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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학 강의 제 7 장 다종교상황에 관한 연
 작성자 : 김종희 목사  2008-11-12 14:14:50   조회: 4031   
第七章 多宗敎狀況에 관한 硏究

종교적 진리가 하나인가 여럿인가 하는 문제는 고대로부터 인간 마음을 괴롭힌 하나의 숙제였다. 오늘날 세계가 점점 하나로 가까워지면서 인류는 종교적, 문화적 다원화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고, 따라서 진리의 一과 多의 문제는 그 어느때보다 인류에게 절박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종교적 진리는 절대화 되는 성향이 있어 그 진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뿐이며 구원은 그 하나 뿐인 길을 통해서만 완벽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들 흔히 믿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종교 다원화 현상과 이 하나뿐인 진리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진리는 하나인데 길은 여럿이란 말인가. 아니면 오직 하나의 길만이 진리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여러 길이 결국은 같은 곳에 이르나 다소 우열의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하나님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 종교도 종교인가.

세가지 신앙적 태도(信仰的 態度)

현재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통일된 답은 없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태도와 입장에 따라 그 형태가 셋으로 구분돤다.

첫째는 유일주의적 태도(唯一主義-Exclusivism)
둘째는 단일주의적 태도(單一主義-Inclusivism)
셋째는 다원주의적 태도(多元主義-Pluralism)

부르는 사람에따라
유일주의(唯一主義)를 배타주의(排他主義) 혹은 획일주의(劃一主義), 절대주의(絶對主義) 혹은 보수주의(保守主義) 라고도 하고,
단일주의(單一主義)를 우월주의(優越主義), 단계주의(段階主義), 포용주의(包容主義),포괄주의(包括主義)라고도 하며, 그리고
다원주의(多元主義)를 상대주의(相對主義)적인 신앙태도(信仰態度)라고도 한다.
이 세 유형의 신앙태도를 차례로 검토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답을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는 유일주의적(唯一主義的)신앙태도-Exclusivism) - 은 하나뿐

유일주의적 신앙태도는 오직 한 종교만이 진리를 가르치고 그 종교만이 구원 혹은 자유에 이르게게 한다는 입장이다.이같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는 종교는 주로 셈족(Semitic)계통의 서양 유일신(唯一神)종교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이런 배타적 입장은 동양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셈족계통의 종교-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만일 기독교가 자기 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할 때 물론 그 주장이 옳을 수도 있겠으나 그 주장이 타종교인에게 배타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타종교인도 함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근거가 결여된 상태에서 주장되기 때문이다.
만약 기독교가 그들의 경전인 성서를 근거로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한다면, 똑같은 방법으로 이슬람교도가 자기네 경전인 코란을 근거로 모하메드만이 인류 최종의 구원자라고 주장할때 어떻게 전자는 맞고 후자는 그르다고 판정할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서 기독교 경전(성서)만이 올바른 하나님의 메시지요 나머지 경전들은 그렇지 않다고 자할 때 근거는 더디에 있는 것일까.
혹자는 '믿음'에 근거한다고 대답할지 모르겠으나, 남도 똑같이 믿음에 근거하여 다른 주장을 할 때, 내 종교를 믿는 나의 믿음만이 옳고 다른 종교를 믿는 남의 믿음은 그르다는 판단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내가 믿음에 근거했다면 남의 믿음도 똑같이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종교적 주장들이 흔히 배타적이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주장의 근거를 믿음에 내세우면서 내 믿음은 옳고 남의 믿음은 그르다는 편파적 태도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없이는 구원에 이르기 어렵다"는 믿음의 순기능과 "그 믿음이 바로 타종교인을 배타적으로 만든다"는 믿음의 역기능간의 딜레마에 부디친다. 즉 대부분의 종교에서 믿음이 신앙의 필요불가결의 요소로 강조되고 있고, 또 믿음이 신앙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믿음의 내용이 바로 현재 믿고 있는 자기 종교의 절대성과 최고성이요, 따라서 믿음이 종교인을 배타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또한 흔히 셈계통의 종교 특히 기독교를 배타적경향이 강한 종교라고 하지만 그것은 타 종교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종교만이 참이라는 자신의 신앙고백에서나온 결과이며, 또한 인류를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이끌어 보겠다는 뜨거운 정렬이 함께 있기대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볼때 과연 절대적 믿음과 배타성은 필연적으로 함께 하는 것인가? 자기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도 함께 남의 종교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일까?

유일주의(唯一主義) 신앙태도의 장단점(長短點)
이 태도는 '절대진리'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갖고 있으나, 비타협적이고 남의 신앙을 무시, 혹은 이단시하는 위험이 있다.


둘째는 단일주의적(單一主義的)신앙태도Inclusivism)많은 길 최종은 하나

단일주의적(포괄주의) 신앙태도는 하나의 특정종교가 최종적 혹은 최고의 진리를 갖고 있고, 다른 종교는 그 최종적 진리에 이르는 부분적 혹은 과정적 진리를 갖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신앙태도는 성격상 첫번재 유일주의와 다음에 언급되는 세번재 다원주의의 중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단일주의(포괄주의)는 오직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고는 하지는 않지만 자기 종교를 최우위에 놓는, 역시 자기 중심적 요소가 있어 한편으로는 배타주의와 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열을 가리면서도 남의 종교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어 다원주의와도 통한다. 전통적으로 인도계통의 종교들(불교,힌두교등)이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다.
따라서 우리가 주의할 점은 어느 종교가 배타적이다 포용주의다를 말할때에는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배타적이란 말에는 속이 좁고 이기적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있는데 반해, 사실은 처음부터 남의 종교를 부시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종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자신의 신앙고백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떤 특정 종교의 입장이 진리일 가능성도 전혀 부인할 수는 없다. 최후의 심판일이 도래해서 인류의 모든 종교가 심판을 받을 대 오직 그 종교만이 참된 구원의 길이었다라고 결정이 난다면 지금의 그 종교의 입장은 배타적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적 입장이었다고 말해질 것이다. 따라서 명백히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 배타주의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은 부당할지도 모른다.
포괄주의가 되었던 배타주의가 되었던 문제는 늘 상대 종교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상대종교가 자기보다 못하다든가 아니면 잘못된 종교라고 급히 판단하는 데 있다. 물론 어떤 종교도 잘못된 점이 있을 수 있다. 또 전체로서의(in totality)종교 A가 B보다 나을 수도 있다. 따라서 종교간 비교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도 할 수 없으며, 건전한 비판이라면 상호 비판을 통해서 각 종교가 피차 성장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호 비판이 편견이 배제된 속에서 정확한 지식을 토대로 행해질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어렵다면 차라리 다원주의자들이 충고하는대로 성급히 판단하려 하기 보다는 우선은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더 바람직 스러울 것이다.
포괄주의가 자기중심적이라는 면에서는 배타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없겠으나, 인도계통의 종교 특히 불교의 포괄주의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이 하나 있다.
즉 불교등 인도계통의 종교의 이론 중에 인간의 정신세계는 미숙한 단계로부터 성숙한 단계까지 점진적으로 다양한 단계가 있으니, 구원의 가르침도 개인의 정신단계에 알맞게 가르쳐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점진적 구원관은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방편설(方便說)로 나타나며, 특히 중국 불교에서는 교상판석(敎相判釋)으로 후일 발전된다.(교상판석=인도에서 수백년 동안 형성되어온 경전을 들여온 중국으로서는 제대로 정리하기라 어려웠다. 즉 근본불교와 소승불교 그리고 대승불교가 이루어진 후 수입되었으므로 대소승 경전이 섞여 있있다. 그러므로 수입된 경전을 판별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기와 내용으로 판별하는 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 한다.

이러한 대승불교의 방편적 포괄주의는 분명 타종파, 타종교를 이단시하는 배타주의에 비하면 훨씬 원만하고 포용적인 입장임에 틀림없다.천태종의 교상판석과 같은 점진적 구원관은 심리학적으로도 상당한 뒷받침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불교 내에서도 천태종에서는 법화경을, 화엄종에서는 화엄경을, 진언종에서는 대일경을 각각 불타의 최고의가르침으로 내세우면서 타종단의 소의경전에 비해 자기 종단의 소의경전이 수승함을 주장하고 있다.(우월성을 주장함)
그리고 불교인들은 불교가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심오한 종교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자기 중심적 포괄주의이다.
전통적으로 배타주의적 입장을 취했던 기독교도(측히 로마가톨릭에서) 최근에는 한결 완화된 포괄주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신학자로서 칼 라너(Karl Rahner)인데 그의 입장은 '신(神) 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보편적 구원의지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초월적 계시"로서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도 이러한 초자연적 은혜로움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다' 는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서도 남을 위한 사랑 속에서 신의 은혜를 가슴 깊이 받아들인 타종교 사람들을 "익명(匿名)의 기독교인"(anonymous Christians)이라고 불렀다.
이는 말하자면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자의적으로 기독교의 이름을 갖다 붙이려는 뜻이 아니고, 타종교를 단순히 이교도로 여기기보다는 같은 신의 의지가 그들 속에서도 이미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불교의 포괄주의에서 본 것과 같이 칼 라너(Karl Rahner) 역시 기독교를 구원의 '완성'으로 봄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자기중심적 포괄주의적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신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원하고 있지만, 그 구원은 최종적으로 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되며, 따라서 "익명의 기독교인"으로 남는것보다는 적극적인 참여 등을 통한 역사적인 독교인이 되는 것이 팔요하다고 함으로 불교에서와 같은 자기중심적 포괄주의를 넘지 못하고 있다.

셋째 다원주의 (多元主義)적 신앙태도-Pluralism=Parallelism-길도 목표도 각각 다르다.(One God many Christ)

앞에 소개한 단일주의와 포괄주의에 반대하여 나온 입장이 다원주의이다. 여러 종교의 공존(共存)을 인정하는 다원주의 사상 자체는 고대부터 존재했던 것이지만, 전 지구적(global) 차원에서 모든 종교의 공존을 주장하게 된 것은 극히 현대의 일이다.
보다 정확히는 단일적 입장의 기독교를 종교로 가졌던 서구인들이, 특히 신학자들이 동양의 문헌들을 연구하면서 다른 종교에도 절대 신념 체계가 있음을 앎으로 세계 여러 종교들의 가치를 경험하게 되고 종래 그들이 가졌던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면서, 그리고 불교등 동양의 포괄주의에도 비판을 가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다원주의 신학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죤 힉(John. Hick-기독교목사) 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는 전통적 자기 중심적 종교관에서 벗어나 코페르니쿠스적(copericus) 세계관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기 종교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믿었던 과거의 종교관은 마치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프톨레미적 세계관인(claudius-ptolemy)데 반해, 코페르니쿠스적 세계관은 모든 혹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도는, 다시 말해 모든 종교는 보다 높은 절대자를 같이 향해 같이 돌고 있다는 범인류적 세계관이다.
존 힉(John. Hick)에 의하면 모든 위대한 종교들은 동일한 궁극적 실체에 대한 인류의 다양한 반응이며, 종교간 다름이 있는 것은 궁극적 실체를 경험하는 인간의 의식(意識)이 각기 다른 역사적 문화적 전통 속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각 종교들은 서로를 적이나 라이벌로 보지 말고 상호(相互) 배울 수 있는 동반자(同伴者)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힉은 궁극에는 모든 종교가 한 형제라는 것을 깨닫고 종교들이 서로 협력하며 교류하는 하나의 이상세계가 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힉은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세계관의 이론적 뒷받침을 위해 "지구적 신학" (global theology)의 성립을 주창하고 있다.
힉의 주장에 의하면 {神學 즉 지구적 신학이란 "영원한 一者"(the Eternal One)가 각기 다른 문화(文化)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인지되었는가를 모든 종교의 협력속에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힉은 종래 그리스도(christocentric)중심의 기독교의 신학이 아니라 신중심적 신학(Got centric theology)으로 전환(轉換)할 것을 주장하며, 그리스도 자신이 신 중심적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또한 서구 종교의 배타주의적 입장뿐만 아니라 동양 종교의 포괄주의적 입장도 비판하고 있다. 즉 타종교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자기 종교를 여러 종교 중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는 포괄주의적 입장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자기중심주의(self - centrism)일 뿐이기 때문이다.

* 참宗敎의 基準과 救援 혹은 自由의 定意

힉은 다원주의(多元主義)가 상대주의(상대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종교간에 우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적 현상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 "인간의 구원 혹은 자유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를 제시하고, 구원 혹은 자유의 정의(定義)를 "자기 중심주의에서 리얼리티 중심(Reality-centeredness)에로의 전이(轉移)에서 생기는 보다 나은 인간존재의 구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Reality는 實在 또든 神을 의미한다.

評價와 問題

힉의 이와 같은 다원주의적 태도는 분명히 전통적인 자기 중심적 종교관들에 비해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의 종교적 상황(다종교)을 비추어볼 때 분명 다원주의는 시대에 적절한 현대인의 종교적 태도이며, 상호간 이해하고 대화하자는 다원주의자들의 태도에서 전통적 배타주의나 포괄주의자들이 분명 배울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너나 다원주의 입장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다원주의적 입장과 실제의 신앙생활 사이에는 쉽게 풀리지 않는 다음과 같은 문제 들이 있다.

1. 신앙은 하나의 대상을 선택하고 그 한 대상에 절대헌신(絶對獻身)하는 성격이 있어 불가피하게 "이것도 저것도(both-and)"의 다원주의 논리가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ether-or)"의 배중률(排中律)의 놀리를 취하게 된다.
예를 들면 마치 여러 남자중에 한 남자(여자)를 선택하고 선택한 후에는 그 남자를 최고로 알고 자신을 바치는 여인처럼 신앙은 한 종교를 선택한 후에는 그 종교에 오로지 충실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다른 종교에게는 불가피하게 관심갖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마치 한 여인이 한 남자체 충실하다보면 다른 남자에 관심갖일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2. 신앙이 선택의 문제라면 선택의 과정에서 (우열을)비교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다원주의의 입장에서는 그 우열을 가리기가 불가능하며 상호 비교 판단보다 상호 이해하고 배우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함하나, 그러나 학자가 아닌 이상 일반 대중들은 언제까지나 타종교와 대화하고 배우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종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같은 종교 안의 여러 파, 여러 의견 사이에서도 비교 판단을 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하는 실존적 결단에 부딪치게 되는데 정상적으로는 보다 깊고 옳은 길을 택하기 마련이며, 나머지 길은 자연히 배제될 수 밖에 없게 된다.

3. 신앙은 절대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며 또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 또한 신앙이 추구하는 가치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 혼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전 인류를 상대하는 보편, 절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 좋은 것을 나만 가질 수 없고 남도 같이 나누어야한다"는 구원의 보편 의지는 선교 혹은 개종의 논리로 발전된다. 그러나 다원주의의 입장에서는 여러 길이 동등한 길이요, 서로의 신앙을 상호 존중하자는 논리이기 때문에 선교 혹은 개종의 논리가 설 자리가 없다. 물론 상대의 종교를 깊이 이해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행해지는 선교나 개종의 태도는 지양도어야 하지만, 선교의 본래 취지인 "좋은 것을 모두 함께 나누자"는 선의의 선교의지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신앙은 선택적 성격을 가졌고, 그리고 신앙이 선택인 이상 우열의 비교 판단이 불가피하며, 또한 선택한 가치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선교의 논리도 성립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앙적 문제들이 다원주의 모델에서는 '상호존중'이라는 입장에 가려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다원주의는 종교간 상호 이해와 협력이라는 이상과 앞서 열거한(세가지)실제적인 신앙의 문제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 냐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종희 올림 샬롬할렐루야!!!


8. 다종교상황과 종교간의 대화(종합) 은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자료입니다.
2008-11-12 14:14:50
118.xxx.xxx.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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