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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계절처럼
인생의 행로는 4계절로 나누어 있음을 배우라
2008년 02월 14일 (목) 15:55:50 김태복 발행인 hipc6012@cry.or.kr
때로 상담해오는 청년들 중 자기의 의지박약과 변덕스러움, 끝없는 방황에 대해 호소해 오는 이들이 많다. 자기에 대한 실망은 더 깊은 열등의식의 고랑을 깊게 파놓고는 하는가보다. 그러나 그러한 호소는 표현을 안 할 뿐, 분명 대부분의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아픔이리라. 인생의 행로(行路)를 가면 갈수록 점점 깊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삶은 일 년 사계절의 과정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청년기의 저 흔들리는 갈등도 인생 전반을 통해서 보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옳을 것이다.

봄날 꿈들의 축제(아동기)

봄날은 꿈들의 축제와 같다.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동토(凍土) 위에 예술가들의 조각품인양 파란 싹들이 솟아나기 시작하고 밤사이 내린 비가 물감인양 온 들은 순식간에 연두색으로 칠해진다. 하늘의 온갖 새들이 날기 시작하고 노랑나비, 하얀 나비는 꿈의 사신(使臣)인가? 나풀나풀 날다가, 저쪽 들판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고 파란 하늘, 아기의 붉은 입술 같은 진달래의 색채들, 화려한 꽃들, 라일락의 향기들. 온갖 꿈들의 축제가 도처에서 펼쳐진다.

아동기의 특징은 호기심이다. 무엇인가 늘 흘린 채, 현실 넘어 환상의 세계를 응시하고 있다. 그들의 눈과 귀는 어른들의 것과 다르다. 그들의 귀는 언제나 꿈들의 노래를 환청(幻聽)하고 있다. 앞에는 아무도 없음에도 누구인가와 대화하며, 혹은 속삭이고, 혹은 까르륵 웃기도 하고 그 웃음소리에 화들짝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자는 끝도 없이 많다. 하늘을 떠가는 구름, 봄날에 날고 있는 종달새, 들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과도 아이들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때로 단칸방에 산다 할지라도 그들의 눈은 그 좁은 공간에 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황금궁궐을 거
닐며 어느 때는 예쁜 공주가 되어 있는 자신에 도취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로켓을 타고 우주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사(戰士)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미 망가져 버린 장난감이라도 그 장난감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많은 이야기를 꾸며내며 그 동화의 집에서 신나게 축제를 즐기는 순간을 창출해낼 수 있는 마법(魔法)의 지팡이를 그들은 소유하고 있다.

이 시기의 남자 아이들의 호주머니나 여자 아이들의 서랍 속을 보면 온갖 잡동사니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로 아이의 엄마들은 이러한 잡동사니들을 화를 내며 쓰레기통에 무지막지하게 던져 넣지만, 아이들에게는 난폭자로 보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그 잡동사니의 하나하나가 무한한 꿈의 나라로 인도하는 도구가 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폴 E. 존슨(Paul E. Johnson)의 「종교심리학」에서는 아동기의 특징을 묘사하기를 ‘집안에 박혀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학교에 간다든지, 이웃동네를 다니면서 자기 세계를 알기 위해서 무엇인가 찾아내려고 한다’고 하면서 아동기의 특징은 호기심과 탐구심이라 했다. 아동은 봄날 꿈들의 축제 속에서 끝없이 솟구치는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유혹과 폭풍의 바람(청년기)

여름은 원색의 계절이다.

봄날의 저 유연하고 화려한, 다양한 색깔들은 뜨거운 뙤약볕에서 탈색되어서인가. 짙은 원색으로 변해 노골적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짙은 녹음방초의 그늘로 우리를 끌어들이고, 저 눈부시게 파란 바다의 하얀 포말들이 견딜 수 없도록 손짓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들어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부어지고, 어느 순간에 갑자기 멈추어지면 구름 속에 파란 하늘이 짓궂게 미소를 던지는 여름. 여름은 무엇보다도 밤이 매혹적이다. 붉은 노을을 잠옷처럼 펼쳐 입은 채 화려하게 서있는 석양, 그리고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보석인양 별들이 눈부시고 거기에 밤새들이 밤이 맞도록 흐느껴 우는 때이면 젊은 가슴은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해 어디인가 쏘다니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고함이라도 외치고 싶고 목 놓아 꺼이꺼이 울고 싶어진다.

그런가 하면 조금 전까지 붉은 잠옷을 입고 화려한 보석으로 꾸미고 관능적인 어깨를 흔들며 울면서 사내의 가슴을 녹이던 저 여름밤의 몸짓은 끝내 그 욕망을 충족하지 못했는가, 한밤중에 사나운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이 분다. 온 숲을 흔들고 가지가 찢겨지고 둥지를 잃은 새들의 비명이 찢어지고, 개울을 메운 흙탕물은 둑을 무너뜨린다.

밤새도록 처절한 폭풍의 밤을 지새우고 먼동이 트기도 전에 들녘으로 나온 농부들은 참담한 장면 앞에 아연해진다. 살림살이를 다 내던지고 떠나버린 바람난 여인처럼 폭풍은 숲과 들과 마을을 핥기고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것이 여름의 벌거벗은 본능의 모습 이다.

루이스 J. 세릴(Lewis J. Sherrill)은 「만남의 종교심리」라는 저서에서 청년기의 특징을 ‘그는 유혹 당했다.’로 표현하고 있다. 봄날의 아동기에서는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에 의해서 얼마만큼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정서가 있어 보이던 위치에서 여름날의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원색으로 진하게 노출되듯이 숨겨있던 강렬한 본능들이 내부에서 솟구치는 것에 시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거리 도처에서 순간순간 만나지는 영화 포스터 속에 그려진 반라(半裸)의 여인들의 유혹들이 가슴을 후려 때리듯 진하게 충동을 일으키고, 또 어느 날 머리라도 삭발하듯이 큰 결심을 한 노릇이 2~3일도 못 가서 무너진 채 파약(破約)해 버리고 하는 자신의 나약한 의지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는 때가 청년기인 것이다.

때로는 한가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책이라도 읽고, 음악이라도 듣는 시간에라도 멀리 도시 외곽을 지나치는 열차의 기적소리 때문에, 혹은 중년을 넘어서고 있는 어머니의 고리타분한 잔소리를 듣는 순간, 혹은 점심시간에 상위에 놓인 가난이 뚝뚝 떨어지는 반찬을 보는 순간, 울컥 치미는 어떤 분노에 무엇인가 불이라도 확 지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도 한다.

어느 때는 어떤 여인에게 밤새도록 진지하게 연서(戀書)라도 써 놓고는 아침에 그것을 읽으면서 이렇게 유치하게 되어버린 자기 꼬락서니에 대해 지독한 자괴감(自塊感)으로 시달리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날이 계속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년기는 유혹과 폭풍의 시기이다. 저 바다 해변의 고요가 자장가처럼 우리의 마음을 달래듯 하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성난 포효를 해변 암반을 향해 내던지는 시간이 있기도 한다.

어느 때는 친구와 더불어 밤을 지새우며 진리를 논하고 순수한 연애를 논하고 조국과 인류를 토론하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어느 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심에 가득차서 화염병이라도 지칠 때까지 던지며, 아니꼬운 모든 자들에게 도전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도 하는 가하면, 더 심한 경우에는 창녀집이라도 가서 마구 음란을 쏟아버리고 싶은 수욕(獸慾)에 시달린다. 그러나 젊은 크리스천들이여, 결코 스스로를 자학(自虐)해서는 안 되는 것은 여름의 시기에서는 어느 젊은이나 그러한 유혹과 폭풍의 과정을 만나는 것이니 문제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떨치고 일어나는 연습을 끝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곱 번을 넘어지는 한이 있어도 다시 일어나라.

그러면서 한 가지 놀라운 진리에 깨닫게 되리니, 저 여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곡식은 더 빨리 성숙되고 익어간다는 사실이다. 그와 같이 우리 젊은이들도 좌충우돌하는 몸부림 속에서, 때로 솟구쳤다가, 때로 다시 전락하는 고투 속에서 성숙되어 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리라. 가만히 있으려 해도 솟구치는 그 뜨거움이 느껴지거든 오히려 그 폭발적인 열정을 승화시켜라. 배가 폭풍을 이용하여 더 빨리 가듯이, 저 지독한 더위 속에서 곡식은 강해지고, 사나운 비바람 속에서 가지는 견고해지고 열매는 익어가듯이 주체할 수 없도록 분출되는 그 뜨거움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순수한 뜻을 향해 마음껏 선용(善用)해 보라.

가을 저 풍요로움처럼(장년기)


8월 중순 이후부터는 여름의 위세도 한풀 꺾이게 된다. 한낮에는 여전히 뙤약볕이 살인적인 더위를 느끼게 하나 저녁이면 신선한 기운이 감돌고 한밤중이나 새벽녘이면 풀벌레 소리가 여름 사이로 새어드는 것을 발견한다.

여름의 그 칙칙한 색깔의 하늘은 걷히고 청명한 하늘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온갖 자연의 색조도 원색에서 다양한 면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봄의 것과는 다르다. 봄은 화사하고 화려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데, 가을의 색조는 어느 의미에서는 거룩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감동을 일으킨다.

봄은 육적인 면이 진하다면 가을은 영적인 면이 가깝다. 모든 풍염하던 잎사귀들은 그 진한 열정이 빠지고 원숙한 미(美)가 나타난다. 늦가을이 되면 그 잎사귀들마저 하나, 둘씩 떨어지는 고독의 날들이 임할지라도 그 나뭇가지 위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가 그 위용과 당당함이 과연 압도적이다.

가을의 특징은 열매에 있다. 그 열매는 봄과 여름의 결과이다. 봄에 수고의 씨를 뿌리고, 여름에 뙤약볕 속에 잘 가꾼 자는 가을의 나무에 풍요를 거두나, 봄과 여름에 빈둥거리며 나태를 즐기던 자들의 나무에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고 늦가을에는 텅 빈 나무에 허무만 흔들리는 것을 발견하리라.

장년기의 특징은 원숙(圓熟)이다. 소년기에 끝없이 무지개의 꿈을 찾던 환상의 눈망울도 사라지고, 저 유혹과 폭풍의 날들처럼 걷잡지 못했던 젊은 날의 열정도 사그라지고 이제 가을의 청명한 하늘처럼 이제야 겨우 무엇인가 바로 볼 수가 있고, 무엇인가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가 된다. 불혹(不惑)의 나이. 그러나 어느 자는 저 젊은 날, 밤을 지새우며 혹은 도서관에서, 혹은 일터에서 정열을 선용했던 결과 그의 장년기에 원숙의 열매를 거두는가 하면, 어느 자는 그의 젊은 날을 방탕의 밤으로 가득 채우고 화려한 축제로 낭비한 결과, 이제 그의 장년기의 나무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열매가 달려있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날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 장년기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봄을 향해(노년기)

겨울은 왔다. 수목들은 모든 것을 잃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떨고 서있고 화려한 색채로 군무(群舞)를 추던 황금색 곡식들의 풍요들은 떠나버리고, 이제 벼 그루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텅 빈 들판들, 그리고 청명하던 하늘은 회색빛으로 가득 채운 채 침묵 있는 계절이다.

드디어 계엄령 하에 진압군처럼 겨울의 폭거(暴擧)는 시작되었다. 차가운 눈이 온 산야를 획일적으로 장악하고 북풍이 무서운 기세로 휩쓸고 지나가면 대지는 몇 번 비명을 지르고는 끝내 죽음으로 응고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

그 화려한 꽃들의 눈짓들, 그 새들의 즐거운 지저귐, 그 여름날의 무성한 잎사귀의 풍염, 젊음의 정열을 불태우던 바닷가의 모래벌판, 찬란한 여름밤의 은하수 같은 동화들, 가을 들판의 색깔들의 합창들, 저 여인네의 가슴처럼 탐스럽던 가을의 열매들은 다 어디로 잠적했는가?

모든 것은 떠났고, 모든 것은 잃었으며, 끝내 겨울의 산곡에서 시신으로 누워 있는가?

노년기의 특징은 고독이다. 그 고독은 젊은 날에 느끼는 어리광스러운 고독이 아니다. 그것은 노년이 느끼는 것에 비하면 사치이다. 노년기의 고독은 모든 것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에 대한 것이요, 그로 인해 생기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허무에 대한 것이다. 이제는 젊은 날의 그 혈기도 잃어가고, 재물과 명예도 하나씩 잃어가고 사랑하는 벗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심지어는 동고동락하던 아내마저 어느 날 주검으로 그의 옆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할 때, 이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참담함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순간순간, 죽음의 검은 계곡을 향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요, 어느 순간에는 그 계곡에서 부르는 검은 손짓 앞에 전율하는 자신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죽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어느 날, 그 죽음의 겨울 위로 천사들의 손짓인가, 따뜻한 훈풍이 스치고 지나갈 때, 얼었던 대지 위로 파란 싹은 돋아나고 다시금 온 산야는 색(色)들의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노년기의 저 검은 계곡 앞에서의 고독은 다만 잠시일 뿐, 저 영원한 생명을 향한 겨울의 침묵일 뿐, 다시 영적인 봄을 맞는 날이 오리니 그때는 썩지 않을 몸, 신령한 몸, 영화로운 몸을 입고 저 영원한 세계를 거닐게 되리라(고전 15:42~44).

젊은 크리스천들이여, 그러므로 하루살이 같은 찰나적인 쾌락에 젖어드는 자 되지 말라. 일년초처럼 사계절의 변화에 현혹되지 말라. 저 영원한 날을 동경하며 생의 온갖 환상과 유혹, 풍랑과 원숙, 고독과 죽음의 날이 끝없이 교차되더라도 의연히 큰 가슴으로 극복하며 생의 좁은 길을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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