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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학 강의 제 5 장 종교현상의 기본구조
 작성자 : 김종희 목사  2008-11-12 14:11:33   조회: 4067   
弟 五 章 宗敎現象의 基本構造

1. 問題

A. 宗敎現象의 두가지 特徵

1) 絶對性혹은 窮極性--우리가 종교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종교현상들은,그 것이 절대적인 진리를 지니고 있다든가, 더 이상 추구할 필요가 없는 마지막 언어로 인간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성하고 있다거나, 救贖의 가능성은 자기에게만 속해 있다는 주장 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자기 확인이 결여되면 종교는 종교일 수가 없게 된다.

2) 多樣性과 相對性--文化-歷史的인 측면에서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볼때 이 세상에는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많은 종교가 함께 있으며 그 모습도 각양각색임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우리는 서로다른 이념이나 종교적인 여러 실천의 모습들과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음을 알수 있다.

B. 宗敎現象(두가지 특징인 절대성, 상대성)에 대한 세가지 반응

1) 회의주의적(懷疑主義的)인 태도
종교 자체가 그 나름의 독자적인 존재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역사적인 과정속에 있는 어떤 無知나 어리석음의 표현이라고 보는 태도 즉 종교는 하나의 文化遲延,-(Cultural lag)의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2) 상대주의적 태도(相對主義的態度)
세계의 여러 종교현상을 있는 그대로의 현상 자체로 인정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종교현상을 문화-역사 안에 있는 실재로서 받아들이면서, 그 기능이나 의미, 그 전개과정(展開過程) 및 表象의 변화 등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뿐이다.

3) 포괄적 태도(包括的 態度)
종교 혹은 종교현상들의 특징들을 포괄적(包括的)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로서 이 입장에 의하면 종교의 절대성, 종교의 실재성, 종교표상 의 상대성 등은 유기적인 관계 구조의 다른 표현들이다. 이러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우선 종교 혹은 종교 현상이라고 불려지는 문화-역사적인 현상의 근저에 있는, 종교나 종교 현상을 가능케 하는 구조가 과연 어떤 것인지, 이 여러 표상의 배후에서 그러한 종교 현상을 가능케 한 그 경험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또 어떤 실재 혹은 실재들이 그러한 경험과 연결되어 서로 상응하고 있는지 등의 제반 문제들을 비교방법이라든가 현상학적 분석을 통하여 탐구하려 한다.

종교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정립하고, 인간과 문화 및 역사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세번째 포괄적 태도가 가장 바람직한것이다.
종교 현상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려는 것은 이러한 태도를 우리 안에 가능케하려는 노력의 일단이다.

2. 무엇이 宗敎인가?

인류가 지니고 있는 문화-역사정인 자료 중에서 무엇을 또는 어떤 것을 종교라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심리학, 사회학등 각 학문에서 제공하는 많은 자료들을 모두 정리할수도 없거니와 이에 앞서 종교적인 사실과 종교적인 것이 아닌 사실과를 구별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있다
이제까지 이루어진 대부분의 종교 정의는 무엇이 종교인가 하는 데 대한 해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란 무엇인가 하는 형이상학적인 기반에서, 종교를 탐구하는 자가 지닌 질문의 성격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줄 뿐이었다.
이같은 종교정의로는-종교를 객관적인 실재로 인정하면서 실존적인 물음을 아울러 말하려는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정의이다. 따라서 특정종교의 자기선언을 가지고 종교와 종교 아닌 것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채택하는 것은 옳지않다.
만일 특정종교 입장에서 타종교를 판단하면 문화-역사현상에대한 기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아울러 종교를 지성이나 감저이나 의지 등 인간의 내적 실존의 어떤 한 부분과 동일시 하는 태도도 올바른 것이 아니다. 종교와 종교아닌것과를 구분하기 위한 준거(準據)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개념적으로 표현된 지각내용 (知覺內容)만을 다루어서도 안되고, 감정이나 정서만을 관찰해서도 안되며 그러한 자각 내용이나 표상만을 연구해서도 안된다.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종교현상의 기본구조를 종교 경험(經驗)과 종교 표상(表象)의 두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A. 宗敎經驗

일반적으로 종교경험을 네가지 형식적인 기준에 근거하여 정리해 볼 수 있다.

(1) 종교경험은 궁극적인실재로 경험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종교경험은 神이라든가, 가치 창조의 근원이라고 관찰될 수 있는 어떤 능동적인 실재를 나타내주는 자극이며, 동시에 이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이 하여 삶 혹은 가치의 원천과의 소통이 가능해지면, 이를 계속 지탱하기 위하여 인간은 쉬지않고 자신의 경험을 재학인해 나가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종교적인 삶이다

(2) 종교경험은 궁극적인 실재라고 파악된 것에 대한 전존재의 전체적 반응이다. 즉 지, 정, 의 모두가 통합된 전체적인 하나의 인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3) 종교경험은 가장 강렬한 것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경험 중에서 가장 강렬한것, 가장 그 농도가 짙은 것이다. 이러한 종교경험의 특질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기본적인 욕구나 동기들이 상호간에 알력을 일으키는 경우에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종교적인 충성심은 가정이나 사회공동체 혹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의 알력에서 언제나 우선한다. 그리고 종교적 기준이 여타의 충성심에 대한 원천이라고 하는 면에서 언제나 근원적이고 동시에 종국적이다. (실존적)

(4) 종교경험은 실제적(實際的)인것이다.
즉 종교경험은 인간으로하여금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불가피한 의무와 자기 봉헌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같은 행동적인 특징대문에 종교경험은 審美的인 경험보더는 道德的인 경험과 더 유사(類似)하다. 다만 도덕적인 판단은 종교경험과는 달리 필연적으로 궁극적인 실재에의 반응을 나타내고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데에 그 차이가 있다.

*종교경험을 궁극적인 실재에대한 반응이라고 할때의 그 궁극적인 실재는 현실적인 우리의 삶속에서는, 우리가 처한 "지금" "이자리"와는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경험된다. 다시말하면,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의 존재나 의미와의 만남, 곧 우리의 자연적인 혹은 일상적인 현실과는 전혀 다른 어떤 질서의 현실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존재양태 혹은 경험 양태를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 하나는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삶의 경험 내용이고,

* 또하나는 "전혀 다른 것"에 대한 삶의 경험 내용이다.

전자를<俗>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그 역(逆)이라고 하는 뜻에서 <聖>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宗敎經驗"이란 이러한 성과 속을 현실(現實) 속에서 살아가는 독특한 삶의 양태(樣態)라 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는 성과 속으로 표현되는 두 가지 다른 실존적 상황(實存的 狀況)이 있는데, 종교경험이란 이 자리만이 아닌 "저곳",이시간만이 아닌 "저 시간", 보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어떤 것", 이 意味만이 아닌 "저 의미" 등으로부터, 삶의 양태를 방향짓는 구체적인 <힘>을 경험하는 것임며, 이 힘과 연결된 이 자리, 이 시간, 보이는 것, 이 의미 등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경험에 의하면 참으로 실재하는 것은 그 궁극적인 것, 곧 "전혀 다른 것"뿐이다. 이것이 곧 종교 경험이 내포하는 "궁극성"(窮極性)의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聖,俗의 구별은 "실재인 것 -- 실재이지 않은 것"의 구별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며, 이와 같은 종교 경험의 이해에 근거한다면, "종교인"이란 참(眞)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사람, 실재에 참여하려는 사람, 그러기 위한 힘에 사로잡히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따라서 종교경험은 , 이러헌 자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구체적인 삶의 범주인 空間과 時間, 自然과 人間에 대하여, 어떠한 경험 내용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1) 공 간 (空 間)
일상적인 경험속에서 인식되는 공간이나 장소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지리적(地理的)이고 기하학적(幾何學的)이다. 비록 산 , 바다, 모서리, 가운데주변 등 구분은 가능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볼때 모든 공간이나 장소가 동질적이고 연속적임을 뜻한다. 어떤 특정한 장소가 일상적인 필요나 기능에 의하여 다른곳 보다 더 중요하고 필수적이게 될 수가 있지만 그때 인식되는 장소간의 차이는 한장소나 공간이 다른 장소나 공간과 갖는 상대적 병치관계 (倂置關係)이지 존재론적 위계(存在論的位階)는 아니다. 즉 장소의 중요성의 차이가 곧 공간의 異質性을 뜻하는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교경험에 의하면 공간은 동질적인것의 연속이 아니라, 어떤 "곳"은 그 동질성이 깨지고 연속성이 단절되면서, 일상적인 경험 내용에 포용될 수 없는 "다른 곳" 으로 경험된다.

例, 출애굽기 3:5--보면 가시덤불 속에서 "거룩한 곳 "이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신을 벗는다. 그곳에서 모세는 자기의 삶을 위한 하나의 고정된 점을 확보하고, 절대적인 실재의 계시를 경험한다. "불꼿이 일고 신을 벗어야 했던 그곳" 은 모든 공간의 동질성이 연속될 수 없는 "다른 곳", 곧 "거룩한 곳"이었다. 곧 그곳은 단순히 "중요한 곳"이 아니라 "근원적인 곳",자기 실존의 모습 전체를 바꾸어놓는 "궁극적인 곳" 이었다.
종교인은 자기의 종교 경험 속에서 언제나 이러한 장소 혹은 공간과의 만남을 증언한다.
이같은 공간 경험은 ---(중심의 상징(象徵)이 된다. --- 성지, 성산,을 우주의 중심으로 믿는다든가, 성전이나 자기나라의 주거의 위치를 중심으로 경험 하는것등 --- 그때의 그중심은 기하학적인 중심이 아니다. -- 우주가 비롯 된 곳, 우주의 모든 질서가 지탱 되는 곳, 다른 실재의 차원과의 소통(疏通)이 가능한곳, 초월에의 출구를 발견하는 곳, 우주창생의 근원적인 사실이 재현되는 곳, 혼돈에서 질서에로의 이월(移越)이 가능한곳, 하나의 存在樣態에서 또하나의 존재양태로의 전이 (轉移)가이루어질 수 있는 통과점(通過点)에서의 삶을 의미 한다.
그런데 이런 장소는 사색(思索)을 통하여 구별하는 것이아니라. 그 장소 스스로 그렇게 다른 곳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경험은 원초적(原初的)인 것이다 인간은 이 "거룩한 곳"에서의 삶, 혹은 초월의 가능성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자기가 처한 공간을 聖別하는, 즉 거룩한 곳이게 하는 의도적인 기술을 습득하고 시행한다. (땅을 개간 했을때, 미지의 영역을 점령 했을때, 집터를 닦거나 건축할때 종교적인 祭儀나 의식(儀式)을 행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즉 공간의 동질성 내지 연속성을 깨트리면서, 그동질성이 지니고 있던 "카오스"에다 구조, 형태 및 규범을 부여함으로써 그곳을 "코스모스"로이루는 행위.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聖別행위이고, 그성별앵위는 宇宙創生,의 행위와 동일한것 즉 창조행위의 반복인 것이다
공간에 대한 이와 같은 종교경험의 내용에 의거하여 종교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 한다면, 종교인이란 --그 공간에서 행하는 제의(祭儀)를 통하여 가능한한 세계의 중심에 살려고 하는 사람, 초월적인 세계와의 소통이가능한 장소에서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이다.
*즉 공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 例, 교회나 사원(寺院)이 그 원형(原型)을 "이곳"이아닌 "저곡"에 지니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동시에 그교회나 사원이 그 "다른 곳" 의 "이 곳"에대한 간섭을 실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심의 상징을 지니고 나타나는 교회나 사원은 俗안에 있 는 聖, 곧 거룩한 것의 드러남, 다시 말해서 神學的인 표현을 빈다면 ,그것 자체가 인카네션(Incarnation)이면서 아울러 세상을 聖化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공간에 대한 종교경험은 文化-歷史的인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 양태가 어떠하든간에 그 종교 경험의 의미는 같은 것이다.

2)시 간( 時 間)
흔히 우리는 시간을 흐름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이 흐름이라는 표현이 지니고 있는 가장 뚜렸한 특징은 시간은 연속적이고 동질적이라는 사실이다. 과거혹은 현재라고 하는 時相의 표현은 하나의 흐름이 지닌 계기(繼起)의 다른 양태일 뿐이지 그 본질은 동일한 것이다. 흐름으로 표현되는 시간경험의 또다른 특징은, 시간은 역류할 수 없는것 혹은 동일한 시간은 반복할 수 없다는 경험내용을 지칭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흐름으로 이해되고 경험되는 이러한 일상적인 시간은 무상한 것, 쇠잔해지면서 결국 소멸되는 것 등의 실존적 개념마져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은 공포로 경험 되며 , 시간의 공포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인간의 실존적 고뇌의 내용을 이루는 가장 큰 부분이 되고 있다.
또한 단조롭고 권태로은 시간, 음악에 심취해 있는 황홀한시간, 사랑하는이를 기다리는 시간 등의 경험은 그 밀도에 있어서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나 그것도 흐름으로서의 한 모습이지 이질적인 시간일 수는 없다.
시간에대한 종교경험의 내용은 바로 이러한 흐름의 시간과는 그 구조(構造)와 기원(起源)이 <"다른"시간>을 경험한다고 하는 데에 그 차이가 있다.
<시간에대한 종교경험의 내용>은 神話가 지니고 있는 象徵技能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신화는 "처음", 혹은 "사물의 비롯함"을 설명하고 있다. 즉 언제나 시간적인 관심과 연결되어 있는 신화는 신의 이야기 , 창조에 대한 이야기 , 사물의 비롯된 그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神話의 吟誦이나 祭儀的인 경험을 통하여 宗敎人은 흐름이 아닌 "다른 시간"의 실재를 느끼게되고 , 그 다른 시가을 "지금"의 俗의 시간과는 이질적인 聖의 시간으로 체험한다. 그러므로 , 시간에대한 宗敎經驗은 신화적인 시간경험을 주축으로 하는 근원적인 시간에로의 復歸라고 말할 수 있다.
흐름의 연속과는 다른 "그때의 처음, 흐름에 속하지 않은 "아득한 그때"를, 흐름을 뚫고 , 혹은 그 흐름을 逆流하면서 살게 되는 것 이다. 따라서 종교적인 경험이 갖는 시간의 특징을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살 수 있 다"는 말로 표현할 수 가 있다. 이와같이 태초에의 복귀는 우주창생을 정기적으로 반복하여 시간을 재생한다든다, 제의를 통하여 終末과 再生에 참여함으로써 흐름의 시간을 단절하고 "그때의 처음"을 현재적으로 그 속에서 실현한다든가 하는 양태로 경험된다.
例 를 들면 --새해의 축제, 절기적인 축제, 성만찬등은 그러한 종교적 시간경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 이다.---새해의 처음, 곧 元旦이란 지극히 인위적인 마디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文化-歷史가 보여주는 모든 신년 축제의 構造는 본질적으로 聖禮典的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나고 , 다시 태초의 시간에서 "처음을 되시작"하는 것, 곧 이때의 시간은 창조하는 계기인 것이다.
따라서 새해의 축제는 그 제의를 통하여 일상적인 속의 시간을 소멸 시키고 세상(시간)의 종말을 그 제의를 통하여 성취하면서, 처음을 재창조한다. 곧, 그 축제는 재생의 모티브을 상징적으로 구성하는 창조 행위, 그러니까 신학적인 술어를 빈다면, 神의 行爲에의 참여 혹은 그것의 模倣(imitatio dei)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이다. 그러므로, 시간에 대한 종교경험의 특징을 , 우리는 그 역류 가능성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시간에 대한 종교경험은, 시간이란 보완되거나, 수정되거나, 수선될 수 있는것이 아니라 새로이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렇게 시간이 재창조될 때, 비로소 인간은 궁극적인 실재, 곧 거룩한 것과의 조우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宗敎祭儀는 이와같이 시간 경험, 즉 시간의 단절, 재생, 역류를 현실화시키는 통로이며, 그 제의가 수행되는 바로 그 시간이 그대로 재창조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다른 시간을 일상적인 흐름의 시간 안에서 경험할 때, 비로서 이간은 흐름의 시간을 지탱해 주는 支柱를 확보하게 되고, 그 지주의 지탱에 의하여 시간의 소멸과 재생이 제의적으로 가능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시간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와질 수가 있다.
이러한 종교경험의 특징은 현대인의 의식구조와 비교하여 볼때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인은 종교 제의로 점철된 이른바 거룩한 달력( sacredcalendar) 을 그 생활속에 두고 있 지 않다. 따라서 형태적으로만 의식되고, 또 그렇게만 잔존해 있는 주기적인 새해의 축제가 다만 순환론적인 시간의식 속에서 비관적인 비전만을 삶에다 투영해 준다. 즉 거듭되는 새해는 종말에의 재촉 이상일 수가 없는것이다.
그러나,종교경험에 의하면,그 계기야말로 "이제 끝내고 되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창조의 성례전이 된다. 모든 끝남은 동시에 原時間 (Ur-zeit)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에대한 종교경험은, 시간이란 한계상황이고, 따라서 불안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삶의 범주라고 하는 실존주의적인 번뇌를 극복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엘리아데가(M.Eliade)말한대로 시간에대한 종교경험은 한마디로 歷史的인(historical) 시간경험이 아니라 반(反)역사적인(a-historical) 시간경험이라고 할수 있는 그러한 것이다.

3).自 然
자연 은 아득한 때로부터 본래적(本來的)으로 존재하는 것 , 언제나 실재하며, 더 나아가서 존재자체로 설명 되기도한다. 그러나 이 우주라고 하는 이 자연은 "있을" 뿐 만 아니라, 그 "있음"이 가능해질 수 있는 원리와 구조를 지니고 있는것 이다. 그것을 우리는 우주의 질서라든가 자연의 법칙이고 부른다. 그러나 이에대한 종교경험의 내용은 그 질서나 법칙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하는 데 그 차이가 있다.

자연에대한 종교경험은 그것이 있게된 어떤 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즉 의도적로 있게된 창조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인은 그것이 자연일뿐 아니라 종교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은 카오스(혼돈)가아니라 코스모스(조화)라고하는 사실이, 인간을 초월하는 "저곳의"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경험하게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사를 보면 어느종교이든 자연에대한 종교경험은 필연적으로 자연은 "거룩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인식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사물은 그 거룩한 것의 다양(多樣)한 표상(表象)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자연에대한 종교경험의 내용은 "자연은 곧, 초자연"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자연만이 아닌 다른 것을 드러내고 있는 거것이라는 것이며 그 자연을 통하여 스스로를 경험가능하게하는 "그 어떤 것"을 초자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例,-- 나무나 돌이 종교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고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종교인의 경험 속에서 결코 그 나무나 돌이 자연으로서의 속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그 종교적경험 속에서 그 돌은, "돌이되 돌이지만은 않은것"이며 다시 나아가" 돌이 아니되 돌인" 것이다. 그 돌, 곧 자연을 통해서 거룩한것, 즉 초자연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그러한 사실들을 대상으로하는 종교적인 태도는 自然崇拜라던가, 아니면 신학적인 개념으로 自然宗敎라고 설명되거나 그것에대한 예배는 그릇된 신앙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같은 종교적인 상징성을 이해하지 못한데서오는 소치이다.

例, 하늘은 하늘이되 하늘님(sky-god)으로 경험된다.
인간이 종교경험의 다양한 내용을 상징을 통하여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연에대한 경험내용에서 비롯된다.---대지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던가 , 갓난아이를 땅에 누인다던가, 물로 씻는 세례나 물에 잠기는 침례가, 물의 자연과 물의 우주창생적 구조와 아울러 소멸과 재생을 뜻한다든가, 초생달, 만월, 그믐달 등 차고 기우는 달의 현상이 여성 및 풍요 등과 의 관계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해석의 근원적인 모델이 되는 상징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든가 하는 제반 사실들은 자연에 대한 종교경험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내용에서 읽혀질 때 , 비로소 우리는 그 상징 혹은 그 자연 현상의 메시지(message)를 읽을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현대인의 자연에대한 의식속에는 자연은 이용해야하고, 제어해야하며, 정복해야할 개발의 대상일뿐이지 그것을 초자연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경험되지않는다. 자연은 단순히 객체로서의 자연일 뿐이다. 그러나 달에 발자국을 낸 현대가 생태학적인 문제와 아울러 자연과의 조화를 문화의 새로운 과제로 제기하고있다는 사실은 현대인의 문화속에 여전히 자연에대한 심미(審美)적인 정서가 살아 있다고하는 사실이다.
자연을 통하여 경험되는 우주의 거룩함은 근원적인 계시이기때문에 아득한 때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상징의 구조 (the structure of symbolism)라고하는 것이, 새로운 의미 부여는 받을 수 있어도 그 자체가 파괴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 역사는 그러한 근원적인 계시의 상징들을 소멸시킬 수는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4). 人 間
시간, 공간, 자연에대한 종교경험에 의하면 이 세계는 초월적인 힘에 의하여, 혹은 神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세계가 존재한다고하는 사실 자체가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세상은 그것 자체가 무언가를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인에게 경험되는 우주는 "살아" 있을뿐만 아니라 "말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가 살아있다고 하는 그 단순한 사실 자체가 우주의 神聖性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神이라고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 우주는 神에의하여 창조되었고 , 신은 우주의 삶을 통하여 스스로를 인간에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啓示).
이러한 입장에서 인간에대한 이해는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로 받아드리는 경험을 가능하게한다. 즉 우주에 대해서 인식하고 경험했던 聖을 스스로에게서도 의식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자기의 삶이 우주의 삶과 동질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것은 인간이 단순한 인간일뿐 아니라 그것에 덧붙여진 또다른 차원(次元)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초자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경험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실존적(實存的)인 삶의 범주(範疇)에 의하여 “닫혀진 존재”가아니라 다른차원을 향하여 "열려진 존재"로 받아드리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거룩한것 , 혹은 신적(神的)인 것과의 소통(疏通)이 가능한 , 이른바 "세계를 향항여 열려진 삶",그리고 세계가 지닌 거룩함에의 참여, 곧 "열려진 우주속에서 사는 삶"이 종교적인 삶이고 그곳에서 정리되는것이 바로 종교인의 독특한 인간 경험이고 또한 인간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에게는 언제나 삶 자체가 거룩한 것의 의미로 가득 채워진다. 다시 말하면 , 삶을 聖別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먹는것 , 마시는 것, 일하는 것, 이 모든 일상적인 삶의 행위들이 육신적인 삶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아니라 거룩한 행위로 경험된다.
이러한 인간이해에 근거할때, 종교경험은 자연적인 실존수준에서 주어진상태대로, 그대로 있는 인간은, 결코 궁극적인 실재(實在)와의 만남을 통한 삶의 완성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규범을 설정케 해준다. 가장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첫번째 삶이 끝 나고, 혹은 죽고, 그런 다음에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다시 태어남이 이룩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연적인 인간성을 "지나가기"전에는 완전한 인간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여러 종교제의 중에서도 특별히 통과제의( 通過祭儀)이다.
*인간을 "열려진 존재"로 보는 것은 ,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이 막힘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자세임을 뜻하며, 따라서 인간의 실존은 일련의 통과 제의를 거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例, 태어나고, 성년이되고, 결혼을 하고, 죽음을 맞고, 그때마다 일정한 제의(儀式)를 겪으면서,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론적 위치와 실존적 양태를 하나의 차원에서 더 높은 차원에로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통과제의의 구조(構造)를 살펴보면 그 상징적인 의미가 더 선명해 진다. (祭儀構造는 제4장 에)

■B. 宗敎表象

종교현상의 基本構造를 인식하기 위한 두가지 전제.

1. 종교경험 자체의 보편성(普遍性)
종교경험은 문화나 역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나 나타는 인간의 경험 내용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경험이다.
2. 종교경험은 내적인 것으로 개인의 人性이나 共同體의 意識속에 잠재해 있을뿜 뿐만 아니라, 밖으로 표현(表現)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종교경험은 나타表象을 통하여 비로소 전달 가능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두가지 사실을 전제하고 여러 종교경험이 형태적으로 나타난 그 표상을 정리해 보면, 크게 세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理論的 側面(doctrine) (2) 實踐的 表象(cult) (3) 社會的 表象(communion)

1) 理論的 側面(表象)

窮極的인 實在와의 조우(遭遇)는 認識的인 요소를 동반한다. 마호멧이 최초의 계시(啓示)를 깨달았을 때, 노자(老子)가 불변하는 도(道)의 본질을 터득했을 때,불타 (佛陀)가 現象界의 迷妄을 깨달았을 때 이모든 경우의 원래적인 직관(ur-intuition)은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지각, 가시적인 것과 불가시적인 것과의 관계, 우주의 본성, 인간의 운명 등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인식은 언제나 근원적인 깨달음에서 멈추지 않고, 개념적으로 보다 정밀하고 정교(精巧)하게 다듬어져 나간다.

神話
實在에대한 인간의 개념이 最初로 다듬어진 것이 신화(神話)의 영역에서였다고 하는 랭거(S.Langer)의 주장을 따른다면, 원시적인 종교 경험에서도 그러한 지적 표현이 가능했으리라고 예상할 수가 있다. 신화는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위대하며 가장 올바른,"실재(實在)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신화는 모든 종교에 속해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인간이 궁극적인 실재와의 접촉을 하면서 묻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이며, 그 대답은 언제나 상상적(想像的)인 언어, 다시 말하면 상징적(象徵的)인 언어를 통하여 제시된다.

敎理,敎設,神學
그러나 신화는 지적인 설명의 모습을 띠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 지각에 대한 지적 표상의 두번째 형식으로 교설(敎設) 혹은 교리 (敎理)를 들 수 있다. 교설은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 것을 체계화(體系化) 한 것이다. 교리는 교설을 뚜렷하게 구체화(具體化) 한 것이다. 교설을 좁은 의미의 神學이라고 한다면, 교리는 여러 신학 사이에서 결단을 행한 것이다.
모든 종교경험은 자기나름의 신학, 곧 지적 구조물(知的構造物-경전-성경 불경 코란경 등)을 지니고 있다.--신론, 우주론, 인간론, 구속론, 종말론등.

2) 實踐的 表象
종교경험을 가장 실제적이고 순수하게 그 경험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적인 것이 곧 祭儀이다. 제의는 궁극적인 실재에대한 인간의 전인적(全人的)인 관심이 풍요하고 복합적인 행위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것은 예술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곧, 제의는 마치 예술처럼 경험의 상징화가 도달하는 최종적인 경지인 것이다. 모든 제의는 봉헌적(奉獻的)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그 제의 안에서, 그리고 그 제의를 통하여 거룩한 어떤 힘의 임재(臨再)를 지각하게 된다. 제의는 경험의 자기 내면화가 표출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매개라고 할 수 있다. 제의에 있어서 소리, 음성, 몸짓 기도, 헌납, 거룩한 춤, 순례, 성례 등 그 매개는 모든 인간의 활동을 망라한다.
궁극적인 실재와의 만남을 통한 실존의 근본적인 변화가 종교경험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이와 관련된 가장 상징적인 제의는, 통과제의(通過祭儀)-(rites of passage)라고 할 수 있다. 이 제의는 개인 혹은 집단의 위기나 전환점을 성별하는 제의를 뜻한다. - 임신, 출생, 명명, 성년, 결혼, 질병, 장례 등에서 행해지는 제의들은 모두가 그러한 轉換에 의해서 상실될지도 모르는 근원적인 실재와의 관계가 다른 상황, 다른 차원에서도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 행위이다.
통과제의 는 생애의 마디 속에서 경험되는 중요한 계기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집을 지을 때, 학교를 시작할 때, 배를 띄우고, 땅을 파고, 전쟁을 할 때 등의 모든 경우에, 기도(祈禱)나 송영(誦詠)이나 헌신(獻身)등의 제의가 뒤따른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종교인들의 생활 전체는 그것 자체가 종교적 제의의 표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모든 행위와 활동 자체가 궁극적인 실재와, 그로부터 경험되는 힘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각 종교마다 필수적으로 규정하고있는 성례(聖禮)는 종교적인 삶을 집약할 수 있고, 그 정점(頂點)에 이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봉헌 행위(奉獻行爲)이다. 이는 가시적(可視的)인 사실을 통하여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실재(實在)를 표출(表出)할 뿐 아니라 전달하는 것이라는 이해에 근거하여, 가장 중요한 제의를 일컬어 "聖禮"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sacrament-聖禮典)
제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거룩한 힘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그 효과적인 방법으로 모든 종교들은 자기수련, 자기 부정, 혹은 지기 봉헌이나 희생 등, 특별한 의무의 수행을 강조 한다. 이러한 의무의 수행(修行)은 그 종교적인 개인이나 집단의 윤리적 규범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실존적인 자기봉헌과 윤리적인 자기 희생의 행위는, 제의와 아울러 보편적인 종교 경험의 實踐的 表象이 되고 있다.

3) 社會的 表象
인간은 고독 속에서 "거룩한 것"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그 것을 증언하고 싶어하며, 인간과의 사귐과 공동생활(共同生活)을 바란다. 그러므로, 종교는 본질상 사귐이요 친교인 것이다. 종교경험속에서 인간은 궁극적인 실재와 조우한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 공동체( 共同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궁극적실재에의 지향(指向)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실재를 향한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종교 공동체는 더 구체적으로 제사 공동체(祭祀共同體)-(cult-group)라고 호칭될 수 있다.
기독교의 교회, 불교의 승가(僧伽), 이슬람교의 움마(ummah)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모든 제사 공동체는 그에 속한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그 구성원으로 확인하기 위한 특징들을 갖는다. 그러한 것은 信條, 祈禱文, 어떤 비의(秘儀), 몸짓, 태도 등에서 나타난다. 즉 공통된 신조, 공통된 제의, 공통의 상징을 갖는것이다.
또한 종교경험의 사회적표상은 제사공동체 자체의 내적인 구조만이 아니라, 사회 일반과의 관계 형성이라고 하는 측면이 때로는 더 중요하게, 때로는 그 귀결점으로 부각되기도한다. 특히 이런 면에서, 뒤르껭(E. Durkheim)은 인간의 자의식속에 있는 종교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사회구조 안에서 찾고 있다. 종교란,그것이 사회적인 상호 관련 속에서 생명적인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현실적인 것, 즉 실재적인 것일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한 종교"라는 개념은 불가능하다,

맺음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종교현상의 실재를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범주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현상으로 환원시켜버겨, 종교란 실상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라고 무관심해 버린다든지, 역사적인 후기발전에서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다만 전통적인 유산이라든지 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위험한 것은 현상(現狀)을 종교적인 열정을 통하요여 화석화(化石化)시키려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영적인 실재의 역동적이고 제약불가능하고 정의내리기 어려운 신비한 특성들을 거절해 버리는 것이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종희 목사 올림
2008-11-12 14:11:33
118.xxx.xxx.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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