니 커뮤니케이션만 제대로 해도, 우리 인생은 최소한 B학점은 엄을 수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 개인은 개인대로, 조직은 조직대로 불행해지고 만다. 조직의 커뮤니케이션은 인체의 피돌기나 호흡과 마찬가지다. 호흡이 끊어지면, 피돌기가 멈추면 인체가 어찌 되겠는가?

커뮤니케이션은 누군가와 말하고, 듣고, 답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려면, ‘커짱’이 되려면 삶으로 그걸 연습하고 체득해야 한다. 그런 연습을 하기 전에 갖춰야 할 태도가 있다. 그건 바로 상대방을 왕처럼 존중하는 마음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려면,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적당히 설득당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을 VIP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를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로부터 설득당할 필요도 없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그것이 커뮤니케이션의 마스터키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탈레반이 되지 말자.

/ 중앙대 겸임교수, 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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